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 on the moon
사람은 어느새 찾아와서 어느새 떠나가며 사랑은 그 찰나의 순간이다.
야근이 잦은 부모님 탓에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박지민네에서 함께 토닥임을 받으며 잠에 들었던 어릴 적이 있다. 나이는 예닐곱 살이었고 집에서 내복을 입고 꼬마 마법사 레미를 돌려보고 있으면, 저녁 아홉시 즈음에 경쾌하게 초인종이 울린다. 어눌한 발음에 경계하는 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문앞에 작은 의자를 두고 올라가 문구멍에 깜찍하게 눈을 갖다대면 주먹만한 머리통이 보이기 십상이었다. 헤실대는 웃음기를 감추지 못하고 우당탕탕, 맨발로 신발장을 뛰쳐나가 방안의 돌고래 인형을 잽싸게 들고 다시 대문의 고리를 풀어선 고개를 빼꼼히 내민다.
울엄마가 우유 마시구 자쟀어.
오늘은 내가 책 고르는 날이지!
아, 아냐! 지난 번에 내가 함 봐줬잖어.
슬리퍼를 질질 끌고 옆집의 도어락을 푸는 박지민의 말에 얼굴이 상기되선 속 쫍아! 하며 짜증을 내는 것도 예삿일이었으니. 그럼 꼭 박지민이 당황한 얼굴로 말을 더듬곤 알겠어, 하며 꼬리를 내리곤 했다. 신장에 들어서면 앞에서 따끈하게 데운 우유 두 잔을 들고 기다리시던 박지민네 엄마가 있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박지민의 방 침대에 올라앉는다.
지민의 방은 정말 박지민을 닮아있었다. 파란색으로 도배되지는 않았으나 곳곳에 보이는 푸른끼의 벽지, 무엇보다 초록색을 좋아했던 덕에 푸릇한 색상이 많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중에 끼여있는 게 개나리 색이었는데 그건 자주 박지민네를 들리는 내 색이었다. 간혹가다간 내 양말이 개져있고 정말 정말로 가끔은 팬티가 있기도 했다. 물론 눈치가 좋은 지민은 보고서도 모른 체하기 일쑤였고 무엇보다도 지민의 엄마는 이불에 지도를 그린 여주가 부끄러워서 눈물을 찔끔일 걸 잘 알기에 몰래몰래 여주네 엄마에게 전해주곤 했다.
늦은 밤의 침대 안쪽엔 지민이 앉고 그 옆은 여주가 앉는다. 침대에 살포시 걸터앉은 아줌마는 입술 윗선이 하얘질 만큼 우유를 마시는 걸 보고나서야 입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시곤 책을 읽으셨다. 오늘은 그렇게나 보고싶어했던 동화책으로다가. 물론 한 권으로 쉽게 잠들 애들이 아니란 걸 부모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 동화책을 하나 다 읽으면 더 말똥해지는 아이들의 눈빛인지라 천장에 붙어있는 야광 별자리 스티커를 보며 별자리에 얽힌 이야기를 듣곤 했다. 별자리 이야기가 후반부로 치닫을 때면 여주는 곯아떨어져있고 지민은 느릿하게 눈을 꿈뻑거리며 하품을 하기 바쁘다. 늘상 잠 드는 게 늦은 지민이라 아줌마는 지민이의 이마에 엉망으로 늘어진 앞머리를 정리하며 남은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결국엔 우리 둘 사이에 별자리 신화를 끝까지 다 아는 건 박지민뿐이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올라갈 무렵 즈음까지 우리는 옆집살이를 계속해왔다. 이 시기가 지난 이후, 나와 엄마는 아직꺼정 그 시절 이야기를 꺼내면 아쉬움에 입을 쩝쩝 다시곤 하는데 그 이유라면 초등학교 사학년이 되던 해 박지민과 박지민의 가족은 버스로 한 시간에 지하철로 사십분. 둘이 합쳐 한 시간 사십 분이니 거의 두 시간 가까이가 되는 타지로 이사를 가버렸다. 물론 아주, 아아주 가끔씩, 일 년에 한 번씩 박지민네 아주머니가 우연한 길로 우리 집에 들리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때마다 박지민이 따라오지 않거나 중학교 무렵부터는 학원이니 뭐니 하며 늦은 시간에 집으로 귀가했기에 아주머니를 뵐 기회는 추후에도 없었다. 그리고 다시 만날 일은 우리 엄마나 박지민네 어머니가 딸과 아들 두 손 잡고 만나러 나올 일이 없으면야 절대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박지민이라는 이름은 단지 어릴 적의 고운 기억으로 포장되어 담겨져있을 뿐이었다.
엄마 왈, 세상바닥은 생각보다 좁다고 하셨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도 그리 어려운 건 아니었지. 우리 집안 사람들의 종특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우리집 사람들은 발이 넓은 편이었다. 내 친구 오빠는 언니의 친구였고 동아리 선배의 부모님은 아버지와 동창이셨으며 교감 선생님은 큰 외삼촌과 오랜 친구셨다. 그리고 그 넓은 발이 이렇게 만남을 재촉하게 될지는 몰랐으니. 토요일에 수학 과외도 있던 날이었지만 엄마와 친하게 지내던 지인의 아들 결혼식이라는 이유로 나는 그 결혼식에 동반 입장하게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고삼이라는 명분이 있는데 엄마는 혼자보단 둘 이상을 선호하셨고 언니는 대학 팀플에서 조장을 맡아 팀원들을 조지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고삼이라는 이름표는 엄마의 손길에 와장창 깨져버렸다. 가끔은 이렇게 머리 식히는 것도 좋다는 말씀이셨고 나는 그에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나는 생각보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었나 보다. 주변 사람 외에는 관심을 크게 가지는 편은 아니었는데 그날따라 주변을 자주 둘러본 것도 그렇고 신부측 하객 자리에 눈을 두기도 했으니. 감이 좋은 사람인가. 식 전 휴대폰을 하다 말고 뻐근한 목에 뒷목을 주무르며 주변을 둘러본 게 화근이었다. 신부측 하객 자리에 덤덤히 앉아있는 박지민을 찾은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옆에 딱 붙어 계시는 박지민네 어머니는 지민의 시선이 나를 향한 것을 느끼시고 내 눈을 마주쳐 오셨다. 반가운 얼굴에 뺨은 상기되신 채로 손을 반갑게 흔드시며, 박지민의 어깨를 툭툭 치시면서. 뭐라고 속삭이시는 게 아마도 너 기억하니? 따위의 질문이었겠지. 식은 빠르게 지나가버렸고 출구에 다다르자 손을 엄마의 손을 맞잡고 반갑게 웃으시는 아주머니에 생각도 못했다는 듯이 반가워하는 엄마의 모습은 예상된 것이었다. 뒤이어 느릿하게 따라온 박지민은 눈을 한 번 마주하더니 엄마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는 게 다였다. 서운했지만 마음이 아프진 않았다. 우린 낯가렸고 너무 오랫동안 멀어져있었기에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머, 얘들 좀 봐! 어릴 땐 그렇게 떼어 놔도 안 떨어지던 애들이, 다 컸다고 숨는 거야?
웃기다 야. 그렇게 지민이 지민이 노래를 불렀으면서~
내가, 내가 언제 그랬어! 주책맞은 웃음소리를 흘리는 엄마의 팔뚝을 손바닥으로 때리면서 박지민의 눈치를 흘깃 본다. 그 애가 뭐라구. 그 찰나에 눈이 마주친 박지민은 당황한 눈길로 손인사를 살짝하는 게 다였다. 그럼 당연하게 난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리고. 혹시나 하던 게 역시나라고, 뷔페에서도 내 앞은 박지민이 차지했고 대각선은 아줌마가 앉으셨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박지민은 그 이후로도 한 번 더 이사를 했고 그곳은 우리 집으로부터 지하철 삼십분 정도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첫 이사는 회사 이전, 두 번째는 지민이의 학업을 위해서. 원체 지원을 아끼지 않는 아줌마라 익히 알고 있었지만 학업을 위해 이사를 했다는 지인은 박지민이 처음이라 속내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지민이는 공부 잘 하겠네. 능청맞은 엄마의 목소리가 박지민에게로 닿고 그럼 박지민은 아줌마와 같이 두 뺨을 상기시키더니 아니예요, 하며 손사레를 친다. 어렸을 때랑 바뀐 게 하나도 없네 얘는. 부끄러워 하는 거나 어른들 어려워 하는 거. 흘러가듯이 생각 난 기억에 푸스스, 미소를 머금은 게 아줌마 시선에 밟혔는지 아주머니는 익숙한 말투로 여주 웃는 거 봐, 너무 이쁘다. 그래 아줌마도 여전하셨다. 칭찬 하나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지. 그걸 꼭, 박지민은 닮았고.
응, 그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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