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열X백현]
겨울병동
w.레녹
몇 시간 후 백현이 파리해진 얼굴로 돌아왔다. 꽤나 지친 것 같았다. 그런 백현을 보며 찬열이 가만히 물었다. 괜찮아? 찬열의 걱정스런 말투에 백현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
니. 백현은 찬열의 시선이 싫었다. 저를 걱정스레, 불쌍하게 쳐다보는 그 시선. 징글징글했다. 힘든 치료를 벌써 일 년째 받고 있는 것도 다 살려고 발악하는 이유였다. 살고 싶
었다. 여느 열여덟처럼 친구들이랑 학교에서 공부도 하고, 같이 축구도 하고.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고백도 해보고. 시험을 못 쳐서 부모님에게 혼나는 것도, 아니면 잘 쳐서 칭
찬을 듣는 것도. 저 말고 다른 열여덟들은 다 하는 걸 왜 저만 못하고 있는 건지, 왜 병원에서 힘들게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억울했다.
기어이 눈에 눈물이 맺혔다. 찬열이 볼세라 팔을 들어 눈가를 가렸다. 괜찮아? 다시 한번 찬열이 물었다. 팔을 들어 눈을 가린 터라, 환자복 소매가 흘러 내려갔다. 마른 팔이
드러났다. 백현은 끅끅대며 눈물을 삼켰다. 괜찮냐는 물음이, 제 가슴을 파고 들었다. 아니, 안 괜찮아. 나 죽을 거 같아. 힘들어.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이 백현의 머릿속에서 둥
둥 떠다녔다. 힘내. 찬열의 마지막 한 마디. 너 꼭 나을거야. 두 마디. 백현은 결국 눈가를 가렸던 팔을 내리고 크게 소리내어 울었다. 천장을 보고 가만히 누워서, 엉엉 울었다.
찬열은 그런 백현을 보다가 깨금발로 백현에게 다가갔다. 아직 다 낫지 않은 뱃속이 욱신거렸다. 백현의 침대 귀퉁이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성한 손을 백현의 마른 다리에
얹었다.
있지…. 힘들면 나한테 말해. 가슴 속이라도 깨끗하게 낫게.
찬열의 말에 백현은 더 크게 울었다.
백현은 그렇게 울다 잠들었다. 그런 백현을 보며 찬열은 한숨을 낮게 쉬었다. 못 고친다며 고개를 젓던 의사가 떠올랐다. 다시 깨금발로 제 침대로 돌아와 앉았다. 가루처럼 부
서진 제 다리, 찢어져 욱신거리는 뱃속, 까딱하면 오른 쪽 팔을 못 쓸뻔 했다는 어깨. 몸 곳곳이 찢어지고 부러졌지만 다 합해도 백현에게는 안 될것 같았다. 차라리 몸이 다 부
서지는 게 낫겠어. 찬열은 그렇게 생각했다. 못 고친다는 말은 얼마 못 산다는 말일까? 찬열은 그 생각까지 미치자 정신이 아득해져왔다. 아냐, 아닐거야. 찬열은 백현을 흘깃
보며 중얼거렸다. 살다가 처음으로, 기도를 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백현이, 낫게 해주세요. 누군지 모를, 절대자에게 찬열은 기도했다.
*
아침 눈을 떴을 때, 찬열은 반사적으로 백현의 침대를 확인했다. 백현의 침대가 비어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둘러 휠체어에 올라타고 수납처로 향했다. 백현이는요? 찬
열의 물음에 간호사 하나가 네? 하고 되물었다. 1406호, 변백현이요. 찬열은 그렇게 말하고 초조한 듯 손톱을 물어뜯었다. 변백현 환자 중환자실이요. 간호사의 대꾸에 찬열은
심장이 쾅 하고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 때 엘리베이터 안 세미코마 상태였던 것처럼 됐구나. 백현은 다시 중환자실로 돌아갔다. 지금 당장 백현을 봐야했다. 찬열은 그 때처
럼 엘리베이터 앞에서 층층 마다 서며 겨우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4층. 중환자실이 있는 곳. 찬열은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타고는 숫자 4를 꾹, 눌렀다.
왜요? 같이 병실에 있는 사람이라니까요? 면회 시간이 아니라며 제 앞을 막아서는 인턴에게 찬열이 소리를 질렀다. 의사가 무릎을 굽혀 찬열과 눈높이를 맞췄다. 백현인 중환
자라, 사람 손을 많이 타면 안되요. '백현인 중환자라' 라는 말이 찬열의 가슴을 콕, 찔렀다. 언제 되는데요? 찬열의 말에 의사가 굽혔던 무릎을 펴고 차트를 확인했다. 아직 의
식이 돌아오질 않아서…. 의사의 말이 다시 한 번 찬열의 가슴을 콕, 찔렀다. 세미코마에요? 찬열의 물음에 의사가 의학용어를 어떻게 알았냐는 둥 다시 물었다. 세미코마냐구
요. 찬열이 다시 한 번 말했다. 그제야 의사는 대꾸했다. 아니, 스투퍼. 의식은 없어도 자극에는 반응해. 백현이는 가끔 이렇게 의식을 잃어. 의사의 말에 찬열은 고개를 푹, 숙
였다. 의사가 이렇게 무덤덤하게 말할 정도로 잦은 일이었구나. 백현이가 스투퍼 상태에 빠지는 게.
나중에 의식 돌아오면 너 첫번 째로 면회 시켜줄게. 의사의 말에 찬열이 감사해요, 하고 짧게 대꾸하고 돌아섰다.
빈 병실로 돌아오는 내내, 돌아오고 나서도 찬열은 축 처져 있었다. 입원하고 나서 처음으로 저를 찾아온 형을 보고서도, 찬열은 시무룩했다. 아직까지 그 의사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아직 백현이가 의식이 없다는 거겠지. 형. 찬열이 형을 불렀다. 왜? 책을 보고 있던 찬열의 형이 고개를 들어 반문했다. 백혈병 걸려서 안 나으면 죽는 걸까? 찬열의 말
에 형은 보고 있던 책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글쎄, 백혈병도 여러 종류가 있거든. 어떤 병은 낫기가 힘들어. 사망률도 높구. 형의 말에 찬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현의 침대
가 계속 시야에서 떠나질 않았다. 왠지 모르게, 그 낫기가 힘들고 사망률도 높다는 그 백혈병이, 백현을 지독하게 괴롭히고 있는 듯 했다.
*
밤이 되서야 의사에게 연락이 왔다. 백현이 의식이 돌아왔어. 서둘러 찬열은 백현에게로 향했다. 절차를 밟고, 백현이 누운 중환자실로 들어섰다. 자고 있어. 의사가 작게 속삭
였다. 찬열이 백현의 손을 쥐려는 찰나, 의사가 찬열의 손을 걷어냈다. 만지면 안돼. 의사의 말에 찬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나갈게. 절대 만지면 안돼. 의사는 그렇게 말하고
중환자실을 나갔다. 찬열이 여전히 창백한 백현의 얼굴을 보며 중얼거렸다. 있지…. 조심스레 입을 뗀 찬열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백현의 몸에 붙은 기계 여러 대가 삑, 삑, 거
리는 소리만 울려퍼졌다. 백현아, 난 니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어. 니가 밝은 모습 한 번 보고 싶다. 찬열이 낮게 말했다. 인공호흡기로 숨을 쉬는 백현의 마른 가슴팍이 올라갔
다가 내려갔다. 이불 밖으로 나온 마른 손을 이불 안으로 넣어주고 싶었지만, 만지지 말라는 의사의 말이 떠올라 차마 그러지 못했다.
이제 나오렴. 의사가 말했다. 찬열은 면회 시간이 끝나 병실을 나오면서도 뒤를 돌아 백현을 쳐다봤다. 힘내. 찬열이 작게 속삭이고는 병실을 나섰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빈 병
실에 들어오는 내내 백현이 떠올랐다. 이제 겨우 이틀, 사흘 같이 있었는데. 보고싶다. 찬열은 침대에 누워 빈 백현의 침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빨리 나으라는, 힘든 것 다 저
에게 얘기하라는 찬열의 말에 엉엉 울던 백현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지금도 울고 있을까. 찬열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천장을 보며 똑바로 누웠다. 욱신거리는 배도, 배에
크게 난 수술 칼 자국도, 산산이 부서진 다리도…. 백현이 지금 겪는 고통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
잘 자, 백현아. 찬열은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백현에게 인사하듯 중얼거리고서 눈을 감았다. 내일은 같은 병실에서 누워 있을 수 있기를.
| 레녹 |
좀 늦었습니다! 동아리행사가 있었는데 A편 올릴때 깜빡 잊고있었어요!ㅠ.ㅠ 찬백님 댓글에 답글 달때도 깜빡... 사실 이 글이 감수성이 폭발하는 밤에 올려야 독자님들이 읽으실때 좋아서.. 열시쯤 올리려고했는데 제손이 근질근질해서 그냥 지금 올렸어요!
A편에 댓글달아주신 찬백님 치킨님 거품님 너무너무감사해요 그리고 비회원독자분 두분도 물논 감사드리구요! 아직 부족한 제 글에 이렇게 댓글달아주셔서 얼마나 감동이었는지 몰라요ㅠ.ㅠ
그럼 레녹은 물러갑니다! |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인스티즈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