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 왔습니다."
그날은 무슨 일인지 불안하고 초조했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도착한 집안. 세 명 사는 집치고는 크고 넓은 저택에 가끔 휑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무슨 일인지 그날은 그 느낌이 더 크게 와 닿았다. 오히려 휑하다는 느낌보다 싸하다는 느낌이 더 맞을지 모르겠다. 기분 탓이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며 어머니를 부르기 시작했다. 엄마 있어? 아무리 불러도 나타나지 않는 엄마의 모습에 전날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오르자 다급해진 마음에 문을 하나씩 여닫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제발, 제발... 자는 거라고 대답해 줘. 마지막 남은 문고리를 잡고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문을 열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마 나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문고리를 잡은 순간부터 아니,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순간부터.
"아... 아아..."
데롱데롱. 목에 밧줄을 두른 채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는 축 처진 엄마의 모습에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정국아, 엄마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여행을 갈지도 몰라.'
엄마는 그렇게 길고 긴 여행을 떠났다.
'정국아, 엄마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미안해.'
전날 무슨 이유인지 나를 끌어안고 펑펑 우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나는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고,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어머니의 팔을 꼭 잡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하는 듯 하얗게 물든 손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04.
어머니는 늘 그랬다. 어린 시절, 사춘기를 핑계로 어머니에게 스트레스를 풀 때도 친구와 치고받고 싸우고 왔을 때도 나의 행동을 나무라기는커녕 나를 걱정하고 나를 위로하고 사랑으로 보듬어 주셨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아버지는 반했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나에게는 한없이 엄하셔도 애처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어머니를 많이 사랑하셨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 항상 무표정으로 다니시던 아버지도 웃음꽃을 띄우셨으니... 어려서 사랑이라는 개념이 없었지만 그때 느낄 수 있었다. 많이 사랑하시는구나.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여린 손을 굳게 쥐고 결심했다. 나도 커서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하지만 그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마을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애처가로 유명했던 아버지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아버지가? 나는 그 소문들을 코웃음을 치며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그 소문이 생기고 나서부터 아버지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늘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 웃음꽃으로 가득했던 얼굴이 짜증과 귀찮음으로 번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여리고 여린 어머니의 몸에 상처라도 날까 조심스럽게 대했던 예전과 달리 거칠게 대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애꿎은 손톱만 물어뜯었다. 그저 헛소문이라고 치부되었던 소문의 진실이 서서히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후로 멍하니 창문만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버지는 그때 이후로 이 공간이 지긋지긋하다며 길면 한 달, 짧으면 일주일 동안 집을 안 들어오셨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창문 밖만 내려다보셨다. 그때 나는 어렸기에 그런 어머니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었다. 어느 날,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는 아빠를 사랑해?' 어머니는 말했다. '당연하지.' 난 그 대답에 다시 질문을 던졌다. '아빠는 엄마를 사랑해?' 그 질문에 어머니는 뭐라고 대답을 했더라. 잠시 망설이더니 웃으며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응, 많이 사랑하지...' 그때 어머니의 웃음에는 슬픔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어머니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어머니께서 아끼시던 꽃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해 메말라가고 있던 사이,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셨다. 중년의 여성과 함께.
**
사고만 치고 다니는 아이를 사랑으로 보살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한 살, 두 살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는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었고 어머니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책에 끄적였던 어린 시절과 달리 연필 대신 주먹을 쓰는 일이 더 많았고 학교, 집밖에 몰랐던 아이는 경찰서가 더 익숙해졌다.
유일하게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은 집에서 오래 일하셨던 아주머니뿐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나를 포기한 듯 학교도 다니지 않고 방황하는 나를 보고도 못 본 척하셨고, 새어머니라고 불리는 여자는 아버지 곁에서는 걱정하는 척, 뒤에서는 나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날도 옆 학교 아이들과 싸움이 났다며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지민의 연락으로 겉옷을 챙겨 대문 밖을 나가자 이름도 모를 한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아, 며칠 전부터 선생이며 반장이라며 떠들던 여자아이도 오더니. 귀찮다는 듯 나를 붙잡는 여자의 손을 거칠게 쳐내고 가려고 했으나,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는 뒤를 돌자 쓰러져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급하게 뛰어가 아이를 붙잡고 일으켰다. 야, 정신 차려. 제 말에도 아무 미동도 없는 여자의 모습에 잔잔하게 뛰던 심장이 그날과 같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정신 차려. 제발.
나는 미동도 없는 아이를 미친 사람처럼 이리저리 흔들다 와이셔츠 사이로 보이는 푸른 멍에 나도 모르게 흔들던 손을 멈추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기다리던 어머니의 몸에서도 푸른색이 가득했다.
언제부터 떨어지는 건지도 모를 물이 아이의 얼굴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 내가 울고 있었구나. 나는 그 사실을 자각하자 아이를 끌어안고 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목을 매단 채 나를 반기는 어머니가 아닌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나를 환하게 반기는 어머니의 모습이 꿈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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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분량은 매우매우 짧네요... 더 길게 쓰고 싶었는데 아직 글 쓰는 게 서툴러서 그런가 잘 안 써지고 그럽니다 ㅠ_ㅠ 글잡 작가님들 보면서 많이 배워야겠습니다...
아 암호닉 신청해 주시는 분들 계시는데 제가 정신이 없어서 정리를 못 했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암호닉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곘지만 ㅠㅠㅠㅠ 시간 날 때 정리해서 같이 올리겠습니다!
비루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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