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선생님 도경수와 불량 학생 변백현
sub` 누가 누가 강하나?
"도 선생님,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담임은 자신보다 한참 어린 사람에게 연신 허리를 굽혀대며 두 손으로는 내 어깨를 붙잡아 의자 위에 앉혔다. 이전의 상담 선생님들에게 대했던 것처럼 상담 선생 앞에는 커피, 그리고 내 자리 앞에는 오렌지 주스가 놓여 있었다. 담임은 한 번 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상담실을 나갔다. 10번이 넘는 상담 속에서도 털 끝 하나 변하지 않는 학생에게 왜 이리 관심을 주는지. 변함없이 연속되는 상담에 지겹다고 생각했다. 졸림을 참기 위해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하품을 했다.
"이름 변백현, 학교 폭력으로 희수고로 강제 전학 처리, 교내 봉사 시간 105시간 누적, 이전에도 학교 폭력 사태가 발생해 학교 폭력 위원회 소집. 다행히 피해자와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져 생기부 기록 대상에서 제외."
단도직입적으로 지난날의 내 이력을 읊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기존의 상담 선생님들은 다 유하고 순한 선생님들이었다. 상담의 기본은 상담자와의 교감이라는 모토를 확실히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담임에게서 내가 빵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내 하나같이 가방에서 빵을 꺼내 이거 먹으면서 상담하면 편안한 분위기가 조성될거라고 얘기했다. 의도는 모두 좋았다. 나도 한때 잠시 이들의 달콤한 속삭임에 빠져 요구하는 대로 따라줬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 자신이 갑갑하다는 걸 느꼈다. 상담 횟수가 많아질수록 진정돼야 하는 마음은 어딘가에 짓눌려 있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고 그것은 항상 날 타이르며 무슨 선량을 베풀 듯 자신만 믿고 따라오면 갱생할 수 있다는 이들의 거만한 태도임을 알게 되었다. 난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눈만 깜박거리고 있었다.
"대충 봐도 머리는 규칙 위반이고 교복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은데, 하나만 묻자. 넌 너 자신이 대부분의 대한민국 학생들이 밟는 정상적인 루트를 밟고 있다고 생각하니?"
"네"
도선생이라고 불렸던 그 남자는 나의 단호한 대답에 서류를 보고 있던 눈을 내 쪽으로 돌렸다. 덕분에 선생의 치켜 뜬 두 눈을 마주하게 되었다. 선생은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진저리를 치며 눈빛을 내보이다 이내 자제한 것인지 다시 서류 속 글자들을 훑었다. 억지로 자제시킨 듯 한 그의 눈빛에서 익숙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선생은 가끔 중요한 내용이라도 발견한 것인지 형광펜으로 죽죽 긋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뭐라고요?"
"너는 네가 정상적인 루트를 밟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냐고."
"저도 정상적인 학생들과 다를 게 없으니까요. 일어나서 씻고 교복입고 등교하고 수업시간에는 교실에 앉아 있어요. 쉬라고 있는 쉬는 시간에는 제 방식대로 쉬고. 이것보다 더 평범한 고등학생이 어디 있어요? 학교 폭력가지고 운운하실 거라면 그 쪽도 할 말 없어요. 친구, 후배, 선배, 모르는 사람 다 가릴 거 없이 솔직히 학창시절에 한 번도 싸워본 적 없는 학생이 어디 있어요? 여자애들처럼 말싸움하면서 머리채 쥐고 욕 걸걸하게 내뱉는 거랑 제가 싸운 거랑 다를 거 없어요. 둘 다 치고 박고 싸운 거 매한가진데. 오히려 여자애들은 더러운 욕지거리하면서 상대방 까 내리기에 급급하잖아요. 전 걔네들보다 운이 안 좋았던 거죠."
변명이라면 변명일까 속사포로 내던진 말에 내 자신한테 놀라워하고 있었다. 이렇게 까지 내 자신을 변명해본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왜 이럴까? 도선생은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펜을 돌리고 있었다. 이내 입 꼬리를 올린 채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볼펜으로 열심히 끄적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정보로 가득한 생기부를 손에 들고 상담실을 나가며 말했다.
“너 좀 흥미롭네. 나중에 상담할 문제 있으면 연락해. 심심할 때 연락해도 받아줄 수 있어. 변백현.”
책상 위 종이에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도경수 010-199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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