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감정변화를 뒤늦게 눈치 챈 ㅇㅇ는 그저 멍하니 인준을 바라보았다. 싸가지 없다며 그렇게 치를 떨던 남자를 자신도 모르던 사이에 좋아하고 있었다니. 어느 여자가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사 하나 빠진 로봇 마냥 넋을 놓고 있는 ㅇㅇ의 눈앞에 인준의 손가락이 딱딱 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나간 정신줄을 잡으려 바쁜 ㅇㅇ와 달리 편한 자세로 지켜보고 있는 인준의 입가엔 여유로운 미소가 걸렸다.
"가서 물이나 떠와요. 넋 놓고 있지 말고."
"아, 네, 네. 떠올게요."
ㅇㅇ가 급히 제 매무새를 정리하며 서재를 빠져나갔다. 인준은 사냥꾼에 쫓기는 토끼마냥 총총 사라진 그녀의 발자취를 잠시 바라보다 이내 헛웃음을 치며 애꿎은 펜만 돌렸다. 인준이 혼란스럽거나 생각이 많을 때만 나오는 버릇이었다. 지금 그의 감정이 혼란스러울 이유는 딱 한 가지 밖에 없었다. ㅇㅇㅇ. 그 사람 하나뿐이었지만 감정 인지에 능숙하지 못 한 인준이 이를 쉽게 눈치 챌 리 없었다. 검은 크레파스로 마구 칠해 놓은 것 같은 머릿속에 답답할 뿐이었다.
어디서 물을 길어오기라도 하는 것인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인준의 서재가 열렸다. 서재를 빠져나가기 전보단 차분해진 ㅇㅇ의 얼굴을 보니 차가운 물을 담은 컵으로 볼을 식혀낸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인준은 세세한 변화를 눈치 챌 수 없었다. 이 또한 익숙해진 ㅇㅇ는 말없이 컵을 내려놓곤 제 자리에 앉았다.
방금 전 잠시나마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 때였다. 지잉- 지잉- ㅇㅇ의 휴대폰이 큰 소음을 일으키며 전화를 알렸다. ㅇㅇ는 혹여나 인준의 집필에 방해가 될까 휴대폰을 들고 조용히 서재를 빠져나가려 했으나 이는 곧 제지되고 말았다.
"그냥 여기서 받아요."
인준이 뻐근한 목을 오른쪽으로 살짝 꺾으며 말했다.
"네? 작가님 쓰시는 데 방해될 것 같아서,"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왜 혼자 삽질입니까."
"..네에."
나름 배려라고 해줘도 싸가지 없는 말투로 받아치는 인준에 ㅇㅇ는 괜히 입술을 삐죽이며 자리에 앉아 수신 버튼을 눌렀다.
"어, 오빠-"
오빠? ㅇㅇ의 입술에서 나온 단어 하나에 빠르게 자판을 쳐내려가던 인준의 손이 멈칫했다. 인준은 저도 모르게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퇴근?"
그녀의 시선이 잠시 인준을 향하자 ㅇㅇ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던 인준 탓에 갑작스레 두 눈이 마주했다. 지가 여기서 받으라고 했으면서 또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 건지. ㅇㅇ는 급히 고개를 돌려 전화에 집중했다.
"나 오늘이나 내일까지 계속 야근일 것 같은데.."
"응. 왜? 밥 먹게?"
이름 모를 남자와 전화를 하는 ㅇㅇ의 목소리는 인준이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톤이었다. 원래 저렇게 애교가 많은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그녀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인준에겐 그 목소리보다 더욱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ㅇㅇ의 통화상대였다. 가족? 아는 오빠? 애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인준은 여전히 제가 왜 그런 거에 신경이 쓰이는 진 깨닫지 못 한 상태였지만 심기가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감정이었다. 눈썹이 작게 씰룩이며 짜증 가득한 인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끄러워요."
"네? 아, 오빠. 잠시만."
"나가서 받을까요?"
ㅇㅇ가 휴대폰을 잠시 내려 인준에게 물었다. 긍정의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지 이미 왼발이 삐죽 튀어나와있었다. 그러나 인준은 항상 예상 밖의 대답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의 고개가 좌우로 흔들거렸다.
"거실에선 안 들릴 줄 압니까? 끊어요."
"네?"
"끊으라고요, 전화."
괜한 심술이었다. ㅇㅇ는 여전히 재수 없는 인준 태도에 그런 남자를 좋아하는 저를 탓하며 짧은 마무리 인사 후, 전화를 끊었다. 인준은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삐딱하게 앉아있던 자세를 고쳐 앉아 다시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ㅇㅇ의 기분은 인준과 정반대였다. 아니, 배려 해 줄 땐 거절하고 여기서 받으라는 인준의 말을 들었을 뿐인데, 왜 도리어 짜증을 부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ㅇㅇ의 입술이 댓 발 마중 나와 누가 보아도 '나 삐졌어요.'를 시전하며 궁시렁댔다.
"아니, 작가님. 작가님이 여기서 받으라고 해서 받았는데 왜."
"원고 가져가기 싫으신가 봐요."
"네?"
"조용히 하세요. 글 안 써지니까."
"넵."
잠시나마 불만을 털어 놓으려던 ㅇㅇ의 투덜거림은 반 협박 수준인 인준의 말에 의해 급히 마무리되었다. 인간에게 귀가 있다면 아마 지금 ㅇㅇ의 귀는 축 쳐진 모양새를 하고 있을 것이다. 까칠한 제 태도에 시무룩해진 그녀의 모습을 힐끔 본 인준의 입가엔 꽤 짙은 호선이 그려졌다.
글을 별 막힘없이 술술 써내려가길 4시간 정도 지났을까. 인준은 뻐근해진 손목을 돌리며 옆자리를 확인했다. 인기척이 있어야 할 곳엔 찬 기운만이 맴돌고 있었다. 집중을 하기 시작하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눈치를 채지 못 하는 인준의 버릇 탓에 ㅇㅇ가 사라진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확인한 시계의 짧은 침은 12를 가까이 하고 있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여자 혼자 어딜 나간건지.
가뜩이나 인준의 집 근처는 흉흉한 사건이 꽤 자주 일어났다. 이런저런 사실들을 조합해보니 인준의 마음 한 구석에서 괜한 불안함이 샘솟았다. 인준은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불안한 사람의 태도였지만 인준 저 자신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알아서 들어오겠지."
그저 초조한 눈빛으로 시계의 초침만을 응시할 뿐.
초침이 12를 지나고 짧은 침과 긴 침 모두 그 위로 모였다. 자정이 지났다.
인준은 자정이 지나자마자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휴대폰을 집어 들어 익숙해진 번호를 급히 눌렀다. 열 한 자리가 모두 완성되고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서재의 문이 열렸다.
"안 드실 거 뻔하지만 배고프시면 드시고 하세요."
인준이 사놓고 한 번도 쓴 적 없는 검은색 트레이 위를 간식거리들로 채워 들고 들어 온 ㅇㅇ였다. 허탈함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 하나가 인준에게 밀물마냥 밀려들어왔다. 인준은 감정의 파도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조난민과 다름없었다.
"작가님, 또 안 드실 거 에요? 차려온 사람 생각도 좀 해주시지.."
"먹을게요."
"헐, 진짜요? 억지로는 안 드셔도 되는데."
"억지로 안 먹는 사람인 거 아직도 모릅니까."
"알죠, 알죠. 얼른 드세요. 아까부터 커피만 계속 드셨잖아요."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네에. 조용히 할게요."
고작 음식 하나 먹겠다는 소리에 해사하게 웃는 ㅇㅇ였다. 그 미소는 허우적대다 힘을 잃어 깊은 바다 속으로 빠져 들던 인준을 기적적으로 구해냈다. 인준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 여자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마음을 품는 다는 것이 어색하고 어려워 제 마음을 부정해왔을 뿐, 인준 또한 꽤 오래 전부터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황인준과 ㅇㅇㅇ, 상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은 확인했지만 아직 갈 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감정이란 것에 미성숙한 그들이었기에. 그러나 분명 바뀐 것은 있었다.
냉소적이기만 했던 인준의 얼굴에 ㅇㅇ라는 따스한 봄기운이 살포시 내려 앉아 녹이고 있었다. 인준의 입가에 슬쩍 걸린 미소는 떠날 줄 몰랐다.
***
아무리 감정을 확인했다곤 하나 지금 당장 인준에게 급한 것은 글을 마무리 짓는 것이었다. ㅇㅇ 또한 인준에게서 완성된 원고를 받아가는 것이 제일 시급한 일이었기에 나름 따뜻했던 식사 시간은 고이 접어둔 채 각자의 일에 집중했다. 서재 안은 타닥거리는 키보드 소리뿐이었다. 두 사람의 키보드 소리가 어우러져 일정한 소음을 만들어내던 도중, 갑작스레 소음의 볼륨이 반 정도 훅 줄어들었다. 인준의 손이 멈추었다.
"작가님, 어디 불편하세요?"
걱정스런 ㅇㅇ의 말투에도 인준은 아무 대꾸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제 관자놀이 부근을 꾹꾹 눌렀다. 결말만을 남겨두고 있는 인준의 소설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금방 써냈을 결말인데, 이상하게도 인준의 머릿속에 상황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는 제 옆에서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ㅇㅇ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진 결말. 그 단락이 인준의 발목을 붙잡았다.
"머리 아프시면 두통약이라도 사올까요? 요즘 편의점에 다 팔던데."
"..."
"작가님?"
ㅇㅇ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조심스레 물었다. 벌써 세 번째 물음이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혹여나 마감일까지 글을 마무리 짓지 못하면 어떡하지. 어디가 아픈 건 가. 그녀에겐 두 가지 걱정이 공존했다. 하나는 회사에서 깨질 저에 대한 걱정. 다른 하나는 집필 내내 밥 한 번 제대로 챙겨먹지 않은 인준의 건강이 상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 걱정의 크기는 비등비등 했으나 말 한 마디 없이 싸가지 없음을 티내는 인준에 전자의 걱정이 조금 더 커져가고 있었다.
인준은 쫑알대는 ㅇㅇ를 무시하곤 새하얀 침대에 몸을 뉘였다. 이에 ㅇㅇ의 머릿속엔 전자의 걱정이 구 할 정도로 커지고 말았다. 내내 걱정해주고 챙겨줬더니 이젠 개무시라니. 어이가 없었다. ㅇㅇ가 제 머리를 쓸어 넘기며 그가 널브러져있는 침대로 향했다.
"작가님. 마감 진짜 몇 시간 안 남은 거 아세요?"
"알아요."
"아니, 그걸 아는 사람이 왜 이러고 있어요. 작가님은 기한 늦춰 달라 한 마디면 되겠지만 전 엄청 깨진다고요."
"그래서, 써지지도 않는 글을 억지로 써서 대충이라도 내라?"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아,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은 다 도와 드릴게요. 머리 아파서 그러시는 거면 나가서 약을 사오든지,"
순간 인준의 눈빛이 반짝였다.
"진짜 다 도와 줄 수 있어요?"
"당연하죠. 원고만 마무리 해주신다면."
당찬 ㅇㅇ의 끄덕임에 인준의 입 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순식간이었다. 뭐든 시키라며 호기로운 눈빛으로 인준을 내려다보던 ㅇㅇ의 시선을 바로 앞에서 마주 한 건. 인준이 그녀의 손목을 당겨 제 옆에 눕도록 만든 것이었다. 워낙에 호리호리한 체형이라 힘이 셀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 했는데, 의외로 쉽게 ㅇㅇ를 제게로 당겼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ㅇㅇ의 시선이 심하게 요동쳤다. 어색한 분위기 속, 인준의 느릿한 시선이 그녀를 훑어냈다.
"내가 생각한 여자 주인공 이미지는 아니긴한데."
"..."
"도와 줄 사람이 ㅇㅇ 씨 밖에 없네요."
"..."
"잠깐만 내가 남자 주인공, ㅇㅇ 씨가 여자 주인공이 되는 겁니다. 별 거 없어요. 그냥 한 마디만 해주면 돼요."
ㅇㅇ는 장난기 가득한 인준의 미소가 떨떠름해 거절하려 했지만 이미 제가 뱉은 말이 있기에 별 수 없이 승낙해버리고 말았다. 잠시의 침묵이 그들의 주위를 맴돌다 인준의 입 사이로 매혹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랑해, 한 마디만 해 줘요. 감정 담아서."
"네?!"
다른 말도 아니고 연인 사이에서만 나누는 달콤한 말을 하라니. 예전 같았으면 별 생각 없이 들어주었을 부탁이었겠지만 이미 인준을 향한 제 마음을 확인한 ㅇㅇ에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리 가까이 마주하고 있기만 해도 심장이 날뛰어 미치겠는데, 사랑해라니. 다른 부탁이면 몰라도 이 부탁은 도저히 도와 줄 수 없는 영역이었다. ㅇㅇ가 고개를 내저으려던 순간, 인준의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얼른."
나지막이 울리는 인준의 목소리는 나른하면서 어딘가 모르게 섹시한 구석도 있었다. 악마 마냥 달콤한 것들로 사람을 유혹하는 목소리와 눈빛이었다. ㅇㅇ는 인준의 그 나른함에 파묻혀버리고 말았다. '원고 쓰는 데에 도움이 되니까 부탁한 것이겠지. 딱 한 번 만 눈 감고 하지, 뭐.' 와 같은 생각들로 합리화를 시키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는 ㅇㅇ였다. ㅇㅇ가 제 연인을 바라보듯 달달한 시선으로 저를 응시하는 인준과 같은 시선으로 그를 담아냈다. 열리지 않을 것 같던 그녀의 입술이 작은 틈을 만들었다.
"사랑해."
"..."
ㅇㅇ는 작품 속 여주인공처럼 눈 꼬리가 접히게 웃어 보이며 달콤한 사랑을 속삭였다. 이를 마주하던 인준의 머릿속은 새하얘져버리고 말았다. ㅇㅇㅇ, 그녀로 인해 까만 크레파스로 덮어가던 도화지가 또 한 번 그녀에 의해 새하얀 페인트로 덮어져버렸다. 뭐에 홀린 것 마냥 넋이 나간 채로 ㅇㅇ를 바라보던 인준의 입술이 열렸다.
"나도."
"..."
"나도 사랑해."
인준의 입에서 나온 대사는 아직 원고에 없는 대사였다. 그저 ㅇㅇ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그 순간 그들의 모든 사고회로는 정지되었다. 그제야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것이었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둘의 귀는 빠른 속도로 붉어졌지만 고장 나 버린 사고회로는 고쳐질 생각이 없어보였다. 붉어진 얼굴을 한 서로를 제 눈에 담아낼 뿐이었다.
"..."
"..."
한참의 침묵이 흘렀을까. 조금 더 일찍 고쳐진 쪽은 ㅇㅇ였다. ㅇㅇ는 급히 일어나 제 짐을 챙기며 말했다.
"원고, 내일까지 꼭 보내주세요. 저, 음, 어, 가보겠습니다."
도대체 말 한 마디에 추임새가 몇 번이나 들어갔는지. ㅇㅇ는 어색한 목소리만을 남긴 채 서재를 급히 뛰쳐나갔다. 붉어지다 못 해 시뻘개진 얼굴을 찬바람에 식혀도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서재에 남겨진 인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붉어진 얼굴을 한 채로 천장에 그녀를 그리다 노트북 앞으로 향했다. 빠른 속도의 타자 소리가 서재를 가득 메꿨다. 결말이 코앞이었다. 늦은 여름에 작은 새싹을 틔운 이들의 감정은 이듬해 봄이 돼서야 꽃봉오리를 맺기 시작했다.
작가와 편집자의 상관관계 下
다음 날, ㅇㅇ는 아침 일찍 메일로 도착한 원고를 확인 작업도 없이 무작정 동영의 메일로 보내버렸다. 원칙대로라면 담당자인 제가 먼저 확인하는 것이 맞지만 지금 ㅇㅇ에겐 그럴 여유가 없었다. 아직도 어젯밤, 그 상황만 생각하면 얼굴이 후끈거리는데 어떻게 그가 잔뜩 묻어난 글을 읽겠는가. ㅇㅇ는 인준의 잔상을 잊으려 고개를 내저었다. 별 소용은 없었다.
며칠 후, 원고를 확인한 동영에게서 끈적한 장면이 있다며 둘의 이야기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샀지만 목에 얇은 핏대가 서도록 강한 부정을 해오는 ㅇㅇ에 금세 식어버렸다. 가끔 무섭도록 촉이 좋은 동영이었는데, 이번 또한 다를 바가 없었다.
책이 출판되고, 인준의 소설은 당연스레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차지했다. 기존의 오금만 저리게 했던 그의 소설과 달리 간간히 들어가는 두 주인공의 애정신이 사람들로 하여금 큰 인기를 얻었고 인준은 작가로서의 스펙트럼과 인기를 한 단계 넓혀갔다.
반면, ㅇㅇ는 그 날 이후 연락 한 통 없는 인준이 탐탁지 않았다. 나만 설렌건가. 얼굴을 붉혔던 장면들이 떠올라 사무실에서 머리를 쥐어뜯기도 몇 번 시전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인준의 소식이 아닌 왜 저러냐는 선배들의 타박뿐이었다. 반 쯤 넋이 나간 ㅇㅇ가 인준의 기사들로 가득한 포털 사이트의 스크롤을 쭉쭉 내렸다.
"천재 작가 황인준, 또 한 번의 밀리언셀러 달성.. 신이 내린 재능..개뿔."
축 쳐진 목소리로 기사를 읽어내려가던 그녀의 목소리가 비속어로 마무리지었다. 하나같이 그를 칭찬하는 기사들이었다. 지겹지도 않나. 아마 ㅇㅇ가 인준에게 마음을 갖기 전이라면 출판사의 매출에 큰 역할을 하는 그의 기사들을 보며 분명 흡족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예외다. 누가 봐도 ‘나 기분 안 좋아요.’를 티내며 스크롤을 내리던 그녀의 손길이 갑작스레 울린 전화에 멈추고 말았다. 이미 두 달 째 저기압이었지만 방금 그의 기사를 읽어 더욱 우울해진 ㅇㅇ는 발신자가 누구인지 확인도 하지 않곤 통화 버튼을 눌러 대충 귓가에 대놓았다.
-안 옵니까?
방금까지 그토록 원망하던 인준의 목소리였다. 여전히 여유로움이 가득한. ㅇㅇ는 예상 밖의 발신자에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와 입술을 꾹 다물며 휴대폰을 고쳐 잡았다.
-어딜요.
-나 새 작품 집필하는데, 못 들었나 봐요.
-새 작품이요? 사람 죽이는 거 몇 달 동안 써놓고 또 죽이시게요?
-아니요.
-그럼 뭔데요.
뾰로퉁하게 묻는 ㅇㅇ에 스피커로 인준의 작은 웃음소리가 넘어왔다.
-이번엔 연애소설인데. 아, 수필인가.
-네?
-얼른 와요. 그 쪽 있어야 쓸 수 있는 글이니까.
전화는 1분을 채 넘기지 못하곤 뚝 끊겨버렸다. 까매진 휴대폰 화면을 잠시 바라보던 ㅇㅇ가 통화 내내 꾹 다물고 있던 입술 사이로 작은 웃음을 내뱉었다. 분명 고백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신박한 방법이자 애매한 방법이었지만 그에게 몇 달을 시달린 ㅇㅇ에겐 더할 나위 없이 해석하기 쉬운 문제였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사귀자 등 직접적인 고백의 단어는 없었지만 그저 딱 황인준, 그 자체인 무미건조한 고백이었다. 이에 ㅇㅇ가 가졌던 서운했던 마음은 눈 녹 듯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ㅇㅇ야, 황작가 새작 집필하는,”
“안 그래도 지금 가려고요.”
“응? 어떻게 알았어?”
“다 아는 방법이 있죠- 다녀오겠습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그녀의 발걸음은,
이제 막 사랑이란 감정을 틔워 낸 여고생마냥 순수했으며 아름다웠다.
4월의 어느 날, 길거리를 가득 채운 분홍빛 벚꽃이 인준을 향해 걷는 그녀의 자취를 따라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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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엥 제가 저 사랑해 말하는 장면이 너무 쓰고 싶어서 이 작품 구상한건데...망했네요! 4월 모의고사랑 같이 아주 시원하게 말아 먹어쒀! 아 그리고 작품 속 인준이는 성인이랍니당헤헿 미자가 아니어요 제 필명은 피자피자인데 방금 치킨 먹었어요 짱맛 이게 무슨 의식의 흐름이죠? 그럼 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