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만 연재하던 글이라 인티 삐잉분들이 못보실것 같아서 여기 일단 프롤로그식으로 올렸습니다. 반응괜찮으면 여기서 동시연재할게요.
소년물이구요. 둘다 고등학교 3학년입니다.
============
"..뭐?"
"나 게이라고. 남자좋아해. 그러니까 그런 거 강요하지마. 안할거니까"
고등학교 3학년. 마지막 여름방학이 끝나고 춘추복을 입는 계절.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터라 잠깐 긴장이나 풀자며 겁도 없이 방에서 둘이 몰래 술을 마시다가 들었던 친구의 고백.. 본인의 성적취향을 너무도 덤덤히 말하는데 물론 잘못된건 아니지만 초등학교시절부터 소위말하는 불..,.알친구였던 녀석의 말에 들고있던 맥주와 소주가 섞인 잔을 손에서 놓쳐버렸다.
이..새끼가 취해서 헛소리를 하는건가.. 아니면 날 놀리는건가.. 싶어 아니 오히려 장난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녀석의 얼굴을 쳐다보자 표정의 변화도 없고, 진지하다. 그래.. 내 10년지기 친구는 남자를 좋아하는 것이었다.
"...하하..그래 그럴수도 있지. 사람이 사람좋아하는건데 뭐 어떠냐...거..걱정마 친구. 난 ..난..굉장히 .. 개방..적이야. 암.그렇고 말고"
"..그렇다면 다행이고. 어쨌든 니가 쏟은거니까 니가 바닥 닦아라"
그러고는 엄마에게 자꾸 아빠가 야자빠진거 알고 화났다고 빨리 들어오라고 전화온다며 가봐야겠다고 일어서는 녀석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던 나는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내가 바닥을 닦고있는 옷이 교복와이셔츠라는 사실에 절망했다. 아씨..내일 학교가는데..와이셔츠 하나밖에 없을텐데..
아니 그것보다.. 구준회가 게이란다. 초등학생때부터 여자애들에게 인기도 많았고 인기만큼이나 여자도 꽤 만나본 놈인데.. 물론..석달을 넘긴 여자애가 없긴하지만 말이다. 언제부터 였지? 왜 난 여태 몰랐지? 같이 목욕탕도 갔었고, 같이 잔적도 많고.. 이상한거 하나도 못느꼈는데... 나 몰래 남자를 만나고 다닌건가? 나 충격받을까봐?
머릿속에 이런저런 의문들이 다 떠오르고 머리가 터질것같이 지끈거리자 후회했다. 술마시면서 "내가아는 애중에 꽤 이쁜데 너한테 관심있다는데 여소받을래?" 라고 계속구준회를 닦달했던게..내가 여소받으라고 칭얼대지만 않았어도..강요하지만 않았어도.. 그 얘기를 안들을수 있었을텐데..
이런식으로 고민하다가는 나만 지치겠다 싶어 술을 닦다말고 술에 젖은 와이셔츠도 내버려둔채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엄마.. 나 내일 구준회 얼굴 어떻게 보지?
어떻게 보긴.. 오늘하루 숨어다니는 수 밖에 없지. 나란 바보같은놈은 그렇게 얼굴을 침대에 묻고 얼마되지않아 술기운에 취해 잠이들어버렸고, 눈떠보니 이미 0교시가 끝나갈 시간이었다. 휴대전화를 보니 집도가까워서 같이 등하교를 하는 구준회의 수많은 전화목록과 마지막 문자 한통.
- 오늘 0교시 조커시간이라서 더못기다리겠다. 아무리 문을 발로차도 안일어나냐? 나 먼저 감.
헐- 큰일났다. 조커시간이였다니... 나란 병신 상병신. 조커는 우리학교 물리쌤의 별명인데 잔인한데다가 학생들 벌줄때 입을 양 옆으로 잡아 당겨 벌려서 생긴 별명이다. 물리쌤 웃는게 입이 괴기스럽게 좀 크기도 하고.
아무튼.. 씻을 시간도 없고 바로 교복입..을수가 없구나.. 와이셔츠에 술냄새는 기본이요 맥주의 누런색까지... 하하- 김동혁 인생 왜 이러냐. 오늘 운이 무슨 하늘에서 벼락맞겠네.
하얀와이셔츠를 찾으려는데 엄마가 며칠전 세탁소에 와이셔츠를 전부 맡기고 나서 나에게 "동혁아. 아빠엄마 집에 없을 동안 니가 세탁소에서 와이셔츠 찾아와" 라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어쩔수없이 대충 반팔티를 입고 가방을 들쳐맸다.
학교로 뛰어가면서 속으로 결혼기념일이라고 일주일동안 집을 비워 날 깨워주지 않은 아빠엄마를 살짝 원망하다가, 구준회도 욕을 했다. 제발. 담임 조례시작 전에는 교실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헉헉대며 교실의 문을 벌컥 열었을때 반아이들의 시선은 물론 교탁에서있던 담임선생님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고, 담임선생님은 내게 손짓을 하며 안그래도 주름 많은 얼굴이신데 이마에 인상까지 쓰실줄 알았는데.. "어이고- 김동혁이 이제 등교하나?" 라고 어울리지 않게 상냥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냈다. 반장이란놈이 지각한데다가 교복도 불량이라고 출석부로 머리 몇대 맞을 각오를 했는데.. 저 말투는 뭐지.? 담임이 진화한건가..?신종 괴롭힘인가?
"..네..?"
"김동혁이. 아무리 그래도 반장인데 반 분위기는 흐리지 말아라.잉? 수시 합격 축하한다"
분명히 기뻐해야 하는 상황인데 어제부터 너무 갑작스럽게 정신없는 일이 연속해서 터지자 벙찔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맨 뒷자리에서 날 향한 구준회의 시선이 너무 강하게 느껴진다.
쟨 기억할까..? 어제 자기가 한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