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끄럽게 울리는 소리의 근원을 찾아 잠결에 침대 시트를 더듬거렸다. 이내 손 안으로 들어오는 익숙한 감각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휴대폰 배터리를 빼버리고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정신이 몽롱하기 그지 없었다. 다시 한 번 몰려오는 졸음기에 완전히 눈을 감으려는 순간, 쾅쾅! 누군가 시끄럽게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별빛아! 일어나!”
현관문을 넘어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그제서야 미적미적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연오빠였다. 사귀기 전부터 늘 모닝콜을 해주던 학연오빠는, 아침잠이 많은 내가 평소보다 조금이라도 피곤할 때엔 툭하면 핸드폰 전원을 꺼버리고 늦잠을 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서로 마음을 확인한 후부터는 이렇게 직접 집까지 찾아와 나를 깨워주었다.
“오빠, 잠시만요…!”
“우리 예쁜 별빛이, 일어났어?”
“네. 잠시만요. 곧 나갈게요!”
“천천히 해도 괜찮아~.”
편한 사이이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여자친구로서 막 잠에서 깬 엉망진창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나는 본의 아니게 늘 학연오빠를 준비가 끝날 때 까지 문 밖에 덩그러니 세워두었다. 꼼꼼하게 세안과 양치질을 끝내고, 머리를 정돈 한 후 교복을 입고 나서야 나는 문을 열었다. 봄이랑 가을은 그나마 괜찮다지만 여름에는 덥고 지금 같은 한겨울에는 추울텐데도 학연오빠는 단 한 번도 나한테 불만을 말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미안해하면 괜찮다며 나를 달래주었다.
“추울 텐데… 매일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아냐, 미안하긴.”
나는 우리 별빛이 기다리는 시간이 그렇게 설레고 좋더라. 내 사과에 학연오빠는 다정스레 웃으며 머리를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그럼 이제 갈까? 하며 자연스레 내 손을 잡았다.
2.
“별빛아.”
“으으…….”
“…별빛아.”
휴대폰 너머로 나를 부르는 조곤조곤한 목소리에 나는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는 아침잠이 많아서 알람이고 뭐고 전부 못 듣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택운오빠의 전화만은 아무리 피곤해도 귀에 쏙쏙 들어왔다. 전화를 받아도 하는 말이라고는 별빛아, 하며 그 조용한 미성으로 내 이름을 부르는 것뿐인데 어떻게든 잠이 깬다는 게 참, 스스로도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었다.
“일어났어요…….”
“잘 잤어?”
“네…. 택운오빠는요?”
“잘 잤어.”
아침잠에 약한 건 택운오빠도 마찬가지인지라, 잘 잤다고 대답하는 목소리에 아직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는 졸음기가 귀여워 저도 모르게 푸스스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게 신경 쓰이는지 왜 웃어? 하고 택운오빠가 물어왔다. 귀여워서라고 대답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걸 알기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충 얼버무리고는 흐아아, 하고 요상한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한 번 쭈욱 켜고 따스한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늘도 모닝콜 고마워요.”
“고맙긴.”
“그럼 저 이만 씻으러가볼게요.”
“응.”
막 끊으려고 하는 참에 별빛아,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 나는 다시 휴대폰을 귓가에 가져갔다. 왜요? 택운오빠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대체 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택운오빠? 하고 이름을 부르려던 그 때, 쪽, 하는 달콤한 소리가 울렸다.
“……?”
“……그러면, 끊을게.”
“어…? 어? 자, 잠깐만요. 오빠? 택운오빠?!”
당황한 내가 몇 번이나 이름을 불렀지만 이미 전화는 끊어진지 오래였다. 방금 그 소리는, 분명히…….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순식간에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얼마 전에 같이 영화를 보면서 나왔던 장면을 -그러니까, 서로 수화기에 쪽하고 뽀뽀하고는 끊는 장면을- 부럽다고 말했던 내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었기에 하기 전까지 얼마나 고민을 했을지가 눈에 선했다. 아, 정말. 왜이리 사랑스러운건지. 평소에는 그토록 싫었던 월요일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행복해서 어쩌면 좋을지 모를정도였다.
3.
- 우이 별빛이~. 얼른 안 일어나면 지각인데 오또카지~? 얼른 일어나요, 뿌잉뿌잉~.
우이 별빛이~. 얼른 안 일어나면 지각인데 오또카지…… 오또카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울리는 알람소리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 정말… 알람 효과 하나는 죽여준다니까. 진짜 시끄러웠다. 잠이 확 달아날 정도로. 그런데 그 와중에 또 귀여운 건 뭔지, 참.
[오빠, 저 일어났어요.]
간단하게 문자를 보내자 기다렸다는 듯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들었던 알람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귓가를 울려댔다.
“우이 별빛이! 일어났어?”
“네……. 문자했는데.”
“그래도오~ 아침이니까 목소리 듣고 싶어서!”
“어차피 학교 같이 가잖아요.”
“우이 별빛이는 오빠 목소리 안 듣고 싶었어…?”
아침시간이라 가뜩이나 바쁜데 싶어 부러 차갑게 대했더니, 풀이 축 쳐진 목소리로 애교를 섞어 물어오는 게 여간 잔망스러운 게 아니었다. 진짜로… 남자가 이렇게 귀여워도 괜찮은걸까. 여기에서 넘어가면 전화가 길어질거란 걸 알면서도 재환오빠의 애교에 또 마음이 약해져 나는 사르르 녹아내렸다. 아뇨, 그런 건 아니구요……. 망설이며 그리 답하니 재환오빠는 언제 풀이 죽었냐는 듯 다시 활기를 되찾고는 그러며언?! 하고 기대를 가득 담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빠 목소리 듣고 싶었쪄~?”
“…….”
“응? 듣고 싶었쪄? 응?”
“…네.”
재환오빠와 달리 애교가 별로 없는 성격인지라 이런 대답마저도 조금 부끄러웠다. 평소라면 그냥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을 터였는데 내가 대답한 게 조금 놀라웠는지 재환오빠는 잠시 말이 없다가 별빛아! 하면서 크게 내 이름을 불렀다. 당황함에 말을 더듬으며 네, 네? 하고 답하니 재환오빠는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뭐먹고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워? 아우, 둄마! 어떡해, 이렇게 사랑스러워서. 누가 훔쳐 가면 정말 어떡하지?”
4.
“……원식오빠!”
“으……. 으.”
“일어나요. 네? 원식오빠!”
“5분만…….”
“안돼요. 얼른요.”
안녕하세요, 하고 원식오빠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자마자 나는 원식오빠의 방문을 벌컥 연 후 바락 소리를 질렀다. 잠도 많고 한 번 잠들면 세상모르고 자는 사람인지라, 매일 아침이 전쟁같았다. 5분만, 하며 애처롭게 비는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덮고 있는 이불을 빼앗아드니 그제야 간신히 자리에서 원식오빠는 꾸물꾸물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은 아침이에요.”
“……별빛아.”
“네?”
“뽀뽀…….”
안 그래도 낮은 목소리인데 아침이라 잠겨서 그런지 더욱 낮은 울림을 지니고 새어나왔다. 그런데, 여자라면 누가 들어도 설렐법한 목소리로 조르는 게 뽀뽀라니. 귀엽기도 하고 묘하기도 한 마음이 들어 가만히 보고 있자니 안해줄거야? 하며 한 번 더 졸라오는 게 귀여워서. 나는 네, 뽀뽀. 하며 원식오빠의 뺨에 쪽하고 가볍게 입을 맞췄다.
“됐죠? 이제 일어나서 씻고 준비해요.”
“…알겠어.”
그제야 정신이 좀 드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장실로 향하던 원식오빠는 아, 하고는 다시 성큼성큼 내가 있는 곳 까지 돌아왔다. 왜 그러나 싶어서 올려다보고 있으니,
“왜 이리 귀여워?”
“…네?”
“귀여우니까 뽀뽀 두 번.”
하고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며 다시 한 번 원식오빠는 쪽, 소리를 내며 내 입술 위에 제 입술을 겹쳤다.
5.
“야. 정별빛. 안 일어나냐?”
“…….”
“아휴…. 방은 더러워가지고.”
“……죽을래?”
“어, 일어났다.”
아침부터 속을 긁는 소리를 하는 홍빈을 노려보니 그는 뭐가 좋은지 포옥, 보조개가 들어가게 웃으며 나를 보았다. 아, 정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은 정말이다. 그것도 저렇게 예쁘게 웃는데 어떻게 싫은 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꿍시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소꿉친구이자 애인인 이홍빈은 매일 아침 나를 깨우러 우리 집에 찾아와 내 방까지 올라오곤 했다. 내 방에는 못들어오게 해달라고 엄마한테 몇 번을 말했는데도, 엄마는 내 말을 귓등으로 그냥 흘려보낸 모양이다. 아, 정말.
“너 나한테 감사해야 돼.”
“……왜?”
“나 아니었으면 매일 지각일거 아냐.”
그러면 매일 벌점이고, 청소하고, 선생님한테 찍히고…. 뭐라뭐라 말을 늘어놓는 이홍빈의 말을 끊고 네네, 감사합니다. 하고 대충 답했다. 저놈의 홍침. 들어주는 것도 이젠 지겨웠다.
“어쭈.”
“왜.”
“안 고마워?”
“안 고마워.”
“허어…… 은혜를 원수로 갚네.”
“그냥 지각하게 놔두지 그래?”
얄미움에 괜스레 틱틱거리며 답하자 그는 내가 삐쳤다는 걸 알았는지 별빛아, 하며 가만히 나를 불렀다.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로 저렇게 부드럽게 말을 걸면 답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는 걸 알고 저러는건지. 어쩔 수 없이 왜? 하며 그를 보니 아까까지의 장난스러운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그는 진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넌 그걸 진짜로 알아 듣냐.”
“……?”
“너 깨우러 와주는 거. 난 그냥 너랑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 오는 거야.”
그 말을 듣고 나서, 설렘에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 그는 쿡쿡 웃으며 물론 지각할까봐도 있지만, 하고 덧붙인 뒤 가볍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얼른 준비해. 지각할라.”
6.
[누나. 잘 잤어요?]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하니 언제나처럼 상혁의 문자가 와있었다. 고3인 나를 챙겨주겠다고 매일 아침 문자를 보내놓고, 내가 깨워달라는 시간까지 답이 없으면 칼같이 지켜 전화를 해주는 게 여간 고마운 게 아니었다.
[지금 일어났다. 응, 잘 잤어. 너도?]
[네, 잘 잤어요. 오늘 날씨 춥다. 따뜻하게 입고 나오세요!]
짧게 답장을 넣자 기다렸다는 듯 오는 답장에 작게 웃고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등교할 준비를 시작했다. 씻고, 대충이나마 밥을 먹고, 교복으로 갈아입고. 코트를 입을까 하다가 따뜻하게 입으라는 상혁의 말이 생각나 패딩을 걸치고는 집을 나섰다.
“누나!”
“어? 상혁아?”
“좋은 아침이에요.”
“네가 여긴 웬일이야?”
“웬일은요. 같이 가고 싶어서 누나 기다렸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을 때, 내 눈 앞에 바로 들어온 건 아침까지 문자를 주고받았던 그였다. 놀란 눈으로 쳐다보며 왜 여기에 있냐 물으니 나 때문에 기다렸다고 답하는데 그게 참 귀여웠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끝이 발갛게 물들어 있어서, 이 추운 날씨에 얼마나 밖에서 기다린 걸까 싶어 미안해지기도 했다.
“안 추웠어?”
“아, 뭐… 조금요.”
“기다리고 있다고 말 했으면 빨리 나왔을 텐데.”
“저 때문에 괜히 서두르게 하는 거 싫어서요.”
“고집은.”
으이구, 하며 내가 작게 꾸중하자 상혁은 머쓱하게 웃었다. 핫팩이라도 쥐어줄까 싶어 주머니 속에 손을 넣으려는 순간, 누나, 하고 불러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 잡아도 돼요?”
“……뭐?”
“저 손 시려운데…. 누나 손 잡으면 괜찮아 질 것 같아요.”
그러고서는 아직 알겠다고 대답도 안했는데 상혁은 살며시 내 손에 자신의 손을 겹쳐왔다. 겹쳐진 그 손은 내 손을 전부 가리고도 남을 정도로 커서, 상혁이가 나보다 어려도 남자는 남자구나, 싶어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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