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하루 끝에서
찬열세훈
作. 5월의 장미
훤히 들어나는 목이 뭔가 창피해서 계속해서 뒷목에 손을 대고선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저기 저 사람들 사이에 내가 낄 곳은 없겠지. 한 숨이 몽글몽글. 복 달아나는데. 마음속으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새어나오는 한 숨은 막을 길이 없다.
“안녕”
땅을 바라보던 나의 눈을 가린 커다란 손에서 익숙함이 느껴진다. 커다란 반지. 길게 뻗은 다른 손가락과는 다르게 조금은 뭉툭한 새끼손가락. 닳고 닳아서 사라져버린. 아니 어쩌면 일부로 지워버렸을 손가락의 지문. 덜덜 떨려오는 몸이 야속하다.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데. 뻣뻣하게 굳은 몸을 억지로 돌려 그 사람과 마주 봤다.
“박찬열이 돌아왔다며?”
짧게 잘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짧게 미소 짓는 그 사람이 무서웠다. 내가 병신이 되도록 만든 사람. 아쉽게도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짤막한 그의 새끼손가락이 그대로 잘린 나의 손가락으로 향한다. 박찬열을 찾기 위해 버린 나의.
몸
지독한 고리대금에 장기가 팔리네, 마네. 하는 그 박찬열을 되찾으려 팔은 내 몸. 내 집. 그리고 오민영. 그깟 사랑이 뭐라고 나를 팔고 그것만으론 모자라서 내 동생까지 팔아버린 병신. 그렇게 다 버려가며 박찬열을 다시 찾았지만. 그렇게 나를 떠났다. 그게 2년. 각서 대신 가져간 나의 새끼손가락. 관계 후에 찬열이 항상 입을 맞추던, 손잡기가 쑥스럽다며 대신 꼭 잡던 그 새끼손가락. 나에게서 모든 걸 앗아간 그 남자가 내 앞에 서있다. 아무리 좁은 나라라고 한 들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여전히 예쁘네. 시간 되면 오빠랑 한 탕할래?”
귓가에 소곤거리는 그 사람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사람 많은 번화가에서 자꾸 아랫도리를 붙여오려는 그 사람의 팔을 거세게 내려치며 그대로 뛰었다. 아마 뒤 쫒지는 않을 것이다. 나 말고도 하룻밤 지샐 계집 혹은 사내는 많을 테니까
거친 숨을 내쉬며 동네로 들어가는 골목길 앞의 작은 슈퍼 앞 평상 위에 앉아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숨을 돌렸다. 작은 자전거를 타며 돌아다니던 슈퍼 주인 막내아들이 물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내게 건넨다.
“아저씨. 먹을래여?”
고개를 설레설레. 괜찮다는 말을 전하자 녀석이 미소를 짓는다. 어차피 안 줄 거였어여! 라는 말을 하는 녀석이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뭐하냐?”
촉촉한 머리를 바람에 맡긴 채 반쯤 지워진 립스틱을 채우며 걸어오던 민영이가 자신 앞에 놓인 높다란 계단을 보며 인상을 썼다.
“가게는?”
내 물음에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이던 민영이가 짧은 치마를 입어놓고선 평상 위에 풀썩. 내가 깜짝 놀래서 내 외투를 벗어 덮어주니 땡큐. 하는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린다.
“민영아. 가게는 어쩌고 지금 들어왔어?”
“몰라. 개새끼들이 다 뒤엎고 갔어. 오늘 영업 끝이야”
아.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내 발 근처에 자라난 민들레를 쳐다봤다. 봄치곤 너무 추운 날임에도 꽃은 아무렇지 않은 듯 더 활짝 피어났다. 집 근처 공원에 개나리가 예쁘게 피었던데. 나중에 가봐야지. 희뿌연 연기가 피어서는 하늘로 올라간다. 붉은 입술 사이에 끼어진 담배는 우울해보였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반 쯤 핀 담배를 던지고 힐로 지진다. 아, 민들레. 민영의 힐 아래로 담배와 민들레가 함께 뭉개졌다.
“가자, 청승 그만 떨고”
이 달동네에의 가파른 계단에 민영이 신고 있던 힐을 두 손에 꼭 잡고선 나를 쳐다본다.
“눈 깔아. 지지배야”
입술을 삐죽이는 민영이를 쳐다보다 내 흰 운동화를 벗어서 그대로 신겨줬다. 내 무릎 비싼데, 박찬열한테도 안 꿇던 무릎을 너한테 꿇네.
“박찬열은 아직 안 만났지?”
와, 나 박찬열 생각하는 건 어떻게 알고, 돗자리 펴도 되겠다. 괜한 상상에 히죽거리니 민영이 눈이 세모꼴이 된다. 무서운 눈. 운동화 끈까지 확실하게 잘 묶어준 뒤 몸을 일으켰다.
“안 만났어.”
“안녕?”
달은 뜨고 꽃이 피던 그런 봄. 나는 녹슨 철 문 앞에 서있는 그 누군가에게 마음을 할큄 당한 듯 아파왔다.
“야! 오세훈. 발에 피나잖아. 아 저 병신!”
민영이의 목소리 위로 녀석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안녕. 뛰어오던 민영이가 녀석을 보자마자 뒤 돌아서서 다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둘이 있으란 거겠지. 잔뜩 올라간 앞머리. 파란 눈동자. 파란 운동화. 그리고 그만큼 파란 밤.
“오랜만이야. 세훈아”
응. 찬열아, 안녕. 속으로만 삼킨 인사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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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써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려요..하트 달의 하루 끝에서의 찬열이는 이런 느낌! 그리고 세훈이는 뭔가 이런 느낌...? 그리고 민영이는 이런 스타일..?ㅎㅎ이 셋을 생각하며 읽어주세요! 저기 중간에 나온 남성분은...생각보다 중요한 위치에 놓일 거 같기두 하네요^^![[EXO/찬열세훈/찬세] 달의 하루 끝에서 02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7/6/1/76110de24b2c04b5b6eedd087c3156b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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