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01
"학교 끝나고 좀 보자."
"…."
"답은 해줬으면 좋겠는데."
민형이가 전학 온 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평소 이민형을 안 좋게 보던 무리들 중 하나가 이동혁인데. 그 이동혁이 자리까지 굳이 찾아와서 하는 말이 학교 끝나고 보자니,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민형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이동혁을 짧게 쳐다본 후에 긍정의 대답을 내뱉었다. 이동혁의 뒤에 있던 아이들이 이쪽을 쳐다보며 킥킥거린다. 뭔가 안 좋은 느낌에 나도 모르게 이민형의 어깨를 잡았다. 이동혁 무리들은 교내에서 소문이 안 좋았다. 이동혁 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이동혁이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안 좋은 애들이었다. 중학교 때까진 나도 나름 이동혁과 친하게 지내던 친구 중 하나였는데. 고등학교 올라오고서부터 얘가 변하기 시작하더니 점점 안 좋은 애들이랑 다녔다. 학교 폭력, 담배 등 학교에서 사고가 날 때마다 이동혁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중학생 때 이동혁이 그랬다. 나는 담배가 싫다고,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 나올 것 같다고. 그랬던 이동혁이었는데. 지금의 이동혁에게서 옛날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많이 변했다. 녀석의 무리들이 교실을 나갔다. 나는 가지 말라고 이민형에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안 가면 안 돼?"
"괜찮아."
"그래도…"
정말로 괜찮은 듯이 걱정 말라는 듯이 날 보며 웃는 이민형에게 더 이상 가지 말라고 잡을 수 없었다.
학교가 끝나고 나는 차마 이동혁과 함께 나가는 이민형을 따라나서지 못 하고 뒤늦게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학교를 다 찾아봐도 이민형은 보이지 않았다. 한숨을 크게 쉬고 나는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어두컴컴한 골목길 안쪽에서 쾅 하고 큰 소리가 났다.
"…."
"왜 억울해? 이유도 없이 맞는 것 같아서?"
둔탁한 소리가 내 귀에 들렸을 때, 서둘러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렸고 도착했을 때 눈에 보이는 상황들에 나는 숨이 콱 막혔다.
"난 너 같은 새끼들이 제일 좆같아."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까. 한 사람을 죽였으면서."
"피해자 가족들은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는데."
"벌을 받아야 하는 건 너네들인데, 왜……."
이민형의 멱살을 꽉 쥔 이동혁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지독하게 차가운 공기들이 골목길을 맴돈다. 이동혁이 왜 그렇게 이민형을 싫어했는지, 왜 못 죽여서 안 달난 것처럼 굴었던 건지 놈이 뱉은 말을 하나하나 듣다 보니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눈이 커졌다. 16살의 겨울쯤이었다. 우리 동네에서 살인이 났다는 뉴스를 처음 봤을 때가. 사람이 죽었다. 이유 없는 살인, 흔히들 말하는 묻지마 살인이었다.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소름이 돋았다. 우리 동네라니…… 그땐 몰랐다. 피해자가 이동혁의 동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그 다음날 이동혁의 자리가 비어있을 때였다. 이모양 나이는 12살, 나 혼자의 짐작으로 끝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짐작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을 땐, 이동혁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가 같은 고등학교에 올라오고 나서였다. 하지만 1학년 때도 2학년 때도 서로 다른 반이었기에 아는 척을 할 수 없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많은 게 변해있었고, 되돌릴 수 없었다. 그게 이동혁과 내 사이다.
"더러운 새끼."
"…."
이동혁은 발로 이민형의 가슴을 세게 걷어찼다. 바닥에 쓰러져 숨을 몰아쉬는 이민형의 모습에 나는 몸을 떨며 그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조용한 골목길 안, 내 발소리는 꽤나 컸던 건지 고개를 들어 이쪽을 쳐다보는 이동혁과 눈이 마주쳤다. 증오가 가득한 시선에 나는 화를 낼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누군 좋겠다. 이럴 때 와 주는 친구도 있고."
"…뭐?"
얼마나 때린 것인지 이민형의 볼은 벌겋게 부어올랐고, 입술이 터진 듯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멱살을 잡던 손을 놓은 이동혁의 조소 섞인 말에 놀란 듯이 이쪽을 쳐다보는 이민형과 눈이 마주쳤다. 손이 덜덜 떨린다. 가서 말렸어야 하는 건데. 피 묻은 손을 표정 없이 툭툭 털고 일어선 이동혁은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이런 식으로 마주치고 싶진 않았는데."
중얼거리듯 말한 이동혁의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진다. 골목길 한 쪽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제 가방을 집어 들고는 그렇게 이동혁은 사라졌다. 나는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뒤늦게 몰려오는 이민형에 대한 미안함과 나 자신에 대한 원망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많이 아팠을 텐데, 살짝 스쳐 지나간 이동혁의 얼굴엔 상처 하나 없었다. 그 말은 즉, 이민형은 맞고만 있었다는 거다.
"김시민 고개 들어봐."
옷에 묻은 먼지를 대충 툭툭 털어내고 일어난 이민형은 내 양 어깨를 잡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안… 미안해……."
"다친 건 난데, 왜 니가 우냐."
고개를 들었고, 가까이서 본 민형의 얼굴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터진 입술에서 흐르던 피는 시간이 지나자 굳었는지 딱지가 앉았고. 볼이 벌겋게 부어오르다 못해 얼굴 이곳저곳에 멍이 들었다. 머리칼은 꼭 이 상황을 말해주는 것처럼 이리저리 헝클어져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헝클어진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빗어주었다. 차츰 목이 메어진다. 아무렇게나 내팽겨진 가방을 집어 들고는 발목이라도 삐었는지 절뚝거리며 녀석은 느릿하게 걸어 내 옆에 섰다.
"집에 가자."
"너 치료는…."
"괜찮으니까."
괜찮으니까, 집에 가자. 머리 위로 들리는 낮은 목소리에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고개만 끄덕거렸다. 절뚝절뚝 거리며 걷는 폼이 영 부자연스럽다.
"나한테 기대."
"괜…"
"내가 안 괜찮아서 그래."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니 알았다며 한 팔을 어정쩡하게 내 어깨 위에 올린다. 이민형의 허리를 두른 손에 힘을 주었다. 내 행동에 잠깐 움찔거리던 녀석은 아까보단 편하게 자세를 고쳤다. 그렇게 드문드문 가로등만이 골목을 비추는 거리를 우리는 함께 걸었다. 길에 비친 우리의 그림자가 어색한 우리 사이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단지에 들어설 때까지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미안해서, 얼굴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고 이민형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느끼는 거지만 이민형은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아이다. 웃는 얼굴을 할 때면 어딘가 슬퍼 보이는 이민형은 그런 아이였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누군가에게 기댈 수 없었다. 내 주변엔 그런 사람들이 없었으니까. 그래서였을까, 나보다 작은 네가 기대라고 했을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했었더라.
어쩌면 듣고 싶었던 말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누군가의 품이 절실히 필요할 때 나는 혼자였으니까. 어쩌면 은연중에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네가 그 말을 했을 땐 난 무슨 표정을 지으며 너를 쳐다봤을까. 너는 그런 내 얼굴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 작가의 말
저번 편에 달아주신 댓글을 보는데 말도 너무 예쁘게 하셔서 저 완전 감동에 심쿵에 이랬다 저랬다 한 것 같아요. 너무 감사드립니다. 오늘 편은 잔잔하다기 보다는 쓰다 보니까 조금 어둡게 써진 것 같아요. 이런 글 정말 처음 써보는데 역시 어두운 글은 너무 어려운 ... 사실 앞부분이 뒷부분이랑 분위기가 맞지 않아 잘랐어요. 그러니까 분량이 확 짧아졌네요. (슬픔) 여기서 미리 말하자면 오빠로 동영이가 나올 예정입니다. 앞부분은 동영이와 여자 주인공의 대화였는데 너무 밝은(?) 것 같아서 지워버렸어요.
아 그리고 혹시나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동혁이의 여동생 살인범은 민형이의 아빠가 아닙니다. 전자는 16살에 후자는 17살이니까 시기 상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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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구상 중에 있는 작품이 많아서 걱정입니다. 이렇게 새 작품만 내면 뒷감당... 그래서 조금 확실하게 짜놓고 내려고 생각 중이에요! 독방에서 한 번 물었었지만 전교권을 다투는 엔시티와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와 시골 소년과 서울 소녀 이렇게 구상 중에 있습니다. 전에 말했던 캠퍼스물과 리맨물(전에 말한 적은 없지만)은 아직 아무것도 정해놓은 게 없는 그런 무책임한 나란 작자. 혹시 독자님들은 남자 주인공이 누가 어울릴지 팍 떠오르면 말씀해주세요. (수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