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들어주세요.
| 센티넬버스 |
센티넬: 일반인보다 오감이 예민하고 신체능력이 매우 뛰어남. 초능력을 가질 경우도 많음.
가이드: 센티넬을 안정시키는 존재.
센티넬에게 가이드는 자신을 안정시켜주는 없어선 안 될 존재. 가이드가 없는 센티넬은 진통제로 버티지만 과다 복용시 폭주하여 죽게 됨. 센티넬과 가이드의 등급은 다양하며 등급이 맞는 짝을 만날수록 가이딩 효과가 좋음. 최상급은 S로 표기함. |
여주는 꿈을 꾼다. 그건 꿈이라고 할 수도 있고 신화라고 할 수도 있으며 현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주가 꾸는 꿈 아니면 신화 아니면 현실은 항상 정해져 있다. 그녀는 항상 누군가를 숭배한다. 누군가는 사실 남자이며, 사실 남자는 뚜렷하다 못해 입체적인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다. 쌍꺼풀 없이도 크고 동그란 눈에 조각상보다 깔끔하고 우뚝하게 뻗은 콧대, 단아한 선으로 마무리되는 얼굴에 모두가 감탄 섞인 탄식을 흘리며 그에게 복종한다. 물론 남자는 그의 수많은 추종자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모두가 한 번이라도 마주치기를 원하는 눈은 오롯이 여주만을 향한다. 여주는 엎드린 채로 끊임없이 머리를 조아린다. 남자의 다정한 시선이 그녀의 숙인 고개를 관통한다. 여주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로의 행복감을 마음껏 맛본다. 그것은 오직 그녀만을 위해 남자가 허락한 감정이다.
헉. 여주의 꿈은 항상 짙은 숨을 들이마시는 것으로 끝났다. 뻑뻑해진 시야 속에서 뿔테 안경을 쓴 지민이 울렁인다. 지민은 S급 센티넬이기 때문에 교칙을 굳이 지킬 필요가 없음에도 항상 단정히 교복을 갖춰 입고 다녔다. 칠판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던 지민의 시선이 꿈틀대는 여주에게로 느릿하게 이동했다. 쥐고 있던 샤프를 내려놓고 조심스레 여주의 뺨을 감싸 안는다.
"여주야. 왜 그래."
"아, 아니야. 그냥 꿈."
여주는 어색하게 웃는다. 지민의 손에 다시 샤프가 쥐어진다. 피곤하면 말해. 일찍 집에 가자. 지민이 다정하게 얘기한다. 눈꼬리가 매혹적으로 올라갔다가 이내 내려왔다. 굳어진 목을 몇 번 꺾어낸 지민은 다시 무표정하게 칠판을 응시한다. 여주도 숙였던 고개를 들고 수업을 듣는 틈틈이 지민의 상태를 살핀다. 이 교실에서의 학생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보살핌을 받는 자와 보살펴주는 자. 여주는 물론 후자이며, 이 학교에 단 두 명 존재하는 S급 센티넬 중 한 명, 박지민의 가이드였다.
피에타
지민은 쉬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필기하는 손짓조차도 고아해서 범접할 수 없는 강한 아우라를 풍긴다. 아이들은 그런 지민에게 동경과 시기와 질투의 비율이 10 대 0 대 0 정도로 적절히 섞인 시선을 보낸다. 평범한 사람들은 센티넬은 숭배했고, 센티넬들은 그런 대우를 당연시하면서도 저보다 등급이 높은 센티넬에 대한 열등감으로 이를 갈았다. S급 센티넬을 질투한 나머지 폭주하다 죽어 버린 A급 센티넬의 황당한 사례가 있듯이 능력 있는 자들의 세계는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그러나 지민은 그런 전쟁에 직접 관여할 만큼 한가하고 하찮지 않았다. 박지민은 일개 센티넬들이 질투할 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센터에 있는 어린 센티넬들은 지민이 참여한 전투 영상을 보고 자라며, 자기 전마다 그와 같은 능력이 발현되기를 기도한다. 그는 숭배받고 보호받아야 할 센티넬들의 신이다.
"아, 이 씨발..."
그리고 여기 또 한 명의 소년이 있다. 시곗바늘이 등교 시간을 훌쩍 넘긴 곳을 달려가고 있었음에도 소년은 뻔뻔하게 앞문을 밀고 들어온다. 한참 눈알을 번득이며 조합이 맞지 않는 센티넬과 가이드가 각인할 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설명하던 선생은 잔뜩 찌푸린 미간으로 불편한 심기를 가감 없이 내보이지만 소년은 개의치 않고 제 자리를 찾아 앉는다. 소년은 항상 혼자이기 때문에 짝꿍조차도 없다. 옆 분단에 앉은 지민이 미세하게 눈썹을 까닥인다. 소년이 손과 얼굴에 묻은 피를 대충 닦아내자 얼굴의 윤곽과 이름 석 자가 적힌 명찰이 드러난다. 김태형. 소년의 이름은 김태형이다. 태형은 다리를 건들대며 지민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반쯤 피에 젖은 얼굴로 히죽이며 말하는 꼴이 꼭 지옥의 혼령들 같다.
"야, 지민아."
"......"
"담배 있냐?"
"......"
"씨발, 가이드도 없는 오빠 신세 좀 불쌍하게 봐줘라."
"......"
"아님 네 가이드라도 잠깐 빌려주던가."
"닥쳐."
"새끼, 엄청 딱딱하게 구네?"
무시하던 지민은 여주의 이야기가 나오자 즉각 반응했다. 손에 힘을 주자 쥐었던 샤프가 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여주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킨다. 태형은 제 바지 주머니를 뒤져 쪼그라든 담배와 약병을 꺼낸다. 지민은 험악해진 표정을 감출 생각도 않고 수시로 태형을 경계한다. 혹여 태형과 눈이라도 마주칠까 여주의 눈을 두 손으로 꽁꽁 싸맨다. 태형은 비웃으며 약병을 흔들어보인다.
"지민아."
"......"
"욕심부리지 마. 어차피 다 제자리야."
"닥치라고 했어."
"봐주는 것만 몇 번째야."
"김태형!"
"이번에는 좀 스무스하게 가자."
말을 마친 태형이 진통제를 한꺼번에 털어넣는다. 뚜렷한 미간에 고통이 아로새겨졌다. 핏자국과 식은땀이 엉겨붙은 얼굴은 기괴하다 못해 징그럽기까지 하다. 빈 옆자리까지 몸을 누인 채로 숨을 고르던 태형이 담배를 피워물었다. 부옇고 역한 연기는 태형의 우뚝한 콧날을 스치고, 찌푸린 지민의 얼굴을 휘감고, 다물린 여주의 입술을 침범한다. 여주가 작게 기침한다. 머리가 아프다고 생각한다. 태형은 반쯤 피우던 담배를 지져 끄고 별안간 올 때처럼 요란하게 교실 문을 열어젖히고 나간다. 손에 핏줄이 불거질 정도로 여주의 눈을 억누르고 있던 지민은 그제서야 여주의 시야를 열어준다. 아팠지. 언제 날을 세웠냐는 듯 다정하게 누그러진 목소리로 저를 걱정하는 지민에 여주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수업이 재개되었다. 태형은 또다른 S급 센티넬이었다.
피에타
"여주야."
"응?"
"나 잠시만."
밥을 먹던 지민이 급히 뛰쳐나갔다. 지민이 내동댕이친 숟가락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가 이내 멀뚱하게 서 있는 여주에게로 향한다. 여주는 무능한 가이드라는 꼬리표를 달고 싶지 않으므로 느릿느릿 지민의 흔적을 따라 나간다. 여린 등이 사라지자마자 급식실은 떠들썩해진다. 여주와 지민이 그들의 입방아에 바쁘게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지민아."
"... 아, 헉."
"박지민? 여기 있어?"
"아, 이 씨, 발..."
여주는 대리석 바닥에 부딪혀 나오는 지민의 고통을 느낀다. 몸과 몸, 정신과 정신이 찌르르 울리며 공명했다. 가이드로서의 본능이 여주를 사로잡는다. 지민을 안정시켜야 한다.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고통스러워하는 지민이 아닌 웬 여자와 비좁은 화장실에서 뒹구는 지민이었다. 항상 정갈하던 지민의 눈동자가 반쯤 풀려 초점도 못 맞춘 채로 미러볼처럼 흔들린다. 온전히 상대를 갈구함으로써 능력을 안정시키고 평정을 찾는 행위, 가이딩. 그걸 멀쩡한 가이드인 저를 두고 다른 여자와 한다? 여주는 잠시 혼란스러워진다.
"... 지민아."
"아, 여, 주야."
"너 거기서 뭐 해?"
"자, 잠시만."
"네 가이드 나잖아."
"아, 씨발."
본능에 급급한 지민은 끝까지 여자와 입술을 맞대기 바쁘다. 결국은 나중에 제가 다 설명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 여자와 함께 홀연히 사라진 지민을 여주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화장실이 울리도록 소리를 지른다.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대리석 바닥에 메아리친다. 여주는 목이 쉬고 쇳소리가 날 때까지 소리를 지르다가 종내는 긴 비명을 내뱉는다. 아까 스치듯 본 지민의 얼굴은 혈색이 돌아와 밝았음에도 온몸의 장기를 긁어내는 듯한 통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여주가 꺽꺽대며 화장실 한복판에 쓰러진다. 탕. 아까 전부터 굳게 잠겨있던 마지막 칸의 문이 요란하게 열렸다. 여주는 개처럼 질질 기어 펄럭이는 문고리를 잡는다. 물먹은 듯 잔뜩 잠긴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청 한 번, 좋네."
"... 김태형."
"네, 새끼 아니라고... 취급도 안 해주면 좀 슬픈데."
보다시피 나도 굉장히 아프거든. 태형이 아까처럼 피칠갑 차림은 아니었으나 훨씬 힘들어 보이는 얼굴로 웃었다. 한 손에는 구정물에 젖어버린 진통제 알갱이들을 꼭 쥔 채로. 앙다문 입술에서 핏줄기가 새어나온다.
"... 너 이대로 두면 죽어."
"알어, 이 씨, 발. 후우."
"......"
"근까, 사람 한 번만 살리는 셈치고... 가이딩 한 번만 해주라."
입술은 바라지도 않으니까 박지민이랑 부비고. 손만 잡아줘, 손만. 태형이 애써 웃어보이며 덜덜 떨리는 손을 내민다. 여주는 기꺼이 뭍에 나온 물고기처럼 고통으로 허덕이는 태형의 손을 낚아챈다. 번개라도 맞은 듯 맞잡은 손가락들이 움찔했다. 여주는 누가 망치로 두드리는 것 같던 제 머리가 말끔해지고, 태형의 호흡이 고르게 잦아드는 걸 느끼며 묘하게 어긋나는 이질감을 느낀다. 아니, 어쩌면 모든 게 맞아떨어지는 기분이 든다. 태형은 여전히 부서질 정도로 여주의 손을 움켜쥐고 있다. 산산조각난 진통제가 마침내 구정물에 녹아들었다.
*
센티넬버스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치명적인 글은 영 아닌 것 같나요... ㅠㅠ

인스티즈앱
인천 송도 민간사격장서 실탄에 맞은 20대 사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