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백 이십구!! 구백 이십구!!"
아 움직이기 귀찮다.
꿉꿉한 공기로 가득 찬 방 안 다 낡아 삐걱거리는 먼지 쌓인 침대 위에 홍빈은 그렇게 또 다른 이름이 되어버린 숫자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오늘따라 더 움직이기 싫다.
또 왜 불러 귀찮게.
홍빈은 잠시 옆으로 돌아누우며 생각했다.
침대 위의 먼지가 잠시 날았다가 눈처럼 천천히 떨어졌다.
어제 내가 끓인 죽이 이상했나.
빨래 잘못 널었던가?
아닌데... 그럼 뭐지.
"구백이십..."
"네!"
아, 갑니다. 간다고.
홍빈이 워커에 맨발을 욱여넣으며 소리쳤다.
-
"구백이십구."
"네!"
"... 널 찾는 사람이 있다."
"네?"
이것 봐, 뭐가 잘못된 게 맞다니깐.
분명 내가 실수를 했거나 아니면 이 전쟁 중에 할 게 없어 심심한 급 높은 군인이 밑에 애들 좀 괴롭혀 보려고 트집을 잡은 거겠지.
자신의 신코를 잠시 내려다본 홍빈이 고갤 들었다.
대충, 대충 끝내자.
".....어느 부대로 가면ㄷ..."
"따라와라. 차를 타고 이동한다."
"에..?"
"실시."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었지만 실시. 그 한마디에 몸이 반응했다.
"저.. 어디로 가는겁니까."
"타라."
"저 혹시 큰 잘못 했나요?"
그럴 리가 없다, 나는 전쟁이 일어나고 군에 들어와 (정확히 말하자면 끌려온 거지만) 한 번도 사고를 친 적이 없었다.
그저 자라면 자고 구르라면 구르고 먹으라면 먹고 입으라면 입고 쏘라면 쏘고 ....
가끔 부대에서 장난으로 혹은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저를 불러 이것저것 트집을 잡긴했지만 차를타고 이동하는것은 처음있는 일이였다.
아니, 자신과 같은 방을 쓰는 친구들과 밤에 몰래 나눴던 군 얘기들 중에서도 들은적 없는 경우였다.
"혹시 정부에서 부른....."
"켄이다."
"네?"
"이재환."
아, 그 군에서 항상 짱먹고 들어간다는 그 유명한...
어?
"네?"
"이재환이 얼마전 우리가 훈련하는것을 보러 왔었다."
"......."
"너를 따로 만나고 싶어 하던데, 아는 사인가?"
"아뇨, 전혀......."
뭐지, 이게.
홍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낡아 주저앉을듯한 트럭 짐칸에 몸을 실었다.
가는동안 생각이 많아질것 같다.
처음 전쟁이 났을땐 그랬다.
마냥 도망치기 바빴고 숨어있기 바빴다.
나는 군대에 있지 않았으니깐.
밥을 먹기 바빴고, 누나들과 식량 하나라도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다퉜다.
멍청하게 아빠 엄마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지금은 후회한다,많이.
"구백이십구."
"...네."
"켄이 너보고 자기 밑에서 일하라고 하더라."
갑자기 부드러워진 인국의 말투에 홍빈이 놀라서 흠칫 떨었다.
덜덜거리며 달리는 싸구려 트럭위에 얹은 엉덩이가 뻐근해진다.
"힘들거야."
"네."
홍빈은 보았다 인국의 어깨가 떨리는것을.
인국이 짐칸막이를 고정시키며 떨다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많이 힘들겠지.
인국은 이번 전쟁때문에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었다.
나와 얼마 다르지 않다.
다 똑같은 사람이다, 저도 인국도.
우릴 이렇게 만든것은 사람이 아니지만.
이 전쟁은 일어난지 얼마되지 않았다.
6개월 전쯤, 그러니까....
그날은 그냥 그런 날이였다.
비도 오고, 누나들은 거실에서 드라마를 보고 엄마는 밥을 준비하고.
아빠는 낮잠을 주무시고 계셨고.
나는 그냥 침대에 누워있었다.
근데 그때 비가와서 어둑어둑한 바깥이 잠시 번쩍 빛났었다.
천둥인가, 생각하며 가만히 누워있는데 누군가 내방쪽으로 뛰어오는 소리가 났다.
"홍빈아, 일어나!!"
누나는 아마 내가 자고있는줄 알았나보다.
난 별 생각 없이 속편히 왜. 하며 몸을 일으켰고.
"도망가."
그게 다였다.
나와 가족들은 짐도 챙기지 못하고 집을 나와야했다.
키우던 강아지 콩이는 어쩔수가 없었다.
집에 두고 와야한다고 아빠가 뜯어말리는 바람에 엉엉울며 집을 나왔다.
전국에 경보가 울리고,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아빠,근데 왜 그래요?"
나만 덤덤했다.
실감이 안났다.
뭐하는건가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외계인이 쳐들어 왔다는데, 실감이 날리가 없지.
"구백이십구."
정신이 들었다.
"네!"
"내려."
집칸에서 뛰어내린 홍빈이 엉덩이를 탈탈 털었다.
"......."
"잘지내라."
"........."
"못돌아올까봐, 하는말이다."
"네."
"안아보자, 구백이십구, 아니."
"......."
"이름이 뭐랬지?"
"홍빈... 이홍빈 입니다."
한 6개월만에 입안에서 굴려지는 발음이 낯설다.
929, 구백이십구. 그게 내이름 같았다.
"홍빈아."
"...네."
"잘지내라."
"...네."
짧게 홍빈을 안으며 어깨를 탁탁 두드리던 인국이 홍빈을 떼어놓으며 웃었다.
"웃어, 임마. 잘했어 여태까지. 계속 그렇게 하면돼."
"아..."
"뒤돌아봐."
뒤를 돌았다.
회색빛.
안개낀 배경에는 아무것도 보이는게 없었다.
"쭉 걸어."
"....."
"켄이 있을거야."
"안가면 안..."
"실시."
미쳤어, 진짜.
이번에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잘가라."
대꾸하지 않고 걸었다.
돌아보면 미련이 생길것같아서.
억지로 씩씩한척 발에 힘을 실어 걸었다.
회색 안개가 홍빈을 삼켰다.
그렇게 회색안개를 지나 걷고,걷고 또 걸었다.
"아, 왔네."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켄이다.
홍빈은 머릿속에 스치는 친구들의 말을 기억해냈다.
"그, 켄? 이재환 아냐."
"아, 그 예명쓴다는 웃긴새끼."
"쉿, 야 그말 밖으로 나갔다가는.."
바로 이거야. 하며 손가락으로 목을 긋던 친구가 다시 떠들었다.
"걔가 지금 외계인들 잡아다가 실험하는 거 아냐."
"뭔소리야, 안 죽이고?"
"어, 야 진짜 장난 아니더라. 무슨 사람하고 가둬놓고 실험한다는 얘기도 있고...."
"미친, 그거 완전 또라이 아냐?"
"조용히 해."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생각보다 가벼운 목소리 뒤에 붙어 따라오는 발소리가 귀에 붙었다.
"이홍빈?"
"네."
"아, 그래. 내가 누군지 알아?"
"아니......요...잘..."
고개 숙인 홍빈의 머리 위로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부터 네 위에서, 널 실험할."
".........."
"켄, 이재환이야."
잘 부탁한다.
멀리서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ㅎㅎ......제목수정 한다는게...글읋ㅎ...삭제해서...ㅎㅎ...신알신 신청 하신분 한분밖에 없지만...ㅎㅎ..
나년 바보....밥.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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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방탄 찐팬이 올린 위버스 글인데 읽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