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가 너 좋아한대
“ 지훈아. ”
“ 그렇게 부르지 말아줄래. 무서우니까. ”
“ 박지훈. ”
“ 그렇게 부르지 말랬다고 바로 바꾸네. 왜. ”
공부한답시고 카페에 와서 음료만 마시고 있는 중이다. 진짜 여기 녹차 왜이렇게 맛있어? 처음에는 일상적인 얘기를 하다가 문득 든 생각은, 세현이었다. 박지훈, 이 꼬맹이같은 자식. 감히 누나한테 좋아하는 여자를 안 알려줘? 그렇다면 내가 물어보는 수밖에. 라는 생각으로 박지훈을 불렀다. 둘이 잘 되는 모습을 내가 생각해도 막 마음이 간질거리는 거 같아서 나도 모르게 지훈아. 라고 불렀다. 박지훈이 뭐 사준다고 할 때 빼고는 이렇게 안 부르는데. 박지훈은 무섭다며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해서 바로 바꿨다. 박지훈.
“ 너 요즘 좋아하는 사람 생겼지. ”
“ …누가 그래? ”
“ 정보통이 다 있단다. 빨리 불어. 아, 안 불어도 이미 다 알고 있긴 하지만. ”
“ 이미 다 알고 있다고..? ”
내 질문이 그렇게 부끄러운 질문이었는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단어를 꺼내자마자 귀부터 빨개지는 박지훈이다. 어머, 설마 했는데 얘 진짠가보네. 누가 그러냐고 묻는 박지훈에 정보통이 있다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막 올라갔다. 세현아, 진짜 맞나봐.
“ 넌 어떻게 내 친구를 좋아할 수가 있냐. 그럼 나한테 말을 하지. ”
“ ……뭐? ”
“ 축하해, 걔도 너 좋아한대. ”
내가 여사친은 세현이밖에─애들이 날 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여사친 노릇을 박지훈이 다 해줬기 때문에 굳이 사귈 필요가 없었다─ 없다는 것을 박지훈도 알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많이 마주치지 않았더라도 내 옆에 있는 세현이는 항상 자기 일 열심히하고, 남자란 아웃 오브 안중이니 그럴만도 하지.─저번에 누구한테인가 세현이는 남자 애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고 들었다─ 나는 박지훈에게 축하한다고 전해주며 ‘잘해봐’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 박지훈의 핸드폰을 들어 세현이의 번호까지 저장해두었다. 박지훈은 뭐하는 짓이냐며 핸드폰을 뺐다시피 가져갔다.─하지만 이미 저장한 뒤였다─ 난 그 반응이 10년 친구인 내 앞에서 좋아하는 여자를 들켜 쪽팔리다는 것인줄 알았다.
──
참 이상하다. 그래, 이상하다면 이상한거고, 서운하다면 서운한거다. 오늘 따라 학교에서 박지훈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인 것은 맞는데, 나를 찾지 않았다. 등교를 할 때도 나를 기다리지 않았고, 그렇다고 어떠한 연락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래, 등교는 사정이 있어 그렇다쳐도, 급식실 앞에서도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 혹시 몰라 급식실 안을 들어가보니 박지훈은 이미 다른 남자애들과 급식을 먹고 있었다. 박지훈은 날 등지고 앉아있었고, 남자애들이 날 본 것인지 박지훈의 눈치를 보며 먹는 것이 급식실 밖인 여기서도 보였다.
밥은 그렇게 먹지 못하고 혼자 교실에 와 박지훈이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혹시 부끄러워서 그러는 건가? 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내가 아는 박지훈은 그럴 사람은 아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애가 자기를 좋아하는 것을 알게되면 어쨌든간 먼저 고백하는 스타일이랄까?─상식적으로 싫어할 사람이 어딨겠는가─ 이렇게 혼자 잠수타고 먼저 가버리고 그런 애는 아니란 말이다. 분명 어제까지만해도 그 말을 뒤로 카페에서 나와서도 집을 같이 들어갔고, 아. 생각해보면, 아주 어쩌면, 어제부터 안 좋았던 것일수도 있다. 집은 같은 방향이라서 같이 걸었다 쳐도, 박지훈에게 연락 하나가 없었다. 평소 걔 성격대로라면 ‘진짜 걔도 나 좋아한대?’ 라거나, ‘너 구라면 죽는다’ 라거나, ‘세현이 뭐 좋아해?’ 라거나... 이런게 전혀 없었다.
“ 성이름! 내가 몇 번 불렀는데, 무슨 생각해? ”
“ 어? 아, 미안. 그냥, 멍 때리는 중. ”
“ …지훈이 오늘 기분은 어때? ”
“ 응? 아, 좋을걸? 좋아. ”
내가 정말 생각을 깊게 했는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세현이는 나를 몇 번 부른 것인지 내 앞자리 의자를 돌려 앉고 내 이름을 다시 불러서야 정신을 차렸다. 세현이에게는 그냥 멍 때렸다고 둘러댔다. 그랬더니 오늘 박지훈 기분 어떠냐고 묻는 세현이에 좋다고 얼버무리자 세현이의 입가에 화색이 돌았다. 정말? 어… 아마 그럴거야.
──
결국, 그렇게 하교도 혼자했다. 혹시 몰라 학교가 끝나자마자 박지훈 반으로 뛰어갔는데, 역시나 먼저 가고 없었다. 평소에는 몰랐는데 박지훈이 없어서 그런가 오늘따라 발걸음이 무겁기도하고, 외롭기도 했다. 항상 둘이 가던 길을 혼자가니까 그런건가. 서운하지않다면 거짓말일거다. 십 년 동안 박지훈과 부대끼고 살았어도, 그동안 박지훈은 내게 ‘서운’이라는 감정을 안겨준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서운’이라는 감정이 밀려오니 ‘서러움’이라는 감정으로 바뀌었다. 내가 뭘 잘못했으면 말이라도 해주지. 그렇게 혼자 결정해버리고 혼자 가버리면 난 어쩌라고.
오늘이 가도록 박지훈은 끝까지 연락하지 않았다. 미안하다거나, 오늘 무슨 일이 있었다거나. 변명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애꿎은 핸드폰만 부여잡고 있다가 갑자기 뜨는 통화 화면에 놀라 나도 모르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발신자를 보았다. 박지훈이 아닌 ‘이세현’이었다. 조금은 아쉬운 마음을 억누르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
- “ ……… ”
“ 이세현? ”
- “ 성이름아... ”
통화를 받았는데도 아무 말이 없어 숨을 죽이니 미세하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이세현? 이라고 이름을 부르니 그 미세한 소리는 곧 우는 소리로 바뀌었다. 성이름아.... 전화하자마자 욕하는 세현에 놀라서 무슨 일있어? 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학교에서까지는 분명 밝았던 앤데.
“ 박지훈이 나 좋아한다며. 이어줄거라며..... …아니었어. ”
“ 왜, 무슨 일인데. 갑자기 왜그래. ”
“ 박지훈한테 고백했어. 오늘. ”
“ …… ”
“ 나는 고백을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르고, 무슨 말을 해야할지도 몰라서 그냥 얼굴보고 말하고 싶어서 학교에서 나랑 사귀자고 했는데 뜸들이더니 미안이라더라. 분명 얘도 날 좋아하는데 왜 미안이라고 하지? 내가 잘못 들은거 같아서 뭐라고? 라고 물어봤는데 자기는 나 말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대. ”
무슨 이런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아니, 개같지도 않은 소리가. 바로 오늘 세현이가 박지훈한테 고백했다는 것도 놀라운데,─세현이가 아무리 행동이 빠른 애라고는 하지만 이정도로 빠를 줄은 몰랐다─ 박지훈이 세현이한테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더 놀라웠다. 그 말을 듣고 벙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니 세현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 나 혼자 착각한 건가봐. 아까 박지훈 표정 안 좋아보이던데 연락해봐. ”
+ 항상 전 많이 썼다고 생각 하는데 보면 옮겨놓고 보면 아니네요....
다음에는 더 많이 쓰고 올게요!!!!!!!!
아 암호닉 요청하시는 분들 꽤 있으시던데.... 전 아직 암호닉 할 그런 단계(?) 까진 가지 않은거같아서....
그래도 원한다!!!!!! 난 원한다!!!!! 싶으신분들 또 계시면 다음편부터는 할게요!
감사합니다 s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