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도시 00
w. 봉식이
창가에 기대어 바라보는 한강은 언제나 아름답다. 찬 창에 이마를 대고 뜨거워진 머리를 식힌다. 후, 하고 한숨을 내뱉으면 창문에 뿌연 성에가 낀다. 그럼 그 성에를 손가락으로 살살 문질러본다. 내 눈 앞을 가리던 것이 손짓 하나에 사라져버리는게 야속하다.
뭐해 여기서.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리는 익숙한 손길에 고개를 돌린다. 김시민, 숙직실 가서 잔다더니, 또 여기있는거야? 이제노가 제 주머니에서 따뜻한 캔커피 하나를 건넨다. 자라면서 커피를 주면 내가 못 자잖아. 그리고 나 커피 못 마시는거 몰라서 이래? 이마를 창에 댄 채로 웅얼거리자, 이제노가 박수를 짝, 하고 치며 반대편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코코팜 복숭아 맛. 아직 채 흘러내리지 못한 물방울들이 멋쩍게 내밀어져있는 이제노의 손을 타고 흘러내린다.
이PD님이 오늘은 편집 직접 하신다고 너 쉬라셔. 내 옆에 걸터앉은 이제노가 익숙하게 제 캔커피를 따며 말을 내뱉는다. 창에 기댄 몸 때문인지 창 밖의 소음이 그대로 귀에 들어온다. 클락션 소리와, 제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보고 소리지르는 수많은 팬들의 목소리. 모든 것이 뒤엉켜 머리를 아프게 만든다.
너 다음주에 출장가는 거 말야. 이제노가 깨끗이 비운 제 캔을 만지작거리며 창에 기댄다. 코코팜을 홀짝이고 있으면서도, 이제노가 날 뚫어져라 보는게 느껴진다. 이제노는 늘 그런식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기만 한다. 출장 가는거 뭐. 다 마신 코코팜을 바닥에 내려놓고 이제노의 손에 들린 캔커피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거, 나도 같이 가려고. 이제노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움직인다. 깜짝 놀라 바닥에 놓인 캔들을 발로 걷어차버렸다. 와장창, 하는 소리가 텅 빈 방송국 복도를 울린다. 아니, 난 안 가고 싶었는데 민형 선배가 이번에 설 파일럿 프로그램에 합류하는 바람에. 이제노가 제 어깨를 으쓱인다.
너 이번에 합류한 프로그램 시청률 잘 나왔더라, 이제노가 바닥에 놓인 캔을 주워들며 말한다. 클락션 소리와 팬들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다 민형 선배 덕이지 뭐. 이제노가 고개를 끄덕이며 제 옆에 있는 쓰레기 통에 캔을 던져넣는다. 민형 선배랑은 대학교 같이 나왔댔나? 이제노가 이번엔 제 손톱을 만지작거린다. 응. 무미건조한 대답이 끝나자 이제노가 창에서 제 몸을 뗀다. 그 탓에 창이 살짝 흔들려, 내 몸도 흔들린다. 이제노의 손목에서 째깍거리던 시계가 벌써 2시를 가리킨다. 벌써 두시야, 얼른 가서 자, 난 편집할 거 남았어. 이제노가 내 앞에 서서 내게 손을 내민다. 제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키라는 뜻이겠지. 그렇지만 고개를 내저었다. 난 아직 여기 더 있고 싶어. 이제노가 입술을 비죽이며 제 1 편집실로 향한다. 코너를 도는 이제노의 등을 보며 회색 후드집업의 지퍼를 목 끝까지 채우고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