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뢰한 OST - 무뢰한
(유투브에서 mp3 따와서 음질 안 좋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프롤로그: http://instiz.net/writing/3742513
출소(出所)한 영민의 머리 위로 눈부신 햇볕이 쏟아진다. 날씨가, 좋네요. 영민은 조용히 뇌까렸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영민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휴대폰을 빌렸다. 그 열한 자의 숫자가 꿈엔들 잊힐리야.
안녕하십니까, 형님. 나긋한 목소리에는 지난 시간의 설움과 분노가 있다. 영민은 그를 숨기려 하였으나 민현의 귀에 걸리지 않을 리 없었다.
민현은 반갑게 인사했다. 반갑게, 라는 말이 무색할 만치 멋쩍고 낯설은 구석이 있었다. 영민은 조용히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소리 없는 웃음이 민현에게 들릴 리 없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형님. 영민의 부드러운 말 뒤로 민현의 얼굴엔 영민의 것과 같은 웃음이 퍼졌다. 잘 지냈을 리가 있겠니, 인마. 너 그렇게 보내놓고.
그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란 걸 영민은 일찍이 알았기에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간 둘 사이에는 정적이 이어졌다.
"한 시간만 기다려라. 애들 보낼게. 차 타고 돌아와."
"...형님."
"허튼 생각 마. 너는 나 아니고선 갈 데 없는 거야."
"........"
"한 시간이다. 일곱시 반이면 돼."
영민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주인에게 돌려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휴대폰 화면은 민현과 영민이 2분 남짓 통화하였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영민은 낡고 해진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작은 바늘은 6을, 큰 바늘은 5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은 매표소로 향했다. 부산이요. 영민의 입에서 흘러나온 '부산'이라는 말에 매표원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민현이 말한 한 시간은 영민이 자신을 데리러 올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영민이 민현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데까지 남아있는 시간이었다.
6시 40분, 영민이 받아 든 버스표에 적힌 출발시간이었다. 영민은 어깨에 들쳐맨 큼지막한 제 가방에서 검은색 야구모자를 꺼내들었다.
야구모자를 푹 눌러쓴 영민은 12번 탑승구로 향했다. 혹여 누구에게라도 들킬까 싶은 발걸음이 빨랐다.
풀썩, 자리에 앉아 털썩, 가방을 내려놓은 영민이 모자를 더욱 푹 눌러썼다. 깊은 숨을 내쉬며 손목시계를 들여다 본다.
그런 그의 건너편에 느릿하게 자리잡는 누군가가 있다. 그 또한 검은색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다. 영민은 창 밖으로 눈을 돌린다.
건너편에 자리한 그는 가방에서 맥주캔 하나를 꺼낸다. 그러고는 그 맥주캔을 영민에게 내민다. 맥주캔을 받아든 영민은 자신에게 맥주캔을 내민 그이를 쳐다본다.
"Welcome to my zone."
".........."
".....Take a rest. I'll wake you up."
영민은 탁, 소리가 버스 내부에 울려퍼지도록 캔을 땄다. 목울대를 타고 넘어가는 맥주가 차가움과 시원함의 사이 그쯤 어딘가에 있었다.
영민은 눈을 감았다. 버스는 천장에 붙은 전자시계가 정확히 6:40이라는 숫자를 가리킬 때, 드르릉 하며 시동이 걸렸다.
다시 눈을 떠 창 밖을 바라보는 영민. 무거운 눈꺼풀을 두어 번 꿈뻑인다. 한 번 깊은 숨을 내쉬고는 눈을 감는다. 순식간에 비워진 캔을 한 손으로 구겨뜨리고는 제 앞에 자리한 주머니에 넣었다.
부산으로 향하는 버스는 유유히 터미널을 빠져나갔다.
-
"부산으로 빠졌답니다, 형님."
"혼자?"
"왠 놈이 하나 있었답니다. 모자를 써서 누군지는 모르겠고요. 그나마 버스를 타서 뒤쫓고는 있습니다."
"잘 지켜보다 보고하라고 해."
"예, 형님. 그런데요, 형님."
"........"
"부산은, 그쪽 나와바리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 아닙니다. 형님."
"별 수 없을 거다. 그렇게 강해지지도 못할 거야."
"예, 형님."
"가봐."
승철이 민현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방을 나섰다. 민현은 제 왼쪽 가슴팍 주머니에 있던 담배를 꺼내 물었다. 틱, 소리를 내며 지포 라이터에 불이 붙었다.
깊은 숨을 한 번 빨아들인 민현은 눈을 감았다. 임영민... 세 글자가 조용히 떠오르는 곳이 머릿속인지 마음속인지는 모르겠지만, 머리든 마음이든 복잡해지고 있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 발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다시 부산으로 갈 가능성도 배제한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이렇게 되면 머리도, 손도 쓸 수밖에 없게 된다.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건 맞았지만, 녀석에 대한 분명한 정보가 입수되기 전까지는 무어라 움직이기도 어렵다. 후우, 민현의 입술 틈으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별 수 없을 거다. 그렇게 강해지지도 못할 거야.
그 말은 승철에게는 영민을 표현한 말이었지만, 민현이 민현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별 수 없고, 그렇게 강해지지도 못해.
대책을 생각해내야 했다. 분명 어딘가에 방법이 있을 거라는 미묘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
"임영민이 출소 후 부산으로 떴다. 동행은 라이관린. 임영민이 라이관린 쪽에 붙어서 황민현을 누르고 올라설 거란 예상이 맞았어. 부산에서 세를 키워서 서울을 칠 거야."
".........."
"금방일 게다. 황민현만 잡으면 임영민과 라이관린은 대만으로 뜰 거야. 네가 그 전에 판을 엎어서 황민현 위로 올라서야 해. 녀석들보다 빨리."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1년이 3년이 되고, 3년이 5년이 됐습니다.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합니까."
"너만 올라가주면 돼. 너만 황민현을 눌러주면 그 뒤는 우리가 알아서..."
"과장님!!!"
참지 못한 성우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양과장은 입을 다문 채로 자켓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냈다. 성우는 손으로 맨얼굴을 쓸어내렸다.
지겨웠다. 제 앞에 있는 양과장이. 그의 말투와, 담배에 쩐 얼굴과, 세상 피곤이 다 묻어나는 주름살까지, 모든 게 성우에게는 지겨움으로 느껴졌다.
저는 경찰이었다. 그런데 경찰의 기역 자 조차 꺼내지 못한 게 대체 며칠이란 말인가. 잠깐이라 했던 잠입수사가 햇수로 5년 째다. 이제는 저가 경찰인지 조직원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당장 내 정체성이 흔들리고, 불안하고, 난리가 났는데 양과장이고 뭐고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더 이상 그의 지시가 지시처럼 느껴지지도 않고, 그를 따르고자 하는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성우는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헷갈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옹성우, 넌 경찰이야. 대한민국 경찰이라고. 흔들리지 마라. 흔들릴 것도 없어. 네 뒤에 우리가... 있잖냐."
"....."
욕지기가 났다. 토하고 싶을 만치 역겨운 상황이었다. 들개의 무리에 들어와 들개처럼 살며 이빨에, 손톱에, 몸 구석구석까지 붉은 피를 묻혀간 시간이 5년이다.
씻으려고 해도 씻을 수 없는 선혈과, 죄악과, 거짓 그 모든 것들이 제 발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형님, 형님, 하고 따르는 아우들이 있었다. 아빠, 여보, 하고 불러주는 가족들이 있었다. 성우야, 넌 경찰이야. 하는 양과장이 있었다.
그 사이에서 성우는 갈 곳을 정하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노루 같았다. 조금만 잘못 움직이면 사방에 널린 늑대와 들개에게 물어뜯기는, 한 마리의 노루.
양과장은 손을 들어 성우의 어깨를 다독였다. 성우는 제 어깨 위로 만근의 짐이 얹혀지는 기분이 들었다.
"....."
"네 손으로 없앨 수 있어, 옵티멈. 하던대로만 해."
옵티멈(Optimum). 한국과 대만에 뿌리를 둔 범죄조직으로 이 2개국 내에서는 최대의 스케일을 자랑한다.
2대 회장이자 서열 1위인 황주호는 황민현의 아버지이자 옵티멈의 설립자로, 한국인 어머니와 대만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초대 회장인 그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대만으로 넘어오면서 공식적으로는 건설 산업의 큰 손이 되었고, 후에 유통 산업에 손을 대면서 비공식적으로 마약 유통에 손을 대기 시작해 대만 내 크고 작은 범죄 조직들을 합병해나갔다.
황주호는 전라도의 혜홍파와 경상도의 욱유파를 합병해 한국의 옵티멈을 국내 최대 조직으로 만들며 덩치를 키웠다.
오늘날 옵티멈은 건설, 유통은 물론 엔터테인먼트 등 다방면에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돈을 버는 머리는 서열 4위인 라이관린이 타고났다는 게 조직원들의 평이었다.
한편 사채, 다단계 등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분야이자 실질적으로 큰 돈이 되는 부분은 황주호의 적자(嫡子)이자 서열 3위인 황민현의 몫이다.
황민현은 황주호의 첫째 부인이 낳은 하나 뿐인 아들이었기에 당연히 황주호의 자리를 세습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대만인이었던 둘째 부인이 낳은 서자(庶子), 라이관린이 태어나면서 반드시 그러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라이관린이 아버지의 성씨를 따라가지 않은 건, 제 아들을 지켜주지 못한 안타까움으로 괴로워한 제 어미의 지독한 유언 때문이었다.
어째서인지 황주호는 두 명의 부인을 다 일찍이 여읜 후에는 더 이상 결혼을 하지 않았다.
조직은 자연스럽게 황민현파와 라이관린파로 나누어졌다. 2년 전, 황주호는 교통사고로 혼수상태가 되어 병상에 누웠다.
교통사고의 범인은 당시 황민현의 왼팔로 온갖 더러운 뒤치다꺼리를 다 하던 임영민이었다.
황민현이 계획한 사고에 임영민이 바이크를 몰아 황주호의 차를 쳤다. 당시 황민현은 제 아버지를 실세에서 물러서게 하기 위해 사고를 계획했다.
황민현은 어린 임영민을 선처해주는 척 하면서 징역 2년을 선고받게 했다. 2년만 들어갔다 나오면 옵티멈은 우리 것이 될 거고, 너는 내 곁을 지키게 될 거다. 이것이 임영민을 움직이게 한 황민현의 말이었다.
그러나 임영민이 교도소에 들어가 있던 동안 옹성우가 황민현의 곁을 충실히 지키며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해결해냈고, 이른바 황민현의 충신이 되었다.
황민현에게 임영민은 필요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황민현은 임영민을 버렸다. 버리는 카드에 자비란 없었다. 제가 버려졌다는 걸 안 임영민은 황민현에게 복수를 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라이관린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비워진 황주호의 자리에는 황주호의 동생 황주열이 울며 겨자먹기로 앉아 있었고, 라이관린은 황민현의 의도를 파악한 후 차근차근 제 세력을 키워갔다.
저가 움직이기 좋은 골든타임은 임영민의 출소 이후란 걸 라이관린은 알았다. 그렇게 출소 당일, 라이관린은 영민을 데리고 제 나와바리인 부산으로 내려간 것이다.
서울에는 황민현이 튼실히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비집고 들어설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 임영민의 출신도 부산인 바, 더 이상 라이관린에게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임영민이랑 같이 내려간 놈이 누군지 알아냈습니다, 형님."
"...누군데?"
"라이관린입니다, 형님."
전화를 건 사람은 승철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성우에게 승철의 전화는 이제부터 전쟁이 시작된다는 일종의 알람 같은 것이었다.
알았다. 지금 들어갈게. 간결히 말한 성우는 통화를 끊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양과장을 향해 눈인사를 했다. 양과장은 성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세 번째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 흰 담배연기가 컴컴한 창고에 피어올랐다.
무근본(無根本) |
오늘 쉬는 날이라 1편 썼습니다. 이해가 잘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황민현은 첫째 아들, 라이관린은 둘째 아들. 각각 한국과 대만 출신으로 아버지가 같고요. 옹성우는 조직원으로 위장한 경찰로 옵티멈에 몸담은 지 5년째입니다. 옵티멈을 소탕한다는 임무가 있습니다. 임영민은 황민현에게 이용당하고 이제 막 출소했고, 라이관린과 세를 합쳐 황민현을 치려 합니다.
아직 학년이 캐릭터가 안 나왔습니다. 다음 편에는 등장할 것 같아요. 모티브는 영화 <신세계>입니다. 제가 무지 좋아하거든요. :) 궁금한 점 있으면 물어봐주셔요.
+) 근데 움짤 있는 게 나을까요? 없는 게 나을까요? 움짤로는 다들 너무 애기애기해서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는 것 같단 생각이.. 뭐가 더 나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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