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written SOW.
‥비록 타락은 했지만 위엄 있는 그의 얼굴에는 왕자다운 지혜가 빛난다.
현인처럼 그는 서 있다.
강대한 왕국들의 무게를 짊어질 만한 아틀라스의 어깨를 펴고서
밤처럼 침묵이 깔린 가운데 그의 모습은 군중의 시선과 주의를 끌었다.
-밀턴의 <<실낙원>> 中
43. 파티에 가고 싶은 아이.
파티요? 여주의 들뜬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정국이 지민의 대답을 가로챘다. 파티래, 파티! 야, 가자. 정국의 말에 하늘이 무너질 듯이 한숨을 내쉰
지민이 너희는 그 파티 가면 큰일난다고 얘기해주고 싶었으나 이미 예전에 했던 성경과의 거래로 그 일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쉽게 말해 입을 봉해 놓은 것. 지민은 안된다고 고개를 젓고라도 싶었으나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옛날에 성경에게 지은 빚이 이렇게 작용할 줄이야. 이 사실을 만약 태형이 알게 된다면 필시 자신은 죽을지도 몰랐다. 정말로.
지민이 가늘게 웃으며 여주에게 눈빛으로 호소했다. 제발 안 간다고해줘. 제발!
"갈래요! 태형도 나 가는 거 알아요?"
"‥아니, 몰라."
"어, 그럼 태형한테 말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김태형 몰래 하는 파티라 안된다네. 너랑 정국이만 오래."
지민이 여주와 정국에게 큰 상자를 던져주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바닥에 떨어진 상자 안에는 옷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구두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드레스임을 눈치챈 여주가 냉큼 상자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여주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정국도 그녀의 뒤를 따라 상자를 들고 제 방으로 들어가자
지민은 제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리고 그제야 입이 자유롭게 움직였다. 아, 씨발 진짜.
여주를 위험하게 만드는 일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제 가문 전체가 걸려있었고, 무엇보다 제 목숨도 걸려있었다. 지민의 은밀한 취미 생활을 캐낸
성경이 그것을 담보로 계약을 맺은 것이다. 말이 계약이지 거의 협박이었다. 지민은 어느 새 다 갈아입고 나온 여주와 정국을 보며 박수를 쳤다.
너무 잘했다. 그대로 가도 충분하겠네 아주.
"야, 정국아 어때. 예뻐?"
"? 양심이 없냐."
티격태격 싸우는 여주와 정국을 바라보던 지민은 제가 넣은 수면제를 먹고 잠든 태형을 흘끗 훔쳐보았다. 보아하니 거의 5시간은 꼬박 주무실 듯 했다.
그 사이에 데려갔다가 데려오면 끝이겠지 뭐. 어차피 자신과 성경이 맺은 계약은 파티장에 데려다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 가서 여주를 빼와도
계약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민은 속전속결로 일을 끝내고 오기로 했다.
"빨리 가자. 시간 없어."
"근데요 지민. 태형은 진-짜 안가요?"
"갈 시간 없대."
"지금 저렇게 자는데?"
"자야 한다 잖아. 빨리 갔다가 오자. 아, 너네 파티간 거 쟤한텐 비밀이다?"
지민의 사뭇 진지한 얼굴에 고개를 끄덕인 정국과 여주가 바라보고 씨익 웃었다. 흐, 재밌겠다!
* * *
"아, 왜 갑자기 피곤하지."
파티장에 도착하자마자 지민은 어떤 여자에게 끌려갔고, 어느 웨이터가 주는 샴페인을 받아 마신 정국이 난간에 기대어 홀로 피로함을 푸는 중이었다.
여주는 이미 제 자랑스런 흑발을 휘날리며 다른 고위층 악마들에게 둘러 싸인지 오래였고, 둘러 싸여있는 여주 주변에 그윽하게 앉아 그들을 바라보는
낯선 얼굴도 있었다.
아, 어디서 본거 같은데.
"‥."
정국은 결국 기억을 떠올리지 못한 채로 옆 의자에 누워 쓰러졌다. 아, 몰라 몰라. 갈 때 되면 지민이나 김여주가 와서 깨워주겠지.
44. 死의 경계
윤기는 제 어머니 손을 붙잡고 인간계로 가는 길에 어떤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의 이름은 ‥ 모른다. 다만 보자마자 자신과 닮은 외모에 눈만 찌푸렸을 뿐.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나 죽어."
뜬금없이 와선 제 어머니에게 자신의 죽음을 말하는 남자에 윤기는 눈만 끔뻑이며 제 어머니와 남자를 번갈아보았다. 보면 볼수록 기분 나쁘게 닮은 그의
얼굴에 눈까지 감으며 시야를 차단했을까, 갑자기 제 턱에 손을 대며 눈을 마주하는 남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익숙한 분위기와 말투에 윤기는
그의 눈을 피하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오랜만이네, 아들. 아빠 안 보고 싶었 나봐?"
"‥,"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터라 윤기는 그냥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런 윤기의 어깨를 감싼 윤기의 어머니는 여기 온 용건이나 말하라며
남자를 다그쳤다. 남자는 자신이 하고 있던 목걸이를 풀어 윤기의 손에 쥐어주곤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입에 넣었다. 사탕을 먹느라 어눌해진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거였다.
"그러니까, 그 쪽 말은 내가 그 쪽 대신 가문의 후계자가 되어라. 뭐 이런 거죠?"
"응. 악마가 되는 거야. 원래 반류는 성인에 다다르면 마력이 짙어져서 원한다면 선택할 수 있거든. 케이스가 드물어서 그렇지."
"아빠라면서 존나 젊네요."
"아, 악마는 不死불사야. 넌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불사라면서 왜 뒤져요."
윤기의 말에 해맑게 웃은 그가 입을 움직였다. 악마는 말이야 ‥ 심장이 없으면 죽어. 난 그 심장을 도둑 맞았어. 어떤 좆같은 새끼한테 말이야.
그러니까 아들- 아들이 내 복수 좀 해줄래?
윤기가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윤기의 어머니가 윤기의 행동을 저지했다. 윤기야, 너 잘 생각해. 불사가 무조건 좋은 것 만은 아니야.
그리고 악마가 되면 7대 죄악을 저질러야 해. 넌 인간이었던 기억을 가지고 살아 갈 텐데, 아무렇지도 않게 죄를 저지를 수 있어? 잘 생각해봐.
"이건 뭐, 천사랑 악마 사이에 낀 인간 같네. 엄마, 나 진짜 괜찮아요. 아저씨, 나 악마 되면 원하는 거 가질 수 있어요?"
"원하는 거?"
"네."
"네가 그 새끼 심장만 부숴 준다 면야, 세계도 안겨줄게."
"그렇게 까진 필요 없고, 딱 하나면 돼요."
윤기의 서늘해진 눈빛에 어머니는 입을 가렸다. 역시, 이미 ‥.
"김여주. 걔 하나면 다른 건 필요없어요."
45. 신분 상승
지민과 정국이 제 시야에서 사라지자 여주는 활발히 사교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말이 사교활동이지 다른 악마들에게 둘러싸여 요즘 마계는 어떤지,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내용이 거의 주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들보다 더 자주 언급되는 것은 바로 태형의 이름이었다. 마왕을 죽인 것이 단순히
자신이 마왕의 자리에 앉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점과 마왕 자리에는 정작 아무 관심이 없다는 것. 그것들이 모두 모여 태형은 거의 마계의 대표적인
로맨티스트가 되어있었다.
"여주양은 좋겠어요. 태형님이 그렇게 아껴주시니."
"아이, 뭘요!"
여주는 손사래를 치긴 했으나 기분이 좋은게 사실이었다. 태형이 자신을 아껴준다는 것을 남의 입을 통해 듣는다는 게 이리도 황홀할 줄이야.
여주는 환히 웃으며 이제는 빠져야 할 때임을 감지했다. 태형의 얘기가 중심이 되는 장소에는 가고 싶지가 않았다. 남의 입에서 태형의 얘기가 나오는 건
조금 기분이 나쁘달까. 여주는 제 모순을 스스로 느끼며 뒷걸음질 쳤다. 어차피 지민도 빨리 집에 가자고 했겠다, 이 틈을 타 빨리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고개를 휙 돌리며 자연스럽게 샴페인류의 음료수를 집어든 여주가 마시지 않은 채 파티장을 빠져나왔다. 분명 정국은 어딘가 에서 뻗어 자고 있을 것이 뻔한데
이거라도 먹이며 정신이라도 차리게 할 생각이었다. 아, 전정국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지민도 안 보이고.
"어디가?"
여주가 제 뒤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숨을 헉 삼켰다. 분명 제가 아는 목소리일 텐데도, 뒤를 돌아보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눈을 마주한다면 더더욱.
아직, 파티 안 끝났는데. 언제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 건지 제 귓가에 대고 말하는 윤기에 여주는 잔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인간과 마계인의 사이인 잡종 특유의
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짙은 악마와도 같은 향에 질식할 것 같았다. 분명, 자신이 아는 윤기는 까칠하지만 순수하며 지금 이 곳이 아닌 인간계에서
멀쩡히 살아가고 있어야 할 터. 왜 마계 중에서도 이 장소에 와 있는지 이유를 가늠조차 할 수 없음에 여주는 속에 담겨있던 숨을 내뱉었다, 스위치가 하나 꺼진 것
같은 무기력함이 발 끝부터 차올랐다. 계속 이렇게 윤기의 향을 맡고 있는다면 그 무기력함이 자신을 잠식할 것 같아 여주는 윤기와의 거리를 넓히곤 눈을 마주하지
않은 채 윤기를 향해 말했다. 윤기가 맞는지는 얼굴을 아직 확인하지 않아 확신할 순 없었지만.
"집에 가려고요."
"뭐야, 왜 예전처럼 안 대해줘?"
"네?"
"내가 아는 김여주는, 나한테 존댓말도 안 썼고."
"저기."
"그딴 '저기'라는 말도 안 썼어. 나를 '윤기'라고 불렀지."
"너, 윤기 맞아?"
"잡종 민윤기를 칭하는 거라면 안타깝지만 틀렸네."
분명히 제 입으로 '잡종'이라고 말했다. 여주는 고개를 번쩍 들어 윤기와 눈을 마주했다. 자신이 아는 윤기와 얼굴은 같았다. 그리고 자신과 공유하는 기억도 같았다.
그런데 대체 왜, 나는 ‥ 저게 윤기가 아닌 것 같지? 그리고 방금 잡종 민윤기가 아니라고 했는데. 그럼 뭐란 말인가. 그리고 아무리 악마와 천사가 섞인 존재라 해도
이렇게 마력이 짙은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려면 목숨까지 걸어야 할 터. 자신과 정국은 지민의 호위를 받으며 왔기 때문에 편히 올 수 있었으나 마계에 인맥이 있나
뭐가 있나. 정국은 그저 한낱 인간계에 사는 평범한 고등학생일 것인데.
"내 신분이 조금 바뀌어서."
"어?"
"김태형이랑 동급이라고 하면, 믿을래?"
.
.
.
.
.
드디어 제가 가장 쓰고 싶었던 부분이 나오는 군요! 애초에 제가 윤기를 출현 시킨 이유가 단지 여주의 인간계 친구였겠습니까 여러분들!!!!
그리고 오늘부로 윤기가 정식 서브 남주에 올라갑니다! 축하한다 밍융ㄴ기!! 신분상승도 축하해!!
여러분이 태형이랑 여주의 케미를 되게 그리워하시는 것 같긴 한데 ‥ 스토리상 필수라구여!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는 거지만 이 파티에서
일어날 일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1. 성경과 태형
2. 성경과 여주
3. 여주와 윤기
4. 지민과 성경
5. 정국과 지민
6. 정국과 윤기
뭐 대충 이정돈데 ^^ 또 언제 데리고 올지 모르겠네요. 항상 악마와 아이의 일상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거 완결까지 정해놓긴 했거든여?
근데 완결까지 좀 많이 남음 ㅋ 제가 진정으로 쓰고 싶었던 부분은 지금부터거든여 마왕 죽은건 아무것도 아님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