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1. 2012년 12월 25일. 선배 문태일 X 후배 김여주
“안녕히 계세요~!”
“그래~ 다들 곧장 자습실로 잘 들어가자~”
“아 쌤! 크리스마슨데!!!”
“고딩한테 크리스마스가 어딨어~ 빨리 들어가 빨리. 열두시 전에는 보내줄게.”
아나 진짜. 그래도 그렇지 1학년한테까지 크리스마스 가져가기 있냐구요(T^T) 나는 입술을 퉁 내밀며 가방을 챙겼다. 옆 학원은 크리스마스라고 휴원 했다는데 우리는 정상 수업에 자습까지 하란다. 이 상황에 자습을 하는 애가 있을 것 같아요?!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괜히 까불었다 머리 땅콩을 당할까봐 조용히 자습실로 향했다. 정수정도 가족 모임 있다고 학원 빠져서 친한 애도 없는데..! 입술을 삐쭉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몰라 배 째 컨셉으로 정재현 집에 늘러붙어 있을 걸 그랬다. 태일 오빠도 오늘 학원 차 안 탔..,
“왜이렇게 울상이야.”
“아 깜짝이야.”
문득 문태일 생각을 하는 중에 문태일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자 베이지색 코트를 입고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문태일이 보였다. 오빠는 놀란 표정을 하고 있을게 분명한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소리 내어 짧게 웃더니 이내 큼직한 손을 올려 내 머리에 얹는다. 뭐야, 분명 차 안 탔는데?
“오빠 언제 왔어? 차 안 탔잖아!”
“아, 늦게 나와서 차 놓쳤어.”
“아 다행이다. 혼자 자습실 감금 되는 줄 알았어..”
오빠의 쓰담쓰담에 기분이 좋아져 또 해벌레 입을 벌릴뻔 한 걸 꾹 참았다. 코트는 왜 또 저런 걸 입고 나와서 안 그래도 엄청난 미모를 더 돋보이게 하는 거야T.T 너무 잘생겨서 자습실 안에 있는 모든 여자애들이 다 오빠만 쳐다볼 것 같았다. 나는 오빠가 머리에 얹고있던 손을 잡고 싶었지만^^ 아직은 썸! 이라고 볼 수 있는 사이이기 때문에 아쉬운대로 손목을 잡아 내리며 입맛을 쩝 다셨다.
“오빠.”
“응?”
“이 코트.. 내일부터 입지마.”
“왜? 이상해? 이상하면 안되는데?”
“아니..그 반대니까 사람 많은 곳엔 입고 다니지마..!”
나는 그런 말을 찔끔 내뱉은 후 자습실로 달려갔다. 오빠와 조금만 더 서 있었다면 저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우릴 주시하고 있던 원장쌤한테 꾸지람을 들었을 거다. 자습실 안 가고 뭐하냐, 어? 연애하냐? 뭐 이런거. 그런 말 나는 좋지만..ㅎ 혹시라도 오빠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대놓고 듣고 싶진 않았다.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은 하고 도망쳤으니까. 이미 자습실 안으로 들어온 후라 문태일이 들어온다고 해도 방금 무슨 말을 한 거냐고 추궁 당할 일은 없을 거다. 자습실 내에선 무조건 조용! 이기 때문이다.
“후..”
화끈해진 볼을 한 번 만지작 거리며 내 자리에 앉았다. ‘김여주’ 라고 적힌 이름표가 어쩐지 더 미워보인다. 으아, 빨리 집 가고 싶다. 나는 그런 생각만 하며 가방에서 문제집을 꺼냈다. 그때 자습실 문이 조용히 열리며 문태일이 들어왔다. 엥 근데 코트는 어디다 벗어두고 온 거야..? (∂ ºㅁº)
안에 입고 있었던 것 같은 검정색 맨투맨 위에 가방을 메고 있는 문태일의 모습에 멍하니 쳐다만 보다가 정신을 차렸다. 오빠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나는 놀란 마음에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 후 책상 조명을 키며 풀지도 않을 문제집을 피는데, 문태일이 미쳤는지 내 옆 자리 의자를 끌고 앉는다. 내 옆자리. 그러니까 정수정 자리. 다시 말해 오늘 하루 종일 비어있을 자리…!
\( º д º \)
(“어쩌려고 여기 앉아..!”)
조금만 소란스러워도 선생님이 불을 키고 들어오시기 때문에 눈빛과 손짓으로만 오빠와 대화를 시도하자, 문태일은 알아들은 건지 못 알아들은 건지 바람 빠진 웃음을 작게 내보내기만 한다. 그러면서 가방 안에서 문제집을 하나씩 꺼내는데, 나는 입술을 질근 깨물으며 자세를 바로 했다. 원래 문태일의 자리는 내 자리와 완전 멀리 떨어져 있는데 괜히 걸렸다가 혼이 날까봐 걱정이었다. 코트 입지 말라고 괜히 말했나. 추운데 코트도 막 벗고 오구! 이렇게 옆 자리를 차지할 줄 알았으면 그 말도 안 했을 거다. 뒤늦게 민망함이 올라왔다.
“씨잉..”
나는 아주 작게 중얼거리며 문제집 위로 엎드렸다. 목에서부터 광대까지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사실 너무 놀라고 부끄러워서 머릿속이 하얗기만 하다. 나는 엎드린 채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튼 입이 문제지 입이. 그렇게 발을 허공에 저으며 자책하는데, 누군가 머리를 꾹 누른다. 뭐야. 천천히 고개를 들며 뒷머리로 손을 가져가니 뭔가가 부스럭거려 떼어냈다. 노란색 포스트잇이었다. 글씨가 정갈하게 적힌.
[ 왜 뛰어갔어ㅋㅋㅋ ]
딱 봐도 문태일 글씨. 오빠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개구지게 코를 찡긋거리는 오빠가 눈에 들어왔다. 못 떠드니까 요걸로 대화하자 이건가. 나는 입술을 한 번 삐쭉인 후 필통에서 펜을 꺼냈다. 추궁 안 당할꺼라고 자부하고 뛰어온 건데…(민망)
[ …ㅜㅜ 오빠 코트는 어디갔어ㅜㅜㅜ ]
오빠가 적은 말 밑에 작게 코멘트를 단 후 다시 오빠 쪽을 쳐다봤다. 문제집을 보는 건지 책상 쪽으로 고개를 고정시킨 모습에 손을 뻗어 문제집 옆에 조용히 포스트잇을 놓았다. 시야 끝으로 오빠가 포스트잇을 확인하는게 보인다.
[ 입지 말라며ㅎㅎ 카운터 쌤한테 맡겼어 ]
얼마 안 가 이렇게 답장이 왔다. 아, 문태일이 또...(말잇못) 도대체 왜 이렇게 순수하게 마음을 막 흔들고 그러는 거야. 코트 입지 말라그랬다고 이 엄동설한에 막 벗고 이런 남자가 어디있냐고요T^T 자습실에 히터가 빵빵해서 망정이지, 추웠으면 당장 도로 가져오게 하던지 내 아우터를 벗어주던지 둘 중 하나였다. 나는 또 펜을 들고 작게 끄적였다.
[ 완전 놀랐잖아. 자리는 또 오빠 자리 놔두고 왜 내 옆에 앉았어 괜히 걸리면 어쩌려구!! ]
느낌표도 두개나 달았다. 물론 오빠가 내 옆에 앉은 건 좋았지만 코트도 민망해 죽겠는데 어떻게 마냥 좋다고 할 수 있겠어. 괜히 이런 말 했다가 오빠가 제자리로 돌아가면 어쩌나 걱정하며 포스트잇을 다시 오빠쪽으로 넘겼다. 코트를 생각하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후..
[ 너랑 크리스마스 같이 보내고 싶어서 ]
포스트잇이 다시 내 쪽으로 넘어왔다. 미친. 육성으로 그런 말이 튀어나올 뻔 했다. 포스트잇에 적혀있는 맨 마지막 문장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아니 이런 말을 이렇게 갑자기 하면..(ㅠㅠ) 광대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자꾸 일어나려 한다. 너랑, 크리스마스, 같이, 보내고, 싶어서. 포스트잇을 쥔 손이 옅게 떨린다. 아 뭐라고 답장하지. 나는 발을 동동 구르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답을 적었다.
[ 그래봤자 자습실인데? ]
그 말 적고 넘겼는데 이상하게 아무리 기다려도 포스트잇이 돌아오지 않았다. 덜컥 걱정이 들었다. 나 뭐 실수했나. 또 눈치 없이 적은 건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생각에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후회했다. 아 그냥 좋은 거 티낼껄. 속으로는 이미 머리를 백 번도 더 쥐어 뜯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빠가 내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곧 쑥, 다가왔다. 몸을 쭉 뻗어 제 손으로 가린 입을 내 귀 쪽으로 가져왔다.
“어디든 너랑 보내면 좋아 여주야.”
“..”
“메리 크리스마스.”
그러더니 나지막이, 그렇게 속삭였다.
SPECIAL 2. 2011년 12월 25일. 소꿉친구 정재현 X 소꿉친구 김여주
“아니 무슨 예수 탄생일을 강원도까지 와서 즐겨? 어? 그냥 동네에서 조촐하게 지내면 되지.”
“너가 동네에서 한다고 조촐하게 지낼 애냐? 또 어디 빨빨 돌아다닐 거잖아.”
“야 씨.. 라면이나 끓여.”
마음에 안 들어 진짜. 미간을 좁히며 옆에 있던 쿠션을 가져와 품에 안았다. 나는 지금 정재현과 단 둘이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중이다. 크리스마스 기념 가족여행이라며 강원도에 있는 큰 스키장에서 주말을 보내기로 했는데, 샤워를 하고 나와보니 부모님들끼리만 호텔 밑에 있는 횟집에 가신 거다. 진짜, 나랑 정재현만 쏙 빼놓고! 때문에 우리(X, 정재현O) 는 라면이나 끓이며 티비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를 시청하고 있다.
“나도 회 먹고 싶다..”
“오빠가 지금 라면 끓여주잖아.”
“계란 두개..”
사실 나는 정수정과 그런 약속을 했었다. 크리스마스날 남자를 소개 시켜주고, 소개 받는.. 그런 약속..(먼산) 크리스마스가 되기 몇 주 전 자기가 어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는데 너무 잘생겼다며 호들갑을 떨던 정수정이 내 손을 덥석 잡더니 너 소개 시켜줄게! 했다 이말이다. 원래대로라면 지금 정재현이 아니라 그 잘생긴 정수정 동창이랑 하하호호 떠들고 있어야 된다고. 억울함에 쿠션을 퍽퍽 내리치며 울상을 지었다. 그런 나를 본 건지 뒤에서 라면을 끓이던 정재현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야, 그만 하고 젓가락이나 좀 놔봐.”
“계란 두개 넣었어?”
“너가 말 안해도 두개 넣었어.”
어느덧 방 안은 라면 냄새로 가득 차있었다. 그에 기분이 조금 풀려 흔쾌히 젓가락과 숟가락을 테이블에 세팅했다. 크리스마스라고 호텔 밖은 아주 파티 분위기였다. 노래도 빵빵하고 레이저도 빵빵하고. 희미하게 들리는 캐롤을 따라 부르는데, 라면이 든 냄비를 들고 온 정재현이 그런 날 한 번 비웃더니 자리를 잡고 앉는다.
“아 왜 웃어!”
“웃기니까ㅋㅋㅋㅋㅋㅋㅋ”
“뭐가!!!”
“노래 그만 부르고 라면이나 먹엌ㅋㅋㅋㅋ”
괜히 민망해 소리를 버럭 지르자 아주 깔깔 웃어댄다. 박수까지 치면서. 아 완전 얄미워. 나는 노래를 부르던 입을 꾹 다물고는 그런 정재현을 잠시 노려보다 젓가락을 들었다. 흥, 내가 더 많이 먹어야지. 그런 생각으로 크게 젓가락질을 했다. 적당히 익은 면발을 건져 숟가락에 먹기 좋게 올려놓은 후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맛있냐?”
“..맛있긴 하네.”
정재현은 여전히 입꼬리를 올린 채로 나를 바라봤다. 보조개가 움푹 파인 얼굴로 맛있냐 물어보길래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그제서야 젓가락을 들었다. 티비에 나오는 영화는 작년에도 정재현이랑 같이 봤던 영화다. 작년 뿐만 아니라 그 전 해, 그 전전 해, 그 전전전 해까지. 아니 그냥 매년 크리스마스를 정재현이랑 함께 보낸 것 같다. 인생에 남자라고는 정재현 밖에 없네. 그런 생각을 하자 잠시 잊고있던 정수정의 잘생긴 동창이 다시금 뇌리를 스쳤다.
“아아 진짜.. 잘생긴 동창님..”
혼자 중얼거린 말인데, 옆에서 라면을 흡입하던 정재현이 들은 건지 먹던 걸 멈추고 뭐? 란다.
“원래 오늘 정수정한테 남소 받기로 했었거든.”
“..”
“근데 강원도 와서 다 망했어.”
“얼씨구?”
“새로 생긴 카페 가기로 했었단 말이야!”
“거기 멀다며.”
“먼게 중요해?”
정재현이 인상을 팍 찡그린다. 그 모습에 미간을 좁혔다. 지금 제일 인상 쓰고 있어야 할 사람이 누군데..! \(*`д´)∠ 라면 국물 위를 동동 떠다니던 노른자를 건져 먹으며 정재현을 조용히 노려보자, 정재현이 젓가락을 소리 나게 놓는다. 탁! 소리가 짧게 근방을 울렸다.
“잘생긴 남자를 왜 거기까지 가서 찾아?”
녀석이 대뜸 던진 말이었다. 목소리가 조금 딱딱하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나는 노른자를 씹는 속도를 늦추며 아주 조금, 진짜 조금 눈치를 봤다. 내가 너무 짜증만 내서 정재현도 기분이 안 좋아진 건가. 그런 거면 좀 곤란한데…(당황)
“그럼 어디서 찾아?”
내가 조심히 물었다.
“가까이에 있잖아.”
“..”
“나.”
그러자 갑자기 히죽 웃으며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키는 정재현의 모습에 안고있던 쿠션을 던졌다. 화가 나긴 개뿔. 미친놈아! 내가 그렇게 외치며 덤벼들자 으악 하고 앓는 소리를 낸 정재현이 덥석 내 양 손목을 잡으며 나를 멈춰세웠다.
“아 장난 좀 쳐본거지~!”
“장난이 좀 심하네~!”
“아아 김여주씨 왜 이러실까~! 라면 다 불어~”
아무리 손목을 비틀어도 안 놔주길래 씩씩 거리며 결국 손을 내렸다. 그러자 정재현은 천천히 손목을 놓아주더니 날 달래려는듯 허리를 작게 두들겼다. 근데 그게 더 열이 올라 세모눈으로 정재현을 쳐다보자 그마저도 멈추곤 다시 젓가락을 드는 녀석이었다.
“다른 영화 안해? 저거 너무 많이 봐서 이제 재미없어.”
“그냥 봐, 다 똑같아.”
“그런가.”
“어, 야 크리스마스 5분 남았다.”
짧은 몸싸움 (=(((" ` o')乂(`ヘ ' メ)))) 에 기운이 쫙 빠져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라면을 먹었다. 원래 정재현이 라면 물을 잘 못 맞춰서 간이 안 맞을 때가 많은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맛이 아주 바람직했다. 그러다 문득 정재현이 크리스마스가 5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알렸다. 나는 놀래서 고개를 돌렸다. 정재현의 시선을 따라 나 또한 눈을 움직였을 때 시야에 들어온 건 11시 55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바늘이었다. 아니 오늘 한게 여기 와서 스키 좀 타고 라면 먹은 것 밖에 없는 것 같은데..!
“시간 완전 빠르네. 벌써..”
“그러게. 올해도 다 갔네.”
“올해도 너랑 보내네.”
나는 숟가락으로 라면 국물을 뜨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을 입으로 후 부는데, 티비를 보던 정재현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에 나는 국물을 식히다 말고 덩달아 정재현을 바라봤다.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갑작스러웠다. 아직까지 들리는 희미한 캐롤 소리와 익숙한 영화 소리만 주위를 오갔다. 왠지 모를 이상함에 내가 먼저 고개를 돌리려 시선을 떼는데, 정재현이 나를 불렀다.
“김여주.”
“..”
그 목소리에 다시금 바라보자, 정재현이 씩 웃는다.
“올해도 메리 크리스마스.”
SPECIAL 3. 2016년 12월 25일. 학생 이민형 X 선생님 김여주
“선생님이 표를 예매 안 해놨으면 자리 없었어~”
“그 얘기 다섯 번째인 거 알아요?”
“몰라몰라.”
조금만 늦었으면 매진이였어 매진. 똑같은 얘기를 몇 번째 반복하는 거 물론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당당히 민형이를 골려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기 때문에 이 시간을 즐기는 것 뿐이었다^^ 며칠 전 민형이에게 메세지가 왔었다. 크리스마스에 약속이 있냐는 내용이었다. 어차피 크리스마스면 집에서 케빈을 만날게 뻔해 없다고 하자 녀석은 대뜸 영화를 보여달라고 했고, 그 덕에 지금 이렇게, 민형이와 영화관을 향하고 있다.
“팝콘은 제가 살게요.”
“됐어, 선생님이 사줄게.”
“돈 많아요?”
“너 과외비 좀 짭짤해.”
누가 이런 그림을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과외 초반에만 해도 그저 무사히 수능 때까지만 버티자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민형이한테 말 장난까지 치는 사이가 됐다. 중요한 건 서로 장난을 치는게 아니라 나만^^ 친다는 거^^ 아무튼 이민형도 별 말 없이 받아주니 그 정도도 엄청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팝콘은 자기가 사겠다며 뒷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려는 민형이를 막아섰다. 그래도 내가 선생인데 어떻게 학생한테 돈을 쓰게 하겠어. 결국 팝콘과 콜라까지 내가 결제했다.
“잘 볼게요. 잘 먹고, 잘 마시고.”
“오냐. 그동안 고생했다 고삼.”
내 말에 이민형이 작게 바람 빠진 웃음을 내뱉는다. 그리고 이민형은 저가 말한대로 영화를 뚫고 들어갈 정도로 집중을 하고, 콜라와 팝콘을 깨끗하게 비운 후 영화관을 나왔다. 그동안 공부 하느라 영화도 많이 못 봤던 건지 평소보다 조금 즐거워 하는 것 같았다. 영화 속 웃음 포인트마다 간간이 웃는 걸 보니 그랬다. 그렇게 영화가 끝난 후 우리는 음식 매장으로 향했다. 크리스마스 기념 폭탄 세일! 이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ㅎㅎ..
“헐 대박, 트리 예쁘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던 와중에 발견한 큰 트리를 가리키자 이민형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백화점 안은 제대로 크리스마스였다. 빨강에 초록에 반짝반짝한 것도 여기저기 많이 달려있었다. 사람도 엄청 많았고.
“뭐 먹고 싶은거 있어?”
“딱히.”
“그래두, 잘 봐봐. 세일하니까 선생님이 사줄게.”
목적지에 도착하자 저 쪽에서는 빵, 이 쪽에서는 분식. 맛있는 거 천지였다. 입 안에 고이는 침을 꿀꺽 삼키며 민형이를 데리고 돌아다녔다. 민형이는 약간 언짢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가 이끄는대로 조용히 따라왔다. 아니 이렇게 맛있는게 많은데 어떻게 딱히 라고 할 수 있지? 나는 이건 어때, 저건 어때 하며 민형이에게 맛있는 걸 먹이고 싶었지만 민형이는 고개를 절레 젓는게 다였다. 하여튼 까칠하기는..(심술)
“어머~ 남매인가봐요? 사이가 좋아보이네~”
“아하하, 감사합니다~ 빵 진짜 맛있어요!”
그러던 중 한 시식코너에서 발을 멈췄다. 이쑤시개에 꽂힌 빵을 나 먼저 먹고, 옆에 서 있던 민형이 입에도 한 번 먹어만 보라며 먹여주자 이 모습을 보신 한 직원분이 웃으며 말을 거셨다. 우리가 남매처럼 보이나 보다. 아니라고 하면 민망해 하실 것 같아 그냥 감사하다고 꾸벅 인사를 드렸다. 어차피 이민형이야 이러든 저러든 별 상관 안 할거고. 근데 나랑 민형이랑 닮았나? 이민형 잘생겼는데..ㅎ
“남매 아니에요 저희.”
“어머, 미안해요. 얼굴이 닮아서 남맨 줄 알았어.”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내심 뿌듯해 할 때 쯤 갑자기 이민형이 입을 열었다. 입꼬리만 슬쩍 올린 채 남매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자 직원 아주머니는 미안하다며 어색하게 웃으셨고, 나는 당황한 마음에 민형이를 한 번 올려다보다 다시 아주머니한테 괜찮다고 인사한 후 자연스럽게 빵은 얼마냐고 물었다. 이런 분위기에는 지갑을 여는게 최선인 것 같아. 결국 시식한 빵 (맛있었다) 을 구입한 후 얼른 걸음을 옮겼다.
“이민형, 내가 감사합니다~ 했잖아.”
“근데요.”
“근데 꼭 그렇게 아니라고 말을 했어야 했어?”
아주머니 민망하시게. 어느정도 걸어간 후 내가 걸음 속도를 늦추며 민형이에게 말하자, 녀석이 나와 눈을 맞춘다.
“나랑 남매냐는 말이 그렇게 싫었어?”
쉬익..T^T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사실 아주머니 뿐만 아니라 나도 민망했다구. 입술을 삐쭉 내밀며 민형이와 눈싸움을 했다. 매장 코너에서 갑자기 시작된 눈싸움이었다. 나는 이번만큼은 죽어도 먼저 피하지 않겠다 다짐하며 계속 눈을 마주했다.
“선생님은 눈치가 그렇게 없어요?”
그러던 중 민형이가 반문했다. 그 말이 쿡 가슴을 찔렀다. 그래 너는 나랑 남매같다는게 싫다 이거지? 우리 둘이 닮았다는게 싫다 이거지? 그래도 첫 학생이라고 알바비 탈탈 털어서 영화도 보여주고 팝콘도 사주고 콜라도 사주고 다른 것도 막 먹여줬더니 ( 민형이 먼저 요구 한 건 영화밖에 없다) 이런식으로 선생님 마음에 비수를 꽂아?
“그래, 선생님이 미안하다.”
“..”
“집에 가자.”
나는 속상한 마음에 어깨를 축 늘어뜨린 후 먼저 몸을 돌렸다.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아마 온 몸에서 나오는 기가 나 속상해요 라고 말해주고 있을게 뻔했다. 운이 좋게도 바로 앞 쪽에 엘레베이터가 있어서 그 쪽을 향해 걸었다. 영화까지가 딱 좋았는데 세일에 홀려서 음식 코너로 온게 문제였던 것 같다. 시간도 얼추 늦었으니 집에나 데려다주자는 생각으로 버튼을 누른 후 엘레베이터에 탑승했다.
“..”
“…”
이민형과 나 사이에 적막이 돌았다. 아, 괜히 내 잘못 같았다. 하필이면 또 엘레베이터에 탄 사람이 우리밖에 없어서 맴도는 공기가 더 무거운 느낌이었다. 나는 시선을 바닥으로 고정시키며 어깨에 걸친 크로스백을 괜히 만지작 거렸다.
“선생님.”
근데 이민형이 날 부른다.
“..”
못 들은 척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민형이를 마주하면 후회가 물 밀려오듯 밀려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방끈만 꾹 잡은 채 신발코만 보고있는데, 갑자기 쪽, 하고, 볼에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진다.
고개를 돌렸다.
귀가 붉어진 채 나를 바라보는 이민형과 시선이 맞물렸다.
“남매 말고 남녀 하자구요.”
“..”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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