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것을 포기했다
꿈도,사랑도.
밖을 나올 때에 민석은 아무것도 챙겨 나오지 않았다.팔에 차고 있던 팔찌도 협탁위에 그대로 얹어두었다.옷이나 신발같은 것도 챙기지 않았고 몸만,그저 몸만 챙겨서 나왔다.밖에는 새벽 가득 눈이 내렸다.원체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세차게 부는 바람과 눈발은 차갑다기 보단 아프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뺨아귀를 갈기는 추위가 몹시 못 견딜만 했지만,민석은 계속해서 밖을 걸었다.걷고,또 걸었다.두 다리는 추위에 꽁꽁 얼어 감각을 잃은지 오래였다.한참 새벽이여서 그런지 다른 동네로 이동을 할 수 있는 수단은 택시밖에 더 없었으나,그마저도 폭설로 인해 쉽지 않았다.그래서 민석은 끝없이 걸었다.차로 가면 10분만에 갈 것을,50분을 내리 걸었다.두 뺨에 홍조가 절정을 다 해 새빨갛게 물이 들 때 까지,계속.번화가와 가깝게 위치한 것 치고는 믿기지 않을만큼이나 허물어진 서울의 달동네에 도착한 민석은 버스 정류장에 맥이빠진 모양새로 주저앉았다.뭐든 혼자서 다 참아 낼 수 있을것만 같았는데,시리도록 추운 오늘 새벽은 어쩐지 그에게 의지하고 싶어졌다,이제 더는 볼 수 없는.도망치듯 그 곳을 포기하고 뛰쳐나온 주제에 그를 떠올리는것은 어쩐지 범죄와도 같다고 생각 한 민석은 애써 다른생각을 떠올리려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떳떳해야 할 이유가 없다.
‘무너지는 건 우리 10명이지만 말이에요…’
‘……’
‘산산조각 부서져서,몰락하는 건 둘 뿐이에요.’
아직까지도 귓전에 울리는 그 말은 홀로 남겨진 민석의 가슴 한 구석을 콕콕 찔렀다.잘 알고있었다.남들과는 조금 다른 사랑을 하고있다는 것을.하지만 그 사랑이 틀린 것이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행복했고,소중했다.그를 만난 건 행운이었고,하루하루가 선물이었다.나만큼 그도 날 아꼈다.어딜 가든 나부터 챙기는게 우선이었고,시선의 끝엔 항상 내가 있었다.사랑한다는 말은 끊임이 없었다.내 앞에서 웃길 좋아했고 그는 나를 웃게만들었다.그리고 그런 그를 나는 말 한 마디,글씨 한 토씨조차 남기지 못 한 채 달아나듯 떠나버렸다.갑작스레,혹은 영영.얼굴을 깊숙히 파묻은 겉옷에서 루한 특유의 향이 어렴풋이 풍겨왔다.왈칵 차오르는 형용 할 수 없는 감정에 민석은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마지막으로 잠에 든 그의 얼굴을 보고 왔어야 될 것을.
*
민석이 탈퇴를 한 사실이 기사화가 됐다.놀랍게도 팬들에게로 부터의 사생활 침해는 더 이상 없었다.민석은 달동네를 넘어서 위치한 작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부모님께 돌아 갈 수가 없었다.버스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던 그 새벽,민석은 울음이 잦아들 즈음에야 어머니께 메세지를 보냈다.엄마,몸이 아파서 당분간 활동은 쉬어요.숙소에서 편히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마요.사랑해요.어머니께 사실 그대로를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그제서야 민석은 깨달았다.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을.온전히 혼자의 힘으로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을.서울의 낯선 곳에서의 생활은 나름 순탄했다.손님이 없는 시간대엔 카운터에 턱을 괴고 앉아 줄창 TV만 올려다 보았고.하나 둘 손님이 찾아오는 시간대엔 직접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렸다.손목이 뻐근히 아파왔지만 민석은 힘든 기색이 하나 없었다.가끔 스무디 몇 잔을 시켜먹으러 온 여중생들이 화들짝 놀라다가 이내 인사를 걸어오면 마주 인사 해 주며 비스켓 몇 조각을 몰래 그릇에다 얹어주고 그랬다.
말도 없이 떠났던 그 날,새벽이 지나고 오후가 다 될 즈음에야 루한에게서 메세지가 왔었다.사실 민석은 루한에게 흔들리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루한의 메세지를 차단해 놓은 상태였다.그러나 말을 듣지 않는 손가락은 계속해서 차단 문자 보관함을 꾹꾹 눌러댔다.11시가 조금 지난 시간,문자 보관함에 한 통의 메세지가 떴다.민석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엄지손가락을 내렸다.단 네 글자였다.[어디있어]민석은 차디 찬 마룻바닥에 쪼그려 앉아 울음을 삼켰다.이대로 있을 수 만은 없었다.나는 잘 살고,떳떳해져서 루한을 다시 만나야 할 필요가 있었다.
“어디긴,네 마음이지.”
검정색으로 물이 든 화면을 그의 얼굴이라도 되는 양 사뭇 진지하게 쳐다보던 민석이 그랬다.네 마음이지.네 마음 속,머릿속.민석은 그 다음 날 휴대전화 번호를 바꿨다.
*
민석이 없이도 그들의 생활에는 문제가 없었다.민석이 탈퇴를 한 지 5개월도 채 안 돼 그들은 다시 활동을 재개했고.상상했던 것 이상의 상승세를 이어갔다.어쩌면 그 멤버들 한명 한명의 얼굴이 전보다 더 밝아보였다.심술궃은 마음때문에 어거지로 그렇게 보인다고 믿고싶었을 지도 모른다.내가 없는 그들은,너무나도 행복해 보여서.탈퇴를 한 것이 어쩌면 잘 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내가 없는 그들 사이에서,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던 말들을 잔인하게도 잘 말하던 그 사람들 속에서.루한이 환하게 웃고있었다.마치 내가 없어도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그렇게 밝게.
“몸이 안 좋아서 탈퇴를 했다고 들었는데요,요즘은 많이 좋아지셨나요~”
“네,많이 좋아졌어요.”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시나봐요,언제 한 번 시우민씨 전화연결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예 괜찮죠.민석이 형도 좋아할 거에요.”
민석이 TV전원을 껐다.계속해서 앙 다무는 조그만한 입술은 울음을 참기 위한 것 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민석과 연락을 하고 지낸다는 멤버의 그 뻔뻔한 거짓말에.루한이 놀란 얼굴을 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민석의 휴대전화 옛 번호로 발송한 문자는 끊임이 없었을 것이다.바꾸지 말 걸 그랬나….루한을 잊어야 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욕심은 끝이 없었다.나를,나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민석은 그렇게 생각했다.
‘루한이 형이 간절하게 바라던 꿈을 이제서야 이뤘잖아요.형이 포기하지 않는다면,짖밟게 되는거에요.’
‘…’
‘욕심을 버려요,제발.’
그러면서도 웃긴 것은,정작 민석은 루한을 잊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
‘올 해는 크리스마스에 눈이 온다더니,일기예보가 또 잘못됐나 보네.’
올 해 크리스마스엔 눈이 온다고 그랬는데.눈이 오질 않았다.하늘은 진보라색에다 구름이 가득 채워져서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았는데.저녁이 다 될 때 까지도 끝내 눈은 내리지 않았다.눈이 오면 루한이 좋아할 텐데….민석은 여느 날 처럼 카운터에 턱을 괴고 앉아 창 밖을 내다보며 생각했다.루한과 단 둘이 보낸 첫 번째 크리스마스엔 눈이 왔다.세상 가득 눈만 내렸다.추위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민석을 다 알면서도 루한은 밖엘 자꾸 나가자고 보챘다.산을 깎아 내린 공원,나무가 빽빽한 길을 걸었다.얇다란 나뭇잎엔 소복이 눈이 쌓였고 민석의 까만 머리통 위에도 눈송이가 내려앉았다.살을 에는 추위를 오로지 맞잡은 두 손으로만 버텼다.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그 길의 끝에서 민석은 귓전에 울리는 종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찬찬히 그 날의 기억을 되짚던 민석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단순한 충동이었다.둘이 걷던 그 길을 지금,꼭 걸어야만 할 것 같았다.그 길을 걸으면 힘들었던 지난 2년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나는 혼자여도,옆에는 나란히 루한이 걷고 있을 테니.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춥다.그 길의 시작에 선 민석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춥다,추워.제작년 겨울보다 배는 추웠다.혹시 몰라 주머니에 챙겨 온 손난로를 만지작거리며 사람 한 명 없는 그 길을 걷기 시작했다.다섯 걸음 쯤 걸었을 때 민석은 콧잔등에 차가운 것이 닿아오는 느낌을 받았다.올려다 본 하늘에는 놀랍게도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그제서야 민석은 웃었다.좋아하겠네,루한이….턱까지 올라 온 겉옷에 얼굴을 묻은 민석이 모자를 뒤집어 쓰고 계속 그 길을 걸었다.입에선 자꾸만 입김이 뿜어져 나왔고.한 치 앞을 볼 수 없을만치 빽빽히 눈이 내렸다.바닥엔 눈이 쌓이기 시작했고,무심결에 내려다 본 서울시내는 하얗고,반짝거렸다.그 속에서 민석은 혼자였다.지금쯤 루한은 밖을 내다보며 아이처럼 방방 뛰고 있겠지.씁쓸한 웃음을 삼킨 민석이 고개를 들고 걸었다.루한과 민석의 발자취가 남아있는,그 길의 끝으로.몰아치는 눈발 사이로,민석은 계속해서 걸었다.
‘널 보내기 전에 모두 알았더라면,미리 알았더라면…’
우린 지금 혹시,차 한 잔을 같이 했을까.공연히 귓가에는 루한과 즐겨듣던 노래만이 맴돌았다.어쩌면 노래 가사가 지금의 둘 같다고 생각 한 민석이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참아냈다.입술을 앙 다물고 침을 꼴딱 삼켰다.자꾸만 귀에 웅웅 울리는 노랫소리에 민석이 괜히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억지로 눈물을 삼켜내느라 가슴이 미어 질 것 같던 그 찰나,민석의 등 뒤로 바짝 몸이 닿았다.귀를 막고 있던 민석의 손등 위로 따뜻한 손이 덮어졌다.손목엔 그것이 있었다.도망치듯 그 곳을 빠져나올 때에,협탁위에 올려두었던 민석의 팔찌가.심장이 달음박질 쳤다.안도감에 휩싸인 민석은 힘을 잃고 휘청였다.자꾸만 주저 앉으려는 민석을 말 없이 껴안아 준 그는 계속해서 머리통 위에다가 입을 맞췄다.
“울지마.”
루한이었다.민석이 몸을 돌려 루한을 마주보고 껴안았다.네가 없는 동안,너무 무서웠어.난 혼자였어.네가,네가 필요했어.생각보다 아주 많이.전 보다 훨씬 야윈 어깨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루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민석의 들썩이는 등판을 가만히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처음이었다.아이처럼 소리 내어 우는 민석은.울음이 점차 잦아들자 루한이 두 손으로 민석의 볼을 감쌌다.눈물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얼굴은 그마저도 예뻤다.울음의 여운이 가시질 않는지 자꾸만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루한을 올려다 보던 민석이 입술을 열었다.
“…보고,싶었어.”
“보고싶었어.”
“많이….”
“많이.”
루한이 얼굴을 내려 민석의 콧잔등 위에 입을 맞췄다.2년 전 처럼 눈썹을 찡그리는 민석은 여전했다.
“걷자.”
“……추운데?”
“손 잡고….”
끝내 두 손이 맞닿았다.거짓말처럼 온 몸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그래서,민석은 먼저 걸었다.그 길을 끝까지 걸어야만 했다.조금의 빈 틈도 남기지 않고 두 손을 맞붙잡은 둘은 걸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루한은 매 해 크리스마스마다 이 곳을 왔다고 그랬다.일 년만 더 일찍 올 걸….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린 진심에 루한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지금 만났으면 됐지 뭐.정말 그랬다,지금이라도 만났으면 된 거다.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어느덧 끝이 없을 것만 같던 그 길의 끝에 멈춰섰다.탁 트인 야경은 새하얀 풍경이 전부였다.한참 저 아래를 내려다 보던 민석이 몸을 돌려 루한을 쳐다봤다.두 눈이 마주했고,너나 할 것 없이 입술을 맞댔다.분명 맞닿은 입술은 차가웠는데,삽시간에 따뜻해졌다.다물린 입술 새로 밀려들어오는 말캉하고 뜨거운 감촉에 민석이 눈을 질끈 감았다.조심스럽게 민석의 입 안을 옭아매던 루한의 혀가 작고 귀여운 치아를 여러번 훑었다.아랫입술을 입에 물고 잘근잘근 깨물었다.작고 촉촉한 입술 위에 쪽,쪽.두어번 입을 맞춘 루한이 아직까지도 시선을 둘 곳을 못 찾고 이리저리 헤매는 민석의 얼굴을 붙잡아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바래다 줄게.”
다시,시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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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제가 평소에하는 망상을 이리저리 싸그리싹싹 모아서,주말에 시간내서 써 봤어요ㅎㅎ 근데 항상 글로 풀어내면 똥같네여 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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