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상은 당신의 허락 없이 사랑하고 미워하고 ”
내 상처만큼만 사랑 했더라 (이찬우 作) - 봄밤 中
惡女日記 : 악녀일기 00
“ 막내야 오늘 회식 갈 거지? ”
선배의 물음에 입가에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네 라는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나였다. 이번 달도 이렇게 끝이구나 하는 상쾌함 하지만 끝 또한 이 지긋지긋한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될 생각에 아파오는 머리를 부여잡고 몇 분 남지 않은 생방송 마무리에 여념이 없는 6개월 차 라디오 막내 작가의 삶이었다.
“ 수고하셨습니다 - ”
항상 웃는 얼굴을 하며 방송이 끝나자마자 저 답답한 라디오 부스에서 나와 밝게 인사하는 그였다. 내가 저 얼굴 보려고 여기서 비위 맞춰가며 커피타기 시작하며 사주에 없는 방송국까지 들어와 이 짓을 하고 있지 하면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말없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반면 그는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만.
“ 재현아 오늘 우리 회식할건데, 올 생각 없어? ”
그 앞에서만은 누구보다 천사 같은 미소를 짓는 호랑이 피디님의 물음에 내심 나도 기대되는 마음에 슬쩍 뒤를 돌아 그를 응시했다. 하지만 그는 애써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죄송하다고 다음번에는 꼭 참석하겠다고 꾸벅 인사를 하고는 늘 같은 모습으로 서둘러 부스를 벗어났다. 그의 공과 사는 누구보다 확실했고, 그 누구에게도 한 치의 틈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이 나의 환상과 한 치의 오차도 벗어나지 않아서 그래서 더욱 닿지 못할 그를 놓을 수 없는 이유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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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없는 무미건조한 회식 자리는 술이 함께하자 곧 선배들의 무용담으로 이어졌고 들었던 얘기를 몇 번이고 또 들으며 처음 듣는 것처럼 리액션을 더해가는 나였다. 이게 곧 사회생활이라며 자기 세뇌를 하다 지쳐 전화 핑계를 대며 음식점 밖으로 찬바람을 쐬러 나왔다.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3시, 지나치게 시끄럽던 거리에는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었으며 즐비하게 이어진 가로등 사이에서 한 불빛만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기왕 나온 거 술 냄새가 진동하는 저 곳에 다시 들어가기는 싫고 밤공기는 찬 게 괜히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라 가로등 밑 벤치에 앉아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의 노래를 재생했다.
‘ 가끔은 난 두려워져요
너무도 아름다운 그대의 미소가- ’
역시 언제 들어도 기분 좋게 만드는 그의 목소리에 미소를 지으며 괜히 내가 그리는 그와 나의 미래를 상상해본다. 그냥 그는 그런 존재였다. 나만 알고 싶은 내 보물이자 내 가수, 내가 가장 오랜 시간 꾸준히 좋아하는 연예인, 안식처가 필요할 때 얼굴만 봐도 피로가 풀리는 그런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을 보며 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그의 생각에 잠겨있던 그 때 가로등 밑에서 한 남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림자만 봐도 둘 다 술에 엄청 취한 모습, 그리고 취한 와중에도 남자가 여자를 엄청나게 아끼는 듯한 모습. 괜히 보이는 그들의 실루엣이 나도 모르게 설레서 한참을 응시하고 있었다. 곧 그들은 분위기에 휩쓸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듯 격정적인 입맞춤을 했고 나는 괜시리 화끈거리는 탓에 고개를 돌렸다.
노래가 끝나갈 때쯤 슬슬 일어나서 들어가려고 걷고 있는데, 아까 그 격정적인 입맞춤을 하던 커플과 부딪혔다. 괜히 눈 마주치면 민망할까봐 땅 보고 걸었는데 부딪히다니 일단은 사과를 해야겠다 싶어 귀에 꽂은 이어폰을 빼며 고개를 들었는데, 정재현이다.
“ 저기요, 앞 좀 보고 다니세요. 병신이야 뭐야 ”
취기가 잔뜩 오른 채로 한 손에는 그 여자의 손에 깍지를 쥔 채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내뱉는 그가 나에게 처음으로 건넨 말 한마디. 가까이서 보니 딱 봐도 클럽에서나 마주칠만한 짙은 화장과 헤진 옷을 입고 있는 나와는 너무나도 정반대인 여자와 함께 지나가버린 그였다.
어쩌면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게 아니라 애초에 나를 몰랐던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블현듯 지나갔다. 그와의 직접적인 접촉이 있는 자리에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라디오의 시작이 아닌 중간에 투입된 나로서는 모든 것이 새로웠기 때문에 선배들의 커피 타기나 청취자의 사연을 모아서 컴퓨터로 전달하는 정도만 해왔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 그의 범주 안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아니었구나. 그는 내 이름은 커녕 내 생김새 조차 기억하지도 못하는구나. 억울하듯 밀려오는 회의감에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이 기분으로 뭘 하겠나 싶어 내가 자취하는 걸 아는 선배에게 어머니가 보고싶다는 터무니 없는 핑계를 대고 무작정 걸었다. 행선지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이 감정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가 이런 식으로 예고도 없이 내 안에서 무너지는 것을 나는 원치 않았다. 내가 그리던 그는 이게 아닌데 너는 한 마디로 그동안의 내 환상을 처참히 부수고 갔다. 내 눈앞에 보였던 네가 너무나 완벽해서 또 완벽함이 너무나 선명해서 널 굳게 믿었던 나였는데 이제 와보면 너도 똑같은 사람이구나 싶어 괜히 웃음이 나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이제 나도 굳이 뒤에서 멍청하게 바라보는 호구 같은 짓은 그만하기로 했다. 네가 오늘 내게 보인 틈이 얼마나 큰 틈인지. 부디 네가 오늘의 나를 기억하지 못하길. 예전의 나를 기억하지 못 하길 간절히 빌면서.
2017. 04. 09. AM 1:55
필력 능력치 0 자까의 한풀이 |
안녕하세요 회원님들... 똥글로 처음 도전해 본 짝사랑 글입니다... 재현이가 여러 글에서 짝사랑만 하는 찌통을 겪고 있길래 여주가 재현이를 미친듯이 앓는 글을 쪄왔어요!! 맘에 드실 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0 (개소리) 아 저의 필명은 '캐롤라인'인데 별 뜻 없어요... 그냥 재혀니가 좋아하는 노래제목... < 재현 왜 그런 노래 좋아해요? 피드백은 항상 받을게요 ♥
아 그리고 등장인물이 한 명 더 있다는 놀라운 사실 ! 질문은 댓글로 달아주시면 답글로 쏘겠습니다 하트 뿅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