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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짱 전체글ll조회 200412l

  



" 학생, 학생! "

" 아, 씨. 머리 좀 그만 때려요. "

" 인마, 우리 때는 몽둥이로 맞으면서 컸어. "

" 아, 또 라떼 얘기. 그만 좀 하면 안 돼? "

" 안 돼, 는 반말이고. "


피어싱을 주렁주렁한 남학생이 다리를 덜덜 떨며 앉아있었다. 맞은 편에 앉은 이 아이. 벌써 세 번째다. 유달리 이 애만 보면 한 쪽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답답한 마음에 생수를 벌컥 들어 마셨다. 그 모습을 멀뚱히 보던 애가 떨던 다리를 멈추고 지그시 바라본다.


" 뭘 보냐. "

" 얼굴이요. "


녀석, 자존심도 세다. 단 한번을 내 말에 대꾸 안 한 적이 없다. 이번엔 얼굴이 쥐어 터져서 왔는데 왜 터져서 왔냐고 물으니까, 내가 싸우지 말라고 해서 그랬단다. 그러니까, 때리진 않고 맞기만 했다는 거다. 가만 보면 약속은 잘 지키는 것 같아서 녀석을 가만히 바라봤다. 우리는 꼭 눈 싸움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내 처음으로 이름을 불러주었다.


" 정국아. "


그랬더니 녀석의 눈이 동그래진다. 맑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그 눈동자 속의 심연에 잡아 먹여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저 크고 검은 눈동자가 호랑이의 눈빛 같을 때가 있어서, 내 신분도 잊고 한 발짝 물러설 때가 있다. 아, 나 이러면 안 되지. 엄연히 신입 형사인데. 그럴 수록 내 침착함은 커져 간다. 근데 녀석은 그걸 또 안다. 눈치 빠른 놈.


" 뭐요. "

" 다음엔 맞지도 말고, 싸울 거리를 만들지 마. "

" ... 그게 내 마음대로 돼요? "

" 지는 것도 이기는 거야. "

" 지는 게 왜 이겨요? 앞 뒤가 이상하잖아요. "

" 장기적으로 볼 땐, 지는 게 낫다는 거지. 너 지금 그래도... 쟤 때리진 않아서 빨간 줄 아니잖아. "

" 언제적 빨간 줄 이야기예요. "

" 그래, 뭐... 됐고, 이거나 마셔. "


정국의 앞으로 자판기에서 뽑았던 실론티를 건네줬다. 그걸 빤히 쳐다보던 애가 별 말 없이 캔 뚜껑을 따고 한 번에 마셨다. 그리고 곧, 그의 형이 찾아왔다. 사촌 형이라고 했는데.


" 안녕하세요. 저 정국이 사촌 형 김남준 입니다. 애가 요즘 자꾸 말썽을 피우네요. 죄송합니다. "

" 아닙니다. 그래도 오늘은 다른 애를 때린 건 아니라서요, 예. "

" 그래도 소란은 소란이죠. 죄송합니다. "


남준이란 사촌 형은 계속해서 머리를 조아렸다. 이러다 무릎까지 꿇을 판인데. 나도 자꾸만 같이 조아려졌다. 그의 분위기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리고 정국은 내게 인사도 없이 휙 가버렸다. 남준은 그 행동마저도 죄송하다며 대신 인사했다. 아유, 아닙니다, 한 두 번도 아닌데요. 두 사람이 가고 나서 진이 다 빠졌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부모님 두 분다 사고로 돌아가시고, 혼자 남았다고 했다. 그게 정국이를 삐뚤어지게 만든 것 같았다. 원래는 체육도 잘 하고, 미술도 잘 하고, 공부도 전교권 안에 들면서 선생에게 이쁨 받았다고 했다. 그랬던 애가 성적은 바닥을 치고, 소위 말하는 물을 흐리는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고. 전혀 안 울 것 같았던 사촌 형이 말하면서 울길래 휴지를 건네준 기억이 난다. 


' 정국이가 심성은 진짜 착하고 여립니다, 형사님. '

' 아... 네, 알죠. 알다 마다요. '

' 근데 부모님 여의고 저렇게 엇나가서... 제가 진짜 일이 안 잡힙니다. '

' 예... 고생이 많으십니다. '

' 그래서 말인데요, 형사님. 정국이 올 때마다 음료라도 한 잔 주실 수 있으실까요? '

' 예? '

' 애가 엄마랑 어린 나이에 떨어져서 정이란 걸 잘 몰라요. 이런 무리한 부탁인 거 잘 압니다. 형사님 좋으신 분 같아서 그래요. 한 번만 좀... 부탁 드립니다. '

' 에? 아유, 네, 그럼요. '


어라, 이상하다. 왜 내가 주도권을 뺏긴 느낌이 드는 거지. 철저히 그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감자처럼 생기셔선 여리시네. 분명 여린데, 말 하나하나에 짙은 호소력이 묻어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그의 부탁으로 정국이 올 때면 늘 똑같은 실론티를 건네주었다. 기특한 건지, 다행인 건지, 얼굴에 상처가 줄고 있었다. 내 말대로 싸울 거리를 만들지 않았다고 했다. 내년이면 스물이라고 했던 가. 하루는 학교를 째고 우리 팀에 찾아온 적 있었다. 참 독특한 녀석이다. 저지를 죄도 없고, 나쁜 짓 한 것도 아니면서 제 집 마냥 제 발로 찾아왔다.


" 정국아, 여기가 네 집이냐. "

" 형사님, 저 형사님처럼 되고 싶어요. "

" 나? 내가 되고 싶다고? "


오늘 따라 유달리 눈이 반짝였다. 저 녀석 진심인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대답해줘야 되나. 야, 잠만 기다려봐. 입에 물고 있던 칫솔질을 급히 끝내고 자리로 돌아왔다. 정국의 표정이 결연했다. 허, 참. 진짜인가 보네. 나도 자세를 고쳐 앉고 종이를 꺼내 글씨를 빠르게 적느라 휘날려 썼다. 정국은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뭐 저렇게 빤히 봐, 또. 은근 신경 쓰이네.


" 자, 이렇게 하면 돼. "


그에게 찢어서 너덜거리는 종잇장을 건네주었다. 1번 문항부터 10번 문항까지 그가 지켜야 될 규칙이었다. 정국은 별 말 없이 고이 접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금 물었다.


" 진짜 이렇게 하면 된다는 거 맞죠. "

" 속고만 살았냐. "

" 네. "

" 아, 야,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돼. "

" 형사님은 믿어요. 믿을 거고요. "

" 어.. 뭐,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


이번에도 인사 없이 갈 줄 알았는데. 처음으로 허리 숙여 인사하는 모습에 눈물이 날 뻔했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을 까. 더 이상 정국이는 볼 수 없었다. 관할서에 안 들어오는 게 맞긴 한데. 그게 좋은 건데. 이상하게 허기가 졌다. 공허하고, 무언가 놓친 느낌이었다. 나 잘 보내준 건가. 그런 생각도 잠시, 사건에 치여 몇 년을 폐인처럼 살았다. 신입이란 딱지도 떼고, 아직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단숨에 수갑을 채울 수 있었다. 그리고 마약팀 전담을 맡게 되면서 승진 했다. 내가 이 팀의 팀장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너무 흘러서, 그 아이 생각이 희미해질 때 즈음.


" 안녕하십니까. 2025년 6월 11일 부로 마약 팀 배치 받은 전정국 경위입니다. 충성!"


그 애가 다시 나타났다. 사건에 지쳐서 엉망인 내 꼴과 다르게 멀끔한 제복과 벌어진 어깨가 시선을 홀렸다. 주변에서 말을 걸어왔다. 형사님, 제 저렇게 놔두시게요? 그게 문제가 아니다. 저 실룩거리는 입꼬리. 저거, 저거. 여전히 내 눈은 잘 보네. 시선 피하는 것도 없고. 그때나 지금이나 깡은 좋아.


" 뭐냐, 너. "

" 형사님 따라서 왔습니다. "

" 그때 그 고딩 맞아? "

" 예, 맞습니다. "

" 너 답지 않게 왜 기합이야. "

" 그럼 예전처럼 대해 드릴까요? "


이 놈 봐라? 기어오르려고 하네. 코웃음을 치는 것도 잠시, 주변 분위기에 맞춰 그의 경례를 맞받아 쳤다. 그리고 그를 와락 안았다. 너무 기특해서 나온 순간적인 반응이었다. 그러자 정국은 이때 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굵어진 팔뚝으로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이제 나보다 키도 더 크고, 몸집도 내가 잡아 먹힐 정도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안아주는데, 좋은 향이 스며들었다. 주변에서 호응이 쏟아졌다. 그래, 퍽퍽한 관할서에서 이런 광경은 극히 보기 힘들지. 근데 너무 오래 안고 있는 거 같은데.


" 이제 좀 놓지. "


나를 놓아주는 그 눈빛엔 갈망이 가득했다. 뭐야, 저 눈빛은. 금방 나 잡아먹겠어. 그 이후로부터 녀석은 나만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왜 자꾸 따라다녀 인마, 형사님 다치실까 봐요. 님 걱정이나 하시죠. 저 튼튼한데요. 또, 또 저거 한 마디를 안 지지. 단속을 할 때면 항상 내 주변에 머물렀다. 저번엔 맥주병으로 당할 뻔한 걸 녀석이 막아줬다. 덕분에 녀석의 팔엔 이 센치 가량의 살이 찢어졌다. 그 순간에 내가 눈이 돌아서 공포탄을 발사했다. 덕분에 더 요란스러워진 하루였다. 정국은 치료를 받는 내내 내 이마에 찢어진 상처에만 시선을 주었다.


" 야, 그만 봐. 닳아. "

" 내가 보면 안 닳아요. "

" 뭔 개소리야. "


정국은 그간 내 몸에 생긴 상처를 부담스럽게 훑어 댔다. 미친놈 왜 저래.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인해 내 표정이 일그러졌다. 


" 아무튼 너, 그렇게 함부로 네 몸 쓰지 마. 여기서 몸부터 나가면 쉽게 다쳐. 머리를 쓰란 말야. "

" 아, 형사님은 머리 잘 쓰셔서 몸이 이렇게 되신 겁니까? "

" 비꼬지 말고. "

" 저 이제 피어싱 달고 다니던 애 새끼 아닙니다. "

" 알아. 근데 그게 뭐, 달라질 거 있어? "

" 저 좀 봐 달라고요. "

" 뭐? "


정국은 자기 주머니에서 오래되어 찢어진 종잇장을 건네주었다. 그건 내가 수 년 전에 주었던 규칙이었다. 


" 일 번, 학교 잘 다니기. 이 번, 공부 열심히 하기. 삼 번, 죄 짓지 말기. "

" ... 그걸 언제 다 외웠어. "

" 이제 제가 규칙 드려도 됩니까? "

" 뭔 규칙. "

" 일 번, 혼자 잠입 구역 다니기 않기. 이 번, 나랑 무조건 붙어있기. 삼 번, 칼은 항상 오른 쪽에. "


정국이 내 허리 춤에 자신이 아끼던 소형 칼을 넣어줬다. 나를 보는 눈빛이 짙었다.


" 형사님 잡아 먹으려는 놈들 목, 이걸로 따요. 내가 당신 목 따려고 해도. "

" ... 야. "

" 나도 똑같이 죽이면 돼. "

" 미친 놈. "


그제서야 웃는다. 그 맛 없는 실론티 주는 대로 먹는 거 보고서 진작에 알았지. 보통 놈이 아니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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