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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몬스타엑스 김남길 강동원 엑소 성찬
임프 전체글ll조회 989l

 

 

 

 

 

 

 

미어 터진다. 지금 이 상황을 표현한다면 이보다 더 정확한 수식어가 달리 없었다.
 
지난밤 새벽 갑작스러운 크러스테이션의 급습으로 온 부대가 발칵 뒤집혔다. 사이렌 소리가 요란스레 새벽공기를 갈랐고 깊은 잠에서 깬 군인들이 서둘러 대열을 맞춰 급습지역으로 떠나는 통에, 평소 새벽 네 시면 쥐죽은듯 조용하던 군영이 마치 시장바닥 같았다. 그리고 지금 오전 일곱시. 메디컬 센터는 밀려 닥치는 부상병들로 인해 전시상황을 방불케하고 있었다. 한 달에 몇 번이나 있는 기습이다. 크러스테이션은 수시로 옆구리를 바늘로 찌르듯 국경을 넘나들어 피해를 입히는 종족이었고, 그만큼 이 쪽의 대응도 익숙하고 빠른 편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큰 피해가 났다는 것은 크러스테이션 쪽에서 이전과는 달리 거대한 중종들을 앞세워 밀고 들어왔다든가 아니면 그 숫자가 어마어마하다든가, 어쨌든 평소와는 다르게 꽤 거친 전투가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병사들의 신음소리와 악다구니 치는 소리, 익숙해질 법도 됐는데 아직도 역한 살 썩는 냄새까지 메디컬 센터 구석구석까지 빼곡히 들어찬다. 크러스테이션과 충돌하여 어디가 부러진 정도라면 우선순위에 밀려 센터로 들어오지도 못 했다. 정말로 의료진의 손길이 필요한 경우 ―상처부위가 괴사하여 절단해야 하거나 급히 봉합수술을 하지 않으면 장기가 손상되거나― 에만 센터 내로 들여보내지고 있었으나, 그마저도 환자의 수는 너무 많고 일손은 부족해서 메디컬 닥터 3년 차 도경수도 눈코뜰새 없이 몇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비번인 대원들까지 두들겨 깨워 전선으로 보냈다 하니, 틀림없이 세훈의 부대도 이미 진작에 출격명령을 받아 크러스테이션과 교전중일 것이다. ‘출신’이 출신인만큼 설마 죽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지만, 그 근처의 군인들답지 않게 유난히 피부가 하얀만큼 더욱 흉하게 남는 상처들이 눈에 띌 때면 절로 한숨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쨌든 아직 메디컬 센터에 실려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하게 다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경수는 애써 세훈에 대한 생각을 지우면서, 자신의 눈 앞에서 신음하는 병사의 절개된 복부를 빠르게 꿰맸다. 마취할 시간조차 없어 그대로 생살에 바늘을 대고 있지만, 이미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병사들은 그조차도 잘 느끼지 못 하고 있었다.
 
복부가 말끔하게 봉합되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간호사들이 급히 달려들어 깨끗한 붕대를 감는다. 경수는 얇은 라텍스장갑을 벗어 수발간호사에게 넘기면서 찌푸려진 눈 앞머리를 꾹꾹 지압했다. 아무래도 어제 늦게 잤던 것이 큰 타격인듯 싶다. 정말 오랜만에 레이에게서 연락이 와, 밤 늦도록 이야기를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잠들었을 때 본 시계가 3시를 가리키고 있었으니, 경수는 채 한 시간도 자지 못 한 셈이었다. 수면부족에 여기저기서 아우성치는 소리까지, ‘골이 아프다’라는 표현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띵하니 울려서 미간이 절로 구겨졌다. 다음 환자는 어디냐고 옆에 선 간호사에게 막 물었을 때, 멀지 않은 센터 입구에서 한 남자를 부축하며 서넛의 병사가 다급하게 들어섰다.
 

 

“소대장님이 중상입니다!”
 

 

하늘 아래 인간의 목숨은 그 무게가 모두 같다고 하지만, 적어도 전장에서는 다르다. 어떻게 다쳤는지 너덜너덜한 상태로 온 몸에 피를 뒤집어 쓴 그 사람이 ‘소대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 간호사들이 사색이 되어 급히 의료용 침대를 마련하고 그들을 안내했다. 침대에 눕혀진 남자가 몸이 움직이는 서슬에 꾹 눌린 신음을 뱉는다. 어느새 곁으로 다가선 경수의 눈과 손이 빠르게 상태를 살폈다. 복부 관통인가. 용케도 내장은 크게 다치지 않은 것 같지만, 이 정도라면 다시 전선으로 돌아가는 것은 무리다. 경수의 옆에서 대기하던 간호사에게 수술 준비를 하도록 지시하던 경수의 귓가로, 침대에 누운 채인 남자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어왔다.
 

 

"지혈만, 대충 해 줘."
"대장!"
 

 

피가 울컥 솟아오르는 옆구리를 손바닥으로 누르면서 남자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고, 그를 부축해 데려왔던 병사들 ―아마도 그의 부하대원인 것처럼 보였다― 이 그 움직임에 기겁하며 침대에 바싹 붙어 그를 말렸다. 복부 관통에 지혈만 해달라니. 의무반을 향한 터무니없는 요구에 간호사들이 서두르던 움직임까지 멈춘 채 사색이 되었고, 새로운 라텍스장갑에 손가락을 맞추던 경수가 느릿하게 남자를 내려다 보았다. 듣기에도 불안정할 정도로 거친 호흡을 반복하던 남자는 차마 고개 돌릴 힘조차 없는 듯 시선만 마주쳐 왔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과는 이질적일 정도로, 남자의 눈빛은 무겁고 단단했다. 보이지 않는 싸움이라도 하듯 소대장과 메디컬 닥터는 서로의 눈을 응시한 채 아무런 말도 없이 몇 초의 시간을 흘려 보냈고, 왠지 모를 팽팽한 긴장감에 대원들과 간호사들 역시 아무 말 못 한 채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급하니까― 출혈만 멎게 해 달라고."
"대장! 이 상태로는 다시 가는건 무리야!"
"그 말이 맞아요. 이대로 전선 복귀는 불가능합니다. 바로 봉합하지 않으면―"
"처리만 대충 해 달라고!"
 
 
야전병원처럼 온갖 소음이 가득한 센터 안인데도, 남자의 단호한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의사로서 차분히 그를 말리던 경수는 입을 다문 채 남자를 바라보기만 했고, 남자는 연신 가쁘게 호흡하면서 까만 눈동자로 경수를 매섭게 바라 보았다. 그가 잠시 누워있던 침대는 이미 그가 흘린 피로 흥건하게 물들어 있었다. 이도저도 못 한 채 안절부절하고 있는 대원들은 그들의 대장 눈치를 보고, 간호사들은 엉거주춤한 채로 경수의 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린다. 그가 미간을 조금 더 찌푸리며 경수를 재촉하려는 찰나, 꾹 다물려 있던 경수의 입술이 드디어 열렸다. 그 첫 마디에 남자의 눈이 치떠졌다.
 
 


"그쪽들. 너네 대장, 꽉 잡아."
"예? 저, 저희요?!"
"그래, 너네. 못 움직이게 단단히 붙들어. 그리고 너희들은 가만히 있지 말고 빨리 수술준비해."
"수술 필요 없다고 했―"
 


 
자신의 말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서였는지 발끈한 남자가 달려들듯 목소리를 높였을 때, 일말의 표정도 담기지 않은 얼굴로 경수가 손을 뻗더니 남자의 환부를 가차없이 눌렀다. 무자비한 그 손놀림에, 여태까지 냉정하던 남자가 맥없이 상체를 무너뜨리며 고통으로 신음소리를 뱉어냈고, 옆에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대원들이 경악해 얼굴이 하얘졌지만, 정작 가해자인 눈 앞의 메디컬 닥터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관통당한 복부에서 밀려오는 심한 통증에 꽉 닫혔던 남자의 눈이 간신히 뜨여진다. 경수는 여전히 환부를 손바닥으로 꽉 누른채 남자와 시선을 맞추었다.
 
 


"무…슨 짓이야…!"
"미안하지만 여긴 메디컬 센터야. 이 넓은 군영에서 유일하게, 너보다 내가 윗전이 되는 곳이지."
 


 
남자가 경수의 손에서 벗어나려 무의식적으로 몸을 꿈틀거렸으나, 경수는 내리누르는 손을 꼼짝도 안 한 채 그렇게 남자와 그렇게 시선을 맞추고만 있었다. 대원들은 이 충격적이고도 희귀한 광경에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25번 소대는 소대장부터가 그다지 위계질서에 관심이 없는 타입인지라 기본적으로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를 가진 소대였다. 하지만 단 하나― 전시상황에 대해서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이 가차없는 성격인지라, 지금처럼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경우라면 그 누구도 소대장에게 무어라 반박할 생각조차 못 하는 게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교전 중에 다치기까지 한,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인 25번 소대장에게 망설임없이 저런 말을 내뱉는 메디컬 닥터. 작은 체구였지만, 왠지 모르게 피어 오르는 강력한 오오라에 대원들은 침만 꿀꺽 삼켰다.
 


 
"대충같은 소리 쉽게 하지 마. 네가 그렇게 전선으로 복귀한다고 해서, 몇 분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니면― 네 소대원들을 총알받이로라도 삼을 셈이야?"
 


 
억양없는 말투로 날카로운 말을 입에 담으면서, 경수는 내리누르던 손을 떼었다. 조금 전까지 울컥하고 뜨거운 피를 쏟아내던 환부는, 경수가 온 힘을 다해 누른 덕분인지 조금 잠잠해진 상태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르작거리던 남자의 움직임은 이미 멎어 있었다. 그저 식은땀 맺힌 이마로 짙은 눈동자를 경수에게 고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종종거리는 발걸음으로 서둘러 수술도구를 소독하던 하던 간호사들이 침대 옆으로 바싹 붙었고, 그제서야 남자의 시선에서 눈을 뗀 경수가 남자의 피로 흠뻑 젖은 장갑을 씻어낸다. 남자의 집요한 시선이 얼굴을 찌를 듯 주시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지만, 별로 반응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삶에 집착하지 않는 자는 최악이다. 의료반으로서도, 인간 도경수로서도.
 
 


"난 그렇게 쉽게 누군가를 죽게 놔두진 못 하거든. 죽고 사는건 네 마음일지 모르지만, 여기에 들어온 이상은 내 마음대로야. 네 소대원들 시켜서 묶어 버리기 전에 얌전히 있어."
 


 
이미 아까부터 아무런 말 없이 잠잠한 상태인 남자였지만, 혹시나하는 마음에 한마디 더 뱉은 경수는 표정없는 얼굴로 망설임없이 그의 복부에 손을 댔다.

 

 

 

 

 

 

 

 

 


 
◈◈◈
 

 

 

 

 

 

 

 

 


 
그들의 터전은 언제나 전쟁터였다. 교전이 잦은 지역 근처에는 언제나 낡은 넝마를 입은 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가, 크러스테이션이나 변방부족이 마을을 습격했다는 얘기가 들려오면 으레 그 곳으로 달려가곤 했다. 아직 불씨조차 꺼지지 않았을 정도로 교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그 곳에서, 죽은 이들이 남긴 온전한 옷가지나 귀중품 등을 뒤지며 생계를 유지하는 그들은 전쟁으로 인한 넝마주이들이었다. 경수는 그러한 자들의 무리 속에서 잉태되었다.
 
자신이 세상에 찾아왔다는 것이 어머니에게 그닥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는 것을 경수가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머니의 욕설섞인 거친 말들에서 경수는 자신이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어쩌다가 한 번 '실수'해서 태어난 아이임을 깨달았고, 낳아 준 것만으로도 고맙게 알라는 말을 끝으로 그녀는 경수를 귀찮은 것으로 취급했다. 그건 그들 무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노파들이 돌아가며 경수를 보살펴 주긴 했으나, 전쟁터를 누비고 다니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어린아이란 돌보기 힘들고 귀찮은 존재임이 분명했다. 그들은 언제나 스스로가 살아남기도 바쁜 처지였다. 경수는 누가 보살펴주지 않아도 스스로 따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자신은 어머니는 물론이고, 이 세계에게도 그닥 축복받지 못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경수는 어머니가 좋았다. 아무리 경수를 귀찮게 여기고 험한 말을 쏟아내도, 낳은 정이 있었는지 종종 뒤쳐지는 어린 경수를 거칠게 끌어당기는 것은 결국 어머니였다. 경수 역시 아직 20대인 어머니가 귀찮은 자신을 떠맡아 얼마나 피곤할 것인가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어머니가 가끔 한번씩 먹을 것을 내밀거나 겨울철에는 좀이 슨 담요같은 것을 툭 던질때면 그것이 그리 행복하여 통통한 볼이 동그래지도록 웃어 보이곤 했다. 모두에게 버림받은 자신을 보살펴 주는 것은 어머니 뿐이었다. 그런 어머니에게 최대한 폐가 되지 않도록, 경수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모든 것을 스스로하는 아이로 성장했다.
 
 
 

 

 

 


 
그날 역시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지역의 한 마을이 크러스테이션의 기습으로 쑥대밭이 되었다는 소식이 퍼졌다. 도시 곳곳의 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이들의 소식통은 생각보다 훨씬 빠른 편이었다. 이곳저곳에 늘어져 있던 사람들이 꾸물럭꾸물럭 몸을 일으켰다. 오늘 그들의 행선지는 당연히 그 곳이었다.
 
허허벌판에서 교전이 일어나는 것보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편이 훨씬 수확량이 많은 법이다. 언제나 어른들의 몸싸움에 치이던 경수도 그날은 우연히 뒤진 누군가의 품에서 고가의 은시계를 발견하는 행운이 찾아와,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단 하나의 문제는, 한번 마을을 벗어났던 크러스테이션이 무슨 일인지 다시 마을로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이런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잿더미를 헤치며 값 나가는 것들을 주워 모으던 사람들은 바닥을 육중하게 울리는 진동에 모두 동작을 멈추었고, 저 멀리서 뿌옇게 올라오는 모래바람에 새하얗게 질렸으며, 단단한 갑주로 온 몸이 둘러쌓인 크러스테이션들이 빠른 속도로 질주해오는 것을 보곤 모두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조용해졌던 마을이 또다시 비명소리로 어지러워졌다. 겁에 질린 경수는 정신없이 고개를 돌리며 어머니를 찾았고, 이내 마을 밖으로 급히 도망치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엄마!! 엄마!!!!"
 


 
어린 아이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수도없이 엄마를 부른다. 경수는 필사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아수라장이 된 와중에도 경수의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어린 어머니가 홱 뒤를 돌아 보았다. 경수를 발견한 그녀의 입술이 이에 짓눌린다. 경수의 눈에도 그녀가 갈등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젊은 어른들은 이미 대부분 마을 밖으로 벗어났고, 나이가 지긋하게 든 노파들도 거의 다 빠져나간 상태였다. 마을 곳곳을 나뒹구는 시체들을 이리저리 피하고 뛰어 넘으면서 자신에게 달려오는 경수의 모습. 그리고 점점 더 크게 보이는 크러스테이션의 모래먼지. 그녀의 시선이 경수에게 닿았다가, 소름끼치도록 무섭게 달려오는 외종족을 바라보았다가 혼란스럽게 흔들렸다.
 
자그마한 체구로 용케 잘 뛰어오던 경수는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결국 발이 꼬여 앞으로 넘어졌다. 경수를 바라보던 그녀가 순간 움찔했다. 손에 꼭 쥐고 달리던 은시계마저 저 멀리 튀어나가 땅바닥을 굴렀다. 세게 넘어진 탓인지 얼굴이며 팔꿈치에 온통 생채기가 난 상태로 경수가 급히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가 몇 발치 앞에 있었다. 누군가의 피에 젖은 흙이 손바닥을 더럽힌 채였지만, 경수는 닦을 정신도 없이 손을 앞으로 쫙 뻗어 허공에 흔들었다. 그녀의 어깨가 또다시 흔들렸다. 모든 것을 밟아 부수어버릴 기세로 질주해오는 크러스테이션의 무거운 발걸음이 땅을 연신 울렸고, 더러운 흙바닥에 넘어진 채 경수는 밀려오는 공포에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여태까지 경수는 단 한번도 그녀의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다. 어린 몸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아도, 그 때문에 그녀에게 모진 소리를 들어도, 그저 꽃잎같이 작은 입술을 꾹 감쳐 물지언정 울거나 떼를 쓴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엄마, 엄마. 가만히 경수를 바라보고만 있던 그녀는 이윽고 발걸음을 떼었다. 경수에게로. 마을 입구가 아닌, 엎어진 경수 쪽으로 서둘러 뛰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경수는 복받쳐 오르는 눈물에 다시 한번 흐엉하고 우는 소리를 냈다. 경수에게로 다가오던 그녀는 경수의 손이 채 닿지 않는 곳에서 잠시 멈추더니, 허리를 굽혀 아까 경수가 쥐고 있다가 놓친 은시계를 주웠다. 그리곤 망설임없는 몸짓으로 뒤돌아 마을입구로 달려갔다. 한계까지 뻗었던 경수의 작은 손은 허공만 움켜쥔 채 바닥으로 서서히 추락했다. 그녀의 뒷모습이 빠른 속도로 작아졌다. 경수는 더이상 엄마를 부르지 않았고, 단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녀의 이런 선택을 마음 속으로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단지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보통 인간일 뿐이었다. 모든 문제는,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태어난 자신에게 있는거였다.
 
점점 더 크게, 점점 더 선명하게 울리는 진동. 경수는 일어설 생각도 하지 않고, 단지 그대로 흙바닥에 볼을 대고 엎드렸다. 어렸을 때부터 수도 없이 맡은 피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이대로 시체취급을 받아 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이대로 죽어서 다음 생을 살고 싶었다. 다음 생에는 반드시 발 붙일 수 있는 곳에서 태어나겠노라고, 나를 받아줄 수 있고 날 버리지 않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겠노라고, 경수는 수도 없이 마음 속으로 다짐하면서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닫았다. 눈에 가득히 맺혔던 눈물이 그 서슬에 툭 떨어져 흘러 내린다. 그저 아프지 않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마지막 소원을 빌 때, 경수는 갑자기 몸이 확 들리는 느낌에 놀라 감았던 눈을 둥그렇게 떴다. 모습을 보기 전에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꽉 잡아. 떨어지지 않게."
 


 
그는 언뜻 무미건조한 억양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경수는 그 목소리가 사실 너무나 급박한 상황이기에 나는 것임을 무의식적으로 깨달았다. 들어올린 경수를 한번 추슬러 안은 그가 이렇다저렇다 말도 없이 급하게 마을 밖을 향해 뛰었다. 그에게 똑바로 안겨 있어 뒷쪽으로 향하고 있는 경수의 시야에는 바로 코 앞까지 들이닥친 크러스테이션의 모습이 보였다. 인간이 아닌, 마치 거대하고 추악한 곤충과도 같은 기괴한 외견. 그들을 처음으로 대면한 경수에게 충분히 공포스러울 광경이었으나, 경수가 크러스테이션의 모습에 그리 집중하지 못 했던 것은 경수를 안고 뛰는 의문의 인물이 그보다 더욱 수상하고도 이상하고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수십 마리의 크러스테이션이 그에게 닿을듯 말듯이 아슬아슬하게 다가올 때마다, 피를 제외하고는 말라붙어있을 땅에서 마치 거꾸로 솟는 폭포수와 같이 물이 솟았다가 가라앉았다. 놀라기도 놀랐겠거니와 수압이 꽤 센 듯 그 수벽에 부딪친 크러스테이션들이 무거운 몸의 중심을 잃고 잠시 허우적대다가, 다시 와르르 몰려들면 또다시 솟았다가 가라앉고. 마치 물이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것처럼, 어린 경수의 눈에도 수벽이 이 사람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달음박질을 하는 그와 크러스테이션의 거리가 조금씩 조금씩 넓혀지고 있었다. 그가 필사적으로 달리는 통에 몸이 거칠게 흔들리면서도, 그 수벽에서 눈을 떼지 못 하던 경수의 시선이 이윽고 그의 발에 닿았다. 철벅철벅. 빠르게 달리고 있는 그의 발 밑에선 마치 진흙이라도 밟는 것처럼 젖은 소리가 어렴풋하게 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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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대박...
10년 전
독자1
허류ㅠㅠㅠㅠㅠㅠㅠㅠㅠ재밌어요ㅠㅠㅠㅠ다음편!!!!!!시급해요!!!!!!!!
10년 전
독자2
헐 이글. . . . .머죠? . . . 너무좋아요진짜! ! 제가 이런느낌을엄청좋아하는데 대부분 이런장르는 써주시지 않으셔서 읽는게 힘들었ㄴ는데.. .할렐루야 이글은 진짜. . 너무 좋아요ㅠㅜㅠㅠㅠㅠㅠㅠ하나부터열까지다맘에들어요ㅠㅠ감사히잘읽었습니다
10년 전
독자3
헉 대박..ㅠㅠ너무 재밌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독자3
재....재밌어!!!!!!(요!^^)
10년 전
독자4
허휴ㅠㅠㅠㅠㅠㅠㅠㅠㅠ 대박 ㅠㅠㅠㅠ긴장감이 넘치는게 딱 제스타일 이에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독자5
경수가 축복 받는 아이로 태어나진 못했지만 충분히 지금은 축복 받는 사람으로 살아오는 것 같아서 기분이 너무 좋아요 ㅠㅜㅠㅠㅠㅠㅠ 신선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너무 재밌네요ㅠㅠㅠ
10년 전
독자6
대박 담편이 시급합니다 잘보고가요!
10년 전
독자7
와..어떡하죠 진짜 글 대박이에요ㅜㅜㅜ 경수 혼자 어릴때부터 다커서ㅜㅜ얼마나 맘이아팠을까요ㅜㅜ 다음편 진찌 기대되여 ㅜㅜ 너무너무 재밌어요~~
10년 전
독자7
헐 ㅠㅠㅜㅠㅠ진짜 소재도 대박이고 좋네요 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재밌어요 담편 기다릴게요!!!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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