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모음집 1 [뇽토리] 13일의 금요일 과 이어집니다. --- 8시 즈음에 만나기로 했었나? 그래, 그랬나보다. 그런데 과연 권지용이 약속을 잘 지킬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저번에도 그랬고, 저저번에도 그랬고, 꽤 오래전 부터 그래왔는데 오늘이라고 그러지 않을리가. 고뇌 끝에 벽을 흘끗 쳐다보니 어느새 시계는 7시 30분을 가르키고 있었고 나는 문 밖을 걸어 나사고 있었다. 카페에 도착하자 8시 5분. 당연한건지 이 권지용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장난해? 분노의 손가락질을 하며 번호를 눌렀다. 50번은 통화한 것만 같아 확인해 보니 43번. 분침은 10을 넘어간지 오래였다. 한 번 더 전화를 해 볼까 망설였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차라리 이 시간에 권지용 집까지 걸어가는게 더 일찍 만날수 있겠네. 그런 생각에 카페 주인에게 다시 오겠다고 말한 뒤 나왔다. 여기서 가까우니까.. 걸어가면 한 십분 걸리려나? 아 맞다. 형네 집 앞 거리에 벚꽃 진짜 이쁘던데. 나중에 같이 구경하러 가자고 해야겠다. 마침 오늘 바람도 선선하고. 뭔가 잘 될것 같아 웃었다. 이제 이 횡단보도만 건너면 형 집까지 5분거리다. 그런 생각에 고개를 들어보니 바쁘게 준비한 티가 역력한 권지용이 보였다. 어라, 언제 일어났지? 생각하는데 아무렇지 않게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바보야, 아무리 차가 없어도 빨간불이잖... 끼이익! 그때였다. 눈 먼 트럭이 달려와 형을 쳤다. 형은 트럭에 치여 저 멀리 날아갔다. 곧 사람들이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 무슨 일이야?' '아가, 너도 절대 빨간불에 건너지 마려무나.' '에이, 아침부터 재수가 없을려니까!' '죽었어?' '죽었겠지. 날아간거 안보여?' '하긴, 그런가?' 곧 횡단보도의 하얗던 부분이 새빨간 색깔로 물들었다. 새빨갛다. 소름이 끼쳐. 당연하지, 그건 사람의 피잖아. 피? 저게 피인가? 누구의피? 권지용의 피지. 뭘 당연한걸 물어. 권지용? 걔가 누군데? 세상에, 이런 둘도 없는 바보를 보았나. 네 애인이잖아. 이승현의 애인, 권지용. 그제야 실감이 났다. 권지용이 차애 치였다는 것이. 둥글게 모인 인파를 헤집고 들어갔다. 투둑, 핸드폰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이거 떨어뜨리셨는데.' '그걸로 119에 신고나 좀 해주세요. 바빠요. 너무 바빠서..' 눈물이 날것만 같아요. 급히 권지용에게 다가가니 권지용의 눈은 부릅떠져 있었다. 무서울법도 한데 그걸 느끼지 못하고 계속 오열했다. 왜, 왜 권지용이여야만 해? 다른 사람이라면 안돼는거야? 하다못해 나여도 안돼는거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차가운 손을 잡으니 피가 질척질척 하였다. 그의 얼굴을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더듬어보았다. 형, 형. 죽지마, 죽지마 형. 어느 순간 눈 앞이 캄캄해지더니 그대로 눈이 감겼다. 내가 죽더라도, 권지용을 살리고 싶다. 눈을 떴다. 소름 끼치는 꿈을 꿨었다. 그가 차에 치여 죽는. 하하 뭐 그런 거지같은 꿈이 다 있어? 액땜이려니 생각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익숙한 카페 안이다. 꿈 속에서 그를 기다릴 때 있던 곳인데. 설마 그 꿈이 진짜겠어? 웃으려 했지만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누군가 '바보'라고 내게 속삭여 오는것만 같았다. 혹시 하는 마음에 핸드폰의 시계를 보니 8시 47분. 내가 형에게 걸었던 통화 횟수는 43번.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카페 안을 박차고 뛰어나왔다. 안돼, 꿈이랑 너무 비슷하잖아. 결말까지 같으면 어떡해? 재수 없는 생각은 하지도 않는 것이라 그는 누누이 내게 말해왔지만 꿈이라 치부하기엔 너무 생생했다. 싫어. 그의 집 쪽으로 뛰어갔다. 한참을 뛰었을까.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그 꿈 속 횡단보도에 도착했다. 저 멀리 트럭이 달려 오는 것이 보였다. 재빨리 그를 보았다. 내 불안한 표정에 놀란건지 그가 눈 먼 트럭을 보지 못하고 걸어 오는것이 보였다. 그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뛰어들었다. 빠아앙-기적소리와 함께 아픔을 예상하고 눈을 감았다. 나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하는 마음에 꼭 감았던 눈을 뜨고 옆을 보니 그가 소름끼치는 붉음으로 색칠되어진 채 날 감싸안고 있었다. 싫다. 이게 아닌데. 그는 다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왜지? 뭐가 잘못된건지 잘 모르겠다. 한가지 확실한건 그가 다시 다쳤다는 점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이게 아니야. 이게 꿈이 아니란걸 알아차린지는 오래였다. 한번만 더, 한번만 더 돌아간다면 그를 구할 수 있을거야. 그런 아찔하고도 위험한 생각과 함께 눈이 감겼다. 벌써 세번째다. 눈이 뜨이자마자 핸드폰을 확인할 새도 없이 가게를 박차고 나왔다.달려가는 사이 핸드폰을 보았다. 8시 55분이다. 혹시나 하여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여전히 받질 않는다. 핸드폰을 거칠게 주머니에 넣었다. 다시 그 횡단보도로 왔다. 본능적으로 이번이 마지막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정을 가다듬었다. 만약 다시라도 그가 내 불안한 표정을 보고 뛰어들면 안되었기에.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때 나는 어떤 표정이었더라, 이런 표정이었나? 아마 그랬을거야. 그랬으리라 믿으며 호흡울 가다듬고 미쳐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을 숨겼다. 드디어 신호등에 도착하였다. 형의 얼굴이 보인다. 잠시 안도감이 들었지만 그가 또다시 건너려 하는 모습이 보이자 건너면 안돼, 그런 다급한 생각과 함께 그를 보았다. 그는 건너려 하다가 잠시 멈칫, 하고는 멋쩍은 듯이 고개를 돌렸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해 아쉬웠다. 이제 내가 우연히 차에 치이면 끝난다. 걸어가야겠지? 아니야, 혹시라도 내가 두려워서 머뭇거리면 어떡해. 고민을 하는 사이 신호는 바뀌어버렸다. 그래, 뛰자. 뛰었고, 트럭은 달려왔고, 마치 뭐에라도 잡힌듯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눈을 돌려 그가 있는쪽을 본 순간, 온 몸이 산산조각 나는듯한 고통과 함께 붉은 핏빛이 눈 앞에 새빨갛게 칠해졌다. 이런 고통을 권지용은 두번이나 겪은거야? 미안해, 하지만 이제 되었다. 그를 살렸어. 권지용을, 내가 사랑하는 우리 형을 살렸다. 이제 그가 다신 이리 고통을 받을 리는 없을 것이다. 의식이 흐려지는 듯 하였다. 그를 살리면 끝일것이라 생각하였는데 자꾸만 드는 욕심에 살고싶었고 그의 모습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눈을 깜박이는 텀이 길어지는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형, 마지막까지 울면 어떡해. 웃는 모습좀 보여주지. 눈을 뜨는게 힘들었지만 애써 뜨고 눈을 마주쳤다. 나라도 웃어야지, 어쩌겠어. 입꼬리를 올렸다. 마지막 내 모습이 우는 모습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형, 웃어줘요. 그렇게 울면 슬프잖아요. 울지 말아요. 나를 위해 한번만 웃어줘요. 그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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