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경씨, 이게 뭡니까. 몇 번을 말해줘도 그 온도를 왜 못맞춰요."
아니, 저.. 저 뻔뻔스러운 모습 좀 보소. 커피타오기라면 미스김을 시키던가, 왜 구지 맨날! 그것도 콕! 찝어서 시키는 건데.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대충 종이컵에 타서 갔다주면 물 온도가 안 맞다느니, 커피가루가 남아있다느니 별 말도 안되는 이유를 붙여서 내 발걸음을 다시 탕비실로 돌아가게 만들고, 제 마음에 드는게 나오면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쓱 커피만 채가곤 다시 팀장실로 쏙 들어가버린다. 혼자서 씩씩거림을 삼키고 다시 발걸음을 탕비실로 돌리면서 작은 소리로 이민혁 개새끼. 를 중얼거렸다. 내가 왜 이렇게 눈치를 봐야해. 속에서 차오르는 눈물을 누르고 탕비실문을 열었다.
"박 경씨, 이리 와봐요."
드디어 만족을 했는지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마시길래 팀장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나를 부른다. 이번엔 또 무엇으로 트집잡을까 두려워 잔뜩 불안감이 서린 표정으로 팀장 앞에 다가서니 생글생글 웃는게 전의 굳은 표정들보다 더 무섭다. 커피에 약 탄 것도 아닌데 왜 저리 웃어대. 괜시리 더 기분이 나빠져 팀장이 느끼질 못할정도로만 미간을 구겼다. 물론 눈치가 장난아니게 빠른 팀장은 그것도 알아채린듯 싶었다.
"팀장님, 왜 부르셨어요?"
불러놓고도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는 팀장에 내가 먼저 입을 뗏다. 허나 대답이 없는 팀장. 아, 밖에 나가면 해야할 서류가 몇갠데 이렇게 시간을 낭비해. 팀장을 좀 더 기다리다가는 야근을 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초조해졌다. 진짜 그저께에도 팀장이 이런식으로 시간을 끄는 바람에 팀장과 같이 야근을 했었는데. 괴로웠던 때를 회상하니 오늘도 그래야 될 것같다는 불안감이 점점 더 엄습해왔다. 아니나다를까 팀장은 그것을 노리고 있는듯 삼십분째 말이 없었고, 내가 건넨 물음에도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박 경씨, 저녁에 시간있어요?"
" 시간이요? 네.. 뭐, 시간이야 많죠. "
" 아껴쓰세요. "
" 네...네? "
" 아니, 시간많으시다면서요. 아껴쓰시라구요. "
" 아..,네. "
" 농담이에요, 농담. 왜이리 정색을 해요. "
농담같지도 않은 농담을 농담이라고 이야기하고는 나를 비웃듯이 웃는다. 재수없어. 오늘도 팀장에게 잔뜩 놀아난 기분에 짜증이 솟구쳐 뒤로돌아 팀장실을 나가려하니 박 경씨, 오늘도 야근~ 이라며 이야기하는 팀장을 한대 때리고 싶었다. 내가 진짜 저것보다 상사였으면. 진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회사고 뭐고 엉엉 울면서 뛰쳐나가고 싶다. 팀장실을 나오니 괜시리 눈물이 고인다. 저 팀장은 유독 나한테만 저래. 나만 갈구고, 나한테만 궂은 일 시키고. 야근시키고. 뭐 야근때마다 사주는 저녁은 야근하고싶게 만들만큼 맛있긴했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면 밤에는 차가운 회사보다는 따뜻한 집에서 쉬고싶은게 당연하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내가 미운 짓을 한적도 없었고-오히려 팀장이 시키는 거라면 웃으면서 더 열심히 했다.- 일을 열심히 안한 것도 아닌데. 깊게 생각할 수록 눈물들이 자꾸 흐르려하길래 혹여나 누가볼까싶어 내 자리로 가던 발걸음을 화장실로 옮겼다.
결국엔 화장실 맨 끝에 있는 칸에 들어가 엉엉 울었다. 밀린 업무들과 서류는 어짜피 오늘 야근이니 그때 처리하자. 라는 안일한 생각과 동시에 눈물이 폭포수처럼 터져나왔다. 그동안 참아왔던 억울함이 한순간에 폭발한 듯 싶었다. 누가 들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은 눈물이 한두방울 떨어질때쯔음부터 이미 머리속을 떠나갔고 소리가 새어나올까 싶어 막았던 입은 터져나오는 울음소리에게 져버렸다. 물론 눈물이 거의 멎어갈때쯔음엔 후회를 했다. 미쳤다. 미쳤어. 분명 누가 아까 문을 열고 들어온 것 같았는데. 어쩌지. 지금 나갔을까. 들었을텐데. 한순간에 몰려오는 후회와 잡다한 생각들이 머리속을 다시 어지럽혔다. 진짜 내가 미쳤지. 혹시라도 팀장이면 난 정말 쪽팔려서 회사를 그만둘지도 모른다. 화장실 잠금장치를 풀면 난 나가야겠지. 누가 있을 것같은 느낌에 한참을 손잡이를 잡다 놓았다 하면서 고민을 했다. 아, 어짜피 나가야될텐데 빨리 나가는게 좋지.
아니나다를까 안좋은 예상은 항상 맞는다더니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팀장. 내가 나오기전부터 내가 들어가있었던 칸을 보고있었던 듯 나오자마자 마주치는 눈에 서서히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눈 빨개졌을텐데. 울음소리는 들었으려나. 어떡해. 쪽팔려. 오만가지 생각들을 다 구겨서 쓰레기통에 집어넣을 수 있었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그렇지 못한나는 팀장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까지 그런 생각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경 씨, 아. 울지 마요. 아, 그니까 나때문에 운거 맞죠? "
" ... "
" 맞나보네. 미안해요. 울릴려고 그랬던 건 아닌데. 어, 울지마요. "
괜시리 더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고 고개를 들었다. 저 팀장 얼굴보니까 내가 그동안 당해왔던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간다. 사실 너무 쪽팔려서 지금 볼이 빨개진 것 같다. 눈도 빨간 색일 것이 분명하다. 아 겁나 못생겨졌겠지. 망할팀장. 다 너때문이야! 라고 소리치고 싶은 것을 참고 팀장의 말을 들었다. 팀장은 울지마요.를 시작으로 아주 긴 말을 했는데 자기가 날 보면 초등학생이 된 것 같다고, 괴롭히고싶다고. 초등학교 남학생이 좋아하는 여학생 괴롭히는 것도아니고 이게 뭐야. 앙칼지게 째려보고싶은 것을 참고 억지로 괜찮아요. 팀장님.을 내뱉었다. 괜찮긴무슨 안괜찮아 미칠 것 같다.
-
생각 외로 너무 길어진 탓에 상을 붙였네요. 하는 언제 나올지 모른다는게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