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기억해? 너도? 뭐? 너도 기억하고 있었어? 뭐야, 저 새낀 기억 안 나나본데?
우리는 약속이나 한듯이 허벅지를 쳐낸 손을 접어 제 맞은편의 얼굴을 차례로 훑었다.
살짝 거뭇한 주먹에 얼굴이 반쯤 가려진 너. 너를 가르키는 손가락을 탁, 쳐내며 욕을 하는 너. 술잔을 놓기엔 아쉬운듯 검지만 쭉 펼쳐 술을 찰랑거리며 손가락을 돌려대는 너. 반쯤 감긴 눈에 힘을 주고 손가락을 치켜드는 너…
하나하나 훑기에도 버거울정도로 많은 너 사이에 낀 나도 슬쩍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리곤 마치 눈 앞의 너가 하는 것 마냥 서로를 추궁하는 척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리고 양 눈알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손가락 탓에 흐릿해진 시야가 또렷해질 때 즈음, 나는 곧장 '너'의 머리통을 가만 세어보았다.
하나, 둘, 셋… 열. 그리고 열명의 너에게 마찬가지로 너라고 불릴 나까지 열하나.
마지막으로 검지를 나에게로 돌려 꽂자, 스무개의 각기 다른 눈알들도 덩달아 시선을 나에게로 꽂았다. 다 다른 눈알들이 저마다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 묘한 분위기를 지어내고, 나는 그 묘한 분위기에 덩달아 숨을 죽이고.입술을 오무리고 벌리기를 반복하며 입 속 그득 담긴 무언가를 뱉을 눈치만 보는 중에 요란스러웠던 술자리에는 어느새 적막이 모두를 재촉하고 있었다. 마치 손가락을 저어대며 욕을 찰지게 뱉어내던 이들 모두 구두를 신고 이곳을 벗어나기라도 한 듯이.
순간, 묘한 눈동자의 위로 옆 방의 대화소리가 반짝이며 끼어들었다. 검은자 위로 반짝이는 얼굴 모를 주인공들의 대사가 민망스러워 나는 쭉 뻗었던 검지를 슬쩍 굽혔다. 그리곤 누가 내 손가락을 도로 펴기라도 할 것 처럼 급하게 뒷머리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나를 가르키던 손가락은 언제 그럈냐는듯 머릿속을 헤매었다. 애초부터 나라는 존재를 '너'의 범위에 넣지 않았다는양.
" 그러고보니, 너였지 않아? "
열개나 되는 입꼬리를 쳐다보느라 그 속의 누군가가 말을 뱉어낼 준비를 하고 있는 줄도 몰랐다. 고무공 마냥 툭 던져져 위로 솟아오른 그 목소리에 나는 얼른 시뻘개진 눈알을 굴렸다. 말을 내뱉은 너는 당당하게도 벌려진 입으로 헛웃음이나 내뱉고 있었다.
쉽게 널 찾아낸 나는 가만히 너를 노려보았고, 너는 시치미 떼는 내가 꼴 보기 싫다는듯 눈을 흘겼다. 계집애마냥 눈을 죽 찢어서는 나를 추궁하는 목소리가 영 듣기 싫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멍청하게 뒷머리나 긁어대던 손을 허벅다리에 올리고는 눈썹을 찌푸렸다. 뭐가.내 입에서 나온 말소리에 너를 비롯한 수많은 너들이 실소를 뱉었다.
" 걔랑 잤던 거. "
다시 튀어나온 너의 그 목소리에 실소가 잦아들었다. 고작 몇년전까지만 해도 섹스라는 단어 하나 내뱉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던 너의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 말은 나를 충분히 낯뜨겁게 만들었다. 하지만, 웃긴 것은 그 낯뜨거운 말에 우리들 중 누구도 실제로 낯빛을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그 얼굴들을 훑어보다 다시 너를 쏘아보았다. 너는 어딘가 기분이 좋아보였다. 꽤나 우쭐해하는 그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듯 머릿 속에서 수많은 잔상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그것의 기억을 찾아내려 애쓰는 대신에 입을 열었다. 그것이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하기도 전에 나는 뱉고 싶안 말이 있었기 때문에.
" 정확히 말하면 맨 처음 걔랑 잤던 게 나지. "
" ……. "
" 그 다음은 너였고. "
말을 뱉어내니 그제야 머릿속에서 그 우쭐한 얼굴의 너가 떠올랐다. 눈꼬리를 볼 속에 파묻어가면서 웃던 그 얼굴. 아마 그 때 너가 하던 이야기는 지금 하던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이를테면 전날밤 제가 손수 와이셔츠를 벗겨주었다던 소년을 되새김질하는 이야기라던가.
얼굴이 굳어진 너를 한참동안이나 살펴보고 나서야 나는 수많은 너의 얼굴이 그와 같아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의아니게 다른 너를 건드린 꼴이 되었다. 보아하니, 모두들 어느 누구보다도 정직하게 살아왔다는 듯 다들 순진한 얼굴들을 하고 있던데.이렇게까지 다수를 건드리려던 것은 아니었다 밝히기 위해 떨어뜨렸던 양 손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또다른 너가 시꺼먼 눈을 밝히고 있었고 나는 그 덕분에 입을 꾹 다물 수 밖에 없었다.
" 사실 다 알고 있던 거잖아. 그렇지 않아? "
너는 분명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를 포함한 모두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입을 벌려 그 판을 엎으려하지 않았다. 되려 우리는 숨죽이고 앉아서는 그 말소리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 남도 아니고 우리끼린데 뭐 어때. "
" 뭘 말이아. "
뒤늦게 너는 그 음흉한 속을 알아차린 척 불쑥 끼어들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 너가 이 모든 걸 눈치채지 못했다면 이보다 한참 전에 흥을 깨트렸었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우리는 슬쩍 입꼬리를 올리곤 그 연기에 무언의 존경을 흘렸다.
" 우리 모두 똑같은 짓을 저질렀잖아. "
" 짓이라니. "
그런 너에게 영향을 받은듯 또다른 너가 불쑥 끼어들었다.
" 상장 받을 만큼 착한 일을 한 건 아니잖아? "
하지만, 그 뒷말에 너는 금방 꼬리를 내려버렸다. 민망하기 짝이 없는 그 모습에 우리는 속으로 저마다 대신 욕을 짓걸여주며 다시 시꺼먼 눈을 반짝이는 너에게 시선을 꽂았다. 너는 두 명이나 되는 불청객의 난입에도 여전히 침착한 모양새였다. 마치 이 상황을 준비해왔던 것 처럼.
" 그러니까, 이야기해보자고. 10년이나 지난 이 마당에 뭘 숨기고 있어.
모두들 뒷말을 예상한듯 서로 눈치를 보았다.
" 김종대, 종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고. "
그리고 이번에도 눈치만 보는 우리를 대신해 너는 총대를 매고 그 이름을 입에 올렸다. 우리 모두는 진심으로 너를 존경한다는 눈빛을 보내었고, 너는 스물여덟이란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개구진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모두들 슬쩍 제 머릿 속에다 누군가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김종대, 열여덟 그 소년의 얼굴을.
소년, 김종대
감글 쓸 시간은 없는데 쓸 글은 많고.... 진짜 사서 고생하고 있네요
글 생각나는 것 마다 다 쓰고 싶은 욕심은 나고 이러다 보니 하나둘씩 밀리고 ㅜ
그래도 열심히 써보려 하니 미워하지만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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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유지태 못알아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