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친한,
그래서 좀처럼 다가가기 쉽지 않은
너와 나의 거리
그리고 이건, 요즘 너와 나 사이에 생긴 조그만 변화에 대한 이야기
-
"3,2,1.짠-!"
"야 미쳤어 뭐했다고 벌써 스물하나야~"
"나 감성셀카 찍을 거야.이럴 땐 감성 셀카를 찍어야 해..."
"미친년 인스타에 들어가 살아라 그냥"
"조용히 해에~ 나 힘들단 말이야~"
"쟤 취했다, 누가 좀 말려 봐."
"조용히 하라고~ 나 너무 슬프다고~"
"학생들 요 앞에 강아대 학생들 맞지? 내가 새해 기념으로 안주 돌리는 거야~"
"와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시끄러어~"
"어유 아가씨가 많이 취했네 어서들 먹고 들어가요~"
2017 정유년을 같이 맞으려 보낸 과 사람들과의 모임. 물론 솔로들끼리긴 하지만...
다들 멀쩡한데 술이 약한 너 혼자 완전 취했지 뭐야.
새해에도 솔로인게 분했는지, 안하던 술주정으로 짜증까지 잔뜩 내면서 홀짝 홀짝 술을 들이켰지.
"야야, 거기 탄소 머리 박는다. 윤기야 쟤 머리 좀 어떻게 해 줘라."
그 말에 별로 안 친해서 무서운 민윤기 선배가 너의 긴 생머리가 오뎅 국물에 빠지려는 걸 붙들어주고,
옆에 앉은 친구 슬기가 넘어가려는 네 고개를 박력 넘치게 자기 어깨로 막아 보호했지만
이미 잔뜩 취한 너의 정신은 저 세상으로 가고 있었지.
"슬슬 정리해야 할 거 같은데? 그만 가자, 탄소 누가 바래다주고."
"슬기 지금 가능해?"
"어떡하지, 저 지금 아는 사람 만나기로 했는데."
"또 클럽가지 너?"
"마자영ㅎ"
"야 그럼 누가 데려다 줘 얘를, 남자가 데려다주긴 좀 그렇고."
"제가 탄소 친구 번호 알아여!"
"오 그럼 부르면 되겠네."
"잠시만요!"
30분 정도 지났을까,
신년 맞아 정신없는 술집 문이 열리고 그 소란스럽던 곳이 갑자기 조용해졌지.
아, 한 사람만 빼고.
"으아~정정극이다아!"
![[방탄소년단/전정국] 당연한 사이 0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1/12/23/63380d669f66d22f42d8e6008f017c4c.jpg)
'헐 쟤 전정국 아냐?'
'그 실음과?'
'야 나 실물 처음 봐... 대박'
널 데리러오는 그 짧은 시간에 검은 목폴라에 코트를 차려 입은, 전정국의 실물을 보고 감동한 여학우들이 저들끼리 소곤거리는 동안
정국이는 너에게 다가와 익숙하게 네 팔을 자기 등에 둘렀지.
"업고 가게?"
"어, 슬기야. 연락해줘서 고마워."
"뭘, 어지간하면 데려다줬을텐데 내가 약속이 있는데 탄소 집 들렀다 가긴 좀 걸려서. 와줘서 땡큐."
"응 담에 보자."
멀어져 가는 정국이와 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자들은 멋있다고 소리를 질러댔고,
윤기선배는 핸드폰만 만지작대다가 옆에 앉은 슬기를 톡톡 쳤지.
"왜요?"
"김탄소 친구, 쟤 유명하냐?"
"아~ 전정국 유명하죠. 실음 수석이거든요."
"친구래서 난 여자일 줄 알았는데."
"네?"
"아니 그냥, 밤 늦은데 남자애를 부를 정도면... 많이 친한가?"
그 말에 뭔가 알겠다는 듯 피식 웃은 슬기가 윤기의 어깨를 툭 쳤어.
과 내 걸크러쉬로 불릴 만큼 예쁘고 섹시한 데다 겁도 없는 슬기거든.
"친하죠~ 부모님도 동창이고, 태어날 때부터 친구라던데."
"그래?"
더는 관심없다는듯 윤기선배는 고개를 돌렸어.
근데도 슬기는 굳이 더 얘기했지.
"정국이 여자친구 있는데 아세요? 무용과 여신이라던데"
"아니, 쟤도 처음 보는데."
윤기의 무뚝뚝하기 그지 없는 대답에도 뭐가 재밌는지 슬기는 깔깔 웃었지.
여자친구가 있는 애 였구나, 그럼 안심하고 맡겨도 되겠네.
그런데도 커다란 등에 폭 파묻혀 쿨쿨 잠든 네 얼굴이 자꾸 왜 떠오르는 지 모를 윤기선배였어.
"으..."
머리 깨지겠다, 일어나자마자 제일 처음 든 생각이었어.
누가 네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 처럼 네 앞에 물 한잔이 내밀어졌지.
일단 벌컥벌컥 마시자 정신이 좀 들었어.
"전정국 니가 왜 여기있어?"
네 자취방 침대 옆에서 널 내려다보고 있는 전정국이 보였지. 그것도 살기 넘치게.
"코트 육십만원, 목폴라 삼만원, 속에 찬 목걸이 이십칠만원."
"뭔 소리야."
"네가 어제 토한 내 옷값."
"......뭐?"
"드라이만 해도 오만원 나오겠다?"
그제야 어제의 일이 조금씩 생각이 나기는 개뿔,
완전히 필름이 끊겼던 너였어.
조금 뻔뻔히 나가기로 했지.
"뭐래, 나 어제 과 애들이랑 먹었거든?"
"..."
"내가 저번에 토해서 니 이십만원짜리 후드 버린건 진짜 미안한데, 이번에는 아니거든? 너 오만원 필요하냐?"
"..."
"그냥 빌려달라고 하지? 나 오만원 정도는 있거든."
"...강슬기."
"...?뭐?"
"걔가 나 불렀다고."
뭐지 시발, 갑자기 드는 불길함에 너는 바로 핸드폰을 켰어. 화면에 바로 슬기의 문자가 떴지.
'잘 들어갔어? 정국이가 너 업어주더라 >,< 부럽당 나도 남사친... 야 근데 민선배 너한테 관심있는듯?'
"민 선배가 누군데."
shit. 네 핸드폰을 어느새 같이 보고 있는 정국이의 무서운 눈빛이 느껴지고, 너는 두 손을 번쩍 들었지.
"잘못했습니다."
"나시 입고 두 팔 들면 겨털 보인다."
"뭐래 나 겨털 없거드... 잠깐, 너가 내 옷 벗겼어?"
"어, 더워보여서."
그제야 확인한 네 옷차림은 나시에 어제 입었던 스키니였어.
검은 나시가 달라붙는 소재라 네 몸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지.
"미친놈아 옷을 왜 벗겨!"
"더워보여서 그랬다니까."
"이거 성희롱아냐? 나 여름에도 이런거 안 입고 다녀서 나한테 속옷이나 다름 없는데."
"속옷 얘기 나와서 그러는데, 너 가슴 큰 거 같아. 답답해 보이더라."
"뒤질래 진짜?"
"아 내가 그래도 바지는 안 벗겼잖아. 고마워해라."
헛소리를 늘어놓는 전정국을 베개로 흠씬 두들겨 패고 나서야 전정국은 입을 닫았지.
역시 미친개는 패는게 약.
"야, 진라면?"
"어."
방으로 들어가 편한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고 세수도 하고 나온 너에게 전정국이 물었어.
라면 두 개를 끓이는 전정국에게 네가 말했지.
"야, 코트랑 목폴라랑... 뭐냐, 어쨌든 그거."
"목걸이."
"어 그거 다 진짜 미안하다. 드라이는 내가... 근데 목걸이?"
"어."
"너 금속 알러지 있잖아."
"비싼거야, 서연이랑 커플 목걸이."
"하긴, 니가 언제 싼 거 한 적이 있냐."
정국이는 어릴 때부터 부내 철철 나는 도련님이었어. 너도 나름 잘 사는 편이었지만 아버지 빚 보증으로 좀 어려워졌고.
그래도 지금은 나름 빚도 다 갚고 다시 일어나는 중이야. 부모님들도 여전히 친하시고.
"라면 먹어라."
"와~ 잘먹,"
"뭐."
"계란 넣었냐?"
"라면엔 계란이지."
"아니 그건 나도 아는데."
후루룩 계란에 라면을 말아 먹으며 멀뚱히 널 쳐다보는 정국이에게 소리를 질렀지.
"요즘 세상에 계란을 어떻게 라면에 넣냐!"
"아, 왜!"
"그것도 이렇게 세 개나 풀어? 라면은 두갠데?"
"니가 언제는 계란 세개 넣은게 맛있다매!"
"계란 비싸단 말야!"
조류 독감이다 뭐다해서 계란 한 판에 만원이 넘어가, 요즘은 늘 아침으로 먹던 후라이도 안해먹는데
정국이의 계란 과소비에 욱한 너야.
정국이는 시무룩하게 심통난 표정으로 라면을 계속 먹었지.
"먹기 싫으면 먹지 말던가."
"내가 언제."
어제 술 먹어서 속 쓰리다, 곧바로 라면을 흡입하는 널 어이없게 바라보며 정국이 말했어.
"술도 못 먹는게, 진짜 주정에 해장에 가지가지 해요."
"내가 뭔 주정을...했냐?"
"어, 너 어제 개 진상이라고 강슬기가 빨리 와달라고해서 간건데."
"미친. 어떻게 했대?"
다급한 네 표정이 웃긴지 폰을 들어 찰칵, 소리나게 널 찍은 정국이가 말했어.
"그건 모르고, 너 술 작작해라. 너 데리러간다고 서연이랑 싸웠다고."
"서연이랑 있었어?"
"어, 타이밍이 기가 막혔지."
"그냥 오지말지, 나 같아도 화 났겠다. 근데 그 밤까지 둘이 데이트하고 있었어? 뭐 했길래."
"뭐하긴."
"?"
"러브호텔"
자랑스럽게 말하는 정국이의 얼굴에 대고 너는 놀라 기침을 했지. 썩어들어간 정국이의 표정과 함께 네 표정도 썩어들어갔어.
"더러워......"
"드라이 맡기러 가자."
"냅둬."
"아 목걸이라도 냄새 없애야할거 아냐!"
"두면 빠져."
드라이값 내놓으라고 난리 칠때는 언제고, 그새 네 침대에 드러누워 귀차니즘을 발산하는 정국이의 발목을 질질 끌고 네 옷장앞에 세웠지.
"야, 내 후드는?"
"두번째 칸."
하도 남의 집에 들락날락하는 정국인지라 옷장에 정국이 옷이 반이었어. 다 비싼 옷들인지라 한번씩 후드티 같은건 네가 몰래 입는다는건 비밀.
옷을 다 갈아입은 정국이가 왁스를 찾아 화장실에 들어갔어. 쟨 뭘 저렇게 꾸미는지. 갑자기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나가려던 자신이 부끄러워져 너도 옷장을 뒤졌지.
예쁜 니트와 달라붙는 체크무늬 스커트, 작년 생일선물로 정국이 어머님이 주신 회색 코트를 꺼내입고 화장도 슥삭슥삭했지.
"뭐야."
립스틱을 바르는데 뒤 돌아보니 놀란 표정의 정국이가 서 있었어.
"뭐가."
"치마 뭔데."
"보기싫으면 눈 뽑던가."
지는 무슨 아이돌처럼 차려입고는, 어이가 없는 너였지.
"아씨, 야 좀만 기다려 봐."
다시 옷장을 연 정국이가 다급하게 옷을 꺼내들고 다른 방으로 갔어.
"넌 뭐야."
"뭐가."
널 따라 회색 코트에 니트 차림으로 갈아입은 정국이가 딴청을 피웠어.
"누가 따라입으래, 뒤진다 진짜."
"아 다니는 사람이랑 컨셉이 맞아야 한다고!"
"컨셉은 지랄, 아이돌그룹도 아니고."
"나 강아대 아이돌이거든?"
정국이를 쌩하니 무시한 네가 드라이할 옷들을 챙긴 쇼핑백을 들고 밖을 나섰지.
"야 우리 이따 방탈출도 가자!"
"돈없거든?"
"내가 낼게."
"아 됐어."
옷만 맡기고 오려고 했는데 정국이 손에 이끌려 지하 상가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는 너야.
예쁜 옷들이며 화장품들에 욕심이 생기지만, 아직은 여력 없는 집안 형편에 고개를 애써 돌리는 너지.
정국이는 네 맘도 모르고 신이 났지만.
"너 저거 입어봐."
"셔츠?"
"아니 그 옆에거."
그 옆엔 속옷이라 봐도 무방할 야시시한 원피스가 걸려 있었고, 너는 좋다고 웃는 정국이의 뒷목에 당수를 날렸지.
"계산이요."
"245700원입니다."
"일시불로 해 주세요."
속옷 가게에 들렀다 오겠다던 정국이가 하도 안와서 데리러 갔더니, 눈도 깜짝 않고 큰 액수를 결제 중인 정국이가 보였지.
"야 전정국."
"아 깜짝이야, 밖에서 기다리지."
"뭘 이렇게 많이 써, 아저씨한테 혼난다 너?"
"아빠가 정해놓은 한도까지는 괜찮다고 했거든요~"
옆에서 훈훈한 정국이의 비주얼을 감상하던 직원이 이런 영앤핸섬앤리치는 처음 봤다는 감격한 표정으로 너에게 말을 걸었어.
"여자친구분... 진짜... 좋으시겠어요오..."
"아, 여친 아니에요."
정국이랑 다니면서 많이 받은 오해인지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 심지어 정국이는 지금 여자친구가 있는 상태라서 그 오해를 바로 풀지 않는건 예의가 아니고.
요즘 서연이 때문에 신경쓰여서 사실 만남을 자제하려고 하는데 눈치가 더럽게 없는 정국인지라 힘들거같아.
옷 더럽힌 주제에 염치 없지만 정국이가 파스타를 사줘서 잘 얻어먹고,
더 놀자는 애를 달래서 네 집 근처까지 왔어.
정국이 집과는 십분 거리이기도 하고, 과거에 네가 겪었던 안 좋은 일을 아는지라
정국이는 고집을 부려 무조건 널 집까지 바래다주곤 해.
"야 내일도 놀자."
"학교가야지."
"아 맞다 평일이지 이제."
인상을 잔뜩 찌푸린 정국이의 미간을 펴주며 말했어.
"넌 학교 가는게 즐거워야지, cc잖아."
"넌 민선배있잖아."
너도 까먹었던 문자를 귀신같이 기억한 정국이가 말했어, 헐 소름.
"아 그거 강슬기가 오해한 거임 백퍼."
"그건 모르는 일이지."
"진짜, 내 모든 걸 건다."
"내일 학교 같이 가."
"서연이 진짜 빡칠걸?"
"상관없어."
"야 걔가 티를 안내서 그렇지 나같아도 너같은 남자친구 있으면 속 탄다.
남녀 사이에 친구 없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신경이 안쓰이겠냐고."
"상관없다니까."
니 못생겨서 신경도 안써. 그렇게 말한 정국이가 또 낄낄 웃었어.
와, 너무 맞는 말이다. 쳐 맞는 말! 정국이의 등짝을 때렸지만 무용과 여신 한서연으로 유명한지라 반박할 수 없었지.
"와, 내가 진짜 돈 모아서 성형한다."
"넌 안 돼."
"왜 내가 코만 하면 봐줄만하거든?"
"지금도 봐줄만해."
"어?"
내가 지금 보고 있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 실없이 웃는 정국이를 한대 친 너와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한 둘이야.
"어쨌든 나 들어간다"
"모닝콜?"
"해주면 고맙고."
"오케이, 아 이거."
"뭐."
오늘도 한가득 쇼핑한 제 가방을 뒤지던 전정국이 뭔갈 네게 내밀었어. 불길한 예감에 바로 포장을 뜯으려 했지만 정국이는 제법 진지하게
"집가서 봐."
라고 했지.
집에 오자마자 포장을 뜯은 너는 끓어오르는 혈압에 고성을 질렀어.
"전정국!!!!!!!!!!!!"
그 안에는 네 본래 사이즈보다 한 사이즈 업된 크기의 브래지어가 들어간 빨간 연말 한정 속옷세트가 들어있었거든.
야시시한 망사스타킹과 가터벨트는 보너스로.
그리고 밖에서 네 고성을 들었을 게 틀림 없는 정국이의 카톡이 왔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답답해보인다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 맞을걸?'
'입고 사진 보내면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쓸데 없는 소비 중에서도 널 괴롭히는데 쓴다면 그 누구보다 탁월한 정국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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