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여쁜 아기씨입니다.”
막 태어난 아이가 대감의 품에 안겼다. 부부에게 십년만에 찾아온 아이였다. 아이를 가지지 못하고 모든걸 포기 하려 할 때쯤 찾아온 선물이었다.
그러니 아들이던 딸이던 성별은 상관없었다. 무사히 건강히 나와준 것만으로도 대견했고 고마웠다.
이 나라에서 제일 어여쁘고 사랑 받는 아가씨로 키울 것이다.
대감의 다짐이 얼마가지 않았을 때, 아내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주인 아기씨가 한분 더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받는 하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두 번째 아이라니, 쌍둥이었다.
예로부터 나라 안에서 쌍둥이라는 존재는 한 사람의 복을 나눠 갖고 태어난 존재며, 가문에 큰 화를 가져온다 하며 불길한 것으로 여겼다.
이러한 미신 때문에 왕실은 물론, 일반 양반가에서까지 쌍둥이를 키우는 일은 없었다.
제 품에 안은 아이를 버려야한다는 말인가. 대감이 어쩌지 못하는 사이, 아내의 진통은 시작되었다.
*
오랜 진통에도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이대로 가다간 산모도 위험했다. 밖에 있는 주인대감께 알려야 했다.
그 순간 하녀의 손을 차가운 손이 붙잡았다.
“얘, 이 아이를 살려줘.”
“하지만 마님. 애기씨보다 마님께서 더 위험하십니다.”
“내 마지막 부탁이야. 이 아이도 사랑받고 온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네가 지켜다오.”
말을 이어가는 것도 힘겹게 말했다. 안방마님의 갑작스런 부탁에 하녀는 어쩔 줄 몰랐다.
어릴 때 부터 모시던 안방마님이다. 보잘 것 없는 천한 저를 가족처럼 대해주신 분이다. 그런 분의 부탁을 고민하는 제 자신이 한심했다. 하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망설이는 하녀를 보고 마님이 무언가 작게 중얼 거렸다. 말을 하려했지만 힘이 없는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훌쩍이던 하녀가 마음을 굳히고, 마님의 손을 붙잡았다. 알았으니 더 말하지 마셔요. 제가 애기씨를 꼭 지켜드릴게요.
어릴 때부터 모셔왔던 주인은 끝내 숨을 거뒀다. 두 번째 아이의 울음소리가 방안에 울려퍼졌다. 소리를 듣고 밖에 있던 대감이 들어왔다. 대감의 눈앞에는 새로 태어난 아이와 축 늘어진 아내가 있었다. 옆에는 하녀가 서럽게 울고 있었다.
대감은 어린 아기에게 고함을 질렀다. 두 번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모든 책임이 그 아이에게 갔다.
‘결국 지 어미를 죽이고 태어났구나.’ 옛말이 틀린게 없었다.
하녀는 아이를 살려달라는 마님의 마지막 유언을 전할 겨를도 없었다. 대감은 아내의 죽음에 이미 이성을 잃은 듯 했다.
대감이 남자하인에게 아이를 갖다버리라 명령했다.
첫째 아이를 품에 안고, 둘째 아이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대감의 모습이 이질적이었다.
하인들이 아기를 데리고 대문을 나섰다. 하녀가 쫓아왔다.
‘그 아이를 제게 주십시오. 안방마님의 마지막 유언입니다. 제가 잘 보내드리겠습니다.’
하녀는 아이를 품에 앉았다. 집을 나와 정신없이 산길을 걸었다. 그러다 포대기안의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대로 아이와 도망친다면, 대감은 저와 아이를 무사히 보내주실까?
천한 신분으로, 또 여자 혼자서 아이를 홀로 잘 키워낼 수 있을까.
그 때 제 품에서 아이가 꿈틀거렸다. 눈을 뜨지 못한 아이가 제 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다시 마음 고쳐먹었다.
저를 기억해줄 주인도 없는 집에 다시 돌아가기 싫었다. 이젠 나를 기억해주고 내가 기억할 이 아이와 함께 할 것이다.
그날 밤 양반댁 나리 집에 계집 종 하나가 사라졌다. 안방마님이 데리고 온 종이였다.
귀한 재산중 하나인 하녀 한명이 사라졌는데도, 대감은 찾지 않았다.. 하인들에게 더 이상 묻지도 않았고, 사람을 보내 쫓지도 않았다.
평소 따르던 제 주인의 죽음에 따라 간 것이야. 하인들에게는 이리 말했다.
너무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에 하인들은 이를 이상하게 여겼으나, 시간이 지나고 곧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십 칠년이 흘렀다.
궐에 갇힌 달 1장 - 01화
작은 마을에는 삼일에 한번 장이 열린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기생 라희가 모처럼 밖에 나온날이 바로 그 날이었다.
기생집 아이들은 신이 났지만 정작 라희는 재밌지가 않았다. 아무리 예뻐 봤자 제 보석함에서 한번쯤은 본적이 있는 흔한 것들이었다.
흔한 옷, 흔한 장신구, 흔한 분첩. ...흔하지 않은 사내? 좀처럼 집중을 하지 못하던 라희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다.
이 작은 마을에서, 이곳에 사는 사내라면 다 알고 있는 것이 라희인데 못 보던 얼굴의 선비였다.
저 사내는 누구야? 옆에 있던 기생 설화에게 물었다.
설화의 시선도 라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선비로 옮겨갔다. 보자마자 설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머, 이도겸 나으리잖아! 또 다시 볼 줄이야!
멀리서 기생들이 저를 보고 수군거리는 것도 모른채, 도겸은 가판 위에 놓여진 수많은 노리개중 하나에 눈을 떼지 못하였다.
그런 도겸에게 상인이 다가왔다.
“보는 눈이 있으시네. 요것이 요즘 제일 잘나가는 겁니다. 구하기 힘든 조개 껍질로 만든 것이라 값은 좀 나가지만...”
상인이 값을 부르자, 도겸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눈치를 보던 상인이 값을 내려 다시 말하였다. 그런 상인을 보며 도겸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값이 문제가 아닐세. 그 아이가 좋아할지 모르겠네. 어릴 때부터 워낙 얌전히 있지 못하고 방방 뛰놀던 아이라. ”
“하하하. 참으로 드문 성격의 아가씨입니다.”
“내 멋대로 샀다가, 이런 걸 사왔다고 꾸짖지는 않을지 걱정이 드네.”
“허나 나리. 아가씨께서 아무리 보통 성격의 여인이 아니더라도, 사내의 선물을 받고 좋아하지 않을 여인은 없습니다.”
“...그렇겠지?”
상인의 말에 그제서야 안심이 된 듯 도겸은 웃어보였다. 상인은 그 미소를 보고, 저 나리께 선물을 받는 여인은 누군지 몰라도 참 복 받았구나 생각했다. 도겸이 값을 지불하러 소매 속을 뒤지다가 동작을 멈추었다.
선물의 주인과 노리개가 잘 어울릴지 다시 한 번 맞춰 보려했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봐도, 선물의 주인은 없었다. 방금 전까지 건너편 상가에서 있던 아이가 사라졌다.
멀지 않은 주변에서 잠깐만 구경하고 있겠다더니 제멋대로 가버린 것이다. 장날이라 여기저기서 모인 사람들이 많았다. 이 인원 속에서 자칫 길을 잃으면 오늘 하루 종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 혹여나 괴한에게 봉변이라도 당하기라도 한다면.. 상상은 극단적으로 이어져갔다. 도겸이 급하게 노리개를 놓으며 상인에게 말했다.
“잠깐만, 잠깐만 기다리게. 다시 돌아와서 살터이니 이것을 그대로 두게!”
급하게 뛰어가더니 금방 사람들 틈 속에 사라졌다. 상인은 혀를 차며, 노리개를 다시 진열해 놓으려다 망설였다. 보통 손님들이 물건을 사지 않을 때 다시 돌아온다는 말을 하긴 하지만, 저 선비는 빈말로 보이진 않았다.
그러는 사이 상인의 앞에 어여쁜 기생 무리가 다가왔다.
“방금, 저 나리께서 본 물건이 그것인가?”
“예? 네, 맞습니다요.”
“그걸 내가 사겠네.”
“네?”
하나밖에 없는 것이고, 좋아하는 이에게 선물할 것이라고 잠깐만 두라던 선비의 말이 생각났다. 잠시 망설이던 상인은 원래 값보다 두배를 부르는 기생의 말에 결국 팔아버렸다. 마음에 걸렸지만 먹고 살려고 하는 장사인데 별 수 없었다.
“너, 그 나리께 관심 있구나.”
상인에게서 제 값보다 더 비싸게 노리개를 구매한 라희에게 설화가 넌저시 물었다. 라희는 대답 대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웃었다.
노리개를 바라보던 라희가 지나가는 행인들 틈으로 설화를 이끌었다.
나리께서 저쪽 방향으로 가는 것을 봤어. 따라와!
도겸은 얼마가지 않아 찾을 수 있었다. 노리개 선물의 주인이자 본인을 이리 숨 가쁘게 뛰게 만든 방방 뛰어 다니는 저 여인을.
바로 붙잡고 왜 말을 듣지 않고 멋대로 돌아다녔냐고 야단치려 하였다.
그러나 뭐가 그리 재밌는지 헤실헤실 웃고 있는 봉이의 표정을 보자 마음이 바뀌었다.
그래, 오랜만의 외출인데 신이 났겠지.
도겸은 뒤 떨어져서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내 조심하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저리 앞을 보지 않고 뛰어다니다간 넘어질 텐데.
내가 줄때는 단것 싫어한다며 거절하더니, 모르는 이가 엿을 주는데도 잘도 받아 먹는구나.
아니, 떡 빻는 것은 집에서도 봐왔을 텐데 뭐가 그리 신기해서 걸음까지 멈춰 구경하는 것이야.
뒤따라 걷던 도겸은 저도 모르게 봉이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다 큰 줄 알았더니, 아직도 그녀의 세상은 궁금하고 신기한 것들로 가득 차있나 보다.
한편, 뒤에 누가 보고 있는지도 모른채, 봉이 저 가판대 너머에 있는 비녀를 발견했다. 계속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기쁜 마음에 비녀를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고르지 못한 땅의 어느 부분에 걸려 넘어졌다.
무릎이 아려왔다.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의 다리 틈에서, 벗겨진 신발 한짝이 보였다.
일어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짚신을 바라보는데, 누군가 그 한짝을 들어올렸다.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 제 신을 들고 걸어오는 도겸이 보였다.
“뛰어다니지 말라니까, 말 참 안 듣지?”
도겸은 봉이의 앞에 한쪽 발을 굽혀 앉았다. 봉이의 흙 묻은 소매를 털어 주더니 일어설 수 있냐고 물었다.
봉이 괜찮다며 일어섰다. 도겸은 따라 일어서지 않고 주워온 짚신을 신겨주었다.
봉이 주변의 눈치를 보며 당황스러워했으나, 도겸은 머릿속은 주변의 시선보다 다른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노리개를 선물할게 아니라 튼튼한 신을 사줘야 되나?
“언제부터 따라 온 거야?”
“아까 전부터. 내가 보이는 곳에서 구경한다더니, 잊었나 보구나.”
“에이, 보이는 곳에서 구경했으니...이리 저를 도와주러 오신 것 아닙니까.”
가판대 너머의 상인의 시선을 느끼고 봉이 말을 높였다. 그 모습이 또 귀여워 도겸은 봉이 보지 않는 사이 슬쩍 웃었다.
“뭐를 봤길래, 또 앞만 보고 달려 간 것이냐?”
“이것을 보십시오.”
봉이 도겸에게 가판대 위에 올려진 비녀를 하나집어 내밀었다. 도겸은 눈이 동그래졌다.
....사달라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미래에 제 머리에 해달라는 것인가?
도겸이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기 전 봉이 먼저 말했다. 안방마님의 생신 선물말입니다!
그제서야 도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일 후면 마님의 생신이다.
“딱 마님께 어울리는 것입니다.”
마님에게 똑같은 문양의 비녀가 있는지 없는지, 도겸은 알지 못하였다. 도겸이 머뭇거리자, 봉이 말했다.
“제 눈으로 봤을 땐, 진짜 이게 제일 예쁩니다.”
“...그래, 이걸로 하자.”
도겸은 봉이 추천해준 것을 사기로 했다. 하지만 워낙 많은 장신구를 가지고 있는 마님이라, 비슷한 모양의 비녀가 있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 때문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표정 좀 피십시오. 아들의 선물을 받고 좋아하지 않을 어머니는 없습니다.”
걱정 스러운 마음을 달래는 봉이의 말이었다. 그 말에 표정을 풀고 도겸이 웃어보였다.
‘사내의 선물을 받고 좋아하지 않을 여인은 없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봉이의 말에서 노리개 상인의 말이 떠올랐다. 잊고 있었다.
노리개를 선물해주려 했는데. 갑자기 사라진 봉을 찾느라 그새 까먹은 것이다.
*
“이미 사랑에 빠진 사내의 눈이야. 네게 넘어올 것 같진 않은데?”
멀리서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설화가 말했다. 그 말뽄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라희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저 같은 기생들은 사내의 표정만 봐도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멀리 떨어진 짚신을 주워오고, 또 여인이 말할 때 마다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행동하며. 이건 필시 처음 느낀 사랑에 흠뻑 빠진 사내의 모습이었다.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저런 사내는 쉽게 딴 여인에게 마음을 나눠 주지 않는다.
하지만 도겸의 그런 모습은 라희의 가슴을 더 뛰게 만들었다. 그 다정한 눈빛을 본인이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생집에서 홀리지 못한 남자가 없던 라희였다. 저리 순박한 나리께서도, 저가 작정하고 달려들면 그 사랑이 제 쪽으로 올 것 같기도 했다.
“유흥을 즐기지 않아 도심에 나타나기가 드물고, 집까지 깊숙한데 위치해 있으니. 장날에 한번 이도겸 나리를 보는 것도 감지덕지인데, 아무리 너란들 가능하겠느냐?”
“내기 할래? 내가 저 나리를 넘어오게 할 것인지, 아닌지.”
가능성 있는 도박이었다. 왜냐면 상대는...
“높디 높은 양반댁 아드님과 천한 종년과의 사랑. 결말이야 뻔하지. 아마 신분이 낮은쪽이 먼저 떨어져나갈 것 같은데.”
라희가 멀어져가는 도겸과 봉을 보며 미소 지었다.
*
늦가을이었다. 제법 추운 날씨에도 세자는 정자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칼을 가지고 놀던 세자가 오랜만에 붓을 쥐었다. 취미에도 없는 그림을 그리는 것은 정자에 자주 오는 누군가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오늘도 빈궁은 아픈가?”
“네, 세자저하. 심한 고뿔에 걸리시어 하루 종일 밖을 나가지 못하신다 합니다.”
상궁의 말에 세자가 연못 건너를 응시했다. 찢어진 눈매 때문에, 무표정을 지을 때면 어떠한 감정인지 읽어내기가 힘들었다.
아이처럼 순박해 보이기도, 호랑이처럼 매서워 보일 때가 있는 오묘한 눈빛이었다.
성격도 그러했다. 어쩔 때는 천진난만한 아이 같다가도, 어쩔 때는 성난 호랑이 같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었다.
세자의 이름은 순영이었다.
세자의 호위무사 원우가 시선을 내려 그림을 봤다. 지나치게 난잡했다.
무엇을 보고 그린 것인지, 아니 아예 보고 그리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그림은 지금 세자의 기분과 닮아 있었다. 좋지 않아보였다.
삼일째, 세자빈은 세자를 보러 오질 않았다. 세자빈과 함께 있는 것을 싫어하던 세자였지만, 최근 매일 의례적으로 만나는 자리마저 나타나질 않으니, 심기가 불편할 만도 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갑작스럽게 심한 고뿔에 걸려 세자를 만나지도 못할 정도로 위독하다니.”
매일 세자를 만나러 오던 세자빈이었다. 오히려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던 것은 세자쪽이었다.
원우 또한 지금 세자빈의 태도가 이상하다 생각이 들었다.
세자빈은 궐에 들어온 목적이 분명했다. 세자가 아닌, 그가 가진 것을 원했다. 그것 때문에 세자가 무슨 짓을 해도 참아냈다.
어찌 보면 독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어찌 보면 안타깝기도 했다.
세자의 무례함에도 세자빈의 가면은 늘 웃고 있었다. 저리 살면 행복하실까? 궁녀들은 그녀를 보고 동정하기도, 비웃기도 했다.
그런 세자빈을 원우도 좋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녀는 세자뿐만 아니라 제 절친한 친구의 마음까지 이용해 먹은적이 있었다.
때문에 현재 코빼기를 보이지 않는 것은, 관심을 주지 않는 세자에게 간사한 수법으로 밀고 당기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마저 들었다.
딱 한 가지 걸리는게 있다면 사라지기 전 최근 세자빈의 모습이다. 어느 순간부터 세자를 바라보는 세자빈의 눈빛이 묘하게 바뀌어 있었다.
가면을 쓰고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제 감정에 빠져 저도 모르게 지은 표정이었다.
가면 속 표정은 분명 세자에게 설렘을 느끼고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그 눈빛을 보고 한 때, 세자를 대하는 마음이 진심이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또 그 진심어린 눈빛에 세자의 마음도 녹아 내리진 않을까 아주 작은 기대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 봐선 세자의 마음은 녹기커녕, 더 단단히 굳어버렸다.
한참을 그리지 못하던 순영이 소리 나게 붓을 내려놓았다.
“빈궁이 와달라고 그리 청을 하니 별수 있나. 세자인 내가 직접 가야지.”
*
갑작스런 세자의 방문에 세자빈이 지내는 궁은 발칵 뒤집혔다. 내시들과 궁녀들이 앞다투어 순영의 앞을 가로막았다.
세자저하, 체통을 지키시옵소서. 빈궁마마의 처소에 갑작스럽게 이리 방문하는 것은....
하지만 소용없었다. 순영은 뒤따라 오는 상궁들의 말을 무시한채 앞만 보고 걸었다. 뒤 따라오던 원우가 세자를 말리는 내시에게 고개를 내저었다.
말릴 수 없다는 뜻이었다.
앞서 나가는 세자를 보며 내시는 망연자실한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세자빈의 궁 앞까지 도착했다. 대문을 열고 그대로 직진했다. 신발도 벗지 않은채 올라가, 단숨에 침소 문 앞까지 왔다.
한걸음 늦게 뒤 따라 오던 상궁이 달려 나와 순영의 앞을 막았다.
세자는 제 앞의 상궁은 쳐다보지도 않은채 제 앞을 가로막은 문만 노려봤다. 이 문 너머에 빈궁이 있다.
“내가 왔다 전해라.”
“세자 저하, 빈궁마마께서는 지금 심한 고뿔에 걸리어 혹여나 저하께 옮을까 염려되옵니다. 그러니...”
“아니다. 내 직접 걸음까지 하였는데, 내가 말하는게 낫겠구나.”
“저하, 아직 빈궁마마의 몸이 온전치 못하여 그러하오니 부디...”
“듣고 있소, 빈? 세자가 왔소이다.”
들리지 않는 대답에 순영이 문으로 손을 뻗었다. 그것을 제지하려다 상궁이 저도 모르게 순영의 팔을 붙잡았다.
순영의 시선이 붙잡힌 팔로 내려갔다. 죽일듯한 싸늘한 시선에 놀란 상궁이 붙잡은 팔을 때내었다.
“어딜 손 대는 것이냐. 네가 모시는 빈궁도 감히 만지지 못하는 몸이다.”
“저, 저언하. 세저 저하! 죽여 주시옵소서!”
상궁이 순영의 발밑에 엎드리며 사죄하는 순간, 순영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순영의 눈에 들어온건 텅 빈 세자빈의 방이었다.
이불도 가지런히 정돈되어있고, 책상도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세자빈만 없었다.
순영이 천천히 뒤를 돌아 봤다. 빈궁의 처소를 지키던 호위무사 한명이 원우에게 귓속말로 무엇을 전하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상궁은 여전히 납작 엎드린채로 제 죄를 말하고 있었다.
“죽여주십시오! 저하! 빈궁.. 빈궁마마께서..”
“빈궁마마께서 삼일 전부터 보이질 않았다 합니다.”
원우가 방금 들은 것을 그대로 순영에게 말했다. 궐 안에 세자빈이 사라졌는데도, 찾지 않아 삼일이 지나서야 알았다.
애써 덤덤한척, 반응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곧 앞으로 나아가던 순영이 비틀거렸다. 원우가 부축하려 했지만 손을 뿌리쳤다.
모든 것이 제 편이고, 제 것이었던 세자의 궐 안에서
유일한 이방인었던, 그래서 눈에 띄고 더 거슬렸던, 세자의 빈이 사라졌다.
사극물 처음이라 부족한게 많아요ㅠㅠㅠ
연재텀이 길거같아요
사진문제 있으면 말해주세요
암호닉은 안받습니닷
댓달구 포인트받아가세요 ^0^
2월 5일 수정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현재글 [세븐틴/권순영/이석민/김민규] <궐에 갇힌 달> 1장 - 01 10
8년 전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세븐틴/권순영/이석민/김민규] <궐에 갇힌 달> 1장 - 0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2/05/13/5766c74bc5a67ddec25bdbedda89643a.jpg)
![[세븐틴/권순영/이석민/김민규] <궐에 갇힌 달> 1장 - 0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2/05/4/f94ddf3e59d3c831669a7dc5390d5bdc.gif)
![[세븐틴/권순영/이석민/김민규] <궐에 갇힌 달> 1장 - 0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5/13/2/693505ecbee7b0fedd86e00d9b194cc1.gif)
![[세븐틴/권순영/이석민/김민규] <궐에 갇힌 달> 1장 - 0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1/06/1/807f5b5fb1b5e01a6b763245d43386d9.gif)
![[세븐틴/권순영/이석민/김민규] <궐에 갇힌 달> 1장 - 0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2/05/4/7f9b207e421a93a76f654b9dbfe91d85.gif)
![[세븐틴/권순영/이석민/김민규] <궐에 갇힌 달> 1장 - 0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2/05/4/50d62c9d2032be88841c9b9350b2f730.gif)

"엄마가 미안해, 4명 한끼에 90만원은 도저히...” 호텔 뷔페값 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