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좋게 좋게 보내려 탄소가 나긋한 말투로 타일렀지만 상대는 술에 꼴아버린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꼰대였다. 음료수 유리병을 있는대로 깨먹으며 고래고래 난동을 피우는 저번 진상보다야 훨씬 양반이었지만 과자봉지를 닥치는 대로 끌어안고 나갈 생각을 안하는 이 손님 또한 만만치 않게 난감했다. 탄소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편의점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초라해보였다. 엉엉.
"아저씨, 이게 드시고 싶으시면 계산을 하셔야죠."
"싫어-"
"아저씨. 그럼 제가 계산할테니까 가지고 나가주실래요.."
"그것도 싫어-!"
아까부터 반복되는 레파토리였다. 몇 시간치 시급이 까일 각오로 과자를 제 돈으로 결재해주겠다는 말까지 했지만 남자는 뭐든지 '싫어'로 일관할 뿐이었다. 도무지 말을 들어먹을 기색이 보이지 않아 탄소가 힘으로 남자를 끌어내려고 시도했지만 여자의 몸으로 중년 남성을 옮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탄소는 체념했다.
"그럼 영업 방해로 신고할게여.."
탄소는 핸드폰을 들고 익숙하게 112를 눌렀다. '하이고, 아가씨. 또야?' 질렸다는 듯한 늙은 경찰관의 칼칼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렀다.
"히..죄송해요.."
"지금 출동할거니까 가만히 있어요!"
자꾸 이렇게 신고하는게 미안해서 팔자에도 없던 애교를 떨며 사과를 건넨게 무색하게 전화는 뚝-하고 신경질적으로 끊겼다. 그래도 처음엔 친절하셨는데..시무룩해진 탄소는 그자리에 쭈그려 앉아서 머리를 살짝 감쌌다. 눈앞에서 바로 신고를 하는데도 이 망할 아저씨는 여전히 과자를 아기 다루듯 품에 껴안고선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치광이와 연애를.
written by 무담
언제 한번 누군가가 왜 이런 핫-플레이스에서 고생을 자처하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탄소는 집이 가까워서, 라고 대충 얼버무렸지만 집이 가깝긴 개뿔 편의점과 탄소네 자취방은 걸어서 40분 거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소가 굳이 여기서 알바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시간이 맞아서. 저를 배려해주는 착한 사장님. 그리고 진상손님과 비례해 최저시급을 훨씬 웃도는 페이. 하지만 탄소는 오늘을 기점으로 여길 그만 두고 다른 곳을 찾아봐야 하나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돈 좀 더 벌려다가 정신병 얻고 병원비가 깨질 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처에 여기만한 알바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과외를 하나 더 늘리는 것은 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부담이 되기 때문에 알바를 옮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면 기껏해야 대학생 주제에 왜 이렇게 돈을 못 벌어서 안달난 사람처럼 구느냐, 고 물을려나. 거기에는 또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다. 자취방이 있는 서울에서 남쪽으로 차를 타고 3시간을 달리면 도착하는 탄소의 집에는 아빠는 온데간데 없고 착하고 지랄맞은 여동생과 이젠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엄마뿐인데, 사업 실패 이후 핀트가 나간 아빠가 도박에 빠져 돈을 탕진하다가 빚더미를 남기고 튀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집의 기둥이 되어버린 그녀가 이리 열심히 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빠라고 부르기도 뭐한 그 웬수가 떠넘긴 빚(+학자금 대출)도 갚아야 하고, 이제 고등학교에 들어간 여동생과 자신의 학비도 감당해야 했으니까. 힘든 상황이지만 탄소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아빠가 제 2 금융권까지는 손을 대지 않았잖아? 꽃다운 나이에 장기가 털리거나 새우 노가다를 뛸 뻔했다고! 아빠 감사해요. 씨발.
빚, 공부, 장학금, 취직... 몸도 힘들고 정신도 피폐해지니까 이런저런 우울한 생각이 들어 경찰이 올 때까지 머리라도 좀 식히기 위해 탄소는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축축한 새벽 공기 사이로 미미한 담배냄새가 났다. 아 담배 땡겨. 탄소는 망설임 없이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냈다. 다행스럽게도 딱 한개피가 남아있었다. 후우- 담배연기를 내뿜자 머리가 살짝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저 진상 과자새끼..."
탄소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내일 담배 몇 갑을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 엄마와 여동생 눈치가 보여서 의도치 않게 금연 아닌 금연을 실천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한 모금만 마셔도 피곤해서 지멋대로 달달 떨리던 손이 잠잠해지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더이상의 금연은 힘들 것 같았다. 노 담배 노 라이프!
"좀 비켜주실래요."
체리맛이 나는 필터를 잘근잘근 씹으며 멍때리고 있던 탄소는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라 담배를 떨구고 신발로 밟아서 불을 껐다. 손님이세요? 공손한 말투로 물었건만 남자는 묵묵부답이었다. 반응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때, 때마침 남자의 뒤로 옅은 바람이 불어왔다. 탄소의 코 끝에 알콜향기가 맺혔다. 그제야 탄소는 알아챘다. 너도 제정신이 아닌 게로구나. 탄소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오늘 일진 더럽게 사납다.
"손님 진짜 죄송해요, 지금 편의점 안에 취객 한 분이.."
"괜챠나, 나도 취했어. 내 걱정 하지마."
? 니 걱정이 아니라 내 일터 걱정인데요, 애송아? 탄소는 편의점으로 들어오려는 남자를 제지하기 위해 문에 꼭 달라붙었다. 하지만 남자는 가소롭다는 듯이 탄소를 떨궈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보기엔 말랐는데 꼴에 남자라고 힘이 더럽게 셌다. 탄소는 남자를 뒤따라 편의점에 들어가려다 아까까지 실랑이를 벌였던 과자새끼와 눈이 마주쳤다. 불안한 기운이 엄습했다..
편의점 안은 세상에 자기 자신과 술 취한 애송이, 그리고 과자새끼만 남겨졌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요했다. 아직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과자새끼와 다르게 애송이는 비틀거리는 몸을 휘적거리며 편의점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탄소는 화장품 가게 알바 경력을 살려 "손님 뭘 찾으세요?" 같은 대사를 치며 시한 폭탄 같은 둘을 마주치게 하지 않기 위해 애썼지만 과자코너를 발견한 애송이는 "와아..과자다 과자.." 하고 눈이 뒤집혀선 팔을 휘적휘적 대며 걸어갔다. 그리고, 그 가녀리고 쓸데 없이 힘만 센 팔이 기어코 과자새끼가 들고있던 과자를 쳐버렸다. 잠시동안 허망하게 떨어진 과자를 보던 과자새끼의 얼굴이 금새 분노로 일그러졌다. 탄소의 얼굴도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너 지금 나 쳤냐?"
"히이..재송합니다아.."
"너, 지금, 나, 쳤냐고!!!!"
술에 취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길길이 날뛰는 남자의 모습은 악마의 현신 같았다.
"녜! 뎨송합니다아!"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건 그 악마 앞에서 좋다고 실실거리는 애송이었다. 난장판이 된 편의점 꼬라지를 보는 탄소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엔트로피의 법칙을 충실히 따르는 편의점은 무질서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와중에 애송이는 태평하게 무릎을 굽히고 쭈그려 앉아 바닥에서 터진 과자봉지에서 나오는 부스러기들을 주워먹고 있었다. 사과만 하면 다냐? 그 모습을 보는 탄소조차도 어이가 없어서 화가 났는데 과자새끼는 오죽 했을까. 과자새끼의 눈에 광기가 돌았다. 과자새끼는 눈을 두리번 거리더니 유리병으로 된 모히또를 집어들었다.
"어 그건 안돼요!!
"뒤져 이놈아!!"
"이 미친새끼가!!"
애송이를 향해 팔을 치켜드는 과자새끼에게 몸을 날린 건 본능이었다.
"아악!"
탄소가 자기도 모르게 모히또를 든 남자의 손목을 쳐냈다. 그렇게 세게 쥐고 있던 건 아니였는지 과자새끼가 비명소리를 내며 병을 놓쳤다. 산산조각난 유리병 사이로 연두색 액체가 퍼지는 것을 바라보며 올ㅋ 나에게도 이런힘이? 하고 감탄하던 탄소는 이내 화가 머리 끝까지 난 과자새끼를 보고 정신을 차렸다.
"뭐하는 거야!! 빨리 나와!!"
깨진 유리조각을 멍하니 쳐다보던 애송이는 다행히도 탄소의 손에 이끌려 순순히 편의점 밖을 빠져나왔다. 편의점 밖으로 나오자마자 애송이를 내팽겨치고 남자가 따라나오기 전에 옆에 있던 테이블을 밀어 문을 막은 탄소는 때마침 도착한 경찰관 두명이 편의점 쪽으로 걸어들어오는 것을 보고 벽에 스르르 기대 앉았다. 블록버스터 영화를 한편 찍고 온 듯, 몸에서 힘이 쭉 빠져버렸다. 애송이는 탄소가 손을 세게 뿌리친 까닭에 맞은편에 널부러져 있었다. 조금 미안했지만 굳이 일으켜주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흥분한 과자새끼가 욕설을 짓껄이며 테이블로 막힌 유리문을 쿵쿵 두드릴때마다 탄소의 몸이 움찔거렸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저러다 유리문이 깨지면 뒷수습이 상당히 난감해졌기 때문이다.
"아가씨 괜찮아?!"
아..네.. 탄소가 힘 없이 대답했다. 경찰관 2명이 난동부리는 과자새끼를 연행해가는 것을 지켜보던 탄소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점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전데요... 새벽 4시에 벨소리 테러를 맞은 점주가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슨 일 있니? 울컥거리는 것을 참고 힘겹게 상황 설명을 끝마친 탄소는 어서 정리하고 집에 가라는 점주의 걱정 어린 말을 듣고 통화를 마치고 나서야 긴장을 풀었다. 여전히 불빛이 화려하게 반짝였고 향락에 취한 채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내는 소음 때문에 시끄러웠다. 하지만 멘붕이 온 탄소에게는 그것이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았다. 탄소의 손이 다시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씨발 담배.. 담배..
"담배 필요해?"
"네!"
탄소는 자기가 대답해놓고 자기가 놀라서 몸을 움츠렸다. 여전히 계단에 널부러져있는 애송이가 그 상태로 고개만 돌려 탄소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뭐야 이새끼, 아직도 안 갔어? 애송이는 해사하게 웃으며 좀비처럼 일어나 탄소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 모습이 흠좀무여서 탄소는 괜히 팔을 한번 쓸었다.
애송이는 탄소의 코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주머니를 좀 뒤적거리는가 싶더니 탄소가 피는 것과 똑같은 담배곽을 꺼냈다. 크으..너도 이거 피는구나..뭘 좀 아는데? 영롱한 붉은색이 탄소의 눈을 현혹시켰다. 애송이는 담배 한개피를 꺼냈다. 자 이제 어서 주시져. 탄소가 사료 조르는 강아지 눈을 하고 손을 내밀었지만 애송이는 그것이 무색하게 꺼낸 담배를 자기가 물었다. 심지어 불을 붙이고선 몇 번 빠는가 싶더니 별안간 탄소의 얼굴에 연기를 후- 뱉었다. 지금 나랑 뭐하자는 거지. 탄소의 얼굴이 단박에 구겨졌다. 시원하게 욕이라도 갈겨주려고 입을 뗐는데 순간 마주친 애송이의 맑은 눈동자를 보니 아까 난리통에 술이 거의 깬 것 같기도 하고..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자칫하면 컴플레인이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탄소는 고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왠지 이 남자라면 '필요하냐고 물어봤지 준다고 한 적은 없는데~' 하고 대꾸할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때 애송이가 담배곽에서 담배 하나를 더 꺼냈다. 탄소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내가 아까 이 말 했던가?"
"뭐가요."
애송이가 옅게 웃었다. 하지만 탄소의 관심은 온통 잘 빠진 손에 들린 담배에 있었다.
"나는 박지민이고 너한테 반했어. 우리 사귀자. 잘해줄게."
애송이, 아니 지민은 담배 한개피를 빼서 불을 붙히고 탄소의 입에 물려줬다. 마치 연인에게 프러포즈하며 반지를 건내는 것처럼.
탄소는 담배연기를 마실 생각도 안하고 예쁘게 웃는 지민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결론을 내렸다. 이 새끼 술 덜 깼네. 지민을 바라보는 탄소의 표정에 애잔한 빛이 감돌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민의 입에선 폭탄발언이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니가 딱 내 이상형이야. 박력 넘치는 사람."
"......"
윽. 취향저격. 지민은 담배를 물고 있지 않은 손으로 자신에게 총쏘는 시늉을 했다. 탄소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지민을 찬찬히 뜯어 살피기 시작했다. 머리칼은 결 좋은 회색, 귓바퀴에 매달려 흔들리는 피어싱과 남자치고 예쁘게 잘 빠진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들은 크롬하츠로 추정. 옷도 과하지 않게 화려하다. 잘사는 일진 고딩? 클럽 죽돌이? 아니면 동네 조폭? 그러다 순간 탄소의 머리속에 한가지 가능성이 스쳤다. 외모도 그렇고 취향도 그런(?)쪽이라면..설마사카..
"님 혹시 게이..?"
"..? 너 뒤지고 싶냐?"
다행이다. 난 또 그쪽이 절 남자로 착각하신줄 알았어요. 탄소가 중얼거렸다. 아까까지 사랑에 빠진 눈빛을 뿅뿅 뿜어대던 지민의 눈이 순간이지만 험악한 빛을 띄었다. 오 찡그리니까 좀 무서운데? 하지만 이미 상대를 술에 절은 애송이로 낙인찍어버린 탄소에게는 가소로워보였다. 애샛기 주제에 어디서 눈을 부라려.
"어쨌든 오늘부터 1일인거야! 그럼 나는 가볼게. 내일 보자."
"응 그래 잘가."
탄소는 이런 류의 사람들을 많이 상대해봤기 때문에 쌍욕을 선사하는 것 보단 적당히 맞장구 쳐주고 돌려보내는게 자신의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안뇽 빠빠. 그리고 그런 탄소의 의도대로 지민은 혀 짧은 인삿말을 건내고 발랄한 발걸음으로 순순히 탄소에게서 멀어졌다. 와 존나; 폭풍같은 새끼; 점점 작아지는 지민의 뒷모습을 보며 탄소가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다며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 그것도 잠시, 탄소의 머릿속은 다시 '어질러진 편의점 뒷수습은 어떻게 하나' 같은 우울한 주제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자신이 지민에게 던져준 대답이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는 꿈에도 모른 채로. 그녀가 걱정해야 할 것은 정작 따로 있었다.
-
오늘은 수요일. 탄소가 가장 행복한 날이다. 왜냐하면 오늘은 일주일에 두번, 편의점 알바가 없는 날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제까지만해도 과자진상과 게이애송이에게 시달렸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탄소의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탄소는 친구에게 건네받은 캔커피를 마시며 캠퍼스 안을 신난 강아지처럼 뛰어다녔다. 편의점 뒷수습은 점장과 교대가 떠맡아 하기로 했고, 점심 때는 친구찬스로 밥도 공짜로 먹고. 크으, 완벽하다. 가방에서 가계부를 꺼내 아까 점심 식비를 -에서 0으로 적어내리는 탄소의 손은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가 아니라 0인 까닭은, 아낀 돈으로 담배를 구매했기 때문이다! 담배는 조증의 원인 중 8할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탄소는 수첩을 가방에 집어넣으면서 안에 있던 담배곽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이번엔 아껴펴야지. 탄소의 입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었다.
그럼 나머지 2할은? 이따 카페에 가서 알바를 뛴다는 핑계로 잘생긴 카페 사장, 김석진의 실물을 영접한다는 것이다. 천사가 강림한 것 같은 그 환한 얼굴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탄소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나이는 잘 모르지만 많이 쳐줘봐야 30대 초반을 넘지 않을 것 같은 어린 남자가 카페 사장이라니. 능력이 쩔거나 집이 부자거나 둘중에 하나라는 이야긴데, 뭐가 됬던 탄소는 김석진을 꼬시면 자신의 팔자가 펴질 것이라는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마음만 먹은것이 아니라 탄소는 정말로 석진을 꼬시려고 행동으로 열심히 실천중이었다. 온갖 예쁜 척 조신한 척도 떨어보고, '사장님 나랑 사겨요' 라는, 왠지 모르게 누군가가 생각나는 대사까지 친 적도 있다.
"지랄하지마^^"
물론 1도 먹히지 않는다는게 함정.
여튼 이런 저런 이유로 탄소는 아침 일찍 부터 지루하기로 악명높은 교양수업을 소화한 사람 치고 해맑은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30분 후에 출발하면 카페에 제시간에 도착하므로 탄소는 이참에 틈새공부를 하기로 했다. 생각 없이 사는 욕쟁이 골초로 보이겠지만 그녀는 어쨌든 장학금이 절실한 빚쟁이 대학생이었고 하릴없이 가만히 있다보면 우울한 생각만 들었기 때문이다. 탄소는 벤치에 앉아 곧 이게 말인지 방구인지 모를 어려운 경제학 용어 해설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멀리서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어제 급작스러운 탈솔로☆를 이루어낸 지민이었다. 밝은 회색머리를 하고 건물 모서리 뒷편에 숨어서 한 여자를 힐끔대는 지민의 모습은 누가봐도 수상하기 그지 없었지만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힐끔힐끔, 지나가던 학생들이 지민을 쳐다보았지만 지민에게 중요한 것은 '어느 타이밍에 등장해야 탄소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을까' 그 뿐이었다. 눈이 댕그래져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탄소를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지민은 머리 끝이 쭈뼛, 설 정도로 좋았다. 아 더는 못참겠다.
"안녕 여친!"
"악!"
탄소가 보지 못하게끔 뒤로 살금살금 걸어간 지민이 의자 뒤에서 탄소의 어깨를 감싸고 인사를 건넸다. 이 쪽은 지나가는 사람이 많이 없기도 하고 해서 최소 반경 30m 이내에 자신 말고는 사람이 한명도 없을 거라 확신하고 있던 탄소는 진심으로 놀라서 상대를 확인하지도 않고 무작정 전공책을 휘둘렀다. 하지만 운동신경이 좋은 지민이 책을 낚아챘고 그제서야 탄소는 지민의 얼굴을 확인했다. 어! 너..!!
"맞아, 니 남친♡"
"저번에 그 미친놈?"
두 남녀의 목소리가 동시에 허공에 퍼졌다. 지민은 자신을 미친놈으로 지칭하는 탄소에도 화를 내지 않았다. 당황해 하는 탄소가 귀엽기도 했고 사실 자신은 정말 미친놈이 맞았기 때문이다.
"술 마시고 봐서 예뻐보인건가 했는데 제정신으로 봐도 예쁘네?"
"필름 끊긴거 아니었어..? 그것보다 여기 다녀요?"
당황한 탄소는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기 시작했고 지민은 아빠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간간히 탄소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Q : 취한 거 아니었어요? A : 취했었지. 나중에 깨긴 했지만. Q : 장난 아니었어요? A : 나는 진지했는데? Q : 그럼 다 기억 하시는 건가여..? A : 처음 대사부터 읊어줄까? 지민의 말을 들을 수록 탄소는 혼돈의 카오스에 몸이 잠식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뭔진 모르겠지만 거하게 사고를 친 것 같다..
"저기 그게요..그때 제정신이 아니신 것 처럼 보여서 제가 그냥 대충 대답해드린거지 고백을 받아들였거나 뭐 그런.."
"그러면 그냥 좋게 거절했어야지. 니가 실수한거니까 책임져."
"아..."
이러니까 할말이 엄ㅁ네? 탄소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서 지민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탄소를 잠시 양봉업자 빙의한 꿀눈깔로 쳐다보던 지민이 입을 열었다. 탄소는 순간 쫄아서 몸을 뒤로 뺐다. 술을 마시나 안 마시나 지민은 제정신이 아닌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남자 입에선 말이 아니라 똥이 나온다.
"얼굴도 이정도면 잘 생겼고 성격도 좋고. 나 집에 돈도 많아. 그런데 대체 뭐가 불만인거야? 보통 이런 상황이면 다들 어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주워먹지 않냐?"
니가 떡도 아니고 주워먹긴 뭘 주워먹어..하지만 그 순간 탄소는 지민의 얼굴이 묘하게 망개떡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길가에 떨어진 지민을 주워먹는 해괘망측한 상상을 하고있던 탄소가 깜짝 놀라 머리를 흔들었다. 이 남자 뭐지?! 보고만 있어도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아! 탄소는 다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아니, 그것보다 언제 봤다고 반말이에요?"
"너 2학년이잖아. 난 군대까지 갔다 온 3학년이야."
"내가 재수를 했을지 삼수를 했을지 어떻게 알..나 2학년인건 어떻게 알았어요?"
"나는 탄소 밖에 모르는 사랑꾼이니까."
분위기를 보아하니 단순히 이름과 학년만 아는게 아닌 듯 싶었다. 이름..이야 뭐 편의점 유니폼 가슴팍에 붙은 명찰을 봤다고 치자. 탄소는 페북이나 인별은 계정조차 없고 심지어 그 흔하다는 카톡마저 잘 안하는 문명찐따였기 때문에 누군가가 그녀의 신상을 파기란 힘든 일이었다. 이건 필시 뒷조사다. 탄소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무래도 자신은 미친 개한테 단단히 물린 모양이었다.
"아. 그러시구나."
일단 튀자. 사고회로가 정지된 탄소는 급하게 가방을 챙겨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질주해서 후문을 빠져나왔다. 지민이 갑자기 멀어지는 그녀를 보고 픽 웃으며 소리쳤다.
"이따가 연락할게!!! 니 전공책 나한테 있어!!"
아..인생 제대로 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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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아 김우빈 암 투병할 때 공양미 이고 기도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