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금 필수
"....."
"누구냐고 묻잖아."
"내가 그걸 왜 말해줘야해"
이민형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내려다봤다. 햇빛을 받은 눈동자가 갈색으로 밝게 빛났다.
3년 전 그 때, 서로에게 풋풋한 연정을 드러내 보였을 때도 우리는 이 자리에 서 있었다. 그때도 이른 봄이었다. 열 다섯살 사춘기 소년과 소녀는 춘기에 못내 겨워 꽃망울이 터지듯 그만 사랑을 고백해 버리고 말았다.
"좋아해."
이민형과 나는 같은 반 친구로 만나 급속도로 친해져 매일같이 등하교를 같이 했었다. 그 때 당시의 이민형은 밝고 항상 웃는 아이였다. 나를 마주하며 웃는 이민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 날도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우리는 학교가 끝난 뒤 조잘조잘 별 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어느덧 우리 집에 도착해 멈추어 섰다. 그러나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인사를 하고 돌아서야 했을 이민형이, 그 날 만큼은 나에게 빤히 눈을 맞추어 왔던 것이다.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마주보고 있었다.
미풍이 불어와 우리의 콧잔등을 간질였을 때에 우리는 놀랍게도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었다.
좋아해,라고.
어디선가 들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를 좋아해준다는 것은 기적과 다름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민형은 내게 봄의 기적, 여름의 첫사랑, 가을의 설렘, 그리고 겨울의 악몽이 되어 준 아이였다. 나의 기적, 나의 악몽.
소유욕
w. 고운새벽
열다섯 겨울, 민형의 부모가 이혼을 했고, 결정적으로 '그 일'이 있고 나서 민형은 한마디 언질도 없이 여주를 떠나 이사를 갔다. 옆동네 학교로 전학을 간 민형은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 때 처음 담배를 피워봤고,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도 마셔봤다. 민형의 어머니는 일에 미친 사람처럼 제 사업을 키워나가는 데에만 매진했으며 민형은 민형대로 집조차도 잘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민형은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다가 열여덟살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답지않게 손수 아침밥을 차려주던 어머니는 말했다. 재혼한다고. 그리고 그 사람의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될거라고 했다.
어머니는 겉보기에는 아름답고, 능력있는 사업가였다. 따라서 재혼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이야기였다. 자신을 추켜세우면서 은근히 물주 취급하는 학교 친구들에게 신물이 난 민형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며 쉽게 수긍했다.
이사 전부터 미리 전학수속을 밟은 민형은 새로운 고등학교에 갔고, 그사이 저와 비슷한 부류의 아이들 몇몇과 친해졌다.
애석하게도, 교실 반대편 자리에 여주가 앉아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처음 집에 들어서고, 여주를 마주했을 때 민형은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었다. 막장드라마도 아니고,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런데 몇 년만에 보는 여주는 그런 자신을 보고도 태연했다.
그러고는 민형에게 말을 건넸다. 몇 년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거실에서 담배는 피우지 말아줄래?"
담배 끄라는 여주의 첫 마디를 듣고, 민형은 입꼬리를 비뚤게 올렸다. 그러나, 그 내용이 어떻던지간에 오랜만에 들은 여주의 목소리에 그의 심장은 그 어느때보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민형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여주를 응시했다. 여주에게서 열다섯의 앳된 티는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민형은 일순간 무수한 감정이 끓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열다섯 겨울에, '그 일'이 있고 나서 여주에게 느꼈던 그 감정이. 몇 년간의 공백동안 사그라든 줄만 알았던 그것은 일순간 불처럼 빠르게 번져나갔다.
여주를 소유하고 싶었다.
민형은 뒤틀린 그의 감정을 어떻게든 승화시키려 했다. 그래서 여주에게 담배연기를 내뿜고, 친구들을 이용해서 여주를 학교에서 고립시켰다.
아무 근거도 없이, 일단 고립시키면 제 것이 되는 줄만 알았다.
아까 내가 그걸 왜 말해줘야 하냐며, 민형을 스치듯 밀치고서 집으로 들어간 여주는 한참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민형은 복잡한 마음에 여주의 방문 앞을 서성이다가, 때마침 걸려온 친구의 전화를 받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그날따라 친구의 드립에도 웃음이 나오질 않고, 미성년자 신분임에도 거리낌 없이 들이켰던 술도 들어가질 않는 것이었다. 민형은 결국 친구의 오만가지 험악한 욕설을 들으며 일찍 자리를 떴다.
그리고 돌아온, 평소대로라면 고요해야 했을 집에서 무언가 잔잔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에 이끌려 걸어간 어두침침한 거실에서는 오직 켜져있는 TV만이 희미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TV에서는 영화가 나오고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여주가 몸을 웅크린 채 잠이 들어 있었다. 민형은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딛었다. 여주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머리를 조심스레 들어올려 쿠션을 놓아준 뒤 민형은 한참을 그 앞에 우뚝 서 있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여주의 잠든 얼굴을 비추었다.
민형은 잠든 여주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한숨을 쉬며 마른 세수를 하고는 여주가 잠든 소파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여주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정리해 주었다. 드러난 목에 희미하지만 푸르스름한 멍자국이 보였다.
민형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여주의 목을 매만졌다.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여주는 이 작은 손길 하나에도 크게 놀랐었다. 그렇게 되길 바란 게 아니었는데.
여주의 목을 움켜쥐었던 그 놈은 민형에게 쉴새없이 얻어맞았음은 물론, 그가 여주에게 저지른 일에 대해 법을 들먹이니 지레 겁을 먹고 자취를 감추었다.
여주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찰나 여주가 몸을 뒤척였다. 민형이 화들짝 놀라 반쯤 손을 거두었을 때, 그의 손은 여주의 손에 의해 멈춰지고 말았다.
"......"
지금 이 상황을 들키면 여주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이 되기에 민형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여주의 짜증이 아닌 곤히 잠든 숨소리였다. 여주가 잠결에 제 손을 잡았다는 것을 확인한 민형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여주."
"......."
"여주야."
대답이 없었다. 곤히 잠든 모양이었다. 민형은 반쯤 충동적으로 여주의 이마에 제 입술을 포개었다.
그리고 무언가 소중한 것을 보듬듯 여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여주의 눈꺼풀이 조금씩 들어올려졌다.
정적이 흘렀다. 민형이 여주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멈추었고, 게슴츠레 뜨인 여주의 눈과 놀라서 커진 민형의 눈은 한참동안 서로를 마주했다. 여주는 비몽사몽해서 정신이 없었던 것인지, 그만 민형을 보고서 살폿 웃어보이고 말았다.
이후의 기억은 아지랑이 저편의 기억을 보는듯 흐릿하기만 하여 꿈인지 현실인지 가늠이 불가능했다.
다만 재차 소녀의 의중을 묻는듯 느리게 입술 근처를 배회하던 소년이 조심스럽게, 그리고 천천히 소녀에게 입을 맞춰오던 모습만은 서로의 기억에 어렴풋이 남게 되었다.
달과 별의 흐릿한 은빛으로 가득했던 입맞춤 뒤. 금세 다시 잠들어버린 여주 앞에 엎드려 팔에 얼굴을 묻은 채 배시시 웃던 민형은, 행여나 잡힌 손을 놓으면 여주가 깰까 봐 한참을 자리를 지키다가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그 자리를 떴다.
소유욕
w. 고운새벽
이상한 꿈을 꾸었다. 이민형이 내게 입을 맞춰왔는데, 꿈 속의 나는 그것에 너무도 행복해 하였다. 온 몸이 붕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꿈의 여파 때문인지 아직도 제멋대로 빠르게 뛰는 심장에 나는 서둘러 소파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올라갔다. 불편한 잠자리 탓인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기에, 학교가기 전까지는 충분히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져 있던 핸드폰에는 한 통의 문자가 와 있었다. 어제 저녁에 온 문자였다.
[여주야 벚꽃 피었대. 내일 학교 끝나고 보러 갈래?]
재현이었다. 알겠다고 문자를 보낸 뒤, 올해들어 거의 처음으로 화장대 앞에 앉아 보았다. 서투른 솜씨로 양볼과 입술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여주야! 여기."
학교를 마치고 나오니 재현이 계단 아래서 날 반겼다. 그의 차를 타고 도착한 공원에는 분홍빛 벚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무수한 벚꽃들 아래서 우리는 별 영양가 없지만 즐거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하염없이 걸었다.
간지러운 봄바람, 하늘을 뒤덮은 벚꽃과 그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이 만들어낸 오묘한 분홍빛깔로 가득찬 길. 끊임없이 들려오는, 나긋나긋한 재현의 목소리도 봄기운을 가득 머금은듯 부드러웠다. 꽤 넓은 공원 이곳저곳을 누비며 우리는 함께 많은 것을 보았고, 먹었고, 또 웃었다.
어느새 하늘이 붉은빛으로 물들어 갔다. 나는 공원 호수가 잘 보이는 곳 벤치에 자리를 잡았고, 저 멀리서 재현이 커다란 솜사탕을 들고 와 내 옆에 앉았다. 갑자기 찾아온 적막에 어색해져 그가 건넨 애꿎은 솜사탕만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자, 그 모습을 보고 살짝 웃어보인 재현이 입을 열었다.
"여주야."
너무나 가까이 붙어앉는 바람에 숨결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귓볼이 화끈거려서, 일부러 시선을 앞으로 고정했다. 호수에 반사된 노을빛이 금색으로 반짝였다.
"유학가고 적응 못해서 힘들었을 때, 제일 많이 떠오른 사람이 너였어. 어릴 때 너랑 놀던 기억까지 하나하나 전부, 생생히 기억났어."
재현은 그 후 한참을 뜸들이다가 말했다.
"다시 나한테 와줘서, 고마워."
마음 한켠이 간질간질했다. 머쓱하게 웃어보이며 어쩔 줄 몰라하다가 솜사탕을 들고있지 않은 반대쪽 손이 재현의 손과 짧게 스쳤는데, 살이 닿은 그 조그만 부위가 불에 덴듯 화끈거렸다. 당황해서 손을 빼려하자, 그런 나를 보며 웃음짓던 재현이 조심스레 자신의 큰 손으로 나의 손을 덮어왔다. 내 손이 따뜻한 살에 폭 감겨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내 재현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 사이사이에 들어와 깍지를 껴왔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너무나 빨리, 크게 뛰고있어 바로 옆에 앉은 재현에게 내 심장박동이 느껴지지는 않을까 걱정될 지경이었다. 얼굴에 열이 올라서 시선을 옆으로 돌렸는데, 피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새빨개진 그의 귀가 보였다.
의자 등받이가 요동치는 것만 같았다. 내 심장박동 하나만이 만들어내는 진동은 아닌 듯 하였다.
어릴 적의 우리는, 지금 이렇게 서로 손을 잡고 있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공원을 나와 재현의 차에 타기까지 우리는 계속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걸었다.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자 차 안에는 엔진이 만들어내는 작은 소음만이 울려퍼졌다. 재현은 머쓱한듯 작게 헛기침을 하더니, 라디오를 틀었다. 나긋나긋한 DJ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를 잠시, 봄 냄새 가득한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창문을 살짝 여니 바람이 재현의 향기를 품고 코끝을 간질여왔다. 금빛의 노을, 기분좋은 봄 노래, 바람에 부드럽게 흩날리는 내 머리카락.
시간이 멈추었으면, 바라게 될 정도로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집에 도착하자 어느새 해는 저물어 있었고, 재현은 오늘 하루 나랑 놀아주느라 수고 많았다고 웃으며 내 머리를 살포시 쓰다듬었다. 나 역시 재현에게 맑게 웃어보이고 차에서 내린 뒤 차가 아예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는 난생 처음 가벼운 발걸음으로, 답지않게 콧노래까지 부르며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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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고운새벽
그러나 하늘 저편까지 올라가있던 내 기분과는 달리, 나를 맞이한 것은 적막 속의 어두운 현관 복도였다. 갑작스레 몰려오는 피곤에 걸음걸이를 천천히 하며 당도한 거실에는 오렌지빛 스탠드 하나만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흰 반팔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이민형이 소파에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이 시간에 집에 있는 이민형이 낯설었다. 어젯밤 꿈 때문에 아침에 느꼈던 이상한 감정이 스멀스멀 몰려드는 것 같아, 나는 서둘러 욕실로 발걸음을 옮겨 샤워를 하고 나왔다. 노곤해진 나는 어서 빨리 침대에 눕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오늘 평소보다 많이 걸어서 그런지, 지난번에 괜한 오기로 유리조각 위에 올라섰을 때 베인 발바닥의 상처가 욱신거렸다.
"이여주"
그런데 뜬금없이, 잠든 줄만 알았던 이민형이 나를 불러세울 것은 뭔가. 무시하고 계단을 올랐다.
"이리 와"
잠에서 깬지 얼마 안 된건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그리고 묘하게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소파를 내려다봤다. 이민형은 한쪽 팔을 제 얼굴 위에 얹은 채, 얼른. 하며 나를 재촉했다.
발걸음이 쉬이 떼어지질 않았다.
사담 (+ 암호닉정리) |
음.. 여러분 일단 저를 매우 치세요...! 너무 오랜시간 오지 않았죠.. 정말 죄송해요ㅠㅠㅠㅠ NCT 독방에 가끔씩 소유욕 언급되는 거, 그리고 글 올린지 무척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계속 달려오는 댓글들을 보면서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심심한 변명을 하자면 일단 3~5편 내외를 생각했던 소유욕 스토리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서 큰 틀 자체를 갈아엎느라 세부적인 에피소드를 작성할 겨를이 없었구요.. 그리고 현생에 이리저리 치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정도입니다. 입이 두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ㅇ<-<
또,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암호닉을 신청해 주셔서 너무 감동이고 감사해요. 가나다순으로 정리해 두었으니 혹시나 누락되거나 오타난 분들은 꼭! 댓글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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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1234/290/고등마크/곰귤/공백/공팔공이/구구마크/귀찌/까불이/깔깔맨/깨/꼬르륵/꾸꾸/뀨뀨/달탤/도룽/도리/딸기/뚜듄/뚜뚜/뚜잇뚜잇츄/마꾸/만덕이/맠횽/맹/무민/민형맘/벚꽃/봉식/붐붐파우/블라썸/빵재니/뽀삐/뿜뿜이/뿡빵/세로/숭/숭아재현/쏠직히오바/안돼/애슐리/엘모/오월/우갹/이주☆/재현과윤호사이/캐내디언/코든캔디/토토로/투민형/트레이드마크/포뇨/플라밍고/피톤치드/핑키/핫초코/햇찬아사랑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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