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 생각 없이 세훈이 가져다준 사과를 와그작, 깨물면서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기에 어념이 없었다.
이 사과가 독사과였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Eclipse
W. 푸우
나는 일개의 우울증 환자밖에 되지 않는다.
뱀파이어들의 소굴에 산다는 것만 빼면. 내가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부모님은 즉시 나를 정신병원에 쳐박아놨다. 나는 정신병원에서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생활을 겪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내 몸은 그게 싫은 것인지, 늘 손목에 상처를 내어 의사선생님들을 당황시키기도 일수였다. 그러던 도중,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여행중 겪은 교통사고 때문에 두분 다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 말은, 내가 더 이상 이 병원에 남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얜 제가 대려가죠."
"…예? 하지만……."
생판 모르는 얼굴이 나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엄청나게 먼 친척 같았다. 나는 그 사람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 사람은 익숙하게 우리 가족과 같이 찍은 사진을 내밀고, 자신이 정신과 의사라는 명함을 내밀었다. 두개의 증거에 이미 판결은 갈렸다. 정신병원은 그 즉시 나를 그 사람에게 맡겼다. 별 감흥도 없었다. 그냥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번데기에서 나온 나비가 자신의 자유를 찾아서 저 멀리 하늘로 날아가는 것 처럼.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물론 그 사람이 나에게 대하는 행동 또한 자연스러웠다. 마치 이런 행동들이 자신의 몸에 배긴 마냥 행동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낯선 사람에게 불편함은 못 느꼈던 것 같다.
"…내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아?"
"숲 속으로 들어가는 것 보니 조금 궁금하네요."
나를 조수석에 태운 남자는 한눈에 봐도 비싸보이는 차를 이끌고 숲 속 깊숙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쿵, 우지끈. 아, 우지끈은 오바인가? 아무튼 요란스러운 소리가 차 안을 울리는 동안 나랑 그 사람은 저 말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았다. 나는 말을 하고 싶지 않을 뿐더러, 피곤함에 일단 잠에 들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위에 말했던 말도 '예의상'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남자도 그것을 눈치챘는지 허영심에 들떠서 이것저것 말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로썬 감사한 일이었다. 듣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를 재밌다며 웃어주는게 병원에서는 얼마나 힘들었던지.
"김종인이야."
"아아…, 변백현이요."
별로 궁금하지 않습니다만. 이라고 말하려는 내 입을 가까스로 제어한 뒤에 알수 없는 탄식을 내뱉었다. 나도 내가 바보스러웠다고 생각했지만 남자는 비웃거나, 무슨 행동을 취하거나. 그런 것 따위는 없었다. 표정도 굳힌채로 그냥 묵묵히 운전대만을 잡고 있었다. 뒤늦게 나도 내 이름을 소개했다. 어차피 알고 있을 테지만, 동방예의지국에서 남이 먼저 이름을 밝혔는데 나도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예의였다. 종인은 어렴풋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티가 났다. 얼굴에서는 그런점을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하는 행동이나 생각. 그리고 말투같은 것을 보면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세상을 본 것만 같았다. 어차피 나는 병원에 갇혀 세상에 한발자국도 딛지 못했지만.
"너가 머물 곳에 들어가면 어색할꺼야."
"……."
"그 안의 사람들은 일반인들과는 다르거든."
처음엔 무슨소리를 하는 건지 몰랐으나, 자동차가 집 앞 마당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예상할 수 있었다. 일단 집이 너무 으리으리하다는게 첫번째 근거였다. 일반인들이라면 절대로 머물 수 없는 곳이었다. 게다가 현대시대에 이런 구식 건물은 또 오랜만이었다. 마치 역사책 안으로 들어와 내가 중세시대의 왕? 귀족? 그 정도 되는 사람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집, 아니 성이었다. 마당도 지지리 넓어서 마당 한바퀴만 돌아도 숨이 찰 것만 같았다. 종인의 내리라는 말에 나는 말없이 내렸다. 종인이 먼저 차를 떠나고, 나는 그에 따라 차에서 벗어났다. 벗어나니 마당의 크기가 실감나는 듯 했다. '마당'이라는 끝없는 장소에 나란 존재의 점이 하나 찍혀있는 기분이었다. 으리으리하게만 보였던 성은 벌써부터 까마득했다. 저길 어떻게 간단말이야? 나는 급 우울해졌다. 아, 차라리 병원이 더 좋았어. 비록 몇몇 환자들의 비명소리가 무서웠긴 했지만.
"멀어보여?"
"꽤 멀어보이네요."
"괜찮아. 저 집에 사는 사람들이 일반인이 아니듯이, 나도 일반인은 아니니까."
종인은 말을 마치자마자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얼떨결에 공주님 안기 자세의 공주님이 되버린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너무 재빠른 행동이라 지금 내가 무슨일을 겪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때 즈음, 엄청난 속력으로 종인은 마당으로 가기 시작했다. 풍압에 의해 두개골이 눌릴 것만 같았다. 어디 그뿐이랴? 내 몸이 종인의 얼굴을 짓누르고는 그대로 종인의 뒤로 넘어가 바닥과 마주하게 될 것도 같았다. 말을 할 수 없는건 당연지사.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내가 떨어지지 않게 종인을 붙잡는 것 뿐이었다. 그 멀게만 느껴지던 거리가 이렇게 짧게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몇 분? 아니, 분 단위도 아니었다. 몇 초? 그 짧은 시간동안….
"내가 말했잖아. 일반인이 아니라고."
종인이 짧게 나에게 꿀밤을 먹이며 내 어깨를 감싸쥐었다. 좀…, 얘들이 사나울거야. 이해해줘. 종인의 말에 사납다면 얼마나 사납겠어, 라고 생각한 나는 문이 열리자마자 그 생각을 싹 접어버리고 말았다. 들짐승들의 소굴 같았다. 비록 형태는 일반인이긴 하지만, 허리를 축 늘어뜨리고 두 팔에 힘을 꽉 주며 나를 세차게 노려보고 있었다. 눈들이 각자 빨강, 노란색이라는 것이 더 호러였지만. 게다가 으르렁 거리기까지! 내 발은 순간접착제를 바른 것 마냥 땅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의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하지만 종인은 그런 나의 노력을 싸그리 무시해버렸다. 아주 손쉽게 내 발을 떼어낸 것이다. 비록 악력 때문이었지만.
종인은 느긋하게 나를 노려보는 무리들을 가로질러 갔다. 나와 종인의 움직임을 좇아 여러쌍의 눈동자들이 따라왔다. 말그대로 예전 어렸을 적에 놀러갔던 놀이동산에 위치해있던 귀신의 집의 뺨을 후려치는 무서움이었다. 옛날엔 그래도 질질 짜기라도 했는데, 이젠 다 컸다며 눈물 한방울도 흘러내리지 않고선 그냥 몸만 부들부들 떨었다. 누군가가 나의 등을 툭, 때리며 왕!! 하고 소리지르면 알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지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밖에서 봤을 때 성 같았던 만큼 또 내부도 웅장했다. 계단들의 향연이었다. 거기서 첫번째 계단에 도달한 발걸음이 저절로 멈췄다. 종인이 나를 멈췄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그들과 등져있던 나를 돌려 그들을 마주보게 했다.
"인사해. 새로운 가족이야, 반갑지?"
미친놈이 틀림 없다.
-
내가 들어온 이곳이 뱀파이어의 소굴이라는 것을 알아채는데는 오래걸리지 않았다. 이 성에 머물던 경수의 실수 덕분이었다. 나는 거의 감금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었다. '나'를 위해 마련한 방이 없다며 미안하던 종인의 말이 절실하게 떠오르는 순간도 있었다. 문은 탄소나노큐브로 이루어진 것인지, 당최 열리지가 않았다. 온몸으로 부딫혀 보고, 여러 도구를 사용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발코니가 있는 베란다가 아니면 나오지도 못했다. 다행히 햇볕하나는 엄청나게 잘들었다. 비타민 D 부족으로 죽을 염려는 사라졌다. 나는 항상 밥을 배급받고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는데, 메뉴가 조금 특이했다.
"아직도 졸려?"
"……."
나는 그 때 기분이 상해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하루에도 미친 굴곡을 보이는 내 기분이니까. 그 날 배급자는 경수였는데, 내가 경수에게서 등을 돌려 누워 있으니 나인지, 또 다른 사람인지 구별하지 못했던 경수는 나를 뱀파이어로 봤던 것 같다. 피가 담긴 그릇을 내 곁에 놔두고서는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가버렸다. 뱀파이어들의 힘이라면 그냥 손 끝으로도 밀 수 있는 문이였다. 나는 경수가 놔둔 메뉴가 뭐인지 한번 뒤척였다.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은 더 대박이었다. 내 뒤척임에 의해 파동이 일어난 피들이 범람한 것이다. 파동에 그릇도 흔들렸고, 액체인 피들은 더욱 흔들렸다. 결국, 피들은 내 침대를 흠뻑 적시고야 말았다.
"…아아!!"
흠뻑 적시자마자 알싸하게 나는 쇠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며 침대에서 다급히 벗어나 발코니로 뛰어갔다. 병원에서 몇번이나 맡았던 냄새지만 알싸하게 퍼지는 피 냄새는 아직도 내가 적응 못하는 것중에 하나였다. 나는 내 허리까지 오는 쇠창살을 잡고 바깥 풍경을 확인하는 순간,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히 내 시야에 들어오던 찬열이, 눈을 깜빡이는 순간 저 멀리에 가있었다. 마당 반대편까지. 한쪽에선 야구를 하고 있었는데, 세훈이 타자같았다. 루한이 공을 던지자마자 세훈이 바로 공을 쳐냈는데, 그 공은 보지도 못했을 뿐더러, 겨우 포착한 공은 이미 저 먼 곳에 있는 숲을 향해 가고있었다. 루한이 크게 외치는 말은 더 가관이었다.
"아웃!"
저정도로 쳤는데 아웃이라니? 순간, 바람이 내 쪽에서 그들이 있는 쪽으로 불기 시작했다. 덤으로 문을 열어놓고 나온 탓에 피의 그 비릿한 냄새도 함께 퍼져나왔다. 개코들이셔, 증말. 내가 피냄새를 어렴풋이 맡을 즈음엔 모두 내 방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나는 곧 안좋은 예감을 느꼈다. 모두 다 하나같이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언가를 심히 갈등하는 듯한. 나는 그 예감을 믿고서는 바로 방으로 달려가 유리창을 닫았다. 어떻하지. 어떻하지. 수많은 물음이 내 머릿속 위에 둥둥 떠올랐다. 이대로 죽게 되면? 무료한 인생을 살다가 죽게되면? 싫어, 싫어, 싫어!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저 유리는 약한 유리였다.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그에 비해 내 등을 단단히 받히고 있는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절대로. 내 힘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유리창 틈 사이로 누군가의 머리카락이 삐죽, 하고 튀어나왔다.
"…아악!!!"
무서웠다. 엄청나게. 그 붉은 눈동자들을 보는 순간, 이대로 기절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아무생각 없이 빔여만 질러댔다. 제발 저 멀리에 있는 김종인이 내 다급한 외침을 듣기 바라면서. 가장 앞에 서있던 사람은 찬열이었다. 항상 싱글벙글 웃던 모습은 없었다. 무표정에 이를 갈며 으르렁 거리는 모습은 상당히 괴기했다. 게다가 저 빨간눈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건지. 찬열이 날 바라보다가 주먹으로 가볍게 유리를 내려쳤다. 유리는 쉽게 산산 조각이 나고, 유리 파편들이 내 몸을 긁어댔다. 따끔 따끔. 너무 이곳저곳이 따가워서 눈물이 핑돌았다.
그르릉.
무서운 신호였다. 내 피가 몽글몽글 피부 위에 솟아오르자, 으르렁거림이 더욱 심해졌다. 순간, 종인이 내게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너의 채취는 여기있는 모든사람들을 미쳐버리게 만들어. 네 피 냄새는 더더욱. 그래, 이 사람들은 내 피에 미쳐있는거다. 그 사람들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이 집 서열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에 군림하고 있는 종인이 필요했다. 본능적으로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이미 문 앞에서 쾅쾅거리고 있던 터라 뒤로 물러설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알싸한 피 냄새가 방 안에 퍼졌다. 찬열이 서서히 다가올 동안, 나는 제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손발을 밀어 뒤로 가려고 하고 있었다.
"…뭐하는거지?"
"……."
"루한, 박찬열 데리고 나가. 모두 다 나가."
"……."
찬열이 내 팔을 거칠게 낚아채려고 할 때, 내가 눈을 질끈 감았을 때. 그 때. 외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위적인 말투, 목소리. 김종인이었다. 순간적으로 풀려오는 힘에 내가 축 늘어졌다. 곧 내 손을 압박해오던 압력이 사라졌고, 그 대신 나를 감싸안는 손길이 나타났다. 눈 앞이 어질어질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곤 고작 가픈숨을 몰아쉬는 것 뿐이었다. 날 토닥이는 손길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런…, 내가 왜? 아, 죽고싶어. 갑자기 우울해졌다.
"미안. 미안, 난 이런일이 있을줄은……."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누구야? 인간 맞아? 사람 맞아?"
눈 뜰 힘도 없다고 생각됬는데, 의외로 입힘은 넘치는지 입이 마구잡이로 움직였다. 나는 깜깜한 벽속에 혼자 갇혀 목소리만을 듣고 있었다.
"내가 말했지? 이곳은 일반인이 사는 곳이 아니라고."
"……."
"직설적으로 말해주지."
"……."
"네가 지금 있는 곳은, 뱀파이어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야."
뱀파이어. 젠장할. 내가 뱀파이어들의 소굴에 있단 말이지. 나는 이를 뿌득 갈며 그대로 정신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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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
안녕하세요! 푸우예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연재하던 'I Love You'를 좀 오래 연재중지할 계획입니다. 솔직히 계획파도 아니라서, 더이상 구상한 스토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끈기도 없어서 더이상 어떻게 끌어나가야 할지 막막하더라구요. 그래도 I Love You는 언젠가 다시 돌아옵니다! 돌아오기 전까지 다 삭제하고, 다시 천천히 써갈 계획이예요. 끈기도 없이 먼저 글을 싸질렀던 점, 죄송합니다ㅠㅠ! |
순살님♥ 오렌지주스님♥ 커피님♥ 그린님♥ 수녀님♥ 찬백햇쇼님♥ 너구리님♥ 나메코님♥ 소똥님♥ 토깽님♥ 됴경자님♥ 진라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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