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달이 뜨고 지기를 몇 차례 반복할 동안 나는 연못가에 발길을 끊었다. 물론 도련님 생각을 안 한건 아니지만 차마 가지는 못하였다. 그러는 동안 정국 도련님과 나율 아씨의 혼례 준비가 차근차근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말로 도련님이 혼인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지금도 또 도련님 생각을 하고 있다니. "도련님께서 오셨습니다." "도련님께서? 얼른 모시고 오너라." "예." 밖에 선 도련님과 눈이 마주쳤다. 매우 껄끄러운 느낌이 들면서 눈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아씨께서 들라 하십니다." 그러고는 나를 지나쳐 휙 하고 들어서는 도련님의 뒤를 따랐다. 혹시 이제껏 도련님이 그곳에 오신 적이 있으실까? 안 오셨겠지? 밤마다 내 몸은 편히 누워있었지만 마음만은 문지방을 넘고 걸어 나가 항상 연못에 비친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련님이 오셨으니 우리는 다과상을 가져와야 했다. 도련님께서 오실 때 미리 준비하라 하셨는지 다과상을 든 시녀 한 명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정이였다. "정이야." "아 연화언니!" 정이는 다행스럽게도 선애의 장례를 치르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기운을 차린 것 같았다. "미안해, 정이야. 나도 정신이 없어서 네게 신경을 많이 못 써준 것 같다." "아니에요. 아, 이건 도련님이 준비하라신 다과상이요." 다과상에선 달콤한 모과향이 풍겼다. 모과차를 준비했나 보다. 그런데... 왜 모과차를...? "정이야... 이거 정말 도련님이 시키신 거 맞니?" "네 맞아요. 왜요?" 도련님은 모과를 안 드시는데...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걸 모를 리도 없을 테고. "정이야, 솔직히 말해 봐. 이거 어디서 가져온 거야?" "어디서 가져왔나뇨, 당연히 주방에서 가져왔죠. 뭐가... 이상해요?" 정이의 목소리엔 떨림이 없었으나 다과상을 진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떨리는 손끝에선 미세하게 노란색 가루가 묻어난 게 보였다. 설마...... "정이야, 내게 왜 거짓말을 하는 거니?" "거짓이라뇨 무슨 말이에요? 이러다 차 식겠어요." "그럼 이 차 내가 마셔도 상관없겠구나." "네? 이걸 왜 언니가 마셔요? 도련님과 아씨가 드실 건데 어떻게 함부로 마실 수... 연화언니!! 안돼요!" 정이가 들고 온 찻주전자를 잔에 따라 벌컥 들이켰다. 뜨겁고 달달한 것이 식도를 따라 내려갔다. 잃어가는 의식 속에서 찻잔 깨지는 소리와 정이의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왜 그랬니 정이야. 왜 그랬어? 이렇게 하면 뭐가 달라질 수 있는데... 선애는 돌아오지 않잖아. 왜 너도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려고 하는 거야. 세상이 암흑으로 물들더니 다시 환하게 빛이 나타났다. 조금 어려진 도련님이 후원 동백나무 밑에 앉아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려진 나는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쓸쓸해 보이셔요." "그냥... 키우던 매가 죽어버렸다." "어떡해... 그 아끼시던 새 말씀이시죠?" "이곳보다도 더 드넓은 하늘을 날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저 높이 날던 아이도 없으니 이곳도 내겐 한없이 넓고 공허하구나." 까만 두 눈에 담긴 세상은 너무도 쓸쓸하고 울적해 보였다.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행복했을 거예요. 자신의 죽음을 이리도 슬퍼하는 주인이 있으니 말이에요. 전 부모의 사랑도 받아본 적 없지만... 사랑받는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지요? 그러니 너무 슬퍼 마십시오." 차라리 제가 그때 그 매였다면 좋겠습니다. 말 못하는 짐승일지라도 도련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전 행복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죽는데도 여한이 없겠지요. 세상이 다시 칠흑같은 어둠에 잠기었다. 어둠은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감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바라고 바랐던 달빛이 스멀스멀 새 나왔다. "어머! 연화야! 정신이 들어?" "단이야...?" "이 못된 계집애! 드디어 깨어나는구나! 네가 이렇게 대형사고를 칠 줄은 몰랐다 정말!" "미안해... 네가 걱정이 많았겠구나." "말이면 단 줄 알아?" 단이는 나를 천천히 일으켜 세워 물을 떠먹여 주었다. 하루 만에 깨어난 것이 기적이라 하였다. 정이는 어떻게 되었냐 묻자 아씨와 도련님을 해하려는 죄로 매질을 당하고 쫓겨났다고 단이가 역정을 내면서 말해 주었다. 정이의 목숨을 살려준 것만 해도 다행으로 알아야 했다. "네가 지금 걔 걱정할 때가 아니야. 연화 너 나한테 한마디 얘기도 없이 어쩜 그럴 수 있냐? 어쩐지 도련님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잘 알고 있다 했어.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그 말이 참이로구나." "내... 내가 뭘?" "어디 나가지 말고 여기 얌전히 기다려." 내가 도련님을 좋아하는 게 너무 티가 났나... 남들이 다 알 정도로 티가 나다니 왠지 부끄럽다. 덮고 있던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부끄러움에 몸서리쳤다. 나갔던 단이가 다시 들어왔는지 문소리가 들려 이불을 걷고 벌떡 일어났다. "언제부터 알았는데?" "...? 무얼 말이냐?"
아니 이건 꿈이야. 도련님이 여길 어떻게 와? 나는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꿈속에 있는 것이다. 도련님이 아무리 보고 싶어도 그렇지 꿈속에서까지 이러다니. 그래 꿈이 아니면 이게 뭐란 말인가? "몸은 좀 괜찮으냐?" "예... 이거... 꿈이지요?" "꿈이라... 꿈에서도 내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단 한 번도 나를 찾아오질 않았느냐?" "예...?" 아무래도 다시 한 번 모과차를 마셔야 할 듯하다. "어찌... 어찌 여기 계십니까?" "너의 지기 단이에게 네가 깨어나면 내게 바로 알리라 하였다." "누가 보면 어쩌시려고요?" "네가 너무 걱정되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정신 차려라, 연화야. 도련님은 혼인할 분이 계신다. "그런 말을 왜 제게 하십니까? 제 생각이 나서 오셨다고요? 웃으면 예쁘다고 그랬으면서. 그런 말들 왜 하셨는데요? 그런 말들에 흔들리는 제 모습을 보면서 즐거우셨습니까? 천한 계집종 한 명쯤 갖고 놀아도 상관없다? 저도 사람입니다. 저도 여인입니다. 어찌 그러십니까? 바라보게 해놓고 저는 어쩌란 말입니까? 정말... 정말 너무하십니다..." "내가 미우냐?" "네. 세상에서 제일 밉습니다." "그럼 내가 어찌하면 되겠느냐?" 제 곁에 있어 달라고요. 저를 사랑해 달라고요. 그런데 제가 어찌 감히 그럽니까? 도련님은 제 곁에서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인데.
"미안하다. 내가 너의 마음을 아프게 했구나. 한데 어쩌겠느냐. 이미 나는 너를 마음에 품었다. 연화 네가 나의 정인이 되었다." 그냥 이 모든 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 암호닉 - [새싹][칭챙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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