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할아버지, 산타할아버지 올해에는 착한 일 많이 했으니 선물을 내려주세요!
철없던 어린날 자주 말하고 다녔던 나의 주문이었다.
"오늘부로 컨텐츠디자인 실장을 맡게 된 Joshua Jisoo Hong 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홍지수 실장이라고 불러주세요. 아직 한국어는 조금 서툴다며 어색한 미소를 지으시던 실장님은 우리 회사의 큰 이슈거리 중 하나였다.
사슴을 연상케하는 눈꼬리와 예쁘게 올라간 입꼬리. 재미교포 출신다운 능숙한 영어실력과 당연하다는 듯 몸에 베어있는 매너.
이 몇가지 요소만으로도 이미 완벽에 가까운 그 사람은 입사 첫날 이후 꾸준히 실적을 쌓으며 주변사람으로부터 언빌리버블! 을 외쳐대게 하였다.
외모에 센스. 거기에 실력까지 갖춘 실장님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회사 전체로 퍼져나갔고, 수많은 여직원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에 충분하였다.
"실장님~ 너무 어지러워요~"
"괜찮아요? 얼음물 갖다줄까요?"
그러니 회식자리에서 이렇게 아양을 떨며 내숭부리는 여직원이 매년 나오는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근래들어 그 직원이 매번 같은 사람이 되었다는게 문제지만.
실장님이 우리 부서로 오신지 어느새 2년. 그 2년간 실장님께 반했다는 여직원은 수없이 많았지만,
다른 직원들에게 눈치를 주면서까지 실장님 옆자리에 꼬옥 붙어있는 저 직원 덕분에 고백은 개뿔 말 한번 못 붙여본 사람이 수두룩빽빽이다.
"여주 씨도 물 드릴까요?"
"네? 아뇨, 전 괜찮아요"
...물론 그 수두룩빽빽 중엔 나도 포함이고. 실장님이 처음 오신 그 날, 그 예쁜 눈웃음에 반해 이 말도 안되는 짝사랑을 2년째 이어나가는 중이다.
같은 부서라는 메리트 덕에 중간중간 업무 관련 일은 많이 하고있지만 그 외의 사적인 얘기는 한번도 해 본적이 없으니.. 같은 부서면 뭐하냐, 발전이 없는데 발전이.
날 향해 뜨거운 눈총을 쏘아대는 여직원을 애써 무시하며 실장님의 물음에 대답하니 있으니 이제는 옆자리에 앉은 이석민이 시비다.
"봉여주 입이 귀에 걸리겠어 아주~"
"시끄럽다, 이석민"
"그러니까 매번 땅만 파지말고 뭐라고 말이라도 붙여보라니까. 말! 몰라 말??"
'말' 이라는 단어에 맞춰서 말 흉내를 내는 이석민을 곱게 째려봐주며 잠시 핸드폰으로 눈을 옮겼다. 저놈의 말드립은 언제까지 써먹을려는지 몰라.
요새는 기린 흉내가 대세인거 모르나?
"이제 가야겠다"
"데려다줄까?"
"됐어, 지하철타면 금방이야 먼저 간다"
다른 사람들은 담당 부서 실장님이랑 밥도 같이 먹는다는데, 나는 그 흔한 실장님 커피드실래요? 라는 말 하나도 못 붙이는 꼴이라니
이쯤되니 이 말도 안되는 긴 짝사랑이 무슨 의미가 있나,싶다. 두 사람의 관계에 아무런 발전 없이 그저 바라보고 기다리기만 하는게 애기들의 로망인 산타할아버지랑 뭐가 달라
식사도 어느정도 끝났고, 뜨거운 눈총을 쏘는 저 여직원을 두고 실장님께 말을 걸어 볼 용기조차 없으니,이 회식 자리에 계속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주섬주섬 소지품을 챙기고 있을 때,
"어어, 여주씨 지금 가는거에요?"
나를 부르는 그 목소리에 한번
"그럼 같이 나가죠, 저도 지금 가야해서요"
그 목소리가 건네오는 말에 두번 놀란다.
"갑자기 미안해요 좀 곤란했는데, 뭐라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도 혼자 가는 길 심심했는데요 뭘"
요컨대, 끈질기게 붙어있는 여직원에게서 빠져나오고 싶었는데 그 젠틀한 성격에 뭐라 말은 못하겠고, 마침 내가 집에 가려는 제스쳐를 취하니 거기에 숟가락을 얹었다~?
그럼 그렇지. 이제와서 갑자기 무슨 우연인가 싶었네. 잠깐이라도 무언가를 기대했던 아까의 내가 부끄럽다..
봉여주 뭐하냐 진짜 바보아냐? 이석민 말 대로 열심히 삽질만 하고있네
"여주 씨는 아직까지 산타를 믿고있죠?"
"네??산타요??"
"네. 작년 이맘때쯤 여주 씨가 산타가 선물을 주지 않는다며 막 그런 말을 했던것 같아서요. 회식날이었는데..아, 아닌가?"
미친.
한창 나를 자책하고있을 때 쯤 들려오는 뜬금없는 산타발언에 하마터면 욕짓거리를 내뱉을 뻔 했다.
딱 1년전, 유독 술이 잘 들어가던 그 날, 1년동안 혼자 짝사랑했던게 억울해 왜 산타할아버지는 내게 선물 한번 주지 않느냐고. 이렇게 착하게 살았는데 왜 소원 한번 들어주질 않느냐고 그렇게 한풀이를 했던 그 날. 지금 생각하면 자다가도 이불을 차 버릴것 같은 바로 그 날.
그걸 실장님이 기억하고 계신단 말이야? 오 마이 갓.
"아니, 실장님 그거는...아..그걸, 기억하고 계세요..?"
"네, 저도 아직 산타를 믿거든요. 여주씨 처럼 아무리 소원을 빌어도 이제는 선물을 주시지 않지만요."
부끄러운듯 하하 웃으며 말을 하던 실장님은 무언가 또 할 말이 있는지, 잠시 입을 달싹이며 예쁘게 입꼬리를 올리신다
"..저, 사실 오늘이 생일이거든요. 그런데 아무한테도 축하를 못 받아서 내심 서운했었는데..괜찮다면 여주 씨가 소원 하나만 들어줄래요?같은 산타동지끼리"
"소원..이요?"
"..그, 아까 말 했던건 거짓말이에요,아니 곤란했었던건 맞는데.."
말 하기를 망설이는 듯 몇 번이고 혀로 입술을 축이시던 실장님이 어렵사리 다시 입을 떼면.
"지금이 아니면 말을 못 할거같아서, 여주씨 짐 챙기는것 보고 급하게 말 건거에요. 석민씨랑 친한 친구라는건 익히 들어서 알고있어요.
그래서 그걸로 질투를 한다거나 그럴 생각도 없고요. 그런데 내가 이 회사에 오고 2년 동안 여주 씨랑은 많은 대화를 못 해봤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 자신에 대해 회의감이 들어요."
나는 쏟아지는 그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새라 귀를 기울여.
나 갑자기 이렇게 애매한 말 들으면 또 혼자서 기대해요, 실장님. 이젠 그렇게 삽질하고 싶진 않은데 조금은 욕심을 내, 용기를 내 이제는 근 2년간의 삽질에 자그마한 보답이라도 받고싶은데
"갑자기 크게 무언가를 바라지는 않을게요, 그냥 이제부턴 여주 씨랑도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어요.일과 관련된 이야기 말고.
내가 여주 씨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도록.조금만 더 친해졌으면 좋겠어요. 일단은, 산타친구부터..시작할까요?"
모든 마법이 풀린다는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 아직까지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길거리의 캐롤.
이제서야 올라오는 알코올의 취기. 내가 먼저 말 하고싶었던, 혹은 듣고싶었던 그 한마디.
이게, 20몇년동안 받고싶었던 내 산타의 선물이라면, 산타가 보내 준 그 마법이라면
"..실장님, 커피좋아하세요? 커피..드실래요?"
마법이 풀리기 전까진, 조금 용기내도 괜찮지 않을까
"좋아해요, 커피"
기대해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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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0일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슈아의 22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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