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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머리 좀 치워봐."
전보다 풀린 날씨에 후문의 벤치에 앉아있던 지호의 허벅지에 지훈이 머리를 눕혔다. 아 이새끼 또 이래.. 지호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다리를 떨면서 지훈에게 뭐라뭐라 궁시렁됬지만 지훈은 그저 지호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휘파람을 불 뿐이었다. 이 때가 아마 조금씩 새싹들이 피어오를 때 였을 것이다.
*
시간은 멈춰 있지 않는다. 계절은 돌아오고 변하는 것은 사람 일 뿐이라는 국어선생님의 수업에 지호는 그저 턱을 괸채 창문을 바라보았다. 날이 추워지고 나무들이 하나씩 색을 잃어갔다. 추워죽겠는데 농구하는건 뭐야. 스치듯이 본 운동장엔 표지훈이 농구를 하고 있었다. 여자애들이 지르는 소리에 근원지가 표지훈인 것 같아 괜히 심술이 났다. 여자한테 인기도 많은 새끼. 한참을 속으로 표지훈을 씹을 때 종이쳤고 아이들은 하나둘씩 일어나 점심을 먹기위해 달려나갔다. 경도 그 아이들중에 하나인듯 슬슬 밥을 먹기위해 일어났다.
" 우지호! 밥 안먹을꺼야? "
어.별로 생각없어. 책상에 고개를 묻은 채 손으로 휘휘 가라는 표시를 하자 급식을 위해 반 앞으로 온 유권과 함께 경이 나갔다. 생리하나? 뒷문으로 빠져나가면 큭큭되던 그들의 얘기가 멀어질 때 쯤 지호의 정신도 점점 잠으로 이끌려갔다. 딱 잠이 들려할때, 뒷문이 열렸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누군가 왔지만 잠에 취해 미처 고개를 들 엄두도 내지 않았다. 앞에서 의자를 끌고 앉는 소리가 났다. 누구야 도대체..
" 어디 아픈가."
누가 들어도 알 수 있는 목소리에 지호는 살짝 어리둥절 했다. 평소에 자신을 잡아 먹을듯이 시비를 걸고 만나기만 하면 서로 으르렁되기에 바빴던 표지훈이 왜 여기있는지 이해가 안갔다. 이미 달아나버린 잠에 자는 것을 포기한 지호는 왜 표지훈이 이러는가. 에 대한 많은 생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체격이 비슷해 체육복을 빌릴때도 자신의 몸에 맞는게 너한테 맞을 것 같냐는 말부터 시작해서 니 냄새가 스미면 어쩌냐는 말까지 지호의 성질을 돋구는 말을 많이하는 지훈이다. 그래도 마지막엔 빌려주어 지호의 기분이 조금 풀리지만 금방 지훈이 하는 말에 다시 불같이 화를 내던 지호였다. 오늘 그날이야? 뭐 묻혀 오지마. 그렇게 지호는 지훈을 앙숙으로 여겼고 싸움이 일어나는 장소는 시도때도 없이 바꼈기에 반 아이들과 그들의 친구들은 곤욕이었다. 열심히 눈을 도르륵 돌리며 생각하던 지호가 지훈의 행동에 순간 숨을 들이마셨다.
" 뒷통수도 귀엽네."
큭큭되며 지훈이 지호의 뒷통수를 쓰다듬었고 지호는 갑자기 느끼는 이 이상한 감정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새끼 오늘 미친게 틀림없어. 표지훈이 오늘 이상해서 자신도 이상해지는 거라며 자신을 합리화한 지호는 어서 빨리 표지훈이 자리를 뜨기만을 바랬다. 곧 앞문이 열리더니 아이들이 몇명씩 들어왔고 시끄럽게 떠들던 무리들이 반에 있던 표지훈을 보고서는 조용히 자리에 앉은 듯 했다. 얼른나가! 마음속으로 표지훈이 나가길 빌고 있던 지호는 스륵- 의자를 밀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몸을 천천히 일으켜 숨을 몰아쉬었다. 천천히 곱씹어 생각해봐도 오늘의 표지훈은 이상했다. 걔가 그렇게 다정했나?
급식이 맛있었다며 입이 닳게 칭찬하던 박경은 수업이 시작되자 마자 입을 다물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조용히 하랄땐 안하고.. 지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초점을 칠판으로 바꾸어 필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 이 볼펜 표지훈이 준거였지 아마?. 한번 든 표지훈 생각은 지호의 마음속에서 둥둥떠다니며 사그라들 기미를 하지 않았다. 이 공책도, 이 필통도!. 자신의 생활 곳곳에 잠식되어 있던 표지훈이 점점 수면위로 들어나는 것 같았다. 허. 바람빠진 웃음이 지호의 입새를 비집고 흘러나왔고 지호는 이 어지러운 감정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게 다 표지훈 탓이야!. 머리를 헝끄리며 짜증을 내던 지호는 이내 책상위로 엎어져 눈을 감았다. 잠이라도 자야 지긋지긋한 표지훈 생각이 안날수 있을 것 같아.
으, 추워. 손을 교복 주머니에 넣으며 걸음을 빨리했다. 유권과 댄스동아리 면접을 볼 것 이라며 먼저 가버린 경을 원망하며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친구삼아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이렇게 심심할땐 표지훈이랑 싸…. 또 다시 드는 지훈의 생각에 지호는 체념한 듯 한숨을 내뱉었다.
" 어? 우지호!"
멀리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그대로 뒤를 돌아보자 지훈이 뛰어오고 있었다. 너도 양반은 못되는구나?. 뛰어오는 폼이 웃겨 큭큭되자 표지훈이 숨을 몰아쉬며 왜웃냐고 타박을 줬다. 뛰는 폼 거지같아.
" 집에 혼자가냐? 같이가자. 방향도 같은데."
" 싫다하면 혼자갈꺼냐? 아니면서 무슨."
괜히 틱틱되며 표지훈을 재치고 먼저 걸어갔다. 생긴건 그렇게 안생겨서 계속 쫑알쫑알 말하는 녀석이 웃겨 살짝 웃음이 났다. 덩치큰 애완견같은 느낌이나 기분이 좋아졌다.
" 야, 너 오늘 왜 밥 안먹었어. 어디 아프냐? "
은근슬쩍 물어보는 지훈의 말속에 다정함이 숨어 있는 것 같아 지호에겐 아까의 어지러운 마음이 다시 찾아왔다. 울렁울렁하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서 지호는 발걸음을 멈췄다. 옆으로 돌아서 표지훈을 보자 먼저 지호를 쳐다보고 있었는지 눈이 마주쳤다.
" 어디 아픈건 없는데.. 살짝 어지러운데?"
어지럽다는 말에 손을 들어 이마에 대는 손길이 투박하지만 따뜻해서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머리말고 내 마음이 어지러워 병신아. 차마 입밖으로는 내지 못하고 표지훈이 이끄는대로 놔두니 감기에 걸린 것 같다며 집에 빨리가자고 말해 못내 아쉬웠다. 지훈이 뒤에서 느리게 걷고 있는 지호의 손을 낚아채 자신의 잠바 안에 넣어 길을 걸었다. 어지러운 마음이 떨리는 마음으로 걸리는데는 오랜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 지호는 스스로의 감정변화에 그저 웃음이 났다. 허, 뭐야 이게.
" 감기인것 같으니깐 얼른 들어가 쉬어. 내일보자."
어서 빨리 들어가라며 대문앞에 서서 손을 흔드는 지훈을 보며 지호는 짧게 인사하곤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을 닫자마자 풀리는 다리에 멍한 얼굴로 무릎을 감쌌다. 엄마가 어디 아프냐고 놀라시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지호는 아직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손을 꽉 감싸쥐었다. 부정 할 수도 없는 마음에 지호는 두눈을 꼭 감았다. 언뜻 스쳐지나가는 국어선생님의 말씀이 귓가에 머물다 멀어졌다. 계절은 돌아오고 변하는 것은 사람 일 뿐. 또 다시 그와 자신이 처음만났던 봄이 돌아올테지만 그 때와는 다르게 자신의 마음이 변해있을 것 같아 지호는 한숨을 쉬었다. 아, 하느님! 왜 표지훈을 좋아하게 되버린 건가요!. 지호는 하루종일 자신을 어지럽힌 감정의 해답을 찾았다. 그게 사랑이라는 확실한 마음이 된 건 그리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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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ㅠㅠ 너무 급하게 올리다보니 오타도 많네요! 오타지적ㄱ해주시면ㄴ 스릉흠돻ㅎㅎㅎㅎㅎㅎ휴ㅠㅠㅠㅠㅠㅠㅠ 오늘도 똥손 읽어주셔서 감사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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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나락간 연예인들 보면... 반응도 좀 무서울 때 있음.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