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티즈 운영 측에 문제가 생겨서 글잡담 글이 사라졌다고 하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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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Ocean - D
국화꽃 한 송이를 품에 안은 채 아버지의 묘를 나설 채비를 한다. 아침부터 주욱 머물러 있던 탓에 하늘이 어둑어둑 검푸르게 물들여져 있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발걸음 하지 않는 묫자리가 쓸쓸히 바람결에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또 다시 눈물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상체를 일으켰다. 점차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 세상을 살다보니, 이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일찌감치 돌아가신 어머니의 납골당에 찾아 가지 않으셨던 이유가 주체 할 수 없는 슬픔 때문이었다는 것도, 남겨질 가족을 두고 자살을 택하신 그 괴로운 마음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제는 이해가 된다. 철이라도 들었다 이건가. 학연이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돌렸다.
흔들흔들. 학연이 걸을 때마다 손에 들린 꽃이 함께 덜렁거렸다. 하필이면 놓칠 뻔한 버스 막차를 탔다. 사람 한 명 없는 버스 내부의 공기가 차가웠다. 어딘가 텅 빈 느낌이 지금 자신의 머릿 속 상황과 비슷 한 것 같았다. 학연이 주머니를 뒤적여 휴대 전화를 꺼내었다. 여전히 전원이 꺼져 있는 상태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학연이 전원을 꺼 놓고 여태 키지 않은 것이지만. 잠시 망설이다 이내 전원 버튼을 꾸욱, 누른다. 곧 하얗게 뜨는 액정.
…어?
부재중 표시가 하나도 없었다. 단, 하나도. 학연의 눈동자가 잠깐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이재환이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이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제가 어디서 무얼 하든 상관하지 않는 건가? 또 다시 알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친다. 시원 섭섭한 기분에 학연의 눈꼬리가 축, 늘어진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거지. 재환에게서 벗어나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원하는 자신인데.
재환과 학연은 속히 말하면 계약 관계였다. 재환이 하라는대로 해야만 하는 학연은, 사실상 지금 계약을 위반 한 것과 다름 없었다. 앞으로 재환이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던, 무엇을 시키던 감내해야 한다. 학연의 잇새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무슨 정신으로 지금 내가 이러고 있는거야.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자신 스스로 인 것 같아 착잡하다. 이재환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빠르게 지나간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다는 듯 학연의 눈이 조용히 감겼다.
'이번 정류장은, ㅇㅇㅇ 입니다. 다음은 …'
꿈결에 들리는 정류장 안내 음성이 학연을 흔들어 깨운다. 화들짝 놀라 일어난 학연이 헐레벌떡 버스 부저를 눌렀다. 다행히 역을 지나치지 않았다. 안도의 숨을 내쉰 학연이 조금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입문을 나선다.
밖은 여전히 쌀쌀했다. 낮 보다 더욱 차가운 공기에 학연이 몸을 조금 움츠렸다. 길가에는 단 한 명의 사람도 없었다. 간간히 비치는 가로등의 불빛만이 그 자리에 머무를 뿐이었다. 학연의 눈이 수시로 휴대 전화를 향했다. 왠지 모르게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건가.. 아니, 아니야. 학연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가슴 속에서 불쑥 불쑥 솟아오르는 이 감정이 당황스러웠다. 정확히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자신 스스로도 이해 할 수 없는. 학연이 또 다시 한숨을 쉬었다. 요 근래 한숨을 쉬는 횟수가 늘어 나는 것만 같다. … 피곤했다. 모든 것이.
텅 비어진 머리로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니, 어느 새 집 근처에 다다랐다. 저 멀리 페인트 칠이 벗겨져 볼 품 없는 학연의 집이 누런 가로등 불빛에 희끗 비쳤다. 고개를 숙인 채로 걷는 학연의 발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좁은 길을 크게 울린다.
힘들다, 정말….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고개를 든 그 순간, 쨍 하는 빛이 학연의 눈을 자극했다. 적응이 되지 않을 정도로 환한 빛에 학연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실눈을 뜬 채로 앞을 바라보니, 그 빛은 다름 아닌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였다. 밝은 빛에 가린 운전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학연이 천천히 옆으로 비껴섰다. … 잘못 킨 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시선을 바로하자 방금의 빛 때문에 시야에 잔상이 새겨졌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한참을 눈을 껌뻑이고 있는 학연의 옆으로 순간 검은색의 차가 빠르게 돌진한다. 미처 피할 틈도 없이 코 앞 까지 다가 온 탓에 학연이 크게 숨을 들이 마시며 몸을 뒤로 젖혔다. 이게… 대체.
학연이 기우뚱한 몸을 바로 세우고서 눈을 가늘게 뜨고 운전석을 바라보았다. 그도 잠시, 가늘게 뜨인 학연의 눈동자가 점점 커진다.
검은색 차의 주인은, 다름 아닌.
… 이재환.
얼음장 같은 시선으로 학연을 바라보고 있는 재환에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집은 어떻게 알고 찾아 온 걸까. 하긴, 이재환이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학연과 재환의 시선이 공중에서 진득하게 엉켰다. 짧은 순간 여러가지 감정이 뒤섞였다. 먼저 눈을 피한것은 재환이었다. 벨트를 거칠게 풀어버린 재환이 운전석의 문을 열었다. 천천히 밖으로 나온 재환의 모습에 냉기가 흘렀다. 학연이 급히 변명하기 위해 입술을 달싹였다.
"저, 저기."
"……."
"오늘.. 사정이 있어서."
"……."
"연락, 못 받아서 미안…."
재환은 대답 대신 픽-. 하고 비릿한 웃음을 터뜨렸다.
회사에 있는 동안,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차학연에게 연락이 오느냐, 오지 않느냐. 재환의 관심사는 온통 그곳에 쏠려 있었다. 이내 차학연의 집 주소를 알아 냈는지 재환에게로 연락이 왔다. 그 길로 모든 것을 팽개 치고서 이곳으로 왔다. 차학연에 대한 소유욕이 이렇게 깊었었나 할 정도로, 미친 자신의 모습이었다.
"뭐가 미안해? 응?"
"……."
"연락 짼거? 아니면."
"…… 재환아."
"다른 새끼랑 잔 거?"
그게 미안해?
학연의 눈이 순간 멍하게 뜨였다. 재환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다른 남자랑 잤다고? 언제…?
재환의 표정이 싸하게 굳었다. 빠르게 학연에게로 다가 온 재환이 거칠게 학연의 팔을 잡아챘다. 엄청난 악력에 학연이 새 된 비명을 질렀지만, 그에 아랑곳 하지 않고 더욱 세게 학연을 끌었다. 보조석의 문을 열고 거의 구겨 넣다 싶이 학연을 태운 재환이 다시금 운전석에 앉았다. 두려웠다. 이토록 화난 재환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남자랑 잤다니, 대체 그게 무슨….
"저기, 내 말 좀…."
"입 닥쳐."
여기서 박히기 싫으면.
재환의 차가운 눈이 날카롭게 학연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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