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海獸)
[ 바다의 괴물 ]
w. 시집
" 단이야. 아직도 누워있느냐? "
지민의 생사는 알지도 못한 채 석진의 집으로 끌려온 단이는 방안에 틀어박혀 모든 것을 거부했다.
석진의 얼굴을 보는 것도 말을 섞는 것도 심지어 식사를 들이는 것도 며칠째 마다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석진이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오면 단이는 미친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고 온 몸으로 저항했다. 나가! 나가!!!
전에 없던 난폭한 모습들을 보이는 단이를 보고 어쩔 줄 몰라하는 석진이 일단 상이라도 방에 내려두고 나오면 온갖 요란한 소리들과 함께 그릇이 다시 바깥으로 던져졌다.
석진이 사랑해 마지 않던 단이의 아름다움은 서서히 그 빛을 잃어갔고 마을에는 단이가 괴물에게 홀려온 뒤로 정신이 나갔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 상태가 점점 심각해져갈수록 그는 단이에게서 흥미를 잃어갔다.
한 때, 그의 눈에 꽃보다 아름다웠던 여인은 어느새 그 괴물과 다를 것 없이 비춰졌고 모든 것을 거부하며 발악하는 단이에게 슬슬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제발 자신이 사랑하던 그 여인의 모습으로 돌아오라고 단이의 방 문 앞에서 간절히 부탁했지만 단이의 눈에는 오히려 석진이 끔찍한 괴물처럼 비춰졌다.
그렇게 위태로운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석진이 강제로 잡아뒀던 혼례의 날이 서서히 다가오는데 석진과 단이의 관계는 악화되어만 갔다.
석진은 숨겨두었던 본색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하고 이미 마음의 문이 닫혀버린 단이는 더더욱 굳게 자물쇠를 걸어잠구어 갔다.
석진이 고함을 지르고 단이는 귀를 틀어막으며 비명을 지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석진이 억지로 끼워맞춰넣은 두 조각은 결국 맞지않고 소음을 내니 결국 끝은 산산조각이라.
" 그 괴물새끼가 너를, 내 단이를 망쳐놓은 것이다!!! "
" 헛소리 하지 마시지요! 저를 망쳐놓은 것은 대감이십니다!! "
" 그 괴물새끼는 죽었다!!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바다로 집어던져버렸다!!! "
" 진짜 괴물이 누구신지 모르겠습니까? 지금 대감의 모습은 괴물보다 더 추악합니다! "
단이는 지민이 죽었다는 말을 계속해서 부정했다. 그 신성한 인어가 이리 허무하게 죽었을리가 없었다. 단이는 그 모습을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단이는 지민의 완전한 태양이 되어주지 못 했는데, 지민은 행복의 진주로 바다를 만들지 못 했는데 둘 다 약속 하나 지키지 못 하고 이리 헤어질 수는 없었다.
자존심때문에 석진에게 온갖 모진 말을 들어도 석진 앞에서 눈물 한번 흘리지 않던 단이가 지민의 생각 한 조각으로 결국 울음을 터트려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석진은 그것이 자신 때문이라 생각하며 뻔뻔하게도 단이를 품에 안았다. ' 눈물 하나 흘리지 않던 네가 이리 우니 드디어 네가 살아있는 느낌이구나. '
하도 숨가쁘게 정신없이 눈물을 흘려내는 탓에 그런 소름끼치는 석진을 밀어낼 힘도 없었던 단이는
이것은 지민이다, 제가 그리도 그리워하던 지민이다- 자신에게 세뇌를 시키고 그렇게 가만히 안김을 당했다.
**
그날 밤, 단이는 석진의 집을 도망쳐나왔다. 정말 단 한줌의 미련도 없이.
그간 힘없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더니 탈출할 것이라곤 생각도 못한 석진측에선 보초 하나 세워놓지 않았던 것이 잘못이었다.
허무할 정도로 손쉽게 석진의 집을 탈출한 단이는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지민과 함께 지내던 곳으로 쉼없이 달렸다.
그 곳에 가면 지민이 어디 갔다 이제 왔냐며 자신을 다그치지 않을까, 어리광을 부리며 보고싶었다고 안기지 않을까.
아직도 단이의 머릿속에선 지민의 모습이 생생한데 그런 지민이 죽었다니. 단이는 그 곳에 가면 지민이 있을 거라고 자신을 반길거라고 스스로 굳게 믿고 또 믿었다.
하지만 그런 믿음을 한순간에 박살내는 동굴의 모습. 사람이 사는 곳이라곤 생각되지 않는 처참한 모습들은 그곳에 오히려 지민이 없기를 바랄 정도였다.
지민과 단이가 함께 지내던 곳은 초전박살이 나있었고 온전한 것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물론 그 곳에는 지민 또한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순간에 정인과 그 추억을 모두 잃은 단이는, 그것을 직접 제 눈으로 확인한 단이는 무너져내렸다.
석진의 집에 있을 때는 지민이 살아있을 거라고 믿으면 됐다. 그러면 지민은 단이에게 살아있는 것이 되었다.
제 눈으로 확인할 거라고 했지만 막상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그렇게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 수가 없었다. 이곳에 와서 확인하니 이젠 정말 지민이 죽은 자가 되어버렸다.
믿기지가 않아 동굴 안에서 지민의 마지막 흔적이라도 찾고자 동굴 안을 계속 맴돌았다. 온전한 지민의 옷가지라도 있을까, 지민의 장신구 한 점이라도 남아있을까.
하지만 지민의 온기 한 점조차 남아있지 않은 싸늘한 동굴 안은 단이의 노력을 더욱 허무하게 만들었고 단이의 가슴을 더욱 찢어놓았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터덜터덜 동굴을 빠져나가던 그 때, 단이의 발에 채인 진주 몇 줌. 촤르륵.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굴러나가는 진주를 바라보며 단이는 그 때를 떠올렸다.
" 인어가 기쁠 때 흘린 눈물은 행복을 기원하는 진주가 되고. "
" 인어가 슬플 때 흘린 눈물은 상대를 저주하는 진주가 되며. "
" 죽기 직전에 흐르는 눈물은 망각의 진주가 된다. "
이 진주들은 무슨 뜻을 담은 진주들일까.
살아 생전 지민이 흘린 기쁨의 눈물들일까, 단이와의 헤어짐으로 인한 슬픔의 눈물들일까.
아니면
지민이 죽기 직전에 흘린 망각의 진주들일까.
**
" 대체 어디로 사라졌다가 이제 나타나는 것이냐!!! "
아침 해가 뜨기 전 사라졌던 단이가 해가 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모든 하인들을 풀어 마을을 쥐잡듯이 뒤졌지만 단이의 흔적은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고 석진은 단이가 나타날때까지 자정이 지나도록 마당 앞을 서성였다.
그러다 뻔뻔하게도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단이를 보자마자 단이에게 달려가 단이의 어깨를 붙잡고 마구 다그쳤다.
단이의 표정은 집을 나서기 전과 달리 얼굴에서 슬픔은 걷혔지만 어디 하나 모자란 사람처럼 멍했다. 살아있는 송장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단이는 어딘가 이상했다.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대는데도 표정변화 하나 없는 단이를 석진은 더더욱 몰아붙이며 어딜 다녀왔냐고 고함을 쳤다.
" 그 괴물을 찾으러 갔다온 것이냐? "
석진의 물음에 단이는 석진의 눈을 맞추고
" 괴물? "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 괴물이 무엇이옵니까? "
망각의 진주와 함께 지민을 잊었다.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고 혼례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날, 혼례 바로 전날까지도 단이는 지민을 기억하지 못 했다.
지민이 흘린 망각의 진주는 정말로 단이의 중요한 것을 잊게 했다. 그날 진주를 주운 단이는 보석방으로 가 그것을 반지로 만들어달라 요청했다.
그것이 망각의 진주이든, 행복의 진주이든, 저주의 진주이든 지민의 일부 중 하나일테니.
그리고 반지를 끼는 순간 정말 요술처럼 머릿속에서 지민이란 부분이 숭덩 잘려나갔다. 기억의 허리가 잘려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들이 어색하면서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지웠을 뿐 마음 속에서는 지우지 못해 단이의 마음속 한켠에서 계속 무언가가 떠오르려다 말기를 반복했다.
분명 중요한 것을 잊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계속해서 허전하고 무언가 미친듯이 사무치고 가끔은 이유없이 눈물도 흘러나왔다.
왜 그러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단이를 미치게 만들었다. 이유라도 알아내어 그 뿌리를 뽑고싶은데 그 형상없는 그리움은 단이를 계속해서 좀먹어갔다.
" 내일이면 혼례인데 준비는 잘 되어가느냐. "
삶의 의미를 어느순간 잃어버린 단이는 석진과의 혼례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이 마을에서 벗어날수도 없었고 그러면 더 나이가 차기 전에 혼례를 치뤄야 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여전히 잘해주는 석진과 결혼해 그냥 그렇게 얌전하고 조신한 아내로,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아내로 살기를 결정했다.
석진은 그날밤 단이가 돌아온 뒤부터 단이가 미친사람처럼 울부짖지도 않고 자신과의 만남을 거부하지도 않아 의아했지만 그저 단이가 다 포기한 것으로 생각했다.
괴물을 더 이상 만날수 없다는 생각에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괴물은 잊고 자신과 새롭게 시작하려는 줄로 멋대로 치부해버렸다.
" 예. "
하지만 전과 같은 단이의 반짝반짝함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터.
자신에게 얽매이고 나서부터 단이의 눈동자는 죽어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잔인하게도 일부러 외면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단이만 가지면 됐기에.
단이는 그날부로 늘 넋이 나가있었으며 목소리에도 항상 힘이 담겨있질 않았다. 정말 살아있는 송장처럼 그저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을 뿐이다.
석진은 그것을 자신에게 복종한다고 생각하며 만족스러워했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내였다.
" 그래. 내일이면 정말 부부가 되는구나. "
석진이 그리도 꿈에 그려오던 날이었다.
그리고 단이는 절대 오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날이었다.
" 예. "
" 그래. 이만 들어가서 쉬어라. "
" 예. "
어느순간부터 단이에게 돌아오는 대답이 '예' 밖에 없다는 것을 석진이 눈치채지 않을리가 없었다.
**
오늘은 처녀의 '두번째' 혼례날이었다.
마을에서 가장 고운 처녀와 마을에서 가장 잘난 사내의 혼례는 마을의 경사였다.본인들의 혼례날인 것 마냥 들떠서는 둘의 조화를 입이 닳도록 칭찬했으며 둘의 앞으로를 축복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처녀의 텅빈 눈동자는 보지 못 했다. 그저 저들 좋을대로 지껄이면서 아무도 처녀의 공허함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주 성대하고 정신없는 혼례식이 끝난 직후 사내는 처녀에게 다가와 물었다.
' 대체 그 반지는 무엇이오. ' 자신이 주지 않은 예물이 처녀의 손가락에 끼워져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녀는 사내의 눈도 마주치지 않고 힘없이 대답했다.
' 저도 모릅니다. ' 처녀의 황당한 대답에 사내는 어이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트렸고 우악스럽게 그 반지를 멋대로 잡아빼버렸다.
" 아아아아악!! "
" 너 누구야. "
" 나와 입을 맞추면 며칠간은 물 속에서 숨을 쉴 수 있어. "
" 그럼 둘 다 외롭지 않을테니까. "
" 물 속에서 오랫동안 숨을 쉬지 못하는게 그들에게 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
" 그렇다면 네가 나의 태양이 되주어라. "
" 하지만 너와 함께 있으면 행복의 진주로 바다를 만들수 있을거야.
고작 반지를 하나 뺐을 뿐인데 처녀는 손가락이라도 잘린 것 마냥 괴로워했다. 아니, 손가락 하나 쯤 잘리는 편이 더 나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이 몰려왔다.
사내는 그러면 안 됐다.사내가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여인이었다면, 갖은 고생끝에 겨겨우 손에 넣게된 여인이었다면 사내는 더더욱 그러면 안 됐다.
여인을 겨우 지탱하고 있던 반지를, 버팀목을 무너뜨리면 안 됐다.
사내는 자신의 행동을 두고두고 후회할지니
결국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이킨 것은 본인이었다.
겨우 잡은 나비를 제 손으로 직접 풀어준 어리석은 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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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여러분.
개망했네요
단편을 쓰라했더니 3편이나 쓰고
심지어 날짜도 못맞추고
분량조절 실패로 급전개이며
예
뭐 짐니는 여기서도 죽었네여
그리고 저도 함께 주그려합니다. 짐니로 이딴 망글을 싸지르다니
그럼 안녕. 오늘을 계기로 절필하려 합니다. 내 똥손은 이제 망해써 흑흐흐흑 이제 복구불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