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연은 택운의 편지를 받자마자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고 교무실에서 뛰어 나갔다. 학연은 너무 들뜬 마음에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피다 편지를 뜯었다.
학연은 먼저 한 두번 심호흡을 하곤 눈으로 한줄 한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학연의 예상과는 달리 작은 하늘색 편지지에 써있던 택운의 글씨체는 수업시간에 칠판에
필기를 하던 정택운 선생님, 국어 선생님일때의 글씨체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칠판엔 각지고, 딱딱한 느낌이었다면, 편지지위엔 악보를 그리듯이 둥글고,
귀여운 글씨체였다. 택운의 망설이는 듯한 말투에 학연은 가슴이 벅찼다. 꽤 짧지만 택운의 마음이 들어갔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학연이었다.
수업시간 종이치고, 학연은 서둘러 바지 주머니에 꼬깃꼬깃 편지를 접어 넣었다. 아무도 못보게, 자신만 볼수있게.
**
"벌써 4월이네."
"아, 앞으로 한 편의 시를 매달 뒤에 붙혀둘 테니까, 많이 읽어보고."
"오늘은 종례 일찍 끝내줄게."
"청소는 큰 쓰레기만 줍고 끝내자."
"그럼, 반장 인사."
"모두 차렷-"
"선생님께 경례."
"사랑합니다, 선생님."
대다수가 수능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고, 몇몇은 좌절을 느낄 4월이 되었다. 택운은 얕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작게 끄덕이곤 출석부 사이에 껴놓은 코팅된 종이를 꺼냈다. 아이들의 청소검사를 마치고 모두가 나갈 때 쯤, 택운은 교실의 뒤편으로 가 유일하게 텅 빈 게시판에 코팅된 것을 압정으로 고정을 시켰다.
택운은 꽤 맘에 들었는지 작게 웃곤 교실의 불을 끄고 나갔다. 택운이 떠난 그 교실엔, 다시 불이 켜졌다. 학연은 택운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몰래 다시 들어가 택운이 붙인 코팅지 바로 밑 작은 틈 사이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보일듯 말듯한 글씨는 학연의 마음에 들게 하였다. 학연은 다시 교실을 빠져나갔고,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소름이 끼칠수도 있을 만한 정적에 학연은 계단 내려가는 속도를 올렸고 결국 맨 마지막 한칸을 뛰어 내리다 넘어지고야 말았다.
"으, 아파-"
학연은 결국 발목을 접질렀고, 일어서지 못한채 한참을 앉아있어야 했다.
핸드폰을 키고 택운에게 전화를 걸자 몇번의 신호음이 가고, 다행이 택운이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왜, 학연아-"
"그게요.. 지금 학교세요?'
"응, 무슨일 있니?"
"제가, 계단에서 넘어졌는데 못일어나겠어요-"
"지금 어디야, 바로 갈게. 아파도 조금만 참고있어."
택운은 자신에게 전화를 건 학연의 망설이는 듯한 목소리에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학연은 계단에서 넘어진 상태였고, 발목을 접지른 듯 싶었다. 택운은 하던 일을 멈춘 채 학연을 찾아갔다. 택운이 학연이 말한 곳에 거의 다 왔을 때 쯤, 한 소년이 앉아 고개를 숙이고 계단에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그 소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택운은 숨을 가다듬고 말 없이 그 소년, 학연의 앞에 주저앉았다. 학연은 인기척이느껴지자 손가락 사이를 넓혀갔다. 틈새 사이로 택운이 보이자 학연은 웃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학연만 가지고 있는 특유의 눈웃음은 택운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고, 학연은 이런 자신을 받아주는 택운이 좋았다.
"여기, 야?"
"아읏, 진, 진짜 너무 아파요."
"이젠 일어나지도 못하겠어요."
"엄마가 집에 빨리 오라고 했는데."
"어떡해요-"
택운이 학연의 접지른 부분을 만지자 학연은 짧게 신음했다. 점점 부어오르는 듯한 다리에 학연은 눈물이 찔끔 나왔고, 눈가에 맺히려 하는 눈물을 닦기에 바빴다.
택운은 곧장 자신이 입고있던 얇은 검은색 가디건을 벗어 학연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그러자 학연은 바닥에서 일어난 택운을 올려다보았다.
"선생님, 어디가세요?"
"저 두고 가시는 거에요?"
"아니, 너 데려다주게."
"네? 선생님 그 땐, 버스 타셨잖아요-"
"요즘은 차타고 다녀, 보건선생님이랑 같이."
"근데 오늘은 보건선생님이 먼저가셨네."
"아가, 조금만 기다려, 빨리 올게."
택운은 학연이 안심되게 작게 미소를 보였다. 학연은 택운이 일어나자 겁을 먹은 표정으로. 다급하게 택운을 잡았다.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서 떨어지기 싫어하는 것 처럼. 학연은 택운이 자신에게서 멀리 떠나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택운이 자신을 데려다준다는 것에 대해 기대하는
학연이었다. 택운은 학연이 걱정되어 발걸음을 재촉했고, 하던 일을 가방에 넣고 바로 나왔다. 택운은 셔츠 소매를 걷어올렸다.
답답했던지 목의 단추도 하나 풀었다. 풀린 단추 사이로 택운의 하얀 피부가 보이고 있었다.
택운은 학연에게 달려가 학연의 앞에 앉았고, 등을 내주었다.
"자- 업혀."
"저, 이래뵈도 남자여서 무거운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으니까, 빨리 업혀-"
학연은 주저하다 택운의 목에 손을 둘렀고, 넓은 등에 업혔다. 아무 말 없이 택운의 차로 가는 데, 택운의 옷에서 나는 향이 학연의 눈 앞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아무냄새도 안나거나, 혹은 짙고 독한 향수를 뿌릴 것만 같았던 택운은 은은한 향을 좋아했고, 항상 같은 것을 뿌리고 다녔다. 학연은 택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소리없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 때, 조용하던 적막을 깨고 택운이 무언가를 말 할 것이 있는지 입을 떼려고 했다. 그에 놀란 학연은 택운의 귀에 숨을 내밷었다.
학연의 뜨거운 숨결에 반응 해 잠깐 움찔 몸이 떨린 택운은 얼굴이 붉어져버렸다. 학연이 택운이 가지고 있던 감각을 자극해버린 것이다.
택운이 재환과의 사건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자극이었다.
"여, 연아."
"네?"
학연은 자신이 숨을 너무 많이, 대놓고 들이마신것에 대해 택운이 뭐라 할까 걱정을 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숨을 쉬어야 했는지에 대해 자신도 이해가 안되던 참이었다. 잔뜩 긴장한 학연은 고개를 숙이곤 눈을 감았고, 뜨지를 못했다.
택운의 차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택운은 다시 입을 열었다.
"연아, 타야지."
"자는거야?"
"...아니요-"
"자, 여기 앉아, 다리 조심하고."
학연은 가슴을 졸이다 자신을 혼내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곤 다시 웃을 수 있었다. 택운은 뒷자리에 학연을 조심스럽게 앉히고 문을 닫았다.
택운의 차 안은 깨끗하고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은은하게 커피향도 맴돌았다. 뭔가 뻘쭘한 기분에 학연은 이리저리 눈을 돌리다 ,편지가 생각나 말을 꺼냈다.
"선생님, 편지 완전 잘 읽었어요!"
"정말 답장을 보내주실 줄은 몰랐어요."
"네가 좋으면 다행이네."
"이번달에 또 보내드릴게요, 기대하고 계세요!"
택운은 시동을 걸었고, 부드럽게 학교를 빠져나갔다. 학연은 멍하니 해가 져 깜깜한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는 학연을 이상하게 여긴 택운은
신호가 바뀌어 멈췄을 때, 뒤를 돌아보았다. 학연은 그것도 모른채 넋이 나간듯 밖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때 어디선가 진동이 울렸고,
택운은 곧장 전화를 받았다. 학연이 갑자기 들리는 나긋나긋한 택운의 목소리에 시선을 택운에게 돌렸다. 통화중인 택운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고,
얼굴엔 핏기가 없어지고 있었다. 전화를 받고 한마디도 않던 택운은 배터리를 빼고 옆좌석에 핸드폰을 던졌다. 택운은 화를 잘 내지 않는 선생님으로 유명했는데,
저렇게 변한 택운의 모습은 학연을 놀래키기엔 충분했다. 학연은 기분이 안 좋아보이는 택운에게 말을 걸었다. 학연과 말하면 항상 웃어주는 다정한 선생님이었으니까.
"저, 선생님?"
"..왜, 불렀어-"
"그냥, 좀 기분이 안 좋아 보이셔서요."
"아 맞다, 이번 달 부터 뒤에 시 붙여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어떤 시에요?"
"알려줄까, 말까."
"알려주세요, 네?"
"아님 힌트라도요!"
"그럴까? 음, 이 시를 쓰신 분은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셔."
"누군지, 알겠어?"
"음..그 분 정씨죠, 맞아요?"
"오, 그럼 누군지 아는 건가?"
"맞구나, 저도 그 분 되게 좋아해요!"
"선생님이랑 저랑 되게 비슷한 거 같지 않아요?"
학연은 반쯤 일어난 자세로 택운의 표정이 풀리는지, 아닌지 자세히 보며 말을 했다. 물론 학연은 택운이 어떤 시를 걸었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연히 알게된 척을 하여 택운의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학연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담임선생님, 택운이 자신때문에 행복해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시간이 흘러 학연이 살고있는 아파트에 도착하자, 택운은 차를 주차시키고 뒷좌석에 있는 학연을 다시 업었다. 학연은 저 무거운데, 하며 택운에게 장난을 쳤고,
택운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웃을 뿐이었다. 1층에서 학연을 기다리던 학연의 어머니를 본 택운은 학연의 어머니와 함께 집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어머, 학연이 담임선생님 아니세요?"
"예, 연이가 다리를 접지른거 같아서요, 걸을 수가 없다 해서요."
"제가 데리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으이구, 어쩌다 이렇게 된거야 학연아,"
"그냥 넘어졌어, 크게 걱정하지마요 엄마."
"선생님,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맞아요, 너무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오신김에 차라도 한잔 드릴까요?"
"아뇨, 전 가봐야해서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택운은 인사를 하고 학연의 집에서 나왔다. 머쓱한지 뒷머리를 만지작거리던 택운은 집에 도착하자 씻고 바로 침대에 앉았다.
머리를 털며 침대헤드에 기대곤 핸드폰을 켰다. 택운의 핸드폰엔 재환의 번호가 부재중통화로 가득했고, 그 중 한 통의 문자를 발견했다. 학연의 문자였다.
[담임쌤께♥]
선생님오늘은감사했어요ㅜㅠ
오늘있었던일은잊지않을게요ㅎㅎㅎㅎㅎ
진짜사랑해요@.@!!
**
다음 날, 택운의 교실에선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택운이 조례를 하러 들어간 순간, 모든 아이들은 수군수군 곳곳에서 떠들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평소처럼 행동하던 택운은 한 아이의 말에 웃음이 터질 수 밖에 없었다.
"선생님, 누가 저기 시 아래에다 뭐라 써놨어요-"
"뭔데?"
평소 택운은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 젊고, 키도 훤칠해서 많은 학생들의 짝사랑하는 대상이 되곤 했다.
이번 학교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고에서도 한 두번이 아니었고, 지금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학생이 있어 그런지 더 심하게 그러는 것은 있었다. 아이들의 말을 따라 뒤로 가보니, 초성으로 무언가가 써있었다.
"ㅎㅇ♥택운"
**
5월이 되기 이틀 전, 택운의 책상 위엔 한장의 편지가 놓여져 있었다. 택운은 내심 학연이 언제 보내는지를 기다리고 있었고, 4월 중순이 되도 편지가 오지 않자 결국 학연이 잊은 줄로만 알았다. 학연이 놓고 간 노란색의 편지 옆엔 커피우유가 자리잡고 있었다. 택운은 주위를 살피고 편지를 가방 속에 넣었다.
한 두분을 제외한 모든 선생님들이 수업을 하러 나가자, 택운은 그제서야 편지를 펼쳐봤다. 지난 달, 3월의 편지와는 좀 다르게 그림까지 그려져있었다. 택운의 수업하는 모습이었다. 그때에서야 택운은 학연이 최근 수업시간에 수업은 안 듣고 뭘 했는지에 대해 알게되었다.
[담임 선생님♥]
선생님 안녕하세요!
편지 많이 기다리셨죠!
죄송해요ㅠㅠ♥
근데 앞으로는 이 쯤에 보낼거 같아요.
선생님이 뒤에 붙여주신 글은 잘 봤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걸 어떻게 아셨어요..!
아, 그리고 여기 그린 건 선생님이에요!
그렇게 잘 그리진 못했지만 되게 열심히 그린거니까 잘 봐주셨으면 좋겠어요^_^
(물론 선생님은 실물이 훨씬 잘생기셨어요!)
저 다리 다쳤을 때, 도와주신거 너무 감사해요♥
엄마가 선생님이 너무 좋으시대요.. 그래서 저보고 말 잘들으라고 하셨어요.
암튼 저 다리도 다 나았으니까, 걱정 안하셔도 되요!
음..그것보다 제일 중요한거는 뭐냐면요 커피우유에요.
선생님이 뭐 좋아하실지 몰라서 골랐는데, 힘드실 때 드세요!! 아무도 주지말고요.
그럼 답장 기대할게요!!♥
선생님 사랑해요@.@
**
[학연이에게.]
안녕, 편지는 고마웠어.
정말 잘 그렸더라, 선생님보다 훨씬 멋있게 나왔더라!
선생님이 학연이 한테 할 말이 있었는데, 아이들 앞에선 얘기 할 수가 없었어. 그.. 뒤에 붙인 시 아래 ㅎㅇ♥택운 말이야,
연이, 너가 한거지! 선생님은 왠지 알거 같더라. 우리반에 하연이, 혜윤이 , 너밖엔 없잖아. 연아, 네 마음은 잘 알거같다. 왜냐면,선생님도 학연이만할때
존경하던 여자 선생님이 계셨었거든. 그 분 덕분에 지금 이렇게 네게 편지도 보낼 수 있게 됬어. 아무튼 선생님과 같은 시인을 좋아한다는게 너무 신기하네,
커피우유는 잘 마실게.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너무 궁금하다. 선생님도 답례로 네가 좋아할거 같은걸 넣었어, 이거먹고 조금만 더 힘내서 공부하자.
항상 학연이한테 너무 고마운 정택운 선생님이.
**
4월의 마지막날, 학교에 오자마자 열어본 학연의 사물함 속에는 편지가 들어있었다. 학연은 손으로 입을 막고 놀란 채로 한참을 서있었다.
그러곤 편지를 갖고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칸 안에 들어가 조심스럽게 봉투를 뜯는데, 갑자기 뭔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택운이 직접 만들고 포장까지 한 쿠키였다. 바닥에 떨어져 쪼개진 쿠키를 본 학연은 주저앉아 포장지를 후후 불어 주머니 안에 넣었다.
편지를 읽으면서 웃음이 떠나가지 않는 학연이었다.
**
4월의 시
너에게
정호승
겨울비 오는 날
나는 너의 빈 손을 잡고
너의 우산이 되고 싶었다.
겨울비 내리는 사막 위를 걸으며
나는 한 송이
너의 들국화를 피우고 싶었다.
오직 살아야 한다고
차가운 담벼락에 기대 서서
홀로 울던 너의 흰 그림자
낙엽은 썩어서 너를 찾는데
너는 지금 어느 길
어느 하늘 아래를 걷고 있는가
나는 오늘도 바람 부는 들녘에 서서
사라지지 않는
너의 지평선이 되고 싶었다.
제 글읽어주시고 댓글달아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그럼.. 내년에 만나요!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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