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6. 29
8: 20 pm
"여기는 M1, 여기는 M1. 제 2지점 북서쪽 목표물 모두 처리했습니다.
사망 인원 23명, 부상자 0명, 생존 인원 총 3명입니다."
피로 난무한 현장. 자신의 총에 맞아 채 눈도 감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자신의 동료를 보던 남준이, 짙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넘겼다.
다 같이 살아서 나가자고 결의를 다졌던 게 금방 전 일인듯 한데, 벌써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
부상자 0명. 남준은 그 생존자 중 한명인 자신의 동료를 바라보며, 방금 자신이 뱉었던 말을 비웃었다.
생존자 중 외관상 다친 이는 없었다. 저 이상자들과의 싸움에서 부상자라는 게 나타날 수가 없으니까.
이상자들에게 물려도, 걷거나 총을 쏠 수 없을 정도로 다쳐도, 그 모든 것들이 민감한 곳이었기에, 조금이라도 부상의 흔적이 보이면 곧바로 총살이었다.
"L3. 괜찮으십니까?"
아까부터 한쪽 구석에 처박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은 채 끊임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남자에게 남준이 다가가 물었고,
예상했듯 무언가에 홀린 듯 초점이 맞지 않는 남자의 눈엔 남준이 비치지 않았다.
죽었어. 다 죽어버렸어. 나도 곧 죽을 거야. 나도 곧 죽게 될 거라고. 이젠 내 차례야. 살고 싶어. 제발. 난 죽기싫어-
반복되는 목소리는 돌고 돌아 같은 내용만을 주구장창 반복하고 있었고, 그런 그를 바라보던 남준이 옅게 인상을 찡그리며 주변을 돌아봤다.
이번 임무만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거라던 M4.
이번 임무가 처음이라 많이 떨린다며, 그래도 피해는 가지 않게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해맑게 웃던 막내 H5.
집에 누구보다 착하고 예쁜 딸이 있다고, 자신의 딸이 아깝긴 하지만 그래도 인심 써서 남준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겠다던 M5.
남준의 곁을 지켜주던 모두가, 미동도 없이 처참한 현상 속에서 숨을 거뒀다.
빌어먹을. 짧은 욕설을 내뱉은 남준이 입술을 꽉 깨물며 붉어진 눈시울에 잔뜩 힘을 줬고, 그런 남준의 옆에서 암담한 현장을 함께 지켜보던 마지막 생존자,
호석은 이미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주저앉아 자신의 앞에 있던 시신을 꽉 끌어안고는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총알이 수없이 관통한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막대한 양의 피를 막기 위해 두 손으로 사망자의 머리를 꽉 끌어안은 호석이,
제발. 제발. 하며 잔뜩 억눌린 목소리를 뱉어냈다.
이 임무를 맡기 전부터 자신을 잘 챙겨주던 선배였고, 유일하게 저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던 선배였으며,
마지막에, 호석이 쏜 셀 수 없이 많은 총알을 다 맞고 숨을 거둔 사람이었다.
이상자에게 물린 부위를 손으로 꽉 쥔 채, 자신의 몸이 이상하다며, 자신을 죽여달라던 목소리가 똑똑히 기억났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나중에 정확히 확인된 다음에 해도 되는 일 아니냐고. 절대 아닐 거라고.
뒤로 물러나던 호석의 총을 쥔 손을 붙잡은 채, 나중에 하면 늦는다고, 손이 이래서 자신은 할 수가 없다고, 너밖에 자신의 마지막을 장식해 줄 사람이 없다며
이미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손을 들곤 어색하게 웃어 보이던 그.
"제발, 제발 일어나요. 네?"
호석의 애절한 목소리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고, 울다 지쳐버린 호석이 싸늘해진 시체 쪽으로 기대어 고개를 파묻던 그 시점,
탕- 커다란 총음이 들리고, 그에 놀란 호석이 번뜩- 고개를 들자, 그의 시야 속으로 들어온 건 싸늘한 표정으로 총을 든 남준의 모습이었다.
총알이 파고든 건, 아까부터 미친 듯 무언가를 중얼거리던 생존자.
죽을 거야. 살고 싶어. 하며 끊임없이 들리던 목소리가 총성 한 번에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렸고, 남준은 순식간에 생존자에서 사망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동료가 신경 쓰이지도 않는 건지, 사망자들의 총에서 남은 총알들을 꺼내 챙긴 다음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M...M1. 지금 이게, 무슨."
자신의 앞에 벌어진 충격적인 상황이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아 말을 더듬던 호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씩 남준에게로 다가섰고,
그런 호석을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던 남준은, 호석이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호석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밀며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여기는 M2. 여기는 M2. 현장에서 벗어나던 중, 사고로 인한 사망자 발생.
총 사망자 24명. 부상자 0명. 생존자 2명 보고드립니다."
자신의 머리에 닿은 차가운 총구와 마찬가지로 무서울 정도로 식어버린 남준의 목소리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뜬 호석이
남준을 바라봤고, 그런 호석을 보던 남준이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호석과 시선을 마주했다.
눈물이 얼룩져 엉망이 된 얼굴. 자신과 마찬가지로 수 많은 동료를 잃은 자의 얼굴.
평소와 달리 웃음기가 사라져버린 호석의 얼굴을 바라보며, 평상시의 장난기 많은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삭막하다면 끝도 없이 삭막한 이곳. 오늘의 동료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도 알 수 없는 곳에서 유일하게 거리낌 없이 모두를 대했던 그.
부서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남준이 호석의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로, 호석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였다.
그럼, 반대로 자신은?
남준은 호석에 비해 끝없이 냉철해야만 했던 사람이었다.
M1. M 부대에서 어린 나이에 가장 높은 곳에 서야만 했고, 그랬기에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가장 많은 생존자를 내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비록, 그 생존자에 자신이 없더라도,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남준은.
그런데, 왜.
"최대한 많은 생존자를 보호하라."
"..."
"H2. 지금부터 저는 그 빌어먹을 임무, 버립니다."
차갑게 식은 얼굴과는 달리, 한없이 떨리는 남준의 눈동자에 호석이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고,
그런 호석을 바라보던 남준이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서 무조건 살아서 나갈 것."
"..."
"그게 지금부터 제 임무이고 목표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자신은 이토록 미련한 짓을 하는 걸까.
"마지막 보고되는 생존자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으면 하는데."
이해할 순 없지만, 남준 자신은.
"어떻게,"
"동참하시겠습니까?"
살고 싶어졌다.
그것도 미친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