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I S S ME
K I L L ME
written SOW.
01. 나는 괴물과 산다.
음,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나는 단독주택인 우리집 앞에 서 있는 어떤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걸 그냥 지나쳤어야 했다.
지나친 친절을 베푸는게 아니었다. 눈물까지 매달고 있는 남자의 얼굴 앞에 손을 휘휘 젓곤 괜찮으세요? 라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이렇게 말했다.
"돈, 많아?"
무턱대고 내게 우리집 재정상태를 묻는 바람에 많이도 당황했던 것 같다. 돈이야 차고 넘쳤다. 부모님이 내게 물려주신 재산이 얼만데.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는 듯 해서 고개를 끄덕이려다가도 그의 눈을 보곤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돈이 많다고 말하면, 분명 내 돈을 뺏어갈 거야!
참 어리석은 짓이었다. 나는 이미 그의 눈을 마주한 순간부터 내 돈이 내 돈이 아니었다는 것을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많으면, 나랑 살래?"
돈 없으면 사람 취급도 안해주는 사람인가. 돈 없으면 나랑이 아니라 너랑 사니? 라고 묻고 싶은걸 꾹 참았다. 아니 애초에 내가 왜 저 남자랑
살아야하는지도 의문이었다. 진짜 어이없네. 화가 난 척 머리를 쓸어넘기며 그를 노려보았다. 저기요, 그 쪽이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전 돈도 없고요. 그 쪽이랑 같이 살 생각도 없어요.
꽤나 똑부러지게 말한 것 같아 홀로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가 내가 들어가려던 벽에 손을 대었다. 말이 댄거지 거의 벽이 부서지는 수준이었다.
이걸 일본에선, 카베동이라고 한다면서요?
"질문을 바꿔야겠네. 돈 많아 보이는 아가씨, 나랑 같이 좀 살아야겠어요. 내가 지금 재정상태가 영 꽝이라."
그래, 나는 이렇게 괴물과 살게 되었다.
02. 왜 괴물이냐고?
내가 그를 괴물이라고 칭하는 것엔 타당한 이유가 있다. 첫째, 너무 사기적으로 모든 걸 잘한다. 저 머리로 카지노에 갔으면 아마 카지노가 무너졌을 것 같다.
외삼촌이 가끔 집에 놀러오시는데 매번 포커에서 져선 지민의 주머니만 두둑히 채워주고 간다. 둘째, 나이가 ‥ 339살이란다. 처음에는 물론 구라치지 말라며
웃어넘겼지만, 그의 표정은 지나치게 진지했다. 사실 나는 그날, 그를 정신병원에 데려갔었다. 병원 문턱에서 뒷통수를 맞곤 정신을 잃어서 업혀오긴 했지만.
셋째. 이게 가장 결정적이다. 뭐냐면!
"이거 되게 좋네. 햇빛 가리기도 좋고."
그는 뱀파이어다. 내 피 빼고 다 먹는.
03. 스무살과 삼백하고도 삼십하고도 구살인 뱀파이어.
나는 올해 갓 성인이 된 여성이며,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 이걸 早失父母 조실부모라고 한다던데, 이젠 부모님 얼굴도
가물가물해서 딱히 슬프진 않았다. 가끔 그립기야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지 어쩌겠어라고 말하던 엄마를 생각하면
지금처럼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근데, 아주 편안히 무덤에서 잠들어 있는 부모님을 강제 소환할 법한 소식이 들려온다.
내가, 300살도 더 된 사람 ‥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 비스무리한 것과 혼인을 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다.
원래 드라마라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절대 안돼! 라고 외쳐야할 장면이지만 안타깝게도 모두 눈에 흙이 한 번씩은
들어가봤을테니 그 외침은 무효가 될 것이다.
"아니, 그러니까! 실수였다니까!"
"아! 아저씨는 실수였겠지만 난 처음이란 말이에요! 나 처음은 남편이랑 하려고 했다고요!"
내 순결을 그에게 빼앗겨버렸다. X발. 그 놈의 술이 웬수였다. 아무리 만취상태가 되어도 큰 실수는 안했던 나인데.
귀소본능이 이렇게 그지같은 상황을 초래할 줄이야. 큰 실수도 아니고 아주 대형사고 쳤다.
"너도 사과 먹을래?"
"치워요."
"너도 어제 좋아하면 좋아했지 절대 싫어하진 않았 ‥ 아! 아파!"
저기요 편집장님, 어제 일 편집 되나요? 아, 안된다고요? 하, 그냥 다 나가주세요.
04. 그렇게 시작된 결혼을 전제(?)로 한 괴물과 나의 연애.
"야, 삐졌냐?"
"뭐가요. 아, 그 쪽이 어제 밤늦게까지 다른 뱀파이어분들이랑 술마시고 다른 여자분들이랑 논거요?
그거야 제가 터치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죠. 제가 그 쪽하고 뭐 사,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바보 같이 말은 왜 더듬었는지 모르겠다. 속으로 욕만 연발하고 있었는데, 괴물이, 그러니까 박지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 사귈까?"
"진심도 아니면서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말아요."
"진심인데, 너 내 취향이야."
"돈 많은 여자요?"
"그게 30%정도 차지하긴 하지만, 일단 그렇다고 치자."
"하? 그럼 나머지 70%는 뭔데요!"
"(사실 말할게 없음)"
"꺼져요."
"그래도 우리 사귀는거다? 뭐 어차피 넌 나한테 시집와야하는데 일단 천천히 시작하자. 결혼을 전제로한 연애, 어때?"
그의 말에 발악하며 아 알겠다고요! 를 연발하자, 역시 뱀파이어라 그런가. 모든게 어째 행동으로 이어졌다.
내 양 볼을 잡곤 이마에 입을 맞추는 그에 몸을 움츠렸지만, 곧 그가 하는 말에 긴장을 풀어버리고 말았다.
"오구 예뻐. 시집도 그렇게만 와?"
06. 괴물에게 물었다.
Q. 여주양이 지민군에게 괴물이라고 부르는 건 알고 있습니까?
A. 아, 짐승이라고는 자주 부르던데. 그건 미처 몰랐네요.
Q. 여주양에게 자꾸 시집오라고 하는 이유는?
A. 아, 솔직히 말해도 됩니까? 원래 뱀파이어는 결혼한 사람의 피를 마셔야 더 정기가 잘 차거든요.
김여주 피는 원래도 달다 못해 쓴데, 결혼하면 얼마나 더 달아질까 궁금해서.
Q. 여주양에게 별 감정이 없어보이시는데요.
A. 아, 안타깝네요. 제 진심이 전해지지 않았나봅니다. 뱀파이어에게 정혼자란 평생의 한 번 뿐인 반려라고들 하죠.
제가 가벼운 마음으로 여주한테 시집오라고 했겠습니까? 그래도 평생에 한 번뿐인데.
Q. 네, 이런 말은 좀 저한테 직접 해줘요.
A. 이런거 하면 재밌어? (웃음)
07. Kiss me or Kill me.
너야말로 남자들 사이에 있으니까 좋았냐? 짜증 섞인 그의 물음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가 아무리 짜증이 났던, 나는 지금 기분이 좋았다.
그의 등은 따뜻했고, 그의 목소리는 나른했으며, 머리는 취기 덕에 잠이 솔솔 쏟아졌다. 나를 지탱하고 있는 단단한 팔을 어루만지자
화들짝 놀라며 나를 땅으로 내린 그가 뭐하는 거냐며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왜 소리를 질러요! 시끄러워. 골 울려."
"너, 너! 막 다른 사람도 이렇게 막 만져?"
"왜요! 그러면 안돼요?"
"안돼! 되겠냐 너 같으면?"
"다시 업어줘요. 빨리. 나 다리에 힘 없어."
말 장난하기도 지쳐서 팔을 뻗으며 빨리 업어달라고 조금 찡찡거리긴 했다. 근데 뭐, 남자친구 이럴 때 써먹어야지.
게다가 흡혈귀라 밤에는 짱짱 쎄진단말이다. 아, 물론 이상한 쪽으로는 아니, 아닐, 걸?
"맨 입으로?"
"하, 뭐요. 아저씨 내 애인 아닌가봐요? 내 애인은 어디있지? 애인님! 저 좀 업어주세요!"
"니 애인은 여기 있고. 나 맨 입으로 너 업어줘?"
"당연하죠."
"그게 당연한 이유가 뭐야."
"그거야, 당연히 아저씨가 내 애인이니까."
"그러니까, 애인끼리 하는 당연한 짓 좀 하자니까?"
"아, 그게 뭔데요!"
"여기, 뽀뽀."
아, 나 방금 표정관리 되게 못했던거 같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달팽이 보는 표정했던 거 같아. 아, 그게 무슨 표정이냐고?
음, 상상해보세요. 당신의 친오빠나 친언니가 다급하게 불러서 갔는데 알고보니 그 용건이 불 꺼달라는 거였을 때의 당신의 표정.
그게 바로 제 표정입니다.
"야, 그래서. 안해준다고?"
"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자 어디서 배워왔는지 '헐' 이라며 나를 어이없게 쳐다보던 그가 내가 훌쩍 다가왔다.
왜, 왜 이래요!
"니가 안하면, 내가 하고."
아, 누가 319살 연상아니랄까봐. 키스는 진짜 오질라게 잘한다. 도망가려는 나를 가둬놓곤 키스를 무작정 퍼붓는 그에 숨이 턱턱 막혔다.
뭐 키스를 많이 해봤어야 나도 맞장구를 쳐주지. 처음인 티는 다 나도록 입을 가만히 다물고 있자 아랫입술을 아프지 않게 깨문 그가
잠깐의 빈틈을 혀로 가르며 빈공간을 메웠다. 순식간에 침범당한 나의 영역(?)은 모두 적색경보를 울리고 있었다.
침입자 발생! 침입자 발생!
하지만 나는 그 경보를 가볍게 꺼버렸다. 얘들아, 그 침입자 니네 주인 애인이니까 걱정말고 가만히 있어.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심장아. 뭐 첫키스인거 심장소리로 다 광고하게 생겼다 얘.
"저번에도 느꼈는데, 너 처음이지. 연애하는거."
"네? 하! 제가 이 근방에서 얼마나 유명했는데요! 나 보러 오겠다고 남고애들이 막!"
"뭐."
"아무것도 아닙니다."
왜 나는 그와 처음부터 끝까지 달달하지가 않은 걸까. 타액이 묻은 그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대충 닦아준 뒤 그의 등에 매달렸다.
자, 애인님. 할거 다 하고 그냥 튀실 생각은 아니겠죠? 빨리 집에 갑시다.
그럼 집가서 이어서 하는거야?
지랄하지마시구요.
完.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되었냐고?
자,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겠다. 그들은 조촐한 결혼식을 올린 후 각각 26세, 345세의 나이에 신혼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지금 괴물군은 방금 씻고 나온 자신의 아내를 보며 감탄을 하는 중이다.
순수해 보이는 얼굴 뒤로 보이는 그의 ‥ 하, 여기까지 하겠다. 어쨌든 그에게 넘어가도 한참 넘어간 여주는
일단은 그가 하라는대로 씻고 나오긴 했으나. ‥지금은 낮이었다. 화창해도 너무 화창한 산토리니의 낮 말이다.
날씨가 더워 이 시간 때 즈음이면 장사를 접고 낮잠을 자러간다는 그 시간 말이다.
"저기요, 아저씨."
"319살 연상한테 아저씨는 좀 너무하지 않나? 오빠라고 해."
"오빠가 더 너무한데요."
"그럼 자기라고 하던가."
"싫은데요."
"‥."
"아니, 아저씨. 지금 낮이거든요?"
"?뭐가. 왜, 뭐 문제 있어?"
"네. 아저씨한테 문제가 있는거 같아요."
뭐, 그녀가 아무리 뭐라고 한들 말을 들을 괴물군이 아니긴 하다. 사실 그녀는 결혼하기 전부터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 같기도 ‥.
연상의 남편을 얻어버린 그녀를 응원한다! 행쇼세 ㄱ 아니! 행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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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배틀연애를 쓰고자 했으나. 망글이 되었으니. 퍽 난감하군.
네, 제 말투에서 느끼실 수 있듯이 지민이의 초기 캐릭터는 도깨비였습니다. 근데 제가 감히 무슨 역량으로 도깨비님을!
그래서 떠올린 것이 제가 예전에 올렸던 키스미킬미! 뱀파이어 물이었죠. 지금은 삭제되서 보실 수 없지만 나중에 기차로 한 번 오겠습니당
언제가 될진 몰라여. 일단 만들긴 했음 ㅇㅇ.
일단 쓰면서 굉장히 재미있었어여 아 이런 지민이 같은 캐릭터 누가 100만개 복사해서 우리집에 뒀으면 좋겠다.
전 능글거리고 솔직한 남자가 좋아ㅏ여 아 너무 즐겁게 썼다 오랜만에! 독자님들도 그냥 가볍게 읽어주세염 이건 제 사심 100%가 들어간 글이라서
공감 못하실 수도 있음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