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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후 간혹 그에게서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선배 저 오늘 점심약속 있어요.” 내 말에 그는 잠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같이 점심 못먹는다구요!” 웃으며 그의 볼을 꾸욱 쥐자 그가 내 손을 잡아챘다. 그리고 아주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누구랑?” 그에게 장난을 걸던 내가 무안해질만큼 그는 마치 다른세계에서 다른 분위기의 다른말을 듣고 온 듯 화가 단단히 났다. “동원씨..” 나는 그가 가끔 화가났을 때 그의 이름을 불러주며 달래주곤했다. 그는 내 부름에도 아랑곳 않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재차 물었다. “누구랑 먹는건데?” 그는 입꼬리를 비틀어 살짝 웃었다. 다시는 볼 일 없을것같았던 그 표정과 느낌에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어 그대로 손목에 힘을 빼버렸다. 축 늘어진 내 손가락들을 공허하게 바라보던 그가 다시금 내게로 눈을 맞췄다. “그냥..과 동기들이예요..” “그래? 그러니까 동기들중에 김도진이 있던가?” 아 까맣게 잊고있었다. 내가 동원선배와 이런 사이가 되기 전, 날 좋아하는 복학생이 있다는 얘기가 떠돌았었다. 당시 우리과에 복학생은 한명뿐이라 누구든 날 좋아하는 게 그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을 정도의 상황이였다. 물론 본인은 단 한마디도 하지않았고, 나를 보면 항상 웃는 것이 전부였다. “동원씨, 그 사람이 나 좋아하는거 다 뜬소문이예요.” “너도 22살이면 사람들 감정 파악할 나이는 되지 않았나?” “네..?” 내 손목을 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아직 아플정도는 아니지만 그에게 소중히 대해지지 못하는 것 같아 괜히 씁쓸해져 기분이 조금 상했다. “9시.” “.......” “집 들어갈 때 나한테 전화할 시간이야 어기지마” 그제서야 그는 내 손을 놔줬다. 그리고 그는 어이없게도 다시 찻잔을 들어 아무 일 없다는 듯 홀짝거렸다. 아니, 마치 아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괜찮다며 스스로를 위안이라도 하듯, 동원선배의 행동들을 뒤로하고 나는 결국 그 자리에 내 발로 들어서고 말았다. “익인아!!” 여기저기서 날 부르는소리에 나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아무자리에나 털썩 앉았다. “어우 기지배, 연애하더니 피부에 광나는것봐” 나는 괜히 멎쩍어져 주위를 한번 둘러봤다. 그러다 도진오빠와 마주쳐버린 시선에 나는 괜히 찔려버려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도진오빠도 마주칠 줄 몰랐던 듯 맥주잔을 들다가 멈춘채로 가만히 있었다. 나는 왠지모를 죄책감에 앉아있는 내내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한동안 계속 퍼마시다보니 세상이 도는건지 내가 도는건지, 주위에선 하나 둘 계속해서 술을 위장에 퍼넣는 내 행동을 저지하기 시작했다. “야야, 왜그래 너 오늘 집 안들어가?” “집?” 집!! 그제서야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시계를 들여다봤다. “아홉시...” “뭔소리야 아홉시 넘었어” “아...아이씨..” 나는 도도해보이겠다며 구매한 구두를 신고 헐레벌떡 아슬아슬하게 걸어 입구로 나아갔다. “조심해” 뒤에서 내 허리를 감싸며 지탱해주는 손길에 나는 뒤를 돌아봤다. “어...도진오빠..” “그래그래, 나 맞아 택시타는곳까지 데려다 주면 되는건가?” “예??아뇨 괜찮아요 혼자 걸을 수 있어요!” “전혀 아닌 것 같은데?” 그는 꺾여진 내 발목을 보며 난감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급하게 자세를 바로잡고 선배의 손을 밀어냈다. “정말, 정말로요!” 한발자국 걸어가다 어어.. 소용돌이치는 바닥에 넘어질 준비를 하는데 단단한 팔에 잡혀 나는 감았던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이거 봐 아니라니까” 웃으며 날 부축하는 손길에 당황해서 안절부절하기도 전에 빠앙-- 조수석에 앉은사람이 아니더라도 단박에 알 수 있을 만큼 신경질적인 운전자의 크락션소리에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오빠 이거 놔주세요..” “어? 너 지금 못...” “놔요.. 놔줘요 오빠” 그제서야 난 그 신경질적인 크락션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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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희귀하다는 모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