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 솔로 탈출기
w. 꾸뷔두밥
한적한 공원에 정체모를 괴성이 울려 퍼졌다. 무슨 소리냐고? 김탄소 절규하는 소리지. 이미 산발이 된 머리를 다시 헝클이며 옆에 있던 수연이를 붙잡고 칭얼거렸다. 시끄러워, 이것아! 받아주는 것에 한계에 다다른 듯 옆에서 혀를 끌끌 차며 가만히 앉아있던 수연이는 계속되는 칭얼거림을 못 참고 내 정강이를 깠고, 그제서야 칭얼거림을 멈추고 무릎을 감싸며 훌쩍거리기 바빴다. 그래, 네가 생각해도 한심해 보이겠지. 그런 내 모습에 피곤하다는 듯 수연이는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게 왜 번호 달라고 할 때 안 주냐고... 바보야?"
'그러니깐 네가 솔로 탈출을 못 하는 거야'라며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수연이의 모습에 나는 금붕어가 된 마냥 입만 뻐끔거릴 뿐 그 말에 대응할 답변이 없었다. 재수없지만 맞는 말이었으므로. 그렇다. 내 나이 꽃다운 스물, 아직 남자 손 한 번 잡지도 못한 모태 솔로다.
00.
어렸을 때는 그랬다. 아직 어리니까 연애보다는 공부라는 생각으로 여중, 여고 코스를 밟던 나는 쓰리콤보를 면하기 위해 여대가 아닌 일반 대학교에 진학하였지만 과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나는 여자들의 무리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래도 대학교 졸업하기 전까지는 탈출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물론 남자를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의 권유로 큰맘 먹고 소개팅을 나갔지만,
"탄소 씨, 이거 드셔 보실래요?"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탄소 씨, 늦었는데 데려다 드릴게요."
"아니요! 여기 근처에 살아서 혼자 갈 수 있어요!"
이런 멍멍이 같은 소리들만 내뱉으니 소개팅이 잘 될 리 만무였다. 덕분에 철벽녀라는 별명 하나만 더 늘어났다. 철벽을 치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숙맥인 것을 대놓고 광고하는 것처럼 남자의 말에 쉽게 붉어지는 얼굴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제발, 얼굴아 진정해! 진정하라고! 속으로 몇 번이고 되새겼지만 남자의 말에 붉게 익은 얼굴로 버벅거리는 자신이 창피하였고, 저도 모르게 남자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아까의 일도 그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평소와는 다르게 멋부려 화장에 원피스까지 입고 시계도 보지 못한 채 나온 나는 나오고 나서야 강의 시간까지 30분이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부리나케 달려가 학교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신은 아직 나를 버리지 않으셨구나, 라는 이상한 생각을 하며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를 하며 비어있던 뒷자리에 앉아 창문 새로 들어오는 바람을 솔솔 맞으며 감기는 눈커풀을 못 참고 그대로 감은 것이 문제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 위로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눈을 뜬 나는 학교 근처라는 사실을 알게 되곤 급하게 벨을 눌러 일어나려고 하자 툭- 하고 떨어지는 옷에 물음표를 잔뜩 띄우곤 옆을 보자 웬 잘생긴 청년이 옆에서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지 않는가! 그 미소에 순간 머리를 통과하는 많은 생각들에 의해 내려야 할 타이밍인데도 불구하고 움직이질 못했다. 잘 때 설마 코를 골았던 건 아닌지, 침을 흘렸던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을 하고 있을 때쯤 떨어져 있던 옷을 줍더니 제게 손 내미는 남자의 모습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토끼 이빨을 훤히 보이며 안 내리냐는 남자의 말에 어떨결에 잡고 버스에서 내렸고, 내리고 나서야 남자와 손을 잡았다는 것을 인지한 나는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못하고 홍당무가 된 얼굴을 가리며 도망치려고 했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거짓말처럼 뛰고 있던 다리를 멈추었다.
도망친다고 멀리까지 뛰어왔다고 생각했지만 몇 걸음 들리지도 않았는데 벌써 제 앞까지 온 남자의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키는 내 모습에 남자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얼굴에 웃음을 한가득 담은 얼굴로 잠깐만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주머니에서 나온 휴대폰을 내게 건냈다.
"누구 훔쳐보는 취미는 없는데 계속 그쪽한테 눈길이 가더라고요."
"...?"
"애인 없으시면 번호 좀 주실래요?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요."
남자는 긴장한 건지 연신 머리를 매만지며 손에 든 휴대폰을 제 쪽으로 내미는 모습에 강의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 앞에 놓여진 휴대폰을 보며 한참을 고민하고 있던 중 '잘생긴 사람이 번호 달라고 하길래 알려 줬는데 게임 초대만 날려요', '번호 줬는데 전화 와서 욕해요!' 등등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상한 글들이 생각나자 제 앞에 있던 휴대폰을 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댔다. 그래, 내가 진짜 좋아서 번호 따는 게 아닐 거야.
"어어, 아, 안 돼요!"
"네?"
"안 돼요!!!!!!!!!"
그렇게 휴대폰을 손에 들고 멍하게 서 있는 훈남을 버리고 도망쳤던 나는 지각까지 하고 교수님께 까이고 나서야 깨닳았다. 아,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말이다.
(+) 탄소가 모르는 이야기
"어어, 아, 안 돼요!"
"네?"
"안 돼요!!!!!!!!!"
안 된다는 말과 함께 사라진 여자의 모습에 멍하니 서 있던 중 진동 소리와 함께 휴대폰 화면에 뜬 지민의 이름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곤 입이 찢어져라 웃음을 지었다. 아, 아까도 느꼈지만 이건 너무 귀엽잖아. 그래도 누구 번호 따는 건 처음인데, 그렇게 생각하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지민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다. 어, 다 왔어. 금방 갈게. 짧은 대답과 함께 여자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같은 학교니까 찾으면 나오겠지, 뭐. 탄소는 알지 못할 것이다. 전정국은 엄청난 또라이라는 것을.
-
불도저 같은 전정국과 연애 숙맥인 탄소를 그리고 싶어서 끄적끄적 쓰기는 했으나 결론은 망작이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