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 대하는 것이 어려웠던 기억도 없다. 하물며 대인 기피증이야….
그런데도 이렇게, 이토록 망설이고 쭈뼛거리게 되는 건 대체 뭐지?
"어? 세훈씨! 왔으면 어서 들어와 앉지 않구 거기 서서 뭐해?"
자타공인 분위기 메이커 김대리님이 때마침 내 이름을 부르지만 않았다면 정말이지 이대로 조용히 도망쳐버렸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 나도, 이런 내가 한심하지만…. 그래도 왜 하필, 빈자리가 저기 뿐인 걸까.
"자자, 늦었어요. 다들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죄송합니다. 처리 할게 좀 밀려 있어서."
"그런 건 요렁껏 처리했어야지―, 가만 보면 세훈씨는 너무 꽉 막혔다니까."
"왜요, 좀 더 열정적인 것뿐이죠."
"뭐 그것도 맞는 말이네. 하하."
가방을 내려놓고 변명 아닌 변명을 읊어내다가, 나를 옹호하는 듯한― 소름이 끼칠 만큼 달고 낮은 목소리에 흠칫 어깨를 떨었다.
술잔을 잡아 쥔 매끈한 손가락. 타는 듯한 붉은 입술. 단정하게 중심을 잡은 콧날을 거슬러 그 새까만 눈동자까지.
조심스럽게 들어올리던 시선에 눈이 마주쳐 얼굴에 열이 오른다고 느끼며, 애써 태연한 척 목례를 했다. 답례로 돌아온 건 늘 그렇듯 부드럽게 휘어지는 입술선.
"자, 세훈씨도 한 잔 받으시고."
"아, 예."
"오늘도 고생했어요."
"아니요. 뭘요."
어느 틈에 다가와 술병을 들이미는 대리님에게 공손히 술을 받고 고개를 돌린 채 들이키려다 문득 주시하는 시선을 느꼈다.
새까만 눈동자가 씽긋 빛을 머금더니 들고 있던 술잔을 내밀어온다. 급하게 마시지 말고, 자, 나랑 건배.
당황한 걸 들키지 않으려고 표정을 다잡으며 슥 팔을 뻗어 부딪쳤다. 챙강 하는 맑은 소리와 곧게 뻗은 목선. 모든 게 새삼 가슴을 설레게 해 투명한 알콜을 단번에 들이켰다.
"배고프지 않아요? 저녁 또 커피로 때운 거 같은데."
"아… 뭐…."
뜨끔한 심정으로, 어쩐지 얼굴이 붉어진다고 느끼며 목덜미를 매만지다가.
젓가락을 들어 불판 위에 익고 있던 고기를 주섬주섬 접시에 담아 내 앞으로 놓아주는 손에 또 한번 흠칫.
드세요. 예?
"아.. 고, 고맙습니다."
"이모님! 여기 공기밥 하나 더 주세요!"
생긴 것하고 안 어울리게, 라고 했었나? 심심찮게 듣는다는 그 말 그대로, 왁자지껄한 고깃집 테이블 정 중앙에 앉은 그는 가는 팔을 번쩍 들며 홀이 쩌렁쩌렁하도록 외친다.
아이고, 젊은 청년이 목청도 좋네. 애라도 뱄으면 놀라 뚝 떨어졌겠어! 인심 후하게 생기신 고깃집 아주머니의 농담 섞인 타박에도 '처녀 같이 고운 분이 그런 말씀하시면 큰일나죠! 사람들 놀라요!' 라며 살갑게 웃어 보이는 그는 어딜 가나 주목받는 사람.
우리 테이블뿐만 아니라 가게 안 곳곳에 순식간에 웃음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그는, 이렇게 늘 반짝반짝 빛이 난다. 정말 지구인이 맞는 걸까.
"입에 발린 말이라도, 나도 여자라고 기분은 좋네. 써비스로 고기 좀 더 얹어줄 테니 기다려요."
"오오, 이모님 짱!"
양쪽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올리며 아이들 같은 말투와 표정으로 웃어 보이는, 이토록 유쾌한 그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모두의 시선에 섞여 그를 주목하다가 피식 소리나지 않을 웃음을 흘렸다. 나도 참, 이럴 때가 아니면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다니.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어버렸담.
"고기 두 점씩 싸서 먹어요. 계란찜에 밥도 비벼 먹고. 그거 다 먹는 거 나한테 검사 받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오세훈씨?"
아…, 그게. 대꾸할 틈도 없이 수저며 젓가락이며, 심지어 물 컵까지 챙겨주는 세심함에 옆에 앉아있던 여직원들이 질투의 시선을 보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머ㅡ 찬열씨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저희도 고기 좋아하는데."
"그러게요. 너무 세훈씨만 챙기시면 서운하죠."
"보세요. 세훈씨 손목이 두분보다도 가느다란 게 보이세요? 세훈씨한테 더 신경이 쓰이는 게 당연하다구요."
"꺄, 싫다!"
"찬열씨ㅡ! 매너 없어요!"
아니 저기…, 내 손목이 어디가 어때서.
이쪽도 저쪽도 워낙 친근한 분위기라 이만한 농담쯤은 일상과도 같으니까. 하하호호 술잔을 기울이고 부딪치는 걸 물끄러미 봤다.
나도. 나도 저렇게, 농담을 농담처럼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안 드세요?"
"…네?"
약간 헐렁한 와이셔츠 면 아래로 드러난, 말라서 뼈가 불룩 튀어나온 손목을 내려다보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한없이 다정하고 친절한 눈빛을 가진
"맛있게, 많이 드세요. 세훈씨."
그를, 나는.
짝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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