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예뻐
01
w.갓제로빵민
과연 싫어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는지 궁금할 정도로 영민 선배는 인기가 많았다.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기고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했다. 거기다 전교회장 타이틀까지 달고 있으니 주위에는 항상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다. 감히 나 같은 건 쳐다도 보지 못할 높은 곳에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전교의 여학생들은 전부 영민 선배를 좋아했다. 마치 유행처럼 번져있는 만인의 짝사랑이자 첫사랑 그리고 나도 그 유행에 조용히 발을 담그고 있었던 여학생 중 한 명이었을 뿐 나와 선배 사이에 접점 따위가 있을 리가 없었다.
"얘들아 오늘 체육 3학년 5반이랑 같이 한데!!"
실장의 말에 우리 반 여자애들이 다 같이 환호성을 질렀다. 3학년 5반엔 영민 선배가 있는 반이었다. 체육복을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나가니 체육샘이 영민 선배한테 배구공 하나를 쥐여주고는 네가 알아서 애들 통제할 수 있지라고 말하고는 사라지셨다. 배구공을 들고서 퍽 난감하다는 듯 멋쩍게 웃고 있는 영민 선배에게로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때 우리 반에서 나서기 좋아하는 여자애 하나가 짝피구 해요라고 소리쳤다. 다들 나쁘지 않다는 듯 동의하는 눈치였고 최대의 관심사는 과연 누가 영민 선배와 짝이 되냐였다. 다들 제 짝을 찾기 바쁜 와중에 반에서 아싸인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저기... 음... 나랑 짝할래?"
내 두 눈과 내 두 귀를 의심했다. 영민 선배가 갑자기 다가오더니 조심스럽게 나랑 짝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무언가에 홀린듯 영민 선배의 뒤로 가 섯다. 대체 왜 나한테 짝하자고 했을까?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피구 공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내가 덩치로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상당하니 가장 맞추기 쉬운 대상이라 여겼을 것이다. 죽기 살기로 피해 다녔다.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건 나에게로 던져지는 공의 8팔은 영민 선배가 다 낚아채버렸고 덕분에 경기는 계속 우리 팀 쪽으로 유리하게 흘러나가면서 뭔가 당연하다는 듯 이겨버렸다.
"우와! 우리가 이겼어!!"
차오르는 숨을 겨우 몰아쉬고 있는 나에게 영민 선배가 하이파이브를 하자는 듯 손을 내밀었다. 아 어쩌지 그런 선배의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 자체가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그런 내 반응이 민망할 법도 한데 선배는 들었던 손을 그대로 내려 내 머리를 살짝 헝클어트리며 말했다.
"수고했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숨이 차서 그런 거라고 하기엔 확실히 다른 느낌의 두근거림이었다. 그날 이후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하면 영민 선배는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인사를 했다.
조용히 지나가길 바랐던 내 학교생활이 꼬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선배가 나에게 보인 호의로 난 여자애들 사이에서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애가 되었다.
"진짜 웃긴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영민 선배는 언제 꼬드긴 거래?"
"야 꼬드기건 뭘 꼬드겨 쟤가? 그럴만한 위인이냐 그냥 영민 선배가 겁나 착하니까 불쌍해서 챙겨준 거겠지 "
"근데 지도 꼴에 여자라고 내숭 떠는 거 봤냐?"
"으... 극혐 "
"근데 잰 저렇게 살찔 동안 뭐 했을까 나 같으면 쪽팔려서라도 뺏다"
"뭐 했겠냐? 찌든 말든 겁나 처먹기만 했겠지"
"아.. 야 오늘 점심 굶을까? 나도 저렇게 될까 봐 무섭다"
다 들린다 분명 뒤에서 말하면서 나한테 들리도록 크게 말한다. 중학생 때도 종종 내 외적인 모습 때문에 여자애들 사이에서 은근 따돌림을 당했는데 고등학생이 되어도 별반 다를 거 없는 아싸였다. 그래도 아예 관심이 없었을 뿐 괴롭히지는 않았는데 뭐 하나 밉보이기 시작하니까 너도나도 달려들어 내 심장을 마구잡이로 할퀴기 시작했다.
기어코 사건이 터졌다. 대놓고 내 욕을 하던 여자애들 중에 하나가 여교사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운 게 걸렸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여교사 화장실 청소 담당은 나였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그 여자애는 네가 일렀냐면서 나를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음악실 복도 앞에서 열댓 명의 여자애들에게 빙 둘러싸였다.
"야 너 진짜 뭐 믿고 까부냐? 어?"
그 여자애는 기분 나쁘게 내 머리를 검지로 툭툭 밀었다. 나는 그 여자애가 거기서 담배를 피운다는 것 자체를 몰랐는데 너무 억울했다. 그래서 내가 그런 거 아니라고 말했는데 말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며 나를 몰아세웠다. 내 머리를 밀어내는 손길이 더 거칠어지고 나는 계속 뒤로 밀려났다. 내 뒤에 바로 계단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를 그쪽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결국 그 여자애는 그걸 다 알면서도 내 어깨를 세게 밀쳐버렸다. 그대로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꼴랑 다섯 계단 굴러놓고 아픈척하는 거 봐라 야 네 살 에어백인데 엄살 오진다 진짜"
몸이 아픈 것보다 주위에서 구경하던 아이들의 비웃음 소리가 더 견디기 힘들었다. 차라리 이 상태로 기절이라도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차라리 머리라도 세게 부딪혀서 죽어버렸다면 그랬다면 저 아이들은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을까? 오만가지 감정들이 내 마음속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주위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고 흐릿한 내 시야 앞에 누군가의 신발이 보였다. 내 어깨를 잡고 일으켜 세우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아까보다 더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릎에서 피가 났다. 영민 선배는 말없이 그런 나를 양호실까지 데려왔다. 양호선생님이 안 계셨다 영민 선배는 표정을 살짝 찌푸리더니 일단 나를 침대에 앉혔다. 그리고 소독 약과 연고를 들고 오더니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파도 조금만 참아 여주야..."
그 다정한 말투가 내 심장을 두드렸다. 결국 울컥하고 터져 나온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무릎에 닿은 소독약이 너무 따가워서 그래서 우는 거라고 애써 합리화 시키며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떨구었다. 영민 선배는 말없이 내 무릎을 치료해주고 계속 울고 있는 내 등을 가볍게 토닥여 주었다. 그 손길이 너무 따뜻해서 더 눈물이 났다.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받아보는 위로였다. 영민 선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다 쏟아내고 나니 마음이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급속도로 밀려오는 민망함에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저 허리만 꾸벅 숙여서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양호실을 빠져나왔다.
곧장 교무실로 가 조퇴를 했다. 분명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식을 들었을 텐데 조퇴증을 끊어주는 담임선생님의 표정이 심드렁했다. 가방을 챙기러 교실에 올라가기가 너무 무서워서 그냥 빈손으로 집에 갔다. 그리고 다음날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어제 사건으로 인해 학생회 자체에서 학폭위가 열렸고 나를 계단아래로 밀쳤던 그 여자애는 벌점과 교내봉사 12시간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나를 도와주려는 영민 선배의 마음이 더욱 큰 불씨가 되었고 그 여자애는 더 악랄하게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다수의 무리들이 온갖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과 루머를 쏟아내며 나를 몰아가기 시작했고 자기들끼리 작당모의를 해 내 가방에 몰래 다른 반 여자애의 지갑을 숨겨놓고 나를 도둑으로 몰았다
17살이 견뎌내기엔 너무나도 가혹하고 잔인했다. 딱 죽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아마 반쯤 미쳐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마치 괴물 같았다. 그 후로는 사실 나도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갑자기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나서 잠이 깬 엄마가 본 광경은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 깨진 거울 파편을 손에 쥐고 손목을 긋고 있는 내 모습이라고 했다. 병원에서는 정신과 치료와 요양이 시급하다고 했다. 그래서 자퇴를 하기로 했다. 자퇴서를 쓰러 간 날에도 아이들은 너무나도 잔인한 말들로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쟤 자살기도했다며?"
"독한 년 근데 죽을 용기는 없었나 봐 멀쩡하네"
엄마의 손을 꼭 부여잡고 벌벌 떨리는 걸음으로 겨우 교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교무실 문 앞에서 서성거리던 영민 선배와 마주했다.
무언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았다. 영민 선배의 탓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원망스러웠다.
18살은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우울증에 거식증까지 왔다. 17살에 내 인생 최대의 몸무게를 찍었는데 1년 만에 내 인생 최하의 몸무게를 찍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빠진 살이 아니니 당연히 온몸이 다 병들었다. 마음도 몸도 병이 들어 헤어 나오는데 만 꼬박 2년이 걸렸다. 그때의 트라우마로 나는 눈이 나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안경을 썼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나는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 나름 열심히 살았다. 검정고시도 봤고 입시학원을 다니면서 수능 준비도 했다. 물론 여전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큰 벽을 쌓고 살았지만 더 이상 부모님의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기에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보통의 사람들 처럼 스무살에 대학에 입학했고 다행히 좋은 선배를 만나서 무탈하게 대학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꺼라 생각했다.
어떻게든 잊고 살아보려고 노력했는데 그래서 마음 한구석 깊은 곳에 묻어두고 다시는 꺼내보지 않으리 다짐했던 첫 사랑 이었다. 그런데 이런식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남기는 말 |
첫편부터 우울충 감성이 터져버렸네요.... 내용이 다소 무거워서 깜짝 놀라셨죠 진지충라... 메모장에 써놓은 글 보면 죄다 이래요ㅠㅠ 아 BGM을 깔고싶은데 인티가 아픈건지 저희집 컴이 아픈건지.. 나중에 다시 시도해봐야겠어요ㅎ 프롤편에 댓글 달아주신 분들 너무 감사합니다ㅠㅠ 아 그리고 혹시라도 상도덕 못하신다는 분 움짤이 불편하시다면 죄송합니다ㅠㅠㅠ 저도 안쓰고싶은데... 폴더의 반이 상도덕짤이네요... 하앙.. 만들 능력도 없고.... 그리고 영민이가 너무 예뻐서 지울수가 없다능ㅠㅠㅠ 흑흑ㅠ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