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海獸)
[ 바다의 괴물 ]
w. 시집
" 그럼 둘 다 외롭지 않을테니까. "
이 이상한 사내는나에게 급하게 애정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동안 이 날만을 기다려왔다는 듯이.
**
지민이란 이 인어는 내가 살아온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이 동굴에서 혼자 지내왔다고 했다.
용기내어 마을까지 가볼까 했지만 그곳에서도 배척받을까 싶어 겁을 집어먹고 그렇게 이십년을 넘게 동굴에서 외로이 견뎌왔다고 했다.
생각보다 더 여리고 어리석은 인어였다.
지민은 그간 자기가 견뎌온 외로움을 보상받기 위해서 지금껏 받지 못한 애정을 재촉했다.
제멋대로 나를 자신의 영역 안으로 집어넣고선 나에게 저를 내 영역 안으로 집어넣기를 바랐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관계에 이상함을 느꼈지만 그에게 홀린 나는 군말없이 그를 서서히 내 영역 안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자신의 세상으로부터 도망쳤다는 공통점이 나와 그를 묶어주고 있는 것일까. 마을 사내들과는 전혀 다른 그에게 끌리는 것일까.
그래. 둘 다 맞다. 나는 그에게 동질감과 연민을 느낌과 동시에 마을 사내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모습들에 끌리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찾아헤매던 사내의 모습이었다.
지민의 앞에서는 내가 계집애라 밥을 짓고 빨래를 할 필요가 없었으며
천한 계집들은 함부로 배울 수도 없었던 글을 알려주었고 우리와 배움의 깊이가 다른 인어들의 지식을 내게 나누어주었다.
지민의 머릿속은 마치 우주와도 같이 광활했으며 샘과도 같이 깊었다. 들어본 적도 없는, 상상해본 적도 없는 것들을 내게 이야기해주었으며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들을 내게 하나씩 가르쳐주고 있다. 마을에 있을 때보다 더 내 삶이 의미있어졌고 하루하루 생기가 넘쳤다.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지루한 마을보다 새로움의 연속인 이곳이 나는 훨씬 더 마음에 들어가고 있었다.
지민은 생각보다 내게 더 특별한 인어였다.
" 어디 가? "
점심을 먹고난 뒤 더부룩한 속 때문에 밖으로 혼자서만 아주 잠시 산책을 나가려했는데 그것을 귀신같이도 눈치채고 어딜 가냐고 내게 물었다.
" 이 앞으로 잠시 산책을 나가려 합니다. "
" 같이 가. "
" 도망가는 거 아닙니다. "
한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져있는 것을 불안해한다는 것. 이미 한번의 긴 고독을 맛본 인어는 겨우 찾아온 손님을 놓아주기 싫어했고 손님이 떠날까 항상 두려워했다.
내가 그에게 떠날 거라는 암시를 준적도 없고 이곳 생활에 대해 약간의 불만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저 지민의 과거가 모든 불안을 만들어냈다.
스스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는 제 치부가 저도 모르게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던 것이지.
가볍게 나가는 산책이기에 굳이 같이 가지 않아도 된다고 누누히 말을 해도 기어코 지민은 날 따라 동굴 밖으로 나왔다.
선선한 바닷바람이 기분좋게 불어왔다. 잠시 바람을 맞으며 조용히 바다를 따라 걸었다.
" 마을에서 살았을때 정인은 없었어? "
정인이라. 내게 구애하고 청혼하는 사내들은 많았지만 그 중 단 한명에게도 정을 준적은 없었지.
없다. 고개를 저었다.
" 나으리께선 있으셨습니까. "
" 응. 있었지. "
내가 그 다음이야기를 재촉하는 눈빛으로 지민을 바라보자 지민은 나와 잠시 눈을 맞추고 시선을 저 멀리로 던졌다. 과거를 회상하는 듯 했다.
" 내가 좋아하던 여인도 너처럼 아주 고왔어. 하지만 심성이 곱진 않았지.
잡종이라고 소문난 나를 무안주는 것이 그 여인의 취미였어. 멍청하게도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 상처를 받으면서도 그 여인이 싫어지지는 않았어. "
지민이 꺼내는 과거에 아프지 않은 것이 있기는 할까.
" 그녀가 나 외에 다른 이들에게는 친절하니까, 햇살처럼 따사로우니까.
내가 노력하면 그녀도 언젠간 나의 태양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 "
나와 나란히 걷던 지민의 손이 내 손을 스치자 조금 놀라 손을 움찔거렸다. 팔을 앞뒤로 움직이며 지민의 손이 내 손에 몇번 닿아올때마다 닿은 부분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
지민의 팔 움직임이 서서히 멈추고 아예 지민의 손은 내 손 근처에 머무르며 머뭇대다 내가 거부하지 않자 조심스레 내 손을 잡아쥐었다.
사내의 굵은 뼈마디가 느껴지니 그것이 참으로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나도 잠시 머뭇대다 지민의 손을 함께 잡아주었다. 따뜻할 것 같았던 지민의 손은 예상외로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 손이 너무 뜨거워서 처치곤란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자신의 손을 쥔 것을 느끼고는 지민의 입가엔 희미하게 미소가 띄워졌고 이내 이야기를 이었다.
" 하지만 전부 다 내 착각이었지. 내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난 그들에게 잡종이고 괴물이었어. "
지민이 발걸음을 돌려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그의 손을 잡은 나도 아무런 저항없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 물 속에서 오랫동안 숨을 쉬지 못하는게 그들에게 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
덤덤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던 지민의 말투에 서서히 슬픔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지금껏 본적 없는 , 지민이 철저하게 숨기고 있던 자신의 우울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 발끝에는 시원한 바닷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잔잔한 파도가 저를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를 밀어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더 깊은 곳으로, 더 더욱 깊은 곳으로.
" 내가 숨을 쉬지 못하는게 그들을 아프게 만든 것도 아니었고 그들을 슬프게 한 것도 아니었어. "
바다가 깊어질수록 그의 슬픔도 깊어졌다. 바다가 깊어질수록 색이 어두워지는 것처럼 그의 색도 어두워져갔다. 푸른색에서 흑색으로 스스로를 물들여갔다.
" 심한 욕을 듣고 매를 맞는 건 괜찮았어. "
" ... "
" 하지만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건 좀 아프더라. "
마침내 물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지민은 손을 뺐다. 그리고 그 손을 내 뺨 위에 얹었다.
나와 그가 서로의 눈동자에 담겼다.
그의 눈동자에는 내가 있고 그 안에는 또 다시 그가 있었다.
" 근 이십년간을 동굴에서 홀로 살아오면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사는 것도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오니 더 외로워졌어. "
"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
" 네가 떠날 것을 생각하면 혼자 살았을 때보다 더 마음이 시려와. 더 공허해져. 옆에 있는데도 불안해. "
나도 그의 뺨에 한 손을 얹었다.
" 걱정하지 마시지요. "
내 진심어린 목소리에 그제서야 그는 슬픔을 닦아내며 미소를 지었다.
" 내가 잡종이라 더럽지 않아? "
" 당연하지요. "
" 너는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지? "
" 당연하지요. "
그가 세상 누구보다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를 따라 함께 웃어주니 서서히 그는 미소를 조금 덜어내고 내게 천천히 얼굴을 들이밀었다.
지민의 숨결이 얼굴을 간지럽혀 나는 눈을 감고 지민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닿을 거리에서 지민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내게 속삭여주었다.
" 그렇다면 네가 나의 태양이 되주어라. "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입을 맞추며 물 속으로 잠겨들었다.
**
그로부터 또 시간이 흘렀다. 불만스러운 것 없이 하루하루를 평안하게 보내고 있었으나 요즘따라 하나 걸리는 것이 있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며칠 뒤면 아버지, 어머니의 기일이다. 오년 전에 돌림병으로 돌아가시고 그 뒤로 한번도 빠짐없이 소박하게나마 두분의 기일을 챙겨왔다.
올해에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기일을 챙기고 싶으나 걸리는 것이 너무 많다. 마을에 돌아가는 것도 힘들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지민.
코앞으로 산책가는 것도 따라붙을 정도로 떨어지기 싫어하는 지민을 두고 마을까지 갔다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민 만큼이나 두분 또한 나에게 중요했기에 두분의 기일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떻게 하면 지민을 잘 설득할 수 있을까 밤낮으로 고민하다 어느 날에는 내게 근심걱정이 있는 것이 너무 태가 난 모양이었다.
밥을 먹다 말고 지민이 내게 물어왔다. '무슨 걱정있어?' 결국 난 모든 것을 털어놓게 되었고 지민은 내 말을 듣자마자 조금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더니 이 이야기를 피하기 위해 밥을 절반도 비우지 않았으면서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떠버렸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정말 이렇게 싫어하니 조금 씁쓸했다.
하지만 난 지민이 가지 말라고 하더래도 가야만 한다. 지민의 눈을 피해 몰래 갔다오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가야겠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지민이 나를 가지 못하게 한다면 나는 이 곳에 머물러있기 힘들 것이다.
지민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지민이 날 이곳에 옭아맨다면 내가 마을에 묶여있던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
그 뒤로도 몇번이나 지민에게 부탁도 해보고 협박도 해보았지만 결국 기일이 거의 다 다가올 때까지도 지민의 동의를 구해내지 못 했다.
이틀 뒤면 두분의 기일이다. 마을까지 가는 길을 헤맨다고 하더라도 혼자 몰래 다녀와야겠다.
절대 걱정하지 말아라. 그것은 지민을 떠나는 것이 아닌 이 곳을 아주 잠시 떠나는 것 뿐이다.
꼭 돌아올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어라.
**
자고 일어나 옆을 더듬어보니 옆에 있어야할 지민이 만져지지 않았다. 늘 항상 내가 먼저 눈을 떴기에 침대 옆을 손으로 더듬으면 지민의 손이 잡혔다.
지민은 그러면 잠결에도 내 손가락을 아기처럼 꽉 쥐고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그것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지민이 일어난지 꽤 됐는지 누워있던 자리에 온기가 많이 식어있었다. 나도 이불을 걷고 일어나 간단히 단장을 마친뒤 동굴 밖으로 나가니 지민이 바닷가를 따라 아침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간간히 허리를 숙여 무언가를 줍고 있었다. 지민의 옆으로 가 아침인사를 나누고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물으니 제 손에 쥔 것을 내게 내밀어 보이며 답했다.
" 진주를 주웠어. "
" 이 귀한 진주가 이리도 많단 말입니까. "
" 이 근처에 인어들이 많이 사니까. "
인어와 진주가 무슨 상관이 있기에. 어리둥절한 내 표정을 보며 지민은 눈이 휘어지게 웃곤 내 머리카락을 살살 쓸어내렸다.
" 진주는 인어의 눈물. "
" 정말입니까? "
지민은 앞으로 몇발자국 나아가 진주를 하나 더 주워든 뒤
" 인어가 기쁠 때 흘린 눈물은 행복을 기원하는 진주가 되고. "
손에 든 진주들을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었고
" 인어가 슬플 때 흘린 눈물은 상대를 저주하는 진주가 되며. "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죽기 직전의 흐르는 눈물은 망각의 진주가 된다. "
" ... "
" 그 진주를 몸에 지니고 있으면 잊고 싶은 것을 잊을 수 있게 되지. "
지민이 다시 나에게로 걸어와 내 손을 잡고 산책을 계속했다.
" 아직 나도 망각의 진주는 몇번 본적 없어. "
" 하지만 너와 함께 있으면 행복의 진주로 바다를 만들수 있을거야. "
**
기일 전날 밤. 지민이 잠든 뒤 지민 몰래 마을에 가는 길에 필요한 것들을 이것저것 챙기고 있었다.
" 뭐해? "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옷가지를 떨어트려버렸고 빳빳히 굳은 몸으로 뒤를 돌아보니 이미 다 들킨 듯,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 아는 듯
싸늘한 표정으로 날 지켜보고 있는 지민이 벽에 기대어 서있었다.
여기서 무슨 변명을 한다한들 통할리도 없을 뿐더러 화만 돋굴 것 같아 오히려 더 당당하게 밀어붙였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 그 곳에 보내주지 않은 네가 잘못이었다,
내 행동에 지민은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낼 줄 알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지민은 깊은 한숨 한번과 함께 굳어있던 표정을 풀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이더니 다짜고짜 ' 가자 ' 라며 날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지민을 따라 밖으로 나오니 마치 지민의 눈동자처럼 별이 쏟아질 듯 빛나는 밤이었다. 초승달 떠있고 그 주위로 유리파편마냥 별들이 흩뿌려져 있으니 참으로 장관이었다.
따로 등불을 켜지 않아도 주위는 이미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달과 별이 바다 위에도 수놓아져 있으니 잔잔하게 파도가 철썩일 때마다 수면 위에 내려앉은 달과 별이 함께 일렁였다.
시원하다 못해 조금은 쌀쌀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지민은 미리 챙겨나온 겉옷을 내게 건넸고 우리는 바다가 마주보이는 커다란 바위 위에 함께 올라앉았다.
잠시 아무말 없이 둘 다 아름다운 밤바다의 풍경을 감상했다. 그러다 그 정적을 먼저 깬 것은 지민이었다.
" 마을에 가려고 했던거지? "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내가 가지 말라고 했늗데도? "
" 꼭 가야만 합니다. "
눈빛을 주고받으며 묘한 신경전이 오갔다. 지지 않겠다는 듯 부릅 뜬 내 눈을 바라보며 지민은 결국 바람빠지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곤 다시 시선을 바다로 던지며 입을 열었다.
" 가. "
토라져서 홧김에 뱉는 '가' 가 아닌 원래부터 마음 먹고 있었다는 듯이 뱉는 한마디였다.
지금껏 그토록 반대해놓고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겨서 이렇게 선뜻 가라고 하는 걸까.
" 넌 나의 소유물이 아닌걸. "
" ... "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완전히 그를 내 영역 안으로 들여보냈으며 마지막 남은 마음마저 그에게 뺏겨버렸다. 온전히 열리지 않았던 문이 그를 향해 활짝 열려버렸다.
" 솔직히 그저께까지만 해도 보내기 싫었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봐. 하지만 넌 나비같이 자유로운 여인이야. 내가 묶을래야 묶어놓을 수가 없어. "
마을의 사내들에게선 한번도 듣지 못한 말들. 항상 나를 소유하고 싶어하던 사내들과는 달리 지민은 나를 '나'로 인정해주었다.
사내와 그 사내의 여인이 아닌 박지민과 홍단이. 저와 같은 눈높이에서 나를 바라봐주는데 어찌 내가 그에게 빠지지않고 배기겠는가.
" 새장에 가둬놓은 새는 자유를 꿈꾸고 날아가버리지만 하늘을 마음껏 비행하던 새는 꼭 쉬러 다시 내려오기 마련이니까. "
" 꼭 다시 돌아올겁니다. "
" 그래. 난 널 믿어. 마을까지 가는 길은 내가 알려줄게. 무사히 돌아와야 해. "
"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
*[-]*
하룻밤이 지나고 단이는 짐을 챙겨 지민과 함께 마을로 향했다. 지민은 그 날 주웠던 진주들을 바닥에 하나씩 떨어트리며 단이가 쉬이 돌아오라고 흔적을 남겨두었다.
진주를 주웠던 그 날부터 지민은 이미 단이를 보내줄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이와 지민은 다정하게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마을 앞까지 도착했다. 차마 마을 안까지 들어올 용기가 없던 지민은 먼저 동굴로 돌아갔고
단이는 혹시나 누가 알아볼까 노심초사하며 옷으로 얼굴을 꽁꽁 가린 채 제가 살던 집으로 향했다.
집에서 간단한 물건들을 챙겨나와 아버지, 어머니의 산소로 향하는 단이.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석진의 심복.
얼굴을 가린다고 가렸지만 단이라는 여인에서 흘러나오는 특별한 느낌마저 감추지는 못 했다.
단이를 한번이라도 봤던 사내라면 단이의 그 느낌을 잊지 못하니 옆으로 살짝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이것은 단이 이니라.
눈만 빼놓아도 특출나게 아름다운 것이 죄라면 단이의 죄이기도 했다.
그것은 빠르게 석진의 귀에 들어갔다.
몇개월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은 단이가 마냥 죽은 줄로만 알았던 석진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토록 그리워 하던 단이를 다시 볼 수 있다니. 그 아름다운 여인을 이제 자신의 것으로 만들 날이 온 것이라- 석진은 그리 생각했다.
석진은 심복에게 지시를 내렸다.
" 지금 당장 단이의 뒤를 따라가라. 단이가 머무르고 있는 곳을 알아내 내게 보고하라. "
단이야. 단이야. 나의 단이야.
벌써부터 그 아이를 손에 넣는다는 생각에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석진이었다.
단이는 그것도 모르고 제사를 치른 뒤 지민이 흘린 진주를 하나하나 찾아가며 지민이 있는 동굴로 향했다.
단이와 일정한 거리를 두며 단이의 뒤를 쫓아가던 심복은 단이가 동굴에서 머무르며 상체는 인간, 아래는 물고기의 형상을 한 자와 함께 산다는 것을 알아내고
그것을 낱낱히 석진에게 고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석진의 기분은 빠르게 추락했고 자존심이 제대로 짓뭉개졌다. 석진의 표정이 종잇장마냥 구겨들어갔다.
명예와 부를 다 가진 자신이 아닌 한낱 인간물고기 따위, 괴물 따위에게 마음을 준 단이도 미웠고 그 괴물놈은 특히나 죽여버리고 싶었다.
" 지금 당장 무기를 챙겨들어라. 괴물 놈을 죽이러 갈테니. "
**
곧 다가올 시련도 모른채 지민과 단이는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석진과 석진의 하인들은 온갖 위협적인 물건들을 한손에 쥐고 물고기를 사냥하러 떠났다.
이제 곧,
곧
행복하던 둘의 보금자리에는 불길이 치솟으며 괴한들의 난동으로 아수라장이 되겠지.
여럿이서 한명의 인어를 사정없이 두드려 패겠지. 울며불며 반항하는 단이를 강제로 끌고나가 석진에게 넘길테지.
그러면 흠씬 두들겨 맞는 와중에도 지민은 단이의 이름을 있는 힘껏 불러댈테지. 단이는 지민을 목이 터져라 불러댈테지.
" 단이야. 단이야. "
" 나으리. 나으리. "
단이는 석진의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지민은 괴한들의 손에서 빠져나오질 못 했다.
지민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단이의 굳은 약속은 결국 지켜지질 못 했다. 그것은 단이 때문도 아니었고, 지민 때문도 아니었다.
자신이 마음에 품은 여자를 갖지 못했다는 것에서 우러난 석진의 못난 마음 때문에 둘은 결국 그렇게 헤어져야 했다.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에 그렇게 애틋했던 사내와 여인이 헤어졌다.
여러분 분량조절 실패로 내일 하편 가지고 올게여
쉬벌. 아 진짜 왜 살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