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찰기 (2)
개학 첫날임에도 수업을 강행하는 학교에 아이들이 하나 둘 엎어졌다. 째깍이는 시계 소리 사이로 나른한 선생님의 목소리가 간간이 스며든다. 물론 나도 예외 없이 자는 축에 속해야 했지만 괜한 책임감 때문일까, 전정국의 깨워 달라는 한마디에 끝나기 십 분 전까지 졸린 눈을 부릅떠 가며 참아 냈다. 시곗바늘이 십 분 전에 닿자마자 엎어진 전정국의 등을 격하게 두드리고는 전정국이 일어났는지 아닌지 확인할 새도 없이 그대로 엎어졌다. 책상에 머물던 햇빛이 한껏 눌린 볼을 토닥였다.
"대박. 야, 일어나 봐."
그렇게 눈을 붙인 지 십 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쉬는 시간인 걸 보면 십 분은 잤나 보다. 졸린 눈을 끔뻑이며 흐릿한 시야를 맞췄다. 옆자리에는 전정국 대신 친구가 앉아 있다. 크게 뜬 눈이며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서 벌어진 입까지 장관이다.
"왜?"
"전정국 방금 싸웠어. 여자친구랑."
눈에 번뜩 초점이 잡혔다. 친구는 내 반응이 만족스러웠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자초지종을 술술 털어놓는다. 전정국이랑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전정국이 그걸 까먹었는지 종이 치자마자 여자친구가 씩씩대며 들어오더란다. 물론 그 때까지 전정국은 세상 모르고 엎어져 자고 있었고. 아무리 다정한 전정국이라고 해도 자다가 머리채 잡힌 꼴로 여자친구 투정을 받아주려니 감정이 욱했을 것이다. 조곤조곤 달래던 말투의 데시벨이 점점 올라가더니 결국에는 둘 다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딱딱한 책상을 베고 자느라 얼얼해진 머리가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는 평소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설마 전정국을 안 깨우고 잤나. 잠결에 깨웠다고 생각하고 잔 게 아닐까? 머리로는 과한 오지랖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몸은 어느새 교실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예상 외로 화난 채로 지나가는 전정국과 그의 여자친구를 봤다는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전정국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귀는 수업종이 치는 것도 듣지 못했다. 허름해서 쓰지 않는 체육 창고까지 뒤져 봤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찾을 사람을 못 찾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허망해서 자꾸만 질질 끌렸다.
"여주야."
"......"
"니 왜 여기 있나."
짜리몽땅한 내 그림자 위로 불쑥, 길고 큰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렇게 찾아 헤맸던 목소리였기 때문에 굳이 뒤돌아서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내 뒤에 버티고 선 전정국 옆에 붙어야 할 다른 그림자가 없었다.
"너, 여자친구는?"
"......"
"싸웠어?"
"......"
"내가 너 안 깨워서 그런 거야?"
"아니다, 가시나야."
걱정과 함께 쏟아지는 내 질문에 전정국이 피식 웃는다. 고요한 웃음소리가 조각난 햇살을 타고 통통 튀어올랐다. 뒤에서 햇빛을 가려주고 서 있던 전정국이 자연스럽게 내 옆으로 옮겨 왔다. 옆자리가 비어 있던 나를 자신이 채우는 게 당연한 일이라는 듯.
"안 싸웠다, 다 풀었고."
"......"
"네가 안 깨워서 그런 거 아니다. 눈 뜨니까 니는 자고 있던데."
"......"
"내가 너 보고 있었거든."
예쁘지도 않은 얼굴 좀 봤다고 죽을 뻔했다면서 전정국이 장난스럽게 키득거리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전정국이 왜 이렇게 내게 친밀하게 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자친구가 올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굳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던 이유는 뭐고, 엎드려서 얼굴도 안 보였을 텐데 왜 그랬을까. 왜? 물음표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지만 결국 내가 가장 알고 싶은 건 하나뿐이다. 대체 전정국은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그것도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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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을 신청해 주실 분이 계시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감사해요.
[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