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민아!"
저 멀리서 영민을 발견한 여주는 도도도- 짧은 보폭으로 달려와 그대로 영민에게 폭 안겨버림. 그리고 그런 여주가 2년이 지나도 익숙치않아 귀끝이 붉어진 영민임. 워낙 스킨십을 좋아하는 여주에게 있어서는 만나면 포옹, 카페에서 포옹, 길가다 포옹, 헤어질때 뽀뽀. 늘 이런식의 패턴이 반복됨.
"영민아, 허리 숙여봐. 나 줄 거 있어."
"뭔데."
갑자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영민을 부르던 여주는 주머니를 뒤적거림. 영민은 키가 큰 편이었고, 여주는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영민에 비해서는 턱없이 작은 키였음. 그런 영민에게 허리를 숙여달라 부탁하던 여주는 영민이 허리를 숙이자마자 입에 짧은 뽀뽀를 함.
"만나서 반가우니까 뽀뽀!"
"뭐, 니 무슨 여자애가…,"
이젠 귀끝만 붉어지는게 아닌 얼굴이 달아올라버린 영민을 본 여주는 베시시 웃더니 그대로 휙 돌아 영민을 놔두고 앞서 걸어나감. 또, 농락당했네ㅡ 영민은 짧게 여주와 맞닿았던 부분이 화끈해지는 기분이었음.
이들의 스킨십은 매번 이런식이었음. 여주가 스킨십을 50번했다면 영민은 1번해주는 그런. 그만큼 영민이 여주에게 스킨십을 먼저 해주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음. 최근에 영민이 먼저 한 경우도 여주의 생일선물로 뽀뽀를 받았으니까.
"안되겠다. 니 오늘하루 스킨십 금지다."
"뭐?"
여주는 자신이 스킨십을 할때마다 부끄러워하는 영민을 보는것을 즐겼음. 왜 너무 귀엽잖아ㅡ 하지만 그런 여주가 괘씸했던 영민은 여주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을 내뱉고야맘. 그리고 여주는 그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음.
"ㅇ,왜?"
"니가 너무 괘씸해서."
여주에게 선전포고를 한 영민은 그대로 뒤돌아 영화관으로 들어가버림. 그리고 그 자리에는 벙찐 여주만 남겨진채, 그렇게 그들의 신경전 아닌 신경전이 시작되고야 맘.
2.
"영민아, 이제 그만하면…,"
"안된다."
영화관에 들어서기 전 벌여지던 신경전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음. 손을 잡으려고하면 자신의 후드 주머니에 넣어버리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질 않나. 뽀뽀라도 하려고하면 고개를 슥 돌리질 않나. 그때문에 죽어나는건 여주 뿐이었음.
"내가 잘못했어…. 그니까…,"
"영화 시작한다."
울것같은 표정을 하고있는 여주가 귀여운지 영민은 여주가 모르게 혼자서 큭큭대며 웃음. 그런 영민을 모르는 여주는 스킨십을 거절당한 충격에 영화관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는 입술을 내밀어 한숨을 뱉음. 영화가 시작해버려 더이상 영민에게 칭얼대지도 못하는 여주는 그냥 반포기한채 영화에 집중하기로함.
심야영화라 그런가 영화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음. 어느새 영화에 집중하게 된 여주는 입을 꾹 다물고 영화를 감상하기 시작함. 그리고 영화가 끝나갈무렵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키스하는 낯간지러운 장면이 나옴.
그에 조용히 넘어갈 여주가 아님. 여주는 베시시 웃는 얼굴로 영화에 집중하고 있던 영민이의 팔을 콕콕 찌름. 그리고 소곤소곤 조용하게 말을 건냄.
"우리도 한번?"
갑작스런 여주의 애교스런 행동에 영민은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애써 참아내며 무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음. 싫다ㅡ 그런 영민의 반응을 본 여주는 입술을 꾹하고 다물더니.
"너무해. 옹졸한 임영민."
라고 말을 하며 스크린으로 고개를 돌려버림. 결국 그런 여주의 행동에 좀처럼 잘 웃지않는 영민이 빵 터지고야 맘. 물론 빵 터지는것도 영화관 안이라서 조용히 입을 막고 웃는것 뿐이지만.
"야."
"…말걸지마."
"내 좀 봐봐라."
자꾸만 자신의 팔을 찌르며 말을 거는 영민 때문에 살짝 짜증이 난 여주는, 왜 자꾸 불러 진짜ㅡ라고 말을 하며 고개를 돌림.
그런 여주의 볼을 한 손으로 감싼 영민은 그대로 여주에게 입을 깊게 맞춤. 뽀뽀라하기엔 조금 길게 입을 맞추는 영민의 행동에 여주는 그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을 뿐임. 그리고 서로 닿았던 입술이 떨어지고 영민은 벙찐 여주의 머리를 헝클어뜨림.
"이제 됐나."
3.
하지만 늘 달달할 거 같았던 그들에게도 싸움이라는 것은 존재함. 영민은 꽤 화난 얼굴로 자신의 머리를 쓸어올리며 여주를 쳐다보았고, 여주도 영민 못지않게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영민을 쳐다봄.
"그러면 그냥 좀 안하면 안돼?"
"공연이 코앞인데 니 하나 때문에 준비한걸 다 그만두라고?"
그날은 영민이 활동하는 힙합크루가 공연하기 이틀 전 이었음. 그리고 여주는 그런 영민을 응원해주러 따라나왔음. 워낙에 영민이 공과 사는 구분하자ㅡ라는 마인드가 강하기 때문에 자신이 일을 할때 방해하는 것을 싫어했음. 여주는 그런 영민을 알기에 그냥 조용히 관객석에 앉아 영민이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을 봄.
영민의 크루에는 여자 멤버도 있었음. 여주는 영민을 믿기에 딱히 관여하지않았고, 영민도 선을 지키며 멤버들을 대했음. 그러나 이번에 새로 들어온 멤버라며 소개했던 휘영이라는 사람이 이 일의 시작점이었음.
조용히 관람하고 있던 여주를 밖으로 불러내더니, 도움이 안되면 방해라도 말아야죠, 오빤 저런게 뭐가 좋다고ㅡ 라며 한참동안이나 여주에게 폭언을 내뱉는 휘영이었음. 매사에 긍정적이고 활달한 여주였지만 사실 그녀는 굉장히 순둥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음. 그렇기에 휘영이 여주에게 폭언을 날려도 여린 마음에 아무말도 하지못한 여주임.
거기다가 제일 신경이 쓰이는건, 하필 영민이 휘영과 노래를하며 일종의 낯뜨거운 퍼포먼스가 있었음. 평소같으면 신경도 안쓰는 여주였지만, 그 일이 있고난뒤 보란듯이 영민에게 달라붙는 휘영이 신경이 쓰였음.
"배 안고프나."
때마침 영민은 쉬는시간에 잠깐 여주를 보러 나왔음. 영민에게 짐이 되고 싶지않아 말을 안하려 했지만 차마 그 둘이 퍼포먼스하는 것을 볼 수 없었던 여주는 말을 꺼내보기로 함. 그리고 그 대화가 불씨가 되어 지금처럼 말소리가 커지게 된 거임.
"내 일에 관여하는거 안좋아하는거 안다이가. 근데 왜그러는데, 니."
"그냥 이번만큼만 내 부탁 들어주라, 영민아. 응?"
"니가 한두살 먹은 앤줄 아나. 뭐하자는건데."
사실 영민도 여주가 쓸데없는 트집을 안잡는 앤걸 암. 하지만 다짜고짜 자신의 일에 관여해서 준비한 노래와 퍼포먼스를 그만두라고 하지않나, 안하던 고집을 부리지않나. 그런 여주에게 황당하고 화가 날 다름임. 자신이 이 공연을 위해 몇날며칠을 밤새어가며 준비했는데, 자기 한명때문에 공연을 망칠 수는 없었음.
"내가 싫다잖아. 근데 그깟 부탁 하나 못 들어줘?"
"그깟…. 하."
"......."
"니 여기서 이럴거면 그냥 나가라."
지금 보기 싫다ㅡ 영민은 참다못해 여주에게 가시같은 말을 뱉었고, 한번도 자신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않은 영민이었기에 여주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음. 여주는 영민에게 눈물을 보이기 싫어 애써 참았지만, 결국 볼을 타고 흘렀음.
"진짜…,"
여주는 두 손을 꽉 쥐더니 그대로 영민에게 등돌려서 건물을 나와버림. 처음으로 여주가 우는것을 본 영민은 그 순간 당황했지만, 자신도 그만큼 화가 났기 때문에 여주를 따라나설 수 없었음.
4.
영민은 여주가 나간 뒤로 공연 준비에 집중할 수가 없었음. 잘만 외웠던 가사를 까먹질 않나, 자꾸만 멍하게 있질 않나. 그런 영민의 모습에 멤버들은 의문을 가지기 시작함.
자신과 싸울때 울먹거리던 여주의 모습과, 나갈때 울면서 나가던 장면이 영민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음. 한숨만 쉬며 한참을 생각에 잠겼을까, 영민에게 한 멤버가 다가옴.
"아까 내가 잠깐 담배피러 나가다가 봤는데, 얘기해도 될란지 모르겠네…."
그리고 영민은 여주와 휘영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다 듣게 됨. 그순간 영민은 머리가 하얘지며 멤버의 말에 대답도 못한 채 멍하니 있었음. 여주씨가 없길래 내가 본 거랑 관련있는건가 싶어서ㅡ 멤버의 말이 끝나자마자 영민은 잠깐 나갔다올게ㅡ라고 한마디를 던진채 황급히 밖으로 나옴.
평소와 달랐던 여주의 행동을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왜 내가 조금 더 믿지 못했을까ㅡ 영민은 자꾸만 여주에게 했던 모진 말들이 생각이 나며 가슴이 아려왔음. 한참을 그렇게 자신을 원망하며 달렸을까, 운좋게도 자신이 공연준비하던 건물과 여주의 집은 멀지않아 금세 도착함.
"......."
그리고 한참을 여주의 집 앞에 서서 문고리를 잡았다 놓았다하며 망설임. 여주에게 무슨 일 있냐고 그 흔한 한마디를 건네지못하고 자신의 성질에 못이겨 여주에게 화를 냈던것이 후회되는 영민이었음. 결국 영민은 한참을 서 있다, 초인종을 누름.
"......."
이윽고 문이 열리고 얼마나 운 건지 눈이 빨개져 코를 훌쩍거리는 여주가 나왔음. 그리고 영민을 보자마자 눈이 커지더니 문을 닫으려고 함.
"잠깐만 얘기 좀 하자."
"…할 얘기 없어."
영민은 닫히려는 현관문을 세게 당겨 열고는 눈이 빨개진 여주를 쳐다봄. 그에 코맹맹이 소리로 답한 여주는 다시 문을 닫으려고 손잡이를 잡음.
"…내가 미안, 여주야."
"......"
"좀 더 니를 믿는거였는데, 무작정 큰소리만 내서 미안해."
그리고 따스하게 여주를 감싸 안는 영민이었음. 그런 영민의 행동에 설움이 눈 녹듯 사라져버린 여주는 영민의 품에서 눈물을 터뜨림.
자신의 품에 안겨 펑펑 우는 여주를 보던 영민은 한참이나 여주를 다독이며 머리를 쓰담아줬음. 그리고 여주를 품에서 떼어내더니 허리를 숙이고 여주와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지음.
"앞으로 니 말을 제일 먼저 들을게. 울려서 미안"
"…흐으, 진짜 나쁜, 놈아…."
"이제 그만 울어라. 눈 붓는다."
말은 무뚝뚝하게해도 계속해서 흐르는 여주의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주며 짧게 눈에 입을 맞추는 영민이었음. 여주야ㅡ 라고 다정하게 부르며.
그 일이 있고 난뒤, 영민은 휘영과 맞춘 노래를 빼는 것만이 아닌, 멤버들에게 얘기를 해 아예 휘영을 크루에서 내보내버림. 그리고 그 뒤로 여주가 슬픈 영화를 보며 눈물만 흘려도 어쩔줄 몰라하는 다정이가 되었다는 썰.
제가 너무 빨리 오나요?
이러다가 다들 질리셔서 제 글을 안읽을지도 모르니까,
연재 텀을 늦춰야겠어요 (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