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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카디] 소나기 | 인스티즈

 

 

 

과외선생 도경수와 고딩 김종인

 

 소나기

 

 

 8월 하늘에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고 생각한다. 죽어버린 선인장이 갑자기 말을 하며 되살아난다거나, 다 써버려서 이제는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볼펜으로 몇 자 더 쓸 수 있는 것처럼 나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내가 한 다섯 살쯤 어려져 있거나 그 애가 성인이 되어 내 눈앞에 나타난다거나 그런 기적들. 아니, 어쩌면 기적은 이미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단지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처음엔 1주일이면 끝날 줄 알았던 감정이 나도 모르게 시간을 먹고 자라 이만큼 커져 있는 걸 보면, 어쩌면 기적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커진 감정이 예고도 없이 내 눈앞에 뚝 떨어진 순간. 나는 그 애의 눈을 보았다. 나의 물음에 눈빛으로 대답해주는 것 같았다. 이미 부정할 만큼 부정하고, 무시해왔던 그 아이의 감정은 나보다 붉어져 있었다. 이제와서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커질 대로 커져 있는 감정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니까. 나는 그 애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종인아. 오늘 하루만, 같이 잘래? 나랑.」

 

 나는 너에게 있어선 계속이고 싶은데. 어쩔 수 없었다. 방법이 한 가지 뿐이었다. 더이상 어긋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기적은 이름값을 하는 놈이다. 기적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제로에 가까운 가능성, 그 안에 우리는 존재한다.

 

 「…그런 거 싫은데, 난.」

 

 그 애와 눈을 맞췄다. 눈보다는 입을 맞추고 싶었다. 저 얼굴에 안겨 사랑을 갈구하고 싶었다. 녀석이 반말을 할 때마다 지독하게도 실감 나는 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녀석이 나를 더이상 과외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도, 그리고 더이상 형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도 싫지 않았다. 그래서 더 슬프다. 네 사랑이 나를 비 맞게 한다.

 

 

 그 애는 항상 읽을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기분이 어떤지‥ 그 애가 입은 옷이 너무 두꺼워서 속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어쩌면, 난 그 애 보다 두 겹쯤 더 마음을 숨겼으니 더 답답한 건 종인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겹쯤이라는 것도 내 기준에서이니까… 종인이는 얼마나 답답할까. 모든 건 그 애가 먼저였다. 어색해하는 나에게 말을 먼저 걸어주고, 손을 먼저 내밀어 주고, 먼저 제 감정의 크기를 보여줬었다. 언제까지고 그 수많은 감정들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 딱 한 번, 대답해 준 적이 있었다. 종인이는 그 날 이후로 더 따뜻해졌다. 이제는 김종인이 반말을 해도 화가 나기보다는 설레는 쪽이다. 나도 그 애의 마음에 들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정말 많은 노력을 했던 것도 같다. 근데, 종인아. 우린 아무것도 아닌 거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거지?

 

 「과외 그만둔다고 해.」

 「…….」

 「내일 봐. 집 앞으로 갈게.」

 「하루만 자자, 나랑…」

 

 책을 덮고 책상을 정리하던 종인의 손길이 경수의 말에 멈칫한다. 가만히 경수를 바라보던 종인이 경수를 일으켜 문밖으로 떠밀었다. 잠시 당황한 경수가 정신을 차리고 노크를 했다. 똑똑. 대답이 없다. 가만히 서서 종인의 방문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문이 커 보였다. 종인아. 하고 불렀지만, 또 대답이 없다. 경수가 머뭇거리며 손을 들었다. 또 노크 하려는 찰나, 문이 열리더니 종인이 나온다. 굳게 닫힌 입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화난 얼굴이었다. 종인이 경수의 가방을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그런 식으로 나 떼내려고 하지 마.」

 「…….」

 「상처받아.」

 

 그 말을 끝으로 종인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경수는 한동안 가만히 서 있다가, 가방을 고쳐 매고서 걸음을 옮겼다. 경수가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고요한 집안에 쿵, 쿵 하고 소음이 인다. 경수가 계단에 들어서려고 할 때, 갑자기 종인의 방문이 열렸다. 종인이 상체만 밖으로 내놓고 경수에게 말했다

 

 「비와. 조심히 가.」

 「…미안해. 그런 거 생각 못 했어.」

 「우산 없으면 현관에 있는 검은색 우산 가져가 써. 내일 봐.」

 「내일 올게.」

 「오지 마. 내가 갈 거니까.」

 

 

 경수는 현관 신발장 옆에 기대어 있는 우산을 가만히 서서 바라보았다. 현관문을 열어 보니, 정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소나기였다. 경수는 가방에서 포스트잇을 꺼내 무언갈 쓰고는 우산 손잡이에 붙였다. 경수는 입고 있는 후드티에 달린 모자를 썼다. 경수가 종인의 집을 나설 때 경수의 손은 빈손이었다. 최대한 소리 나지 않게 문을 닫았다. 대리석으로 되어있는 계단에 물이 한가득 고여있었다. 작은 물웅덩이에 빗방울이 자꾸자꾸 떨어져 경수의 얼굴이 흩어졌다. 경수는 가만히 서서 손바닥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소나기를 보면서 생각했다.

 

 

 네 사랑이 나를 비 맞게 한다. 종인아, 넌 소나기야. 맞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맞지 않으면 약속시간에 늦을 수밖에 없는 소나기. 그리고 나는 소나기를 맞는다. 나는 옷이 다 젖고 나서야 생각하겠지. '괜히 맞았네.' 하며 후회할 것이다. 하지만 비를 맞지 않는다고 해도 후회의 무게는 같을 것이다. 나는 소나기를 피할 수 없다. 종인아, 너는 왜 하필 나에게 소나기일까. 네가 스물이 되는 날에 네 옆에 있을 사람이 미치도록 부럽다. 스물의 김종인은 특별할 테니까, 빛날 테니까. 자꾸 비가 내리면 안 되는데, 마음속엔 여전히 많은 비가 내린다.

 

 

 

 적어도 나는 도경수와 연애할 수 없고 같이 살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이유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도경수가 과외라는 명목으로 우리 집을 들락날락 거리는 걸 보면 말 다 한 거다. 그런데 난 그런 게 전혀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둘을 묶어 두는 장애요인은 무엇일까? 그 첫 번째 이유는 도경수와 나는 동성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도경수는 나를 밀어내기 바쁘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도경수가 내 방문을 여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까지 즐거웠지만, 이제는 아니다. 기다리는 게 지겹다. 지친다고 하는 게 맞는 걸까. 이젠 도경수가 나를 위해 준비했다는 요점정리 노트도 달갑지 않다. 설명해주겠다며 가까이 오라고 내 팔뚝을 잡으며 나를 제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도, 설레지 않는다. 명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유리잔에 금이 가면 식물을 기르시지만, 접시에 이가 나가면 그걸 화분 받침으로 쓰시지만, 난 그런 거 하기 싫다.

 

 도경수가 집으로 돌아가고 내 머릿속엔 두 시간 동안 폭우가 쏟아진다. 과외하는 내내 한결같던 사람이 어떻게 한순간에 하루아침에 나랑 같이 자자, 라는 소리를 할 수 있을까? 도경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 나만의 오해였다. 나는 도경수를 세상에서 가장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무뎌질 줄 알았다. 자꾸 나를 밀어내는 도경수도, 거기에 상처받는 내 감정도 무뎌질 줄 알았는데 무뎌지긴커녕 점점 더 선명해져 갔다. 그래도, 이건 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도경수의 말이 공중 분해되어 눈앞으로 떨어진다. 얼굴은 안 그렇게 생긴 사람이 말은 어떻게 그리 못돼게 하는지. 마치 문장의 무게를 달아서 재어보곤 가장 무거운 문장을 내게 던져 준 것만 같다. 왜 우린 이렇게 힘이 들까? 남들은 그렇지도 않던데 우리가 하는 사랑은 뭐 이렇게 힘이 들까? 이런 생각을 하는데 문득 든 생각은 얼른 나이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우리에겐 시간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었다.

 

 과외를 그만하라고 말했다. 왠지 도경수가 과외를 그만두면 우리 사이의 거리가 조금 더 좁혀질 것 같았다. 과외선생님과 제자가 아닌 과외선생님이 '였던' 형과 동생 정도면 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도경수는 분명히 내일도 나의 방문을 열고 들어 올 것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 일 층으로 내려갔다. 차라리 내일 말고 지금 당장 찾아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현관문 앞에 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도경수가 작년 내 생일날 줬던 신발 한 켤레였다. 도경수는 자신의 것과 똑같은 캔버스 화를 나에게 선물해줬었다. 가만히 서서 그 선물을 내려다보았다. 거의 새것이었다. 단 한 번 신어보았다. 도경수가 아파서 과외를 못 왔던 날, 딱 한 번 신었다. 나는 두 번째로 그 신발을 신어 보았다. 신자마자 든 생각은, 아껴 신지 말걸, 이었다. 신발 선물의 뜻이 생각이 났다.

 

 「잠시 나갔다 올게요. 늦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신발장 옆에 놓아두었던 검은색 우산이 보였다. 재빨리 현관문을 열어 밖을 보았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도경수는 이 비를 맞고 갔다. 화가 났다. 좁은 현관에 덩그러니 혼자 버려진 기분이다. 손잡이에 떨어질 듯 간신히 붙어 있는 포스트잇이 보였다.

 

 『우산은 쓰고 간 걸로 칠게. 고마워. 내일 또 올게. 상처 줘서 미안해.』

 

 도경수는 또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여전히, 변함없이. 그것은 아마 짐작할 수 없는 순간에 찾아온 감정 때문이 아닐까.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밀어낼 이유가 없다. 특별한 시간을, 특별한 감정을 만들고 결국은 자신을 강하게 만들고야 마는 게 이렇게 불쑥 만나게 되는 감정.

 

 나는 또 병신처럼 도경수가 밀어내는 대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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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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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 진짜ㅠㅠㅠㅠㅠㅠ이런 아련물 사랑하죠 제가 또ㅠㅠㅠㅠㅠ사랑합니다ㅠㅠ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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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와....진짜분위기도 대박이도 문체도 대박이에여....경수야종인이마음좀받아주지...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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