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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이야기

02










나를 낳은 여자가 나를 아빠라는 남자에게 버린 날부터 나의 진정한 악몽이 시작되었다. 매연 냄새 가득한 도시에 살던 여자는 나에게 무관심이라는 무서움을 가르쳐주었고 공기 좋은 교외에 살던 남자는 인간이기에 가능한 무서움을 보여주었다. 남자는 매일 아침 웃는 얼굴로 문을 나서 이웃들에게 인사를 하고 일을 하러 간다. 그동안 나는 1평짜리 방에 쭈그려 앉아 작은 불빛에 의존한 채 하루를 지낸다. 배가 고파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냥 이대로 죽었으면 생각하기도 했다. 오늘도 죽지 않고 살아있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때부터 온몸이 떨려온다. 곧 방문이 열리고 남자에게 끌려 나간다.

아침이 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웃는 얼굴로 집을 나선다. 내 코가 어젯밤의 술 냄새를 기억하고 내 몸이 어제 일의 증거인데.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그 남자에게서 술 냄새가 나지 않는 날이다.





남자가 또 술 냄새를 풍기던 어느 날. 밖이 조용해 방문을 열어보니 남자가 문도 안 닫고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잠들어 있었다. 조금 열린 문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에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남자가 깨어나기라도 할까 조용히 기어 나가는데 남자의 주머니에서 붉은빛의 무언가가 보였다. 나는 뭐에 홀린 듯 그것을 빼내어 손에 쥐었다.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어떠한 상황에 물건을 쥐고 있는 손에 자꾸만 땀이 났다. 해가 얼굴을 반쯤 숨겨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결국 나는 쥐고 있던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난 산속을 뛰고 있었다. 사람이 만든 길이 아닌 나무와 풀이 무성한 곳으로 무작정 뛰었다. 나를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누가 쫓아올까 겁이 났다. 그러다 나무에 걸려 넘어졌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이미 온몸은 멍과 상처로 가득해 이 정도 통증에 무감각해진지는 오래였다. 그래도 부어오른 발목으로 뛰는 건 불가능이었다. 며칠을 굶은 상태로 오랫동안 걷는 것도 무리였다. 깜깜해진 하늘에 앞도 보이지 않고 지칠 대로 지쳐 결국 쓰러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싱그럽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풍경이 앞에 펼쳐져 있었다. 간간이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들렸고 어렴풋이 물이 흐르는 소리도 들렸다. 몸을 일으키니 무릎에 이상한 초록색이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찝찝한 기분에 손가락으로 그것을 털어버렸다. 주위를 둘러보다 물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 보고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발목이 시큰 거려 다시 주저앉았다. 발목에 걸쳐져 있는 천을 풀어보니 발목이 살짝 부어있는 게 보였다. 이를 꽉 물고 천을 세게 감아 묶고 물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올곧게 하늘을 향해 자라있는 나무 사이를 지나 탁 트인 곳에 작은 강이 하나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강 한가운데 무릎까지 올린 바지가 무색하게 머리부터 쫄딱 젖어 있는 내 또래의 남자아이가 있었다.

나무 뒤에 숨어 그 남자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와아- 하고 두 손을 번쩍 들고 소리를 지르는 탓에 깜짝 놀라 어깨가 들썩였다. 등을 지고 서 있던 소년이 뒤를 돌아 손으로 잡은 물고기를 자갈 위로 던지는데 눈이 딱 마주쳤다. 물고기를 던지던 모습 그대로 굳어 있던 소년이 딸꾹질을 하며 짧은 정적이 깨졌고 딸꾹질을 참는 건지 눈을 질끈 감는 소년의 얼굴이 조금 빨간 것 같기도 하다. 뭐 하는 건지 궁금해져 나무 뒤에서 나와 강가로 가려는데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뜨고 자갈 위에 던져 놓은 물고기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오는 소년 때문에 놀라 나도 모르게 한 발 물러섰다. 소년도 내가 뒷걸음치는 걸 느꼈는지 그 자리에 멈춰 서 한 걸음 뒤로 떨어졌다.





[방탄소년단] 숲 속 이야기 02 : 狐 | 인스티즈


"이거 먹을래?"





입을 우물쭈물하던 소년은 들고 있던 물고기를 내밀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물고기를 들고 뛰어왔다. 아직 꼬리를 팔딱이는 물고기를 보며 이대로 먹으라는 건가,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손가락으로 찌르면 살려고 몸부림치는 물고기를 보다 시선을 올려 소년을 보면 그저 밝은 미소만 짓고 있다.





"구워 먹어야 하지 않을까."





용기를 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표정을 짓는다. 허기진 속에 어떻게 할까 머리를 굴리다. 땅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를 보고 하나둘 줍기 시작했다. 멀뚱멀뚱 서 있던 소년도 나를 따라 나뭇가지를 주우며 따라왔다. 한 품 가득 나뭇가지가 모여 허리를 펴면 마침 내가 깨어났던 곳이 나왔다. 아무 데나 주저앉아 나뭇가지를 예쁘게 쌓았다. 그리고 불을 붙이려고 외투 주머니를 뒤지는데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분명히 여기 넣었던 것 같은데. 혼자 중얼거리며 몸 여기저기를 더듬어 봐도 라이터가 없다.





"내가 있던 곳에 데려다줘."





주운 나뭇가지를 내 옆에 내려 두고 가만히 서 있던 소년은 다행히 내 말을 이해한 건지 근처 바위 위에 물고기를 내려놓고 앞장서 걸었다. 소년을 따라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눈으로 바닥을 샅샅이 뒤졌다. 꽤 걸었는데도 계속 걷는 소년을 따라가며 점점 의심이 들었다. 이 길이 맞는 걸까. 어떻게 이 먼 길을 쓰러진 나를 데리고 왔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의문이 풀릴 리는 없었고 배만 더 고파질 뿐이었다. 꼬르륵 소리라도 날까 배를 부여잡고 계속 소년을 따라갔다. 다행히 어느 곳에서 소년이 멈춰 섰다. 아직 이곳이 맞다는 확신은 없었지만 이곳에도 라이터는 없었다. 그래서 곧장 걸었던 기억을 더듬어 또 무작정 직진을 했다.

높이 쏟는 나무들 사이로 해가 머리 위에 뜬 것이 보였다. 목도 말랐고 배도 고팠다. 오래 걸었더니 꽉 조여 놓은 발목에 점점 감각이 없어졌다. 이러다 또 쓰러지는 게 아닌가 싶을 때 유독 굵고 큰 나무가 보였다. 그리고 땅 위로 올라온 뿌리 옆에 빨간 라이터가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드디어 찾았다는 기쁨에 힘들었던 것도 잊고 뛰어갔다. 라이터를 주워 들고 소년을 향해 흔들었다. 꼬르륵. 순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태어나서 꼬르륵 소리가 민망하다는 것을 지금 처음 알았다. 얼굴까지 빨개졌고 신나게 흔들던 손을 조용히 내렸다.



"흠흠, 빨리 돌아가자."




괜히 헛기침을 하며 소년을 빠르게 지나쳤다. 그리고 하필이면 울퉁불퉁한 돌을 잘못 밟아 다친 발목이 시큰 거리며 몸의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다행히 또 무릎을 바닥에 찧기 전 소년이 내 어깨를 잡아 주었다. 고마워. 소년의 팔을 잡고 똑바로 서 다리에 힘을 주고 발을 내디디려는데 몸이 떠올랐다.





"야 미쳤나 봐 빨리 내려. 나 무거워."

"하나도 안 무거워."





이때까지와 다르게 웃음기 없는 얼굴로 건조하게 내뱉고는 그대로 숲 속을 달렸다. 얼굴을 때리는 바람에 눈을 감고 고개를 소년 쪽으로 돌렸다. 분명 바람은 시원하다 못해 얼굴이 얼 정도로 차가운데 소년에게 닿는 볼과 손. 소년이 닿은 모든 곳은 차가운 바람을 데울 만큼이나 따뜻했다.

우리가 걸어온 시간의 반 정도 밖에 안 지난 것 같은데 소년이 갑자기 멈춰 섰다. 고개를 돌려 눈을 뜨니 우리가 있던 장소가 맞았다. 소년이 나를 내려주었고 '너 되게 빠르다' 이 말을 하려고 뒤를 돌았는데 소년 머리카락 속에 쏟아 있는 뾰족한 귀와 뒤에서 살랑거리고 있는 털이 풍성한 긴 꼬리는 내 눈을 의심케 했다. 너무 놀라 눈이 커졌고 떡 벌어진 입을 손으로 막았다. 쫑긋거리는 귀를 빤히 쳐다보고 있자 그제야 알아차렸는지 허둥거리다 눈을 질근 감으면 귀와 꼬리가 스르륵 말려 사라졌다. 듣도 보도 못한 관경에 이제는 완전히 넋을 놓고 바라봤다.





"너, 너 대체 뭐야."





목소리는 커졌고 말까지 더듬었다. 소년은 머뭇거리더니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난 호야."





이름이라도 되는 건가. 눈을 찌푸리고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 소년은 결심에 찬 눈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다시 귀와 꼬리가 나타났다.





"호. 나는 여우야."





-





활활 타오르는 불 위로 나뭇가지에 끼운 물고기를 살살 돌려가며 굽고 있다. 돌들도 주워와 나름 괜찮은 모닥불을 만들었다. 내가 하는 것을 보고 소년은 물고기를 더 잡아왔고 지금은 내 맞은편에 앉아 나를 따라 물고기를 굽고 있다. 잘 굽힌 물고기를 골라 한 입 먹으면 소년도 나를 따라 물고기를 들고 한 입 문다. 그건 좀 덜 익은 것 같은데. 내 말을 듣긴 한 건지 금세 물고기 살이 다 발라져 뼈만 남았다.





"이거 맛있다!"





물고기를 그렇게 잘 잡으면서 구워 먹은 적은 지금이 처음이고 심지어 불을 피우는 것도 처음 본다고 했다. 구운 물고기가 맛있는지 눈이 초롱초롱 해져선 허겁지겁 먹어다. 맛있다며 웃는 입가에 묻은 살을 떼어 주었다.





"근데 너 이름은 있어?"





어쩌면 가장 먼저 물어봤어야 했을 질문을 했다.





"태형."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무심하게 말하고 물고기 하나를 더 들었다. 정말 맛있는지 이제는 숨기지도 않는 꼬리가 계속해서 살랑거린다. 이건 여우가 아니라 사실 개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배도 부르고 따뜻한 모닥불 앞에 있으니 잠이 절로 쏟아졌다. 무릎을 감싸 안고 꾸벅꾸벅 졸다 처음 내가 누워 있던 자리로 가 누웠다. 불에서 멀어지니 조금 쌀쌀해져 몸을 잔뜩 웅크렸고 태형을 신경 쓸 새도 없이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기분 좋은 따뜻함에 손을 뻗었는데 그 끝에 닿는 단단함에 눈을 뜨니 태형의 가슴팍이 보였다. 으아악.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어깨 위에 걸쳐져 있는 태형의 팔을 쳐내고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내쳐진 팔에 투정을 부리더니 방향을 돌려 등을 보였다. 고개를 내밀어 본 태형은 꼬리를 껴안고 입까지 벌린 채로 단잠에 빠져있었다. 이유 모를 허탈함에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올려다봤다. 벌써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5시쯤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점심엔 태형이 물고기를 잡아줘서 저녁은 내가 구해오려고 했는데 이래선 물고기는 커녕 과일도 못 구해올 것 같았다. 아. 그때 모닥불을 보고 뭔가 생각이 났다. 기름이 없어서 시간은 걸리겠지만 태형이 주워 왔던 나뭇가지 중에 너무 굵어서 못 쓰고 놔둔 나무 끝에 모닥불의 불을 옮겨 붙였다. 다행히 잘 타오르는 나무를 들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라이터를 찾으러 태형을 따라가는 길에 맛있어 보이는 열매를 봤었다. 멀리서 봤기에 정확하지도 않고 많은 나무 사이에 한 그루만 덩그러니 자라있어서 이상하다 싶었지만 일단 가서 확인을 해봐야겠다.

계속 걷다 보니 더 어두워져 내 주변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감으로 이쯤이겠거니 하는 곳에서 방향을 꺾어 또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걷고 걷다 결국 길을 잃었다.





"아 망했다."





땅 위에 주저앉았다. 앞도 잘 안 보이고 길도 모르면서 왜 숲 속으로 들어왔을까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걷는 동안 흘렸던 땀이 식으면서 순식간에 추워졌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다시 불을 들고 왼쪽으로 걸었다. 처음에 한 번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으니 또 왼쪽으로 가면 어떻게든 그곳이 나오리라 믿었다. 불로 땅을 잘 비춰 또 넘어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그리고 마침내 멀리서 내가 피워 놓은 모닥불의 옅은 불빛이 보였다. 마음은 벌써 불을 향해 달려갔지만 숲 속을 달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쁜 숨을 내쉬며 모닥불 앞에 앉아 차가운 손부터 녹였다. 들고 왔던 나무도 불속에 넣으니 더 활활 타올랐다. 코를 훌쩍이며 슬쩍 뒤를 돌아보니 태형은 아직 등을 돌린 채 누워있었다. 그래서 다시 몸을 돌려 불을 쬐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누가 목을 껴안았다.




"눈 떴을 때 옆에 없어서 간 줄 알았어."





느닷없는 행동에 그냥 태형의 팔을 다독였다. 태형의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왠지 슬픈 목소리에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나 같은 게 위로를 해준다는 게 웃기지만 지금 이 아이 옆엔 나 밖에 없으니까.

차분한 분위기를 깨는 건 역시나 내 배꼽시계였다. 꼬르륵거리는 소리에 우리는 크게 웃었고 태형은 물고기를 잡아오겠다며 강으로 갔다. 이 소리는 여전히 민망했지만 조금은 쳐진 분위기를 살리는데 도움이 된 것 같아 다행이었다. 긴 나뭇가지로 물고기를 구울 불을 이리저리 들쑤시고 있는데 태형이 간 쪽이 아닌, 숲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작은 산짐승이면 태형을 불러 잡아먹을 생각도 했고 큰 산짐승이면 불로 위협을 하고 태형에게 달려갈 준비를 했다. 며칠 전만 해도 그냥 죽기를 빌었었는데 지금은 살려고 하는 내 행동들이 낯설어 헛웃음이 났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소리가 나는 쪽을 주시하는데 점점 다가오는 모습이 처음엔 인간이었고 완전히 내 시야에 들어왔을 때는 태형과 같은 모습이었다. 뾰족한 귀와 길고 풍성한 꼬리는 태형과 색이 달랐지만 모양은 같았고 풍겨져 나오는 분위기는 태형보다 성숙했고 어둠에서 빛나는 눈은 조금 무서웠다.





"누구세요."





땅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답 없이 점점 다가오는 걸음에 맞춰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완전하진 않지만 인간의 모습과 위협하는 눈빛은 나를 겁먹게 하는데 충분했다. 이 순간만큼은 태형에게 가는 게 맞는 걸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가야 하는 걸까 머릿속으로 수없이 많이 생각을 했다. 고민 끝에 숲으로 발길을 돌리려는데 태형이 돌아왔다. 손엔 물고기가 없었고 급하게 온 듯 티가 역력했다. 태형아.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부르자 정체를 모르는 사람의 표정이 더 안 좋아졌고 금방이라도 달려와 내 목을 물어뜯을 것만 같았다.





"형!"





그 사람보다 태형이 먼저 달려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 사람은 지금 뭐 하는 짓이냐는 표정이었지만 태형은 꿋꿋이 서 있었고 곧 내 옆으로 와 꼬리로 허리를 감아 끌어당겼다. 때문에 나는 완전히 태형에게 안긴 꼴이 됐다.





"너... 그게 어떤 뜻인지는 알고 하는 거냐."





태형의 침묵은 긍정을 뜻하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은 한숨을 쉬었고 손으로 머리를 짚고 서 있었다. 그래도 꼬리에 힘이 빠진 걸 보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따라와. 그 사람이 먼저 숲 속으로 사라졌고 태형도 망설이다가 그 뒤를 따라갔다. 나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태형의 꼬리에 잡혀 어쩔 수 없이 숲으로 들어갔다.





"저, 그쪽은 이름이 뭐예요."





태형에게 의지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문뜩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 사람은 별로 말해주고 싶지 않은지 돌아오는 건 까마귀 소리뿐이었다. 숨소리조차 안 들리는 고요였다. 내가 나무를 밟아 큰 소리가 날 때마다 그 사람의 눈치를 봤다. 계속 걷다 갑자기 멈춰 선 태형에 허리가 당겨서 이상한 소리를 냈다. 앞을 보니 그 사람도 멈춰 서 있었다.





[방탄소년단] 숲 속 이야기 02 : 狐 | 인스티즈


"내 이름은 남준이에요. 앞으로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거예요."





남준이 걸음을 떼면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은 곳이 나왔다. 그리고 그곳엔 어마어마한 수의 여우 무리가 있었다. 태형과 같은 붉은 여우와 남준과 같은 은여우가 서로 섞여서. 가장 높은 바위에 엎드려 있던 여우가 몸을 일으키자 다른 여우들도 전부 몸을 일으키고 고개를 우리 쪽으로 돌렸다. 우리를 쳐다보는 수 백 개가 넘는 눈들에 어깨를 움츠리고 태형의 옆에 더 가까이 붙었다. 나를 감싸줄 줄 알았던 태형은 오히려 허리를 감고 있던 꼬리를 풀고 여우들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여우들은 무리의 가운데 달빛이 가장 잘 드는 곳으로 길을 만들었고 태형은 그곳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남준은 어느새 바위 위, 여우의 옆에 서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우리와 함께하는 것을 택할 건지 불명예를 안고 죽는 것을 택할 건지."





남준은 이 말을 하며 나를 힐끗 쳐다봤다. 순간 마주친 남준의 눈빛엔 아무런 긴장감이 없었다. 마치 태형이 어떤 선택을 할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태형을 바라봤고 태형은 나를 보고 있었다. 오늘 처음 만났고 인간이 아닌 존재라는 것도 알지만 같이 있으면서 쓸쓸함이나 아련한 슬픔이 느껴졌다. 어떤 사연이 있는 지도 모르면서 그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할게. 무리의 뜻을 따를게."





태형이 결정을 내리자 여우들이 하나둘 울기 시작했다. (누가 개과 아니랄까 봐 울음소리도 개와 비슷했다.) 나에게 걸어오는 태형의 얼굴에 슬픔이 묻어 있었다. 무슨 일이야. 조심스럽게 물어도 태형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다. 대신 바위에서 내려온 남준이 답을 했다.





"우린 묘(卯)산을 통째로 잡아먹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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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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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96.74
땅위입니다!! 호오옹 이번 화에는 남준이가 나왔네요! 다른 멤버도 등장하나요??궁금하네요! 그리고 무리의 뜻을 따른다는건 무슨 소리인지 궁금하네요!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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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86.199
헐헐....우와....장난아니네요..암호닉 신청 받으시나요?? 받으시면 [청포도]로 신청하고가겠습니다!!!다음편이 너무 기대되요!!!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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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0.107
ㅇ하.....완전 재밌어요ㅠㅠㅠㅠㅠ뭐야 귀엽고 설레고 다 해 ㅠㅠㅠ 묘산이면 정꾹이 나오려나 ㅎㅎ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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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79.148
설마...묘산이 정국이는 아니...겠져..?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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