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인은 괜히 어깨를 털며 라디오국으로 들어간다.
몇몇 선배들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피디와 작가에게 다가가 안부를 묻는다.
실내는 난방일 잘 됐지만, 드러난 목 언저리가 괜히 시린 것 같아 뒷목을 쓸어본다.
버릇처럼 손가락을 깨물며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그때, 자주 출연하던 라디오 피디가 곁에 서며 반갑게 말을 건다.
"어, 카이씨 이번에 dj 됐다면서. 축하해요."
종인은 씩, 웃으며 감사합니다. 말한다.
피디는 잘 해요, 하며 멀어지고 웃던 얼굴은 다시 굳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종인 혼자 올라탄다.
엘리베이터 벽 한 쪽에는 라디오 부스에 앉아 웃는 종인이 있다.
그리고 그 밑에, 김종인의 수취인 불명. 매주 오후 8시~10시.
종인은 발목을 돌리다가 인상을 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발목은 제자리를 찾는다.
때마침 전화가 걸려온다.
작가다. 종인은 예, 카이입니다. 깍뜻하게 대답한다.
-카이씨, 어디세요?
-이제 막 엘리베이터 내렸습니다. 곧 들어갈게요.
전화를 끊고 익숙한 복도를 지나 코너를 돌려는데,
발끝에 무언가 채인다. 담뱃갑이다.
상아색의 담뱃갑을 천천히 집어 든다.
담뱃갑 앞에는 사납기는커녕, 되려 귀여운 사자가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다.
종인은 저도 모르게 풋, 웃고 주변을 살핀다.
저 쪽 자판기 앞에서 양 손에 종이컵을 든 여자만 있을 뿐이다.
여자는 원피스가 잘 어울릴듯한 긴머리에 묶은 머리가 잘 어울릴 듯한 흰 남방, 청바지, 스니커즈 차림이다.
여자는 흘러내리는 머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무언갈 찾는 듯 자판기 아래로 고개를 숙인다.
그 어정쩡한 자세가 웃겨 종인은 또 한 번 풋, 웃는다.
종은은 들고 있던 담뱃값을 코트 주머니에 넣고 벽에 기대 여자를 본다.
여자는 조금 더 허리를 숙이다가 입에 물고 있던 종이컵을 놓치고
그게 놀라 두 손에 들고 있던 커피까지 쏟는다.
신발과 바지에 커피가 튀고 뜨거웠는 지 여자가 커피를 제대로 뒤집어쓴 왼발을 들고 제자리에서 뛴다.
종인은 저도 모르게 손수건을 꺼내 반발짝 다가가다가 이내 멈춘다.
그리곤 차마 거둬지지 않는 시선을 거두며 가던 길을 걷는다.
종인은 라디오 부스에서 헤드셋을 목에 건 채 여유롭게 대본을 읽고 있다.
수취인 불명. 화려한 방송들만 하던 종인에게 이 담백한 프로그램은 낯설기도 하고, 그래서 더 좋기도 하다.
첫방 기념 멘트를 읽는데 인기척이 든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까 그 자판기 앞에 있던 여자다.
종인은 또. 저도 모르게 웃으며 대본을 내려놓는다.
그리곤 손깍지를 끼며 상체를 앞으로 숙여 부스 밖의 여자를 본다.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선배 작가에게 한 소리 듣는 모양이다.
바지 군데군데 열룩이 지고 흰 셔츠에도 자국이 남았다.
선배 작가는 몇 마디 더 하곤, 라디오 부스 문을 열며,
"카이씨. 우리 막내 작가인데 일찍 오라니까 좀 늦었네. 인사해요."
종인은 천천히 일어나 부스 밖으로 나간다.
여자에게서는 설탕 듬뿍 프림 듬뿍 넣은 커피 냄새가 난다.
부스스한 차림에도 여자의 표정은 담담하다.
"반갑습니다, 카이에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종인이 먼저 손을 내민다.
여자는 쭈뼛거리며 손을 맞잡으며 인사한다.
"막내작가 이인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종인은 인의 젖은 신발을 보고 혼자 웃곤 다시 부스로 들어가 앉는다.
인은 자기 신발을 보다가 종인을 건너다본다.
인상을 쓰고 대본을 챙긴다. 종인은 입속말로 대본을 읽으며 웃음기를 거둔다.
첫방 게스트들이 어느새 도착하고 광고가 끝나고 로고송이 끝나고
종인의 첫마디가 시작된다.
"김종인의, 수취인 불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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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한테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쓴 소설임다 ㅠㅠㅠ 여주 이름은 익인에서 따왔어요 익인익인익인익인이인... 정신 없는 첫 화지만 재밌게 읽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