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을 외워보자! 01
w. 2젠5
기숙사로 돌아가는 동안 내 어깨에 두른 이제노의 팔이 너무 신경쓰여 고개를 돌릴 수도, 숙일 수도 없었다. 이제노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띄운 채로 날 응시하며 뭐라 말하고 있었지만 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냥 얼른 기숙사로 돌아가서 침대에 고개를 묻고 아이린에게 모두 다 말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분명히 걔도 소리를 지르며 배게를 쾅쾅 내리칠게 분명했다. 내가 제 말을 듣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은 것인지 이제노가 날 3층 복도로 이끌었다. (아이린의 말에 따르면 3층 복도로 가는 두사람은 무조건 하나가 되어서 나온다고 했다) 5학년 대표 학생이라 지나가는 학생들마다 제게 인사하며 어디가냐고 물어오는 것이 성가셨던 것일까. 아니면! 설마?? 머릿속을 강하게 강타하는 음란한 생각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줄어들었다. 그럴리 없어, 5년동안 봐온 이제노였다.
"좋아해"
어슴푸레하게 달빛만이 비추는 창가 앞에서, 이제노가 내 어깨를 가볍게 잡고 저렇게 말해왔다. 이제노의 어깨 뒤로 빛나는 달빛때문인지 무언가 환상적인 기분이 들었다. 대답은? 이제노가 너무 가까이 다가와서, 이제노가 말할때마다 숨결이 내 얼굴에 스쳤다. 바닥을 응시하던 시선을 이제노에게로 옮겼다. 이제노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내가 싫다고 말할까봐 두려운걸까. 눈을 맞춘채로 한참을 있었다. 이제노의 심장소리가 내 귓가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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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이었다. 처음 입학하던 날. 호그와트로 향하는 열차에서 이제노가 내 옆에 앉았었다. 안녕, 예쁘게 교복을 차려입은 채로 내 손을 잡아오는 그 애가 좋았다. 내 앞에 앉아있던 이동혁이 온갖 맛이 나는 젤리를 먹고 토했을때, 이동혁을 10여년간 알아온 나 조차 울고있는 이동혁을 달래고만 있을 때도, 이제노는 아무 말 없이 묵묵하게 그것을 다 치웠다.
"그리핀도르!"
마법 모자가 나와 이동혁을 갈라놓았을때, 후플푸프 테이블 가장 끝 쪽에 앉아 이동혁을 바라보며 엉엉 울고 있었을때, (그때는, 그리핀도르와 후플푸프는 4개 기숙사 중 가장 사이가 좋고, 기숙사도 가깝고, 테이블도 가깝고 합반도 많이 해서 거의 떨어지는 법이 없다는 것을 몰랐다.) 안녕 시민, 나도 후플푸프야. 라며 이제노가 우는 나를 달래줬었다.
2학년이었다. 처음으로 비행수업을 받던 날, 내 빗자루에 누가 장난을 친 것인지 나는 빗자루에 대롱거리며 매달려있었다. 살려주세요! 그때도 울면서 교수님을 기다렸지만, 10분전에 팔이 부러진 이동혁을 보건실로 데리고 간 교수님은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잡을게, 그러니까 손 놓아도 돼. 이제노가 내 밑에 서서 울고있는 나를 달랬다. 이제노의 긴 설득 끝에 나는 손을 놓았고, 나는 털끝 하나 다치치 않았지만 이제노는 결국 팔이 부러졌었다. (그래서 약 두달 동안 나는 이동혁과 이제노의 오른팔, 왼팔이 되어야만 했다)
3학년이었다. 호그스미드에 놀러갔다가 이제노와 길을 잃었던 크리스마스 전야. 이제노가 묵묵하게 내 옆을 지키다 감기몸살로 끙끙앓았던 그날 밤. 호그스미드의 골목에서 내 무릎을 베고 누워있던 이제노. 땀에 젖은 이제노의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동이 트길 기다렸었다. 꼭 감긴 이제노의 눈을 손등으로 살살 문지르며 깨달았다. 아, 내가 얘를 좋아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작년, 이동혁이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겼다며 나와 이제노를 잡고 징징거렸던 추수감사절 아침. 좋아하면 당당하게 고백하면 되지 왜 못하냐고 이동혁을 나무라던 이제노를 보고 괜히 찔려서 고개를 떨궜던 그날 아침. 지금 생각해보니까 이제노도 5년 동안 날 좋아했었다고 그랬는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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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때?"
오랜 시간 지속되던 정적을 깨고 이제노가 말을 걸어왔다. 이젠 이제노의 심장소리 뿐 아니라 내 심장소리도 이 어두운 복도를 울린다. 복도 끝 쪽에서 필치씨와 노리스 부인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노가 들키지 않기 위해 벽 쪽으로 나를 민다. 이제노가 나보다 머리하나는 커서 이제노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꼴이 되어버렸다. 이제 이제노의 심장소리가 조금 더 분명하게 들린다. 이제노가 나를 어정쩡하게 안은 채로 고개를 숙여 나와 눈을 다시금 맞춰온다. 5년 동안, 좋아했어. 나도. 너를. 날 옭아맬듯 한 이제노의 시선을 피한 채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내 말을 들은 이제노가 나를 꽉 껴안는다. 나도. 5년 동안. 이제노의 목소리에 심장이 터질 듯 뛴다. 달빛이 이제노와 나를 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