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다른 이들은 잘 모르는 사실인데 정국 도련님은 기억력이 굉장히 좋으시다. 나 같은 일개 시녀의 이름을 외우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나는 오랫동안 이 집에서 일해왔기 때문에 알고 계시지만 정말 한 번 보고 들은 것은 잊어버리지 않으신다. 처음 나를 보고 내 이름을 기억해서 너무 놀랐던 일이 있었다. 일단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자체가 너무 놀라워서 제 이름을 어떻게 아시냐고 물었더랬다. 그랬더니 저번에 주인마님이 내 이름을 물었을 때 들었다고 말씀하셨었지. 이곳에 온 후 3개월이나 지났는데 말이다. 그땐 나도 참 철이 없을 때라 제 주제를 모르고 염치없이 도련님께 이것저것 물어보았던 게 생각난다. 쫑알쫑알 귀찮았을 법도 한데 도련님은 그게 뭐가 신기하냐는 듯 내가 건넨 물음에 성심성의껏 답해 주었고 나는 그런 도련님이 더더욱 신기해 보였다. 정국 도련님은 정말 모르는 게 하나도 없으신 것 같다며 칭찬하니 제 나이에 어울릴 법한 수줍은 소년 같은 미소를 지었더랬다.
'연화야, 너는 올해 몇살이 되지?' '올해 열입곱 되옵니다.' '......아...그렇구나.' '도련님은 올해 몇이옵니까? 음...열여섯?' 심부름하던 중이 아니었냐며 끝끝내 대답을 해주지 않으시고 도련님은 가버리셨다. 처음엔 왜 대답해주지 않은 걸까 의아해하다가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도련님이 나보다 3살이나 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보다 어릴 것이라 예상은 했었지만 3살이나 차이 날 줄은 몰랐다. 어차피 주인과 시종 사이에 나이는 별 상관없는 것이지만. 나는 그저 어린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똑똑하시고 지식도 풍부하신 분이구나 감탄했었다. 정국 도련님이 열입곱 살이 되시면서부터 모든 이가 미소년이라 부를 정도로 그의 외모에 꽃이 피기 시작했고 스무 살이 된 지금에서는 어느 여성이나 꿈꾸는 멋진 성인 남성으로 성장하여 도련님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그의 첩이라도 되고 싶어 안달 난 여인들이 전 씨 가뿐만 아니라 이 도성에 쫙 깔렸다 해도 말이 아니었다. 이렇게 도련님을 뵙는 것도 무척이나 오랜만이기도 하면서 사뭇 진지한 표정에 괜스레 어색해지는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고민이 생기면 밤중에 집안 정원들을 돌아다니며 사색에 빠지는 버릇은 여전하신가 보네. 아마도... 곧 있을 혼인 때문이지 싶다. 아랫것들도 이토록 소란스러운데 당사자의 마음은 더 소란스럽겠지. "그동안 잘 지냈느냐?" "네, 저야 별 탈 없이 잘 지냈사옵니다. 도련님께서는... 아무래도 그래 보이진 않으십니다. 정혼자 분께서 내일 온다지요?" "그래..." "심란하십니까?" "그것이... 사실은 그러하다." 솔직히 나 또한 도련님이 좋다. 이것이 다른 여인들과 마찬가지로 이성으로서 좋은 것인지 아님 아랫사람으로서 동경하는 것인지 아님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도련님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그와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면 싶고 그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한 것을 묻고 싶다. 그러나 내 위치가 전 씨 가의 일개 시녀라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혹시... 마음에 둔 정인이라도 있으십니까?" "... 없다." "그렇다면 다행이십니다." "다행인 걸까?... 다른 이들은 서로 사랑하고 원하여 가정을 이룬다는데 나에겐 그런 것조차 사치구나." 도련님은 사치라 하시지만 저 같은 이들에겐 죄가 되는 것인걸요. "우리네 인생이 마음대로 되는 게 어딨겠습니까? 그저 제 운명이니 하고 사는걸요. 어쩌면 그분이 도련님의 운명의 상대일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운명이라... 그런 것을 믿는단 말이냐?" "믿는다기 보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덜 고달픕니다." 도련님과 나는 서로 쓰게 웃었다. 알 수도 없는 그놈의 운명이란 말이 참으로 을씨년스럽다. 도련님의 운명과 나의 운명. 어느 쪽도 좋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분명 좋은 분이시겠지요. 좋은 분이실 겁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않다면...?" "거절하면 되시는 것 아닙니까? 이 밤하늘에 별 보다 많은 게 도련님과 혼인하고 싶어 하는 여자들인걸요! 도련님은 능력이 되는 분이시니 이번에 마음에 드시지 않더라도 이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여자이니 충분히 기회가 많습니다. 그러니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하하 말이 너무 과장된 것 아니냐?"
아, 웃으셨다. 이렇게 웃으실 때면 또 제 나이처럼 보이신다. "과장이라뇨? 정말이십니다. 저기 저 하늘이 보이십니까? 도련님은 달님 같으셔요. 달 혼자 저리도 밝으니 희끄무레한 별들은 잘 보이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그런 도련님에게 지지 않을 정도의 빛을 지닌 사람과 만나셨으면 하는 게 저의 주제넘은 바람이옵니다." "그래? 그만큼이나 나를 생각해 주어 고맙구나. 달이라... 누군가에게 달 같다 들은 것은 처음이다." "언짢으시다면 송구합니다." "언짢을 리가 있겠느냐. 저리 아름다운 것에 비유되니 좋구나."
달을 바라보는 도련님의 얼굴에 황백의 달빛이 스며들었다. "저는 이만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도련님도 날씨가 많이 추워졌으니 그만 처소로 돌아가시지요." "그래, 이만 가보거라." 도련님이 좋으시다니 전 되었습니다. 아시는지요? 희끄무레하게 빛나는 별 하나. 그게 저입니다. - 암호닉 - [새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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