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 on the moon
감정선은 우리의 시선 위를 밟았고 미미하던 호수에 돌멩이가 던져진다.
구월의 보통 때와 같았으면 아침 이르게 일어나 체육복을 입은 채로 가방을 벌써 둘러맸을게 뻔했다. 수차례 울리던 알림을 대차게 끄고는 언젠가 눈을 떴을 때 시각은 오후 두 시. 수능이 100일도 남지 않은 수험생 치고는 지나치게 여유로웠고 심하게 늦장부렸다. 수시 결과는 아직이고 정시로 부리나케 달려나가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오늘은 다르다.
일어나자마자 확인한 연락은 지민이에게서 온 문자. 짤막하게 오후 다섯 시에 갈 것 같다는 소식이었다. 잠 든 새 몸부림에 한 쪽 수면 양말이 벗겨졌는지 왼발은 차가웠고 오른발은 땀에 쩔어있었다. 양말을 찾기에는 노곤한 상태라, 멍한 정신에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대충 물로 몸을 씻어내려가면 잠들었던 뇌 조각들이 하나씩 깨어나는 것 마냥, 반쯤 감겨졌던 눈꺼풀은 자리를 잡고.
딸, 지금 상태 웃긴 거 알지?
알다마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채로 일어났으면서 게다가 고삼인 주제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거라곤 지민이의 문자를 보고서 바로 샤워를 한다는 게 누구 눈에 안 웃기겠던가. 엄마의 말에 귀끝이 조금이라도 빨개지긴 했을까, 웬만한 일에는 부끄럼없이 굴었는데 얼굴이 후끈한 걸 보아 오늘은 좀 다르구나 싶다. 대충 말을 얼버무리고 엄마를 회피한다.
얼마나 푹 잤는지 한쪽 눈은 쌍꺼풀이 풀려버릴 만큼 퉁퉁 부어있었고 덜 씻긴 침자국을 소매로 벅벅 닦고는 어젯밤 냉장고에 넣어 뒀던 팩을 꺼내들곤 잽싸게 화장대 앞에 앉았다.
아니 근데 언제부터 지민이 좋아했어
어?
너 언제부터 지민이 좋아했냐구-
팩 비닐을 뜯던 손길이 엄마의 목소리에 멈췄다. 말 끝을 길게 늘리며 장난스럽게 묻는 말에 귀끝이 달아오른 것도 모른 채로 멍하게 거울 속을 찬찬히 뜯어본다. 머리카락은 방금 씻은 모습으로 축축한 수건에 싸여있었고 옷은 갈아입지도 않고 화장대 앞에 앉아있었다. 양 볼은 조금 후끈거렸고 귀는 빨간 홍시.
그제야 인식되는 모습에 찬 손으로 두 귀를 말아쥐고 엄마에게 톡 쏘아붙인다. 아 엄만 진짜! 깔깔대는 목소리 뒤로 방문이 닫기고 웃음소리가 작아진다. 작아진다, 작아진다.
화장대 위에서 밝게 빛나는 휴대폰 액정의 이름에 뒷통수를 두들겨 맞았다. 어제 저녁부터 꾸준히 연락을 씹어먹은 김태형이었다. 여러모로, 도움 안 되는 새끼였다. 여전히.
왜
야 너 내 전화 계속 씹을래??
쓸 데 없이 호들갑 떨 거 뻔하잖아
10년 우정 어디 갖다버렸냐? 섭하다 진짜…
웃기고 있네, 니가 섭하면 난 질질 짰게?
말넘심…!
그래서 왜 전화했냐니까? 나 바뻐.
박지민 만나냐?
음…
와 인성 지렸구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김태형의 목소리는 웬일로 축축하게 젖은 상태였다. 말투는 틱틱대는 게 언뜻 들으면 장난이 잔뜩 묻어있었지만 섭섭하다는 투가 가득한 거였다. 김태형의 전화를 고의는 아니래도 수시로 씹고있었던 것도 미안해 죽겠는데, 이것까지 거짓말을 해버리면 양심이란 놈이 죽어버릴 것만 같아서.
넌 학교 오면 나한테 디졌다 진짜!
야 미안 까먹었어 진짜로
아 됐어! 그게 젤 섭섭해! 절연이다 김여주
박지민이랑 너 얘기도 했어! 이거 진짜.
야 내가 그딴 걸로 화 풀릴 줄 아냐 넌 어떻게 된 애가 옛날이랑 하-나도 바뀐 게 없어, 애가 엉? 너 그래가지곤…
니 번호 박지민한테 알려줄 테니까 알아서 해. 끊는다.
박지민과 얘기를 나눴다는 말에 금세 화가 누그러들었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이미 알고있는 사실이기도 했고 어떻게 하면 김태형의 화를 돋우고 식힐지는 가장 잘 알고있으니까. 물론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사이는 침체됐고, 고등학교를 같이 진학하게 돼서 인사라도 하는 게 다행인 사이였지만. 나와 김태형의 사이엔 늘 박지민이 자리잡았다.
솔직한 말로 박지민이라는 매개체가 없으면 잘려버릴 인연이었다. 그 사이를 박지민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근근하게 이어주고 있었고 떨어질 것만 같던 나와 김태형을 붙인 게 박지민이다. 어릴 때와 다른 바 하나도 없이 우리 셋은 똑같은 포지션에서 늘.
야야 김여주! 야 끊으면 끝이… 김태형이 뭐라 하기는 했지만 종료 버튼을 가차없이 누른다. 이 정도론 삐지지 않을 거다. 걔는 배려할 줄 아는 애니까, 내 기분을 잘 알아줄 테니까. 학교서 인사하다 말고 딱밤 한 대 맞기만 하면 괜찮아진다. 우린 그런 사이니까. 서로를 배려하는 척 하면서 알고보면 가장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게 나와 김태형이었다. 괜한 생각을 가졌나, 착잡한 마음에 입술이 말라가고 그럼 나는 화장대 위에 있는 립밤을 입술에 바른다. 팩을 꺼내 얼굴에 붙이고 시간을 확인하고서 옷장 안에서 옷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생각을 야금야금 삼킨다. 야금야금. 아무 생각도 없이.
가을에 가까워지는 날짜였지만 아직은 해가 짧다. 화장까지 다 하고, 홍조가 아닌 화장으로 붉은 뺨은 해질녘과 같다. 가만히 침대에 앉아 창틀에 고개를 얹고,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면 구름의 움직임이 보인다. 발목까지 오는 흰 양말을 집안에서 신고있자니 발목을 먹혀버린 감이 없지않아 답답하기 그지없는데, 박지민은 언제 올까. 지난 번에 부모님께서 다녀오신 해외여행지에서 사 온 스위스 시계를 방 안에서 하고있자니 손목이 거슬리기 따름인데, 박지민이 탄 자가용은 언제 우리집에서 멈출까. 선선하게 부는 바람이 도시 비린내를 몰고 온다. 너는 어디쯤에 서있을까. 너도 이 해를 보고 있을까. 멀지 않은 곳에 이르게 떠버린 밝은 달을 보고 있을까.
침대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울린다. 소리와 함께 울리는 진동 덕에 침대로 잔잔하게 퍼지는 파장이 찌릿하다. 액정에 뜬 '박지민'이라는 이름은 날 향수에 빠지게 했다. 묵묵하게 액정을 손가락으로 밀어넘기면 은은하게 박지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서 뭐 해
밑이야?
응, 창문으로 니 얼굴 보인다
아 나도 보여
박지민의 목소리가 휴대폰 곁으로, 반대쪽 귀론 미미하게 육성이 들려왔다. 아줌마는 주차라도 하러 가신 건지 마트 비닐봉지를 들고있는 박지민이 오롯했다. 박지민이 서있는 담벼락 앞 가로등이 금세 켜지고, 아직 가시지 않은 저녁 노을에는 지민이가 올려다 보 고 있었다. 시선이 얽혔고 침 한 방울이라도 목으로 삼키면 그 소리가 저 아래까지 울려퍼질 것 같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 팔을 창틀에 대고 목을 밖으로 뺀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고 블라우스의 리본이 턱을 때렸다.
하나도 바뀐 게 없어 여주야
너도 그래, 너 한 눈에 알아봤어
여기는 여전히 별이 잘 보일 것 같다
별 보고 싶어?
아니, 내가 아니라 니가. 너 별 좋아했잖아. 지금도.
박지민은 그 말을 끝으로 귀에 갖다댔던 휴대폰을 내린다. 전화는 끊기지 않았고 내 휴대폰 너머론 바람 소리가 계속이다. 손을 흔들면 박지민은 미소를 머금고 똑같이 인사를 해줄 테고, 그럼 박지민은…
내가 그걸 어떻게 잊어 여주야.
끊기지 않은 휴대폰 너머로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휴대폰을 다시 귀에 갖다댄 네가 내 눈에 오롯하다. 함뿍 담긴 박지민의 모습은 수채화 같았고 난 기름이다. 둥둥 떠있는, 구름처럼 어디에 가있을지도 모르는 기름. 박지민이 마지막 말을 잇고는 통화를 끊었다. 수화기 너머론 뚜, 뚜-거리는 소리가 반복이고 나는 급하게 대문을 박차고 나선다. 너를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 암호닉 |
봄날, 땅위, 찡, 민트, 강낭콩, 먼지, 짐늬돈까스, 핑쿠릿 |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인사드리는 신도림 소매치기입니다.
man on the moon 시리즈는 세 편으로 완결을 달렸구요,
이런 저런 장면을 더 넣을까 하다가 이렇게 마무리해 버린 게 조금 아쉬운 감이 있는 첫작이었어요!
너무 부끄럽고 엉망진창인 글이라 삭제해 버릴까, 하다가 기다려주시는 여러분들께 무례한 행동이라...
긴 텀을 두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싸질러 놓은 글들이 많아서 다음 작도 꾸준히 나올 거구요! 여전히 텀은 길 것 같네요...
man on the moon이라는 제목은 john Lewis의 크라스마스 광고로 나온 영상에서 따온 거예요!
말이 길었네요, 음 일단 바로 차기작은 데리고 올 생각이구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background music list>
man on the moon - John Lewis
city of stars(humming) (Feat. Emma Stone) - Justin Hurwitz
All I want - Kodaline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현재글 [방탄소년단/박지민] man on the moon C 4
8년 전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방탄소년단/박지민] man on the moon C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2/13/2/8b0d24286c70feb5d7dc4c8a4619e712.gif)
20대 남연예인 중에 서인국 처럼 설레게 날티나게 생긴 사람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