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이유가 되었다.
태어난 곳은 1구역. 그 사이에서도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를만큼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것이 운이 좋다면, 좋다고 표현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누구도 쉽게 접해보지 못할 것들을 접했고, 입지 못할 것들을 입었다. 주변에는 우리 부모님께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딱히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내 앞엔 셀 수 없을 만큼 크고 반짝거리는 선물들이 가득했다. 난생 처음 본 사람들에게 도련님이라는 호칭까지 불려가며 살았지만 내 생각엔, 내 인생은 그리 유복하지 않았다. 가난하다면 가난한 꼴이었지.
-입 다물고, 니 방에 들어가. 오늘 밥 없을 줄 알아.
엄마의 말이었다. 그것도 친엄마. 그날은 굶주린 배를 감싸안고 불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 안에서 혼자 잠이 들었다. 아마, 7살 때였던 것 같다. 처음에는 몰랐다. 부모님이 왜 이유없이 나를 어두운 방 안에 가두고, 밥을 주지 않고, 나에게 상스러운 욕을 내뱉는 지. 그 이유는 점차 내가 자라나며 알게 되었던 것 같았다. 부모님은 나를 원치 않으셨다. 어쩌면, 엄마는 나를 더욱이 원하지 않았겠지.
이유는 그랬다. 우리 아빠는 엄마를 강간했다. 아빠라는 사람은 굉장히 유명했다. 사실 부모님께 머리를 조아린 사람들도, 곱씹어 생각해보면 우리 아빠에게 머리를 조아렸던 것이지, 엄마는 아니었다. 아빠는 여전히 이 곳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카지노의 유명인사였다. 아빠의 뒤를 따르기는 싫었다. 카지노라면 항상 술에 취해 들어와 나와 엄마를 때리는 아빠의 모습이 너무 강했으니까. 일주일에 4번 이상은 꼭 카지노에서 밤을 꼴딱 새고 들어와 나와 엄마를 밥 먹듯 때렸다.
엄마는 항상 울었고, 나는 항상 어두운 방 안에 가둬졌다. 그러던 일상이 반복되고 있을때, 내가 14살때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빠는 카지노에서 밤을 새고 술에 취해 들어와 엄마와 나를 때렸다. 아빠는 닥치는대로 손에 잡히는 물건들을 깨부시기 시작했고, 엄마와 나는 구석에 웅크려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고 있을때였다. 아빠가 거실 테이블에 놓인 조명을 들어 유리창을 향해 던졌다. 큰 소리와 함께 유리파편들이 거실 사방으로 튀었고, 그때문에 내 귀에는 작은 생채기가 나기도 했다. 엄마는 거북이가 기어가듯 조용하고 느리게 몸을 움직였다. 손에 잡아든 건 뾰족하고 조금 큰 유리파편이었다. 엄만 등을 돌리고 있는 아빠의 목덜미 부분을 강하게 찔렀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다.
눈을 떠보니 보이는 것은 여느때와 다른 하얀 침실이었다. 병원이라고 표현하면 쉽겠지. 그때부터였다. 14살이라는 나이에 혼자 인생을 살아가게 된 건. 어쩌면 좋았다. 이유없이 나를 때리고, 욕 하던 사람들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는 건 내 일생 가장 큰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너무 이른 나이부터 부모님의 도움과 사랑없이 자란 아이가 혼자 무얼 할 수 있을까. 나같은 경우의 답은 하나였다.
카지노에 처음 들어선 건 25살때, 팔목에 24시간이 처음 생겨났을 때였다. 카지노에 처음 들어서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이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일까, 카지노 유명인사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단 탓에 카지노에서는 나를 어느 값도 치르지 않고 들여보내 주었고, 그때부터 의미없이 향한 곳이 카지노였다.
-이름이 뭐에요?
-…전, 강다니엘.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말을 섞는 건 내겐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일방적인 말들이 가득했지만, 사람과 서로 소통하는 건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고작 24시간을 가지고 게임을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도 나에게 불평을 늘어놓는 일은 없었다. 두려움은 없었던 것 같다. 당장이라도 죽으라면 죽을 수 있었다. 살아있을 이유도, 죽을 이유도 없는 나에게는 두 선택지 모두 다 비등한 느낌을 가져왔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카지노에서의 첫 게임은 승리로 이루어졌다. 꼴에 과거 카지노의 유명인사 아들이라고 재능을 물려 받았나, 하는 조그마한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루를, 일주일을, 한달을, 일년을. 똑같은 반복의 연속인 삶이었다.
"집은…, 혼자 살아요?"
그런데, 어쩌면.
"저는 혼자 살거든요."
내 옆에 있는 이 여자가.
"…그냥, 그쪽도 그럴까 싶어서요."
내가 살아있는 이유를 만들어 줄지도 모르겠다.
-
차 안 가득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이젠 흐르다 못해 넘칠 것 같기도 했다. 그저 앞을 바라보며 핸들을 잡고 운전하는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절대 먼저 이 정적을 깰 생각은 없어보였다. 마치, 아까 처음 포커게임을 했던 그때처럼 목이 말라가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 할 것 같았다. 안그럼, 당장이라도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갈 것 같았으니까.
"집은…, 혼자 살아요?"
슬쩍 그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지만 그는 나를 잠시 흘겨보기만 할 뿐 나의 질문에는 입을 열지 않았다. 또다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저는 혼자 살거든요."
차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딱히 대답을 듣고싶지도, 원하지도 않아서 일까. 역시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그냥, 그쪽도 그럴까 싶어서요."
어색한 정적 끝에 도착한 곳은 그의 집이었다. 부드럽게 핸들을 돌려 코너를 지난 그는, 자신의 집 앞 으리으리하다고 표현하기도 부족한 대문이 열리자 느린 속도로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열려있는 차고로 향했다. 차고 안에 위치한 많은 고급차들의 위엄에 조금 위축이 되는 것 같다가도 금새 자동차의 시동을 끄고 나가버리는 그를 재빠르게 뒤따라야만 했다.
차에서 내리자, 삐빅거리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자동차가 번쩍거렸다. 차 안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에 조금 낯설어져 심장이 두근대는 것 같았다. 그를 뒤따라 차고에서 나오자, 잠시 보았던 큰 마당은 더욱 더 커져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아까전에는 보지도 못했던 조그마한 분수대가 춤추고 있기도 했고. 또각거리는 구두소리가 들려오자, 그제서야 발에 난 상처가 다시금 아려오는 것 같았다. 무슨 정신으로 오늘 처음 본 남자의 집까지 오게 된걸까. 나도 참, 미쳤지.
그를 한참이나 뒤따랐을까. 저 멀리서부터 위엄을 뽐내던 거대한 저택의 큰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그는 부유하고 귀품이 흘렀지만, 이정도는 아닐거라고 생각했는데. 괜스레 머쓱해졌다. 그가 검지손가락을 문 옆에 위치한 도어락에 가져다대자,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이 단단하고 큰 문이 허무하게 열렸다.
쥐죽은듯 조용히 그를 뒤따랐다. 집은 아까전 내가 머물던 카지노마냥 천장도 높고, 바닥도 번쩍거렸다. 바닥이 얼마나 깨끗한지 고개를 숙여 발을 바라보면 나의 모습이 흐릿하게 비추었다. 또각거리는 구두소리를 내며 그를 뒤따르자, 이내 큰 텔레비전과 벽난로가 위치한 곳에 올 수 있었다. 아마 거실의 역할을 하는 곳 같았다. 뻘쭘히 그의 뒷모습만을 바라보며 서있으면, 그가 내게로 몸을 돌려 입을 열었다.
"발 다쳤죠?"
"아…."
"저기 앉아요."
갑작스런 그의 질문에 멍청하게 탄식만 내뱉으면, 그는 아무렇지 않은듯 거실 중앙에 위치한 큰 소파에 앉으라며 자신의 긴 검지손가락으로 소파를 가르켰다. 고개를 작게 주억거리며 소파에 조심스레 엉덩이를 붙이면, 나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가 다시금 몸을 돌려 거실을 빠져나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말없이 눈으로 쫓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난생 처음 보는 것들이 가득했다. 알 수 없는 그림들과, 한눈에 보아도 비싼 값어치를 하는 것 같은 가구들과 장식물들. 앞에 걸려있는 텔레비전은 마치 영화관을 떠오르게 할 만큼 큰 크기를 자랑했다.
주변을 둘러보며 연신 신기함에 혀를 내두르고 있으면, 얼마 되지 않아 그가 품에 무언가를 한가득 들고 다가왔다.
"발 줘봐요."
"…아, 제가 할 수 있는데."
"나 때문에 다친 거 아니에요?"
"아…네."
그의 물음은 정말 나의 답을 원하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냥, 자신의 의견을 강조하는 거겠지. 구두를 조심스레 벗자, 내 앞 맨바닥에 편하게 앉은 남자가 서스럼없이 나의 발을 잡아 들고 왔던 큰 구급상자를 뒤적거리며 연고를 찾았다. 면봉에 연고를 바르고, 이내 나의 발에 난 상처에 바르자 따가움이 깊숙히 찔러왔다. 조금 탄식을 뱉으며 미간을 찌푸리자 나를 잠시 바라보던 그가 다시금 연고를 발랐다. 그의 반듯하게 정리된 머리카락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런 것도 혼자 해요?"
나의 질문에 바쁘게 연고를 바르던 그의 손이 잠시 움찔거렸다가도 다시금 자연스레 연고를 발랐다. 역시나, 질문을 무시하려나 싶어 고개를 돌렸다. 그것도 잠시, 나를 바라보는 눈길에 시선을 다시금 그에게로 거두자 눈이 닿았다.
"어렸을 때 많이 다쳤어요."
"…아, 그렇구나."
"이거 말고 더 심하게."
느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시금 고개를 숙인 그가 면봉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놓아두더니, 구급상자를 뒤적거리며 반창고를 찾아들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궁금해요?"
그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나를 무미건조한 눈으로 깊게 바라보는 그에게서 왜인지 모를 위압감을 느꼈다. 작게 탄식을 내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느껴졌다. 입술만 잘근잘근 씹어대고 있으면, 그가 나의 발에 반창고를 붙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제서야 작게 고개를 들어 다시금 그를 바라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몸의 무게를 받는 발에 상처가 나서 그런지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인다 해도 서있으면 따끔거리는 통증이 금방 사라지지는 않았다. 몸을 일으키려다가, 다시금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는 간결하게 상처를 치료하고서는 자신이 챙겨왔던 것들을 모조리 챙기고 다시금 거실을 빠져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쫓았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유 없는 약간의 아쉬움이 들었다. 아쉬움도 잠시. 걱정들이 물 밀려오듯 밀려왔다. 이제, 어떡하지. 낯선 남자의 집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절로 한숨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걱정돼요?"
"네?"
한손에 자신이 신고 있는 것과 같은 슬리퍼를 들고있었다. 그는 저만치서 금새 나에게 다가와 슬리퍼를 내 발 앞에 놓아주었고, 아무런 말 없이 슬리퍼를 꾸역꾸역 신고 있으면 그가 내 옆에 앉았다. 이렇게까지 가까이 있던 적은 처음인 것 같은데.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어대는 것을 느꼈다. 혹시라도, 그에게 들릴까 싶어 몸을 옆으로 옮기려 엉덩이를 들썩이면 그가 재빠르게 나의 팔목을 잡았다.
"여기 구역 사람이 아니죠?"
"…네?"
"…향수 냄새가 안나서."
그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나의 팔목을 잡고 있던 손을 놓더니 소파에 팔을 걸쳤다. 곧, 그가 자신의 턱을 굈다. 한참이나 서로의 시선이 서로에게 머물렀다. 약간의 분홍빛을 띄고 있는 그의 눈가가 더욱 더 붉어지고, 눈동자는 한없이 깊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게, 유혹을 당하는 걸까. 난생 처음 느껴보는 기분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아주 조금, 아주 조금은.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과거의 그 남자에게
고마워야 할 이유가 생긴 것 같기도 했다.
안냐세여! 모글이에용.
이번편은 뭔가 서로에게 각별해지는 그런 순간들을 좀 적어보고 싶어서...
너무 별 거 없죠? (끵) T^T..
그리구 녤이의 과거를 좀 보여주고 싶었어요! 녤이두 사연이 있는 아이라는걸..!
태어났을때부터 이때까지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었던 사람에게 이유가 생긴거면,
다녤한테는 이름님이 굉장히 각별한 존재라는 것이겠죠!
혹시라도 중간에 오타가 있다면 넓은 아량으로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T^T..아직 많이 부족해요..
^ㅅ^ 오늘도 글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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